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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 ||
<colbgcolor=#bf1400> 경복궁 동십자각 景福宮 東十字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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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1 (사간동 126번지) | |
건축시기 | 1395년 (창건) / 1867년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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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동십자각[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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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복궁의 망루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복궁과 떨어져 도로 정 중앙에 섬처럼 놓여있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58 ( 세종로)이다.동아시아권에서는 궁성 정문 옆에 궁을 수비하는 망루를 두었다. 이것을 ‘ 궐(闕)’이라고 부른다. 즉, ‘궁궐(宮闕)’은 ‘궁(宮)’과 ‘망루(闕)’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물론 지역과 시대에 따라 궐의 모습도 달랐다. 그래서 궐이 정문과 가까울 때도 있었고, 멀 때도 있었다. 경복궁의 망루는 정문 광화문과 꽤 떨어져 있었으며 궁성 동남쪽, 서남쪽 끄트머리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 중 동남쪽 망루가 바로 동십자각(東十字閣)이다. 서남쪽 망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인데 일제강점기에 헐렸고, 현재는 동십자각만 남아 있다.
2. 이름
십자각(十字閣)은 말 그대로 건물 평면이 ‘열 십(十)’자인 건물을 말한다. 그런데 경복궁의 망루는 평면이 사각형이라 원칙적으로는 십자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볼 때 용마루가 ‘열 십(十)’자로 교차하는 모습이며, 망루와 맞닿은 궁장이 ‘열 십(十)’자 모양으로 교차해서 십자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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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경복궁 궁장과 붙어있던 시기에 촬영한 동십자각. 왼쪽은 궁성 밖에서, 오른쪽은 안에서 촬영한 것이다. |
고종 초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복구했다. 《고종실록》의 이 기사를 보아 1866년(고종 3년) 무렵에는 이미 완공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조선박람회’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이 때 일제는 조선총독부에서[2] 박람회장 정문인 광화문[3]까지 도로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길을 확장하면서 동십자각을 에워싼 궁장을 헐었다. 그래서 동십자각은 길 한복판에 섬처럼 놓이게 되었고, 망루 위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이 때 사라졌다.
사실 저 정도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1923년 일제가 조선부업품공진회 개최와 동시에 영추문 앞으로 전차 선로를 개설했는데, 원활한 전차 통행을 위해 커브 길을 만들면서 동십자각과 대칭을 이루던 서십자각 건물 자체를 다 헐었기 때문이다. 동십자각 역시 삼청동 방향 전차 선로 개설 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천만다행으로 선로가 삼청동이 아닌 안국동 방면으로만 개설되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광복 이후 1972년 8월 3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받았다. 그러나 이미 경복궁 전체를 사적 제117호로 관리하고 있었기에 영역이 겹친다는 이유로 2006년 8월 28일 자로 지정 해제되었다.
1990년대 들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경복궁 복원사업을 진행할 때 광화문 권역 복원과 함께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원형으로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 동십자각의 경우, 정확히는 경복궁 담장과 잇고 없어진 계단을 복구하기로 한 것. 그러나 동십자각 담장 연결 시 도로가 좁아지는 문제가 생겨 현재까지 복원을 못하고 있다.
2018년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합의 끝에 동십자각은 현 위치에 두고 궁궐 담벽만 연결한다고 발표했다. 지금의 도로의 절반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회도로를 완성한 후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4. 구조
- 북쪽 지면이 더 높고 남쪽이 더 낮다. #
- 축대는 장대석을 7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위로 갈수록 돌이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 하단에는 당초문을 장식해두었으며 축대 각 면마다 빗물이 흘러내릴 수 있게 석루조를 설치했다. 석루조 모양은 서수의 머리 모양이다. #
- 축대 위에 벽돌로 만든 여장을 사방에 둘렀으며 벽돌 여장의 위, 아래, 가장자리에는 화강석을 두었다. 여장의 벽돌 사이마다 가로가 긴 ‘열 십(十)’자 형 구멍을 뚫었다. 서쪽 방향 여장 가운데에는 누각으로 들어가는 협문을 설치했다. 협문의 몸체는 돌, 지붕은 전돌, 문짝은 나무로 만들었다. 문 아래로는 지면과 연결하는 계단을 두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없앴다. 다만, 계단이 있었던 방향으로 축대가 약 2m 정도 나와있어 계단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 여장 안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 짜리 누각이 있다. 지붕은 사모지붕,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이익공이며 출목이 없다. 지붕 꼭대기에는 연화노반형의 청동 절병통을 두었으며 추녀마루에는 양상바름을 하고 그 위에 용두와 잡상을 올렸다. 기둥 사이 공포의 하단과 창방 사이에는 화반을 두었으며 기둥과 창방 아래의 가장자리에는 낙양각을 설치했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으며 기둥은 원형이다. # #
- 가장자리 툇간은 외부와 통해있으나 가운데 1칸은 사방에 교창, 창, 문이 있는 방이다. 교창은 빗살이고 창과 문은 띠살 무늬를 한 사분합문이다. 가운데 칸의 동, 남, 북 면은 머름이 있는 창이며 서면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툇간 천장은 구조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나 가운데 칸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툇간 바닥은 전돌이나 가운데 칸 바닥은 널마루이다. #
5. 여담
<colbgcolor=#bf1400> 조선박람회 개최 당시 동십자각을 덮은 조형물 |
<colbgcolor=#bf1400> 동십자각 조각상 발견을 다룬 [[KBS 뉴스 9|{{{#gold 〈KBS 뉴스 9〉}}}]] 클립 |
- 화가 근원 김용준의 데뷔작이 동십자각의 담장을 허무는 모습을 그린 〈동십자각〉이다.[4]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4년에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동십자각〉을 출품해 입선했다고 한다. #
- 근처에 《 서울경제신문》 사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경제신문의 사내 칼럼 이름이 〈동십자각〉이다. # 여담으로 한국일보와 연합뉴스의 구 사옥도 동십자각 바로 맞은편에 있었으나 현재는 재개발되어 사라졌고, 안국동 쪽으로 가면 신아일보가 있다.
[1]
사진 출처 - 카카오맵.
[2]
경복궁 흥례문과
영제교 자리에 있었다.
[3]
조선총독부 완공 직전인 1925년에 경복궁 동쪽 궁장(정확히는
건춘문 북쪽,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옮겨졌다.
[4]
스승 이종우의 회고에 따르면, 원제는 〈건설이냐? 파괴냐?〉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