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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2:18:59

겨울연가

겨울 연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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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월화 드라마
겨울연가 (2002)
파일:1000005075.jpg
<colbgcolor=#dae7f7><colcolor=#000000> 장르 로맨스, 학원, 오피스, 가족
방송 시간 · / 21:50
방송 기간 2002년 1월 14일 ~ 2002년 3월 19일
방송 횟수 20부작
채널 KBS 2TV
방송사 KBS SKY DRAMA | KBS W KBS Story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
연출 윤석호 [1]
극본 윤은경, 김은희 [2]
출연 배용준, 최지우, 박용하, 박솔미
스트리밍 Wavve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언어)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차량 협찬 Ford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4. 인기
4.1. 한국에서4.2. 일본에서의 대성공
4.2.1. 겨울연가 이전4.2.2. 첫 번째 방송 후4.2.3. 2차 방송 종방 후4.2.4.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공했나?4.2.5. 파급효과4.2.6. 배용준의 완벽한 선도
5. 미디어 믹스6. 기타

[clearfix]

1. 개요

첫사랑이라는 운명으로 묶인 세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2002년 1월 14일부터 동년 3월 19일까지 〈 미나〉 후속으로 방영한 KBS2 월화 드라마.




2.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겨울연가/등장인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줄거리

현재에 와서는 많이 익숙해지고 진부한 클리셰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한다.[3] 이하는 편의상 배우 이름으로 정리하였으며, 단락의 구분역시 자의적임을 공지한다.

4. 인기

4.1. 한국에서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파일:KBS 2TV 로고(1984-2018) 화이트.svg 겨울연가
(2002년 1월 14일 ~ 2002년 3월 19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파일:MBC 로고(1986-2005) 컬러 화이트.svg 상도
(2001년 10월 15일 ~ 2002년 4월 2일)
파일:SBS 로고.svg 파일:SBS 로고 화이트.svg 여인천하
(2001년 2월 5일 ~ 2002년 7월 23일)
1회 16.3 27회 20.1 99회 31.7
2회 16.6 28회 22.4 100회 33.2
3회 19.2 29회 21.3 101회 32.5
4회 21.6 30회 21.2 102회 29.2
5회 21.2 31회 20.6 103회 28.3
6회 24.1 32회 19.0 104회 26.9
7회 27.2 33회 18.3 105회 24.3
8회 26.3 34회 20.3 106회 25.2
9회 17.8 35회 15.5 107회 17.6
10회 16.7 36회 15.3 108회 16.7
11회 26.4 37회 23.3 109회 23.7
12회 27.0 38회 21.0 110회 26.3
13회 27.6 39회 21.7 111회 25.2
14회 28.8 40회 19.0 112회 23.9
15회 26.4 41회 20.1 113회 24.3
16회 25.2 42회 21.2 114회 24.8
17회 23.3 43회 19.1 115회 28.6
18회 22.4 44회 19.9 116회 29.1
19회 23.7 45회 19.6 117회 29.3
20회 24.5 46회 18.0 118회 28.9
원본 이미지
[범례]
최저 시청률최고 시청률

겨울연가 VS 상도 VS 여인천하라는 드라마 역사에 전무후무할 죽음의 조에서도 평균 시청률 23.1%로 흥행에 성공했다. 겨울연가가 방영되면서 2001년부터 이어져온 여인천하의 시청률 독주 체제가 깨지고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최지우 머리, 배용준 목도리 등이 직장인을 중심으로 계절 상품처럼 유행했고, 드라마 중반부에 들어서자 '여인천하'의 시청률를 따라잡아 한 달 넘게 시청률을 역전시키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주부들은 여인천하와 겨울연가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질 정도.

그러나 전작인 가을동화와 비교하면 한국 내에서의 시청률이나 파괴력은 떨어지는 편이었다.[5] 가을동화의 송승헌, 송혜교는 그 작품 하나로 하루아침에 벼락 스타가 됐지만 최지우나 배용준은 이미 스타였고[6]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겨울연가는 중대박 정도 느낌이었지 어떤 사회 현상을 일으킬 정도의 초대박 드라마는 아니었다.[7]

한편, 캐스팅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는데 배용준이 분한 강준상 역은 당초 류시원이 낙점됐으나 본인이 진행하고 있었던 SBS '류시원 황현정의 나우'(이하 '나우') 앞시간대란 이유 때문에 고사해 버렸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수요일 목요일에 MBC에서 방영한 그 햇살이 나에게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아울러 최지우가 맡았던 정유진 역은 당초 김희선이 낙점됐지만 고사했으며 심은하에게도 제의가 갔는데 심은하는 <겨울연가> 외에도 <첫사랑>, <진달래꽃 필 때까지>, <아씨>(과거 TBC 드라마의 리메이크), <명성황후>, <장희빈> 등의 KBS 드라마 출연 제의를 거절한 바 있다.

4.2. 일본에서의 대성공


한국 방영이 종료된 지 1년 후, 일본 NHK에서 수입, 2003년 4월부터 9월까지 NHK BS2에서 "겨울 소나타(冬のソナタ)"라는[8] 제목으로 일본어로 더빙되어 오후 10시에 방영되었다. 전설의 시작. 이후 시청자들의 요청에 후술되어있듯 2004년부턴 NHK 종합 채널에서도 다시 방영된다. 겨울연가가 일본 열도를 본격적으로 흔든건 2004년 방영때부터였다.

그 영향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어느덧 방영된지도 20년이 다 되어가는 2022년 한류 실태 조사에서도 드라마 일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4.2.1. 겨울연가 이전

당시만 해도 일본 내에서 한국 가요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긴 했지만[9] 한국 드라마는 상황이 정반대로 일본에 거주한 재일동포나 한국 유학생들, 한국 기업의 일본 지사 파견 직원들이 주 시청자였던 데다가 그것도 도쿄에 있는 한국 비디오점에서나 빌려보던 수준의 미미한 것이었다. 영화로만 따지면 겨울연가 방영 2년 전인 2000년 일본에서 개봉한 쉬리가 100만 관객, 15억 엔 수익을 돌파하긴 했지만 물론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한류'가 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10] 덤으로 지금과는 달리 이 당시에는 위성방송이 생겨나기 전이었고 VHS 포맷의 비디오 테이프가 대세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방영된 한국드라마를 녹화해서 대여하는 비디오 대여업이 성황 중이었는데, 코리아타운이 위치한 신오쿠보는 일본 도쿄도의 우범지대인 가부키초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입지 역시 안 좋았다.

겨울연가가 첫 회 방영될 당시만 해도 큰 반향이 없었지만 주부들 사이에서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여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폭증하게 된다. 점차 화제가 되기 시작하다가 어느순간 30~50대 여성층을 중심으로 미칠 듯한 인기를 끌게 되었고, 거의 하나의 사회현상에 비견될 만한 거대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사회 현상을 일으킨 후 방영된 다큐 등에 따르면, 애초에 처음 방영했을땐 위성채널 방영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방송 시청자수 자체는 적었지만, 일본 중장년 여성들이 그들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비디오 테이프로 해당 방영분을 녹화하여 함께 보고, 권유해서 보게 하는 방법으로 매니아층을 넓혀나갔다.

4.2.2. 첫 번째 방송 후

종영 이후에도 재방영 요청이 빗발쳐서 2003년 12월에 같은 채널에서 재방영에 돌입했는데, 이번에는 지상파에서도 보게 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고, 결국 2004년 4월부터 8월까지 NHK 종합 채널에서도 방영되었다. 당시 방영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11시 10분. 즉, 위성방송으로 2번 방영하고, 심야 시간대라 할 수 있는 밤 11시에 지상파에서 삼방을 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NHK의 간판 드라마인 대하드라마 신센구미!를 능가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

원래 NHK는 뉴스 등 보도, 다큐멘터리, 재난방송에 있어서는 일본의 타 민영방송국과 비교를 불허하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지만 드라마는 아침드라마, 대하드라마 딱 2개만 시청률이 높고 화제가 된다. 한국으로 치면 KBS 1TV와 같은데, KBS1도 저녁 8시 30분 일일드라마와 주말 창사특집 대하사극이 유명하듯이. 다른 드라마도 방영하지만 시청률 및 존재감이 예나 지금이나 미미하다. 그럼에도 당시 일본 드라마를 즐겨보고 일본 방송의 시청률 동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러한 겨울연가의 시청률 추이를 보고 괴물연가라고 이름 붙였다.

겨울연가 지상파 8회 방영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북한 방문 특집으로 1주 연기되자 NHK에 "왜 후유소나를 방영 안 하냐" 라는 항의전화가 하루동안 3천여건이나 들어왔고, 아테네 올림픽 기간에도 올림픽을 중계하느라 19회의 시간대를 평소보다 늦춰서 방영하자, "시간대가 늦춰져서 못 봤으니 재방영을 해달라"는 요청이 방송국에 쇄도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가 되자 결국 다음날 오후 시간대에 급히 해당 회차 재방영을 할 정도였다.

겨울연가의 지상파 방영 최종회의 시청률은 간토에서 20.6%, 간사이에서 23.8%, 나고야권에서 22.5%를 찍었다. 아침드라마, 대하드라마가 아닌 NHK의 밤 11시 드라마 시청률이 20%를 넘은 것은 겨울연가가 처음이며, 앞으로도 안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이라 하겠다.

4.2.3. 2차 방송 종방 후

1차 방송이 끝난 후, 자막과 더빙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한국어판으로도 보게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2004년 12월에 NHK BS2 채널에서 일본어 자막만 입힌 판본이 방영되었다. 이후 비디오, DVD, 소설 등이 발매되고, 지역 민방들도 구입해서 경쟁적으로 틀어대고, 심지어 한일 공동으로 애니메이션판까지 제작되고, 25회 구성으로 재편집한 버전이 다시 방영되는 등[11]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일본 방영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한국을 찾아온 적이 있는데 겨울연가에 출연했던 배우 최지우가 특별초청을 받게 되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최지우를 보자마자 했던 첫마디는 "아, 후유노 소나타!" 게다가 배용준이 일본에서 '욘사마'로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얻자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한 모임에서 "앞으로 '준사마'로 불리도록 노력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그정도로 일본에서 폭풍같은 인기를 끌었던 것.

거기다 주제곡 중 하나인 ' 처음부터 지금까지'는 2019년에 애니메이션 OST로 쓰이기도 하였다.[12]

이 시기 겨울연가를 촬영했던 한국의 각 지역은 일본의 주부 팬들에게 성지가 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남이섬 거제도에 딸린 외도. 이 곳에는 일본을 비롯 겨울연가가 수출된 각 나라에서 성지순례를 오는 팬들로 2000년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지금도 방문객들이 있다.

4.2.4.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공했나?

당연히 일본의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 광풍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일본 가정 내의 권위주의, 즉. 남존여비(일명 ' 야마토 나데시코') 사상이 강한데, 이에 지친 주부들에게 겨울연가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의 일본 드라마들은 도시적이고 트렌디한 게 주류였던지라 주부들이 볼 만한 순애물은 거의 없었고, 겨울연가 광풍이 불기 전까지 일본의 주요 시청자층은 젊은 세대와 남성들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트렌디 드라마를, 남성들은 굵직한 사극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일본 국내 방송사들도 여기에 힘을 주어 편성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주부들은 아예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그런데 겨울연가가 이런 중년 주부들의 감수성에 호소해 인기를 끌고 그것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는 상황까지 다다르자 일본 사회 일각에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나타났다. 일본의 한류 항목에도 있지만 일본 주부들이 아들뻘 외국 연예인에 빠져들면서 일종의 소프트 오덕화되자[13] 나이 먹고 주책이라는 반응도 나온 것. 실제 겨울연가 방영 이후, 한국 드라마에 빠진 일본 주부들이 한국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가사에 소홀해진 모습이 나오자 못마땅해 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어느 일본 TV의 가두 인터뷰에서[14] 한 남고생에게 "만약 엄마가 겨울연가 팬이라면 어떻겠느냐?"고 질문하자 그 남고생은 (우스개가 섞인 과장이었겠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가출을 하고 말겠다!"며 웃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때 그 남고생 표정이나 말투에는 분노라기보단[15] 일종의 조소가 섞여 있었다. 한류 팬들은 '별종', '주책 아줌마, 할머니 부대'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물론 한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K-POP과 보다 트렌디한 스타일의 한국 드라마 등으로 인하여 젊은 층까지 수요가 널리 확대된 2020년대 기준으로는 완전히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오히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 붐이 상당히 널리 퍼진 상태이다. 항목을 참고.

여기에 더 중요한 사실 하나는 바로 이 드라마의 주 시청자들이었던 일본의 중, 장년 여성들에게 한국이란 나라가 재발견,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이들에게 한국은 식민지의 역사, 전쟁, 그리고 북한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인해 별로 달가운 곳은 아니었는데,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두 나라가 자연스럽게 TV를 틀면 나오는 시기를 거쳤고,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겨울연가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라인 것을 몰랐다."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급상승한 것.

당시 일본 중노년층 여성들에게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였는지는 일본의 유명 동화 작가 사노 요코[16]의 에세이집[17]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노 요코는 평생 대중 문화에는 관심도 없고 꽤나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소문의' 겨울연가를 한 번 본 후, 한류 광팬이 되어 하루종일 배용준을 비롯해 한류 드라마만 보다가 턱이 돌아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본 여성들을 취향저격한 셈이고, 마약같은 중독성과 같은 매력을 가진 존재가 그당시 겨울연가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

4.2.5. 파급효과

사실 겨울연가 이전에도 한국 작품들이 아예 알려지지 않았던건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당대 한국 영화계의 원톱이던 한석규가 출연한 ' 8월의 크리스마스'와 ' 쉬리'가 일본에서 어느정도 인기를 끌기도 했고, 기타 작품이나 한국 배우들도 이름이 서서히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일본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기보단 일부 한국 영화 매니아들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정도였다.

그러나 겨울연가가 방영된 이후 한류가 본격 일본에도 퍼지기 시작하며 이후 일본에선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대량 수입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일본 여성들도 방송국에서만 틀어주는 작품으론 만족을 못했는지 한국 비디오점의 고객이 되는 경우가 대거 늘어났다. 그것도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재일동포를 위해 운영하는 대여점이었음에도 말이다. 실제로 '겨울연가'를 계기로 한국 드라마에 빠지게 된 일본 중년 여성들이 신오쿠보의 한국 비디오 대여점에서 동시에 다른 한국 드라마들까지 한아름 대여해 가는 진풍경이 나타났고, 여기에 일본 메이저 레코드 상점에서 아예 한국 드라마 DVD 세트를 몇개씩 구입해가는 그야말로 매니아급 광풍이 일었다. 게다가 한국 남자 배우에 꽂혀 해당 배우의 사진이나 각종 굿즈까지 사재기하는 현상도 발생해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이전까지만 해도 보통의 일본인들이 그다지 찾을 일이 없고, 다소 허름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였던 신오쿠보 지역 코리아타운 일대가 한순간에 관동 지역의 한류 메카로 급부상했고, 항목에도 있듯 이는 겨울연가의 1차 한류 이후 2,3,4차 한류가 이어지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18].

겨울연가 흥행 이후 한국의 배우와 가수 등 연예인들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류 4대 천왕이란 말도 이때 나온 것.

이후에도 대장금, 이산 등이 인기를 끌며 일본의 남성 사극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도 했으며[19], 2020년대 들어서도 사랑의 불시착이나 이태원 클라쓰, 오징어 게임 등이 일본 OTT 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여전히 한류 드라마의 흥행을 이끌고 있다. 다만 일본에만 한정해보자면 겨울연가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편, 이런 흥행에도 한류의 덕을 보지 못한 케이스도 있었는데, 바로 현대자동차 배용준을 광고 모델로 앞세워 NF 쏘나타를 일본에 수출하였으나 처참한 실패를 겪고 후퇴하고 만다. 2~30대 남성들이 주 구매자인 쏘나타인데 중장년층 여성들에 인기있는 배용준을 모델로 썼으니 어찌보면 실패는 당연했던 것일지도... 그나마 기혼 남성들이 차를 사는데 비교적 수월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그야 광고모델이 배용준이니깐 아내에게도 허락이 쉬웠다고.(...)[20]

4.2.6. 배용준의 완벽한 선도

이 드라마의 주연으로 지고지순한 이상적인 사랑을 연기한 탤런트 배용준은 일본 여성 특히 중년 여성층에게 욘사마라 불리며 단순한 유명 스타의 인기를 넘어서 한국 대중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한류신 아이콘이 되었다.[21]

일본 내에서도 '사마'라고 불리는 연예인들이 극소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 연예인에게 사마라는 호칭이 붙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더구나 사마라는 호칭은 오직 존경과 극애의 대상에게만 붙여지는 극존칭이므로 이것까지 염두에 두면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더구나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입국장에 집결한 배용준의 일본팬들은 다수가 40~50대 중년 여성들이다. 이런 중년 여성들을 무려 4천명이나 입국장에 모여들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 4천명도 공항 입국장내에 있던 인원을 계수한 것이고 사정으로 인해 공항 밖에서 기다린 여성팬들까지 집계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의 인원을, 그것도 남편,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간을 비우기 힘든 중장년 여성들로 채웠다는 사실은 예삿일이 절대로 아니다. 여기에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소위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도 모자랄 지경이다. 더욱이 일본의 대중교통 사정을 고려한다면 꼭두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을 것이고, 이는 정말이지 어느 면에서는 '주부'로서의 역할 포기까지 감수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볼 정도인 셈이다. 괜히 가족들이 꺼린 게 아닐지도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입국장이 몽땅 배용준 환영인파다. 또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저 환영인파들 가운데 대부분은 20대가 아닌 40대 전후 또는 60대 이상 할머니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동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배용준의 입국 취재를 위해 나리타 공항에 급파된 기자들만 해도 14명에다 취재진 200명[22], 안전을 위해 동원된 경찰 기동대만도 무려 300명이 넘는 대인파였다.

배용준이 첫 일본을 방문했을 때[23]의 반응은 그야말로 광풍이었다. 나이가 30, 40대, 여기에 일부는 50, 60대의 주부 내지는 할머니들이 공항 입국장을 가득 메운 것도 모자라[24]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고[25][26], 배용준이 투숙하고 있던 호텔 주변에까지 모여 행여나 모습을 드러내 손을 흔들어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기다리는 진풍경도 나왔다.

이 현상은 배용준이 일본을 떠날 때까지도 계속되어, 팬들이 외출중이던 배용준이 탄 차를 발견, 가까이 보기 위해 다가서려다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무려 10명의 여성팬들이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했고 배용준은 "자신의 불찰이다"며 사과 성명을 냈고 배용준이 탄 비행기가 이륙해서 창공을 나는 모습까지 전망대에서 지켜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졌을때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는 등[27] 한때 일본에서는 '괴현상'으로 까지 취급될 정도였다.

일본의 스미토모 그룹은 매년 당해의 세태를 반영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란 것을 선정하는데 매해 적절하게 상식적이고 시사적인 사자성어가 선정되어 왔으나 2004년만은 "様様様様"가 선정되었다.('사마사마사마사마' = '사마'가 4개 = [ruby(四, ruby=욘)]사마)

게다가 배용준은 현명하게도 방문 기간 동안 배우 배용준이 아닌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강준상'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등 일본 여성 팬들에게 드라마에서 받은 그 느낌을 그대로 남겨주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썼다.

이때 배용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일본의 어느 신문의 칼럼에 쓰인 내용에 따르면,
"'겨울연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으신 분들은 본 작품에 나오는 인물배역을 맡은 배용준을 보고 '저런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녀석이 뭐가 좋다고' 라고 한 마디만 해보시라. 아마 부인께서는 화가 나서 며칠동안 귀하의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으실 것이다."

두 번째는 남성 잡지에서 남성들에게 배용준이 맡은 강준상 의상을 그대로 코디하는 법을 소개한 것이 있는데 이 코너의 타이틀이 "아내들이여, 욘사마가 그렇게 좋더냐?"였다.

이 드라마가 남긴 대표적인 유행은 바람 머리와 목도리 두 개로 꽈배기 뜨기.

이러다 보니 당시엔 패러디도 곧잘 나왔다. 주부들이 거의 보지 않는 애니메이션에도 지나가는 드라마 포스터나 영화 포스터로 자주 나올 정도. 일상물이나 개그 애니메이션에서 드라마에 관련된 소재가 나올 경우 겨울연가나 배용준의 패러디가 매번 단골로 출현하는 것을 보면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주부+TV드라마=겨울연가는 거의 클리셰급.

오! 나의 여신님 TV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했다. 영화 상영으로 등장하는데 제목이 '겨울폭풍'이다.[28][29]

20세기 소년, 개구리 중사 케로로, 은혼 등의 작품에서도 지겹게 패러디되었다. 크레용 신짱에서 노하라 미사에가 보는 '여름 찬장'이라는 드라마가 이 작품의 패러디이기도 하다.

스켓 댄스에서도 아가타 오누이가 보는 드라마로 패러디가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웬일인지. 최지우 츤데레 캐릭터로 나온다.

오덕계에서 유명한 캐릭터인 블리치 아이젠 소스케는 욘사마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나중엔 디자인이 바뀌긴 하지만.

또다른 만화 신의 물방울의 등장인물 중 한명인 토미네 잇세 역시 배용준을 모티브로 창작된 캐릭터다.

선생님은 사랑을 가르칠 수 없어의 등장인물인 요시타카 린코가 좋아하는 드라마 금단 시크릿 로맨스의 한 장면이 겨울연가와 유사하다.

일본에서 드라마 CD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은 2쿨 분량으로 2009년 10월부터 방영. 제작한 곳은 연필로 명상하기. 애니메이션 방영 기념으로 도쿄돔에서 행사가 열렸다. 참석 인원은 도쿄돔 4만 5000명+a( 라이브 뷰잉 등).

일본어 캐스팅은 다음과 같다.
강준상/이민형 - 이시다 아키라
정유진 - 호리에 유이
김상혁 - 오노 다이스케
오채린 - 박로미
나레이션 - 호리우치 켄유

해당 만화 영화의 마지막 회의 일부는 실사판으로 만들어졌다. 원작 연속극의 결말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다른 편이다.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나, 한국어 더빙으로 나왔다. 강준상, 정유진 역은 실제로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인 배용준, 최지우가 맡았으며, 김상혁 역은 박용하가 당시 이미 고인이었기에, 언더 성우가 맡았으며, 오채린 역도 원 배우 박솔미와 컨택이 잘 안 됐는지 마찬가지로 언더 성우로 교체되었다. 상혁의 아버지인 김진우 교수는 프로 성우인 배한성이, 준상의 어머니인 강미희는 서혜정이 맡았다.

성우 카게야마 리사의 인생을 바꾼 작품이다. 2018년 10월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방송을 통해 이 작품을 보고 목표를 만들게 됐다고. 만약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면, 자신은 그냥 평범한 인생을 보냈을 거라고 한다.

최유기 작가로 알려진 미네쿠라 카즈야의 한때 존재했던 개인 홈페이지에서 다이어리라는 메뉴에 '크리스마스 스페셜 SS 작은 산타와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저팔계가 "아니요 역시 한류붐이죠. 저 욘사마 닮았다는 말을 꽤 들었습니다."라는 대사를 하고 거기에 현장 삼장이 "안경 쓰고 웃는 것만이잖아"라고 말한다. 참고로 욘사마 배역과 저팔계의 성우가 같은 사람이다. 다만 드라마 CD가 시기상으로 몇 년 뒤에 나왔긴 하다.

5. 미디어 믹스

5.1.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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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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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1] 초대, 가을동화, 여름향기, 봄의 왈츠 등을 연출 [2] 낭랑 18세, 금수저 등을 공동각본 [3] 다만 겨울연가가 방영되었던 당시에는 대중들로 하여금 이러한 클리셰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였고 주요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배용준과 함께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오히려 이 작품으로 인해 이런 클리셰가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4] 김상혁과 오채린은 이민형과 정유진 사이가 심상치 않게 되자 다시 멘붕에 빠진다. [5] 가을동화는 방영 당시 40%대 시청률을 찍을 정도로 대박난 드라마였다. 물론 겨울연가도 죽음의 조 편성만 아니었더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날 와선 겨울연가가 더 회자되는 작품이라는 게 함정. [6] 이후까지 보면 한류 스타로 끌어올려준 특별한 작품이긴 하다. [7] 당시 사회적 파급력만 놓고 보자면 타사 경쟁작이었던 여인천하가 좀 더 쎘다. 그 와중에 이병훈 PD가 연출한 상도까지 죽음의 조 맞다. [8] 일본에선 "후유노 소나타"라 발음하는데, 줄여서 "후유소나"로 통한다. [9] 자세한 것은 시기별 한류 문서 참조. [10] Dragostea Din Tei, Epic Sax Guy가 유럽을 위시해 전 세계적으로 초히트를 쳤다고 ' 몰도바류' 이러지는 않는다는 것과 본격적인 한류 열풍 시작 전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수 왕걸, 등려군 등이 동아시아 & 싱가포르( 중화권 국가) 밖에서 히트를 쳤어도 '대만류'라는 말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중화권(중화권 진출도 한중수교 직후인 1993년 이후에야 본격화되었다)이나 일본 외 지역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수요도 (해외를 무대로 삼았던 한국인 가수들을 논외로 치면) 교포 아니면 외국 주재 한국인들의 수요가 태반이었다. [11] 이것은 방영 시간 때문에 70분이었던 1회 분량을 60분으로 줄여야 했고, 이 때문에 편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 사정상 한국식 편성인 70분 방영은 쉽지 않았기에 삭제를 하지 않고 70분 20회를 60분 25회로 재편집한 버전이다. [12] 가사없이 멜로디만 따온 듯 하다.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모두 겨울연가라고 딱 알아챘지만.. [13] 아예 이웃집에 한국인이라도 살면 한국말 좀 가르쳐 달라며 살갑게 구는 일도 생길 정도였다. [14] 한국의 연예가중계에서도 당시 일본에 혐한류 분위기 역시 있다는 차원에서 비슷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15] 이때만 하더라도 '조선인 죽이자' 따위 정신나간 언행을 외치던 혐한 재특회와는 결이 다른, 어찌보면 그나마 이해는 되는 빠순이 아줌마 부대를 한심하게 보는 식의 류였다. (한국에서 아들뻘 트로트 가수 응원부대한답시고 정신팔린 세대 보는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16] 1938년 출생~2010년 사망. '100만번 산 고양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17] 국내에 여러 권 번역 출판되었다. [18] 아예 현재는 일본 젊은층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19] 특히 이산의 경우, 일본에서 방영당시 칠레 대지진 속보로 결방된 일이 발생했는데 정작 자체 제작한 사극 료마전은 정상적으로 방영되자 이에 대한 항의전화가 당시 방송사였던 NHK에 물밀듯이 빗발친 일도 있을 정도였다. [20] 사실 일본에서 쏘나타가 실패한 원인은 이런 광고 전략의 문제도 있었지만 차량 자체의 문제가 더 크긴 했다. 오디오리스가 기본인 처참한 로컬라이징에 그나마 대형차라 택시나 관용차로 써먹기 위해 꽤 팔린 그랜저와 달리 쏘나타는 자국 중형차랑 차별화된 것도 없는데 차폭만 넓어 세금만 더 나가고 운전하는데 불편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동차 브랜드가 많은 일본에서 인지도가 낮은 한국차 자체가 별로 인기가 없기도 하고. [21] 멀리 갈 것 없이 아래 동영상 8분부터(자세히 보려면 7분 22초께부터) 보면 그 인기를 알 수 있다. [22] 동영상에서도 등장하지만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경로 취재를 위해 차량 및 오토바이,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외국 귀빈 취재를 방불케하는 스케일이었다. [23] 화보집 출시 및 전시 프로모션차. [24] 심지어 "보고싶었어요"나 "기다렸어요"라고 손수 쓴 플래카드까지 등장했다. 참고로 그날 하네다 공항 입국장에서 배용준을 기다리던 인원수는 공식집계로 4,000명이었는데 이는 하네다 공항 개항 이래 역사상 최다 인원수였다고 한다. [25] 단, 이때 배용준을 경호하기 위해 같이 동행하던 공항 관계자들이 배용준과 손 잡기 바라는 팬의 손을 거칠게 쳐내는 광경도 나왔다. 경호하는 입장에서야 원체 인파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지만 팬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 [26] 위 동영상 8분 57초께부터 배용준을 실제로 봤던 팬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한 여성팬은 너무 오래 앉아 기다렸다며 다리가 저렸다는 코멘트를, 다른 여성팬은 진짜로 본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울먹이기까지 한다. [27] 여담으로 배용준이 한국으로 돌아간지 몇 분 안 돼 비욘세가 입국했는데 환영 인파는 배용준 입국 때의 절반도 안 되었다고 한다. 아니 애초에 일본에서 배용준처럼 많이 모인 케이스가 영미권 포함해도 거의 없다. 중년 여성층에만 한정해보자면 거의 유일할듯. [28] 그러나 자세하게 보면 '겨울연가'의 일본제목인 '후유노 소나타'의 패러디임을 알 수 있다. [29] 게다가 이게 울드가 좋아하는 드라마다. [30] 이후 드라마들이 야외촬영에 들어갈 경우, 풍경이 수려한 국내 유명지역을 찾아내 촬영하는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해외 로케로 찍게 될 경우 비주얼이 좋은 곳을 선정해 그곳에서 촬영하는 일도 생겼는데 아이리스가 그 좋은 예다. 아키타 현은 이 드라마로 인해 한국인들도 자주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31] 1915년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학교로, 한눈에 봐도 고려대학교와 건물양식이 흡사한데, 실제로 인촌 김성수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와 중앙고등학교의 전신인 중앙학교를 인수했고, 지금도 같은 고려중앙학원 법인 소속이다. 1박 2일 시즌 1 서울 당일치기 여행에서 김종민이 이곳 부근을 방문한 적이 있다. [32] 배용준이 당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재학중이었다. 교칙상 제한된 휴학횟수를 넘기자 학교측에서 편의를 봐주겠다고 제안했음에도 자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