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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02:38

경복궁 동십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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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동십자각
景福宮 東十字閣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1 (사간동 126번지)
건축시기 1395년 (창건) / 1867년 (중건)
파일:동십자각.png
<colbgcolor=#bf1400> 동십자각[1]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경복궁 망루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복궁과 떨어져 도로 정 중앙에 섬처럼 놓여있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58 ( 세종로)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궁성 정문 옆에 궁을 수비하는 망루를 두었다. 이것을 ‘ 궐(闕)’이라고 부른다. 즉, ‘궁궐(宮闕)’은 ‘궁(宮)’과 ‘망루(闕)’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물론 지역 시대에 따라 궐의 모습도 달랐다. 그래서 궐이 정문과 가까울 때도 있었고, 멀 때도 있었다. 경복궁의 망루는 정문 광화문과 꽤 떨어져 있었으며 궁성 동남쪽, 서남쪽 끄트머리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그 중 동남쪽 망루가 바로 동십자각(東十字閣)이다. 서남쪽 망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인데 일제강점기에 헐렸고, 현재는 동십자각만 남아 있다.

2. 이름

십자각(十字閣)은 말 그대로 건물 평면이 ‘열 십(十)’자인 건물을 말한다. 그런데 경복궁의 망루는 평면이 사각형이라 원칙적으로는 십자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볼 때 용마루가 ‘열 십(十)’자로 교차하는 모습이며, 망루와 맞닿은 궁장이 ‘열 십(十)’자 모양으로 교차해서 십자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

3. 역사

파일:동십자각 원형.png
파일:동십자각 원형2.png
<colbgcolor=#bf1400> 경복궁 궁장과 붙어있던 시기에 촬영한 동십자각. 왼쪽은 궁성 밖에서, 오른쪽은 안에서 촬영한 것이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모르나, 망루라는 가장 기본적인 시설임을 감안할 때, 1395년( 태조 4년)에 경복궁을 처음 지으면서 같이 조성한 듯 하다. 1427년( 세종 9년)에 심하게 기울어져 철거했고, 이후 관련 기록은 없다. # 다만, 궁궐의 수비를 담당하는 중요한 건물인 만큼 머지않아 재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종 초에 흥선대원군 경복궁을 중건할 때 복구했다. 《고종실록》의 이 기사를 보아 1866년(고종 3년) 무렵에는 이미 완공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조선박람회’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이 때 일제 조선총독부에서[2] 박람회장 정문인 광화문[3]까지 도로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길을 확장하면서 동십자각을 에워싼 궁장을 헐었다. 그래서 동십자각은 길 한복판에 처럼 놓이게 되었고, 망루 위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이 때 사라졌다.

사실 저 정도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1923년 일제가 조선부업품공진회 개최와 동시에 영추문 앞으로 전차 선로를 개설했는데, 원활한 전차 통행을 위해 커브 길을 만들면서 동십자각과 대칭을 이루던 서십자각 건물 자체를 다 헐었기 때문이다. 동십자각 역시 삼청동 방향 전차 선로 개설 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천만다행으로 선로가 삼청동이 아닌 안국동 방면으로만 개설되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광복 이후 1972년 8월 3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받았다. 그러나 이미 경복궁 전체를 사적 제117호로 관리하고 있었기에 영역이 겹친다는 이유로 2006년 8월 28일 자로 지정 해제되었다.

1990년대 들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경복궁 복원사업을 진행할 때 광화문 권역 복원과 함께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원형으로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 동십자각의 경우, 정확히는 경복궁 담장과 잇고 없어진 계단을 복구하기로 한 것. 그러나 동십자각 담장 연결 시 도로가 좁아지는 문제가 생겨 현재까지 복원을 못하고 있다.

2018년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합의 끝에 동십자각은 현 위치에 두고 궁궐 담벽만 연결한다고 발표했다. 지금의 도로의 절반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우회도로를 완성한 후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4. 구조

5. 여담

파일:동십자각 조선박람회.png }}} ||
<colbgcolor=#bf1400> 조선박람회 개최 당시 동십자각을 덮은 조형물
상술한 1929년에 열린 조선박람회 때, 동십자각과 비슷하지만 훨씬 크기가 큰 임시 조형물을 동십자각 건물에 덧씌웠다.
}}} ||
<colbgcolor=#bf1400> 동십자각 조각상 발견을 다룬 [[KBS 뉴스 9|{{{#gold 〈KBS 뉴스 9〉}}}]] 클립
동십자각 계단 입구에 있었다가 담장 철거 시 사라졌던 서수 조각상을 문화재청에서 2019년에 발견했다. 이때까지 보관된 장소는 창덕궁 현장 사무실 근처였다. 궁궐 안에 있는 석조물 현황을 조사하다가 찾았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담장을 복원하면서 서수도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 사진 출처 - 카카오맵. [2] 경복궁 흥례문 영제교 자리에 있었다. [3] 조선총독부 완공 직전인 1925년에 경복궁 동쪽 궁장(정확히는 건춘문 북쪽,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옮겨졌다. [4] 스승 이종우의 회고에 따르면, 원제는 〈건설이냐? 파괴냐?〉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