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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03:34:09

김인수(대한제국)

<colbgcolor=#666633> 김인수
金仁洙 | Виктор Ким
파일:김인수 장군.jpg
<colcolor=#FFF> 이름 <colbgcolor=#fff,#1f2023> 金仁洙 | Виктор Ким
김인수 | 빅토르 김
출생 생년 미상
조선국 함경도
사망 1925년 1월
중화민국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대한제국|]][[틀:국기|]][[틀:국기|]] →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1]
복무 대한제국군 (1896년 ~ 1904년)
러시아 제국군 (1904년 ~ 1917년)
러시아 백군 (1917년 ~ 1922년)
봉천군벌 (1922년 ~ 1925년)
최종 계급 소장
참전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적백내전
직봉전쟁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제국 러시아 제국의 군인.

2. 생애

1896년 고종의 요청으로 조선에 입국한 러시아 군사교관단의 통역을 맡았다. 러시아 외무부의 통역관이였다고 하며 고종의 명으로 대한제국군 시위대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김인수는 고종에 눈에 들었고 시종무관[2]으로 임명되었다. 1903년엔 대한제국군 참령[3]이였다.
참령(參領) 김인수(金仁洙)를 본관(本官)에서 파면시키라고 명하였다. 러시아(俄國)에 입적(入籍)한 것과 관련해서 원수부(元帥府)에서 주청(奏請)하였기 때문이다.
고종실록 44권, 고종 41년 7월 27일 양력 3번째기사 참령 김인수를 본 벼슬에서 파면시키다.

이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로 탈출, 러시아군에 합류하였다. 김인수가 러시아로 탈출하자 대한제국군 원수부 고종에게 주청하여 김인수를 관직에서 파면시켰다. 러시아군에 편입후 김인수는 자신이 대한제국군의 대령이었다며 자신의 계급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했으나[4] 대한제국군 시절보다 한 계급 낮은 러시아군 대위로 임명되었고 첩보원, 기병 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러일전쟁 종전 후에도 대한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러시아에 남았고 1908년에는 이범윤- 이위종- 최재형의 연해주 의병 창설에 관여하였다. 러시아 여인과 결혼 및 이르쿠츠크 정착은 이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돈 카자크 사단 소속으로 1914-15년 바르샤바 전선에서 공훈을 세워 대령으로 진급. 성 게오르기 훈장을 포함한 다수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김인수는 고려인 통합 부대 창설을 1917년에 제안하지만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자 1918년 김인수는 백군 남러시아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1918-19년 기간에 백군 소속으로 싸웠지만 결국 백군이 패퇴하게 됨에 따라 1920년 1월에 배를 타고 터키로 망명하였다.

1920년 6월에서 터키에서 백군이 남아있는 극동 러시아로 향하지만 결국 백군은 1922년 최종적으로 극동에서마저 패퇴하였고, 김인수는 백군 잔당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다수의 백군 잔당들이 중국 군벌의 용병들이 된 것처럼, 1924년 김인수도 봉천군벌 장쭤린 휘하 러시아 여단 참모가 되었다. 장쭤린 휘하로 활동하던 도중 1925년 1월 사망한다.

3. 기타


[1] 이중국적이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 국적은 사실상 소멸된 듯. [2] 현대로 치면 경호원. [3] 소령 [4] 실제로는 대령이 아니라 지금의 소령에 해당하는 참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