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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0 14: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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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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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ruby(玄洋社, ruby=げんようしゃ)](현양사)

파일:external/npodga.asia/e4997dc151d97d17a98c32a52b464742.jpg

일본 우익의 원류()라고 평가받는 결사단체. 1881년 메이지 유신에 의해 몰락한 무사계급 출신들을 규합해 조직했다. 처음에는 국회 개설운동에 참가하는 등 민족주의· 민권 운동을 내걸었으나 차츰 도야마 미쓰루를 중심으로 아시아주의를 표방하는 국수주의 단체로 변모해 갔다.

2. 상세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는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며 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하부조직으로는 이용구 일진회와 함께 한일합방운동을 전개한 흑룡회()가 있다.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일제 정치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패전 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위험단체로 판단하고 강제해산시켰다.

1895년 10월 8일 이 단체 소속의 토우 카츠아키라는 낭인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저질렀다. 그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48명의 낭인 중의 한명으로 명성황후를 2번째로 베어 마지막 숨을 끊었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일본 공사였던 미우라 고로는 겐요사 회원 출신으로 명성황후 시해를 직접 계획한 인물이며 일본 정부가 직접 시해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사조직인 겐요사의 낭인 3인[1]을 직접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48명은 일본 사법당국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2년간의 복역 후 전원 석방됐다. 겐요사는 러일전쟁 때는 만주의군을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하는 등 정치· 전쟁·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1] 나카무라 다테오, 토우 카츠아키, 테라사키 슌지. 이들 세 사람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왕비의 침전에 난입한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