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여몽전쟁 시기인 1232년, 고려 무신정권 지도자였던 최우가 국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의 수도를 기존의 개경에서 강도로 옮긴 사건이다. 당시 최우는 개경을 지키자고 주장한 김세충의 목을 베고[1], 강도 천도를 결정해버린다.
2. 천도 이후
강도 천도 이후 서리였던 이통이 초적과 노비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개경 일대를 약탈하고 개경이 쑥대밭이 된다. 최우는 이들을 토벌하고 강도에 자신의 거처를 짓는다고 군사 수천명을 동원해 개경의 나무를 구해 사용했다. 심지어 정원에 심을 나무도 모두 육지에서 가져오게 한다. 이 건축 과정에서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은 얼어죽고 물에 빠져죽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속출하였다. 이처럼 최우는 전시인 와중에도 백성들이 어찌되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또한 고려가 수도를 섬인 강도로 옮기니 이에 분노한 몽골이 다시 육지로 환도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이를 무시하고 이는 몽골 2차 침공의 원인이 되었다.
1232년(고종 19년)에는 이곳에서 39년 동안 대장경판(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1259년 고려와 몽골 제국은 강화를 논의하게 되면서 여몽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원종이 개경 환도를 시도하지만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들인 김준, 임연, 임유무가 모두 반대를 하면서 환도는 계속 지연됐다. 결국 1270년 임유무가 살해당하면서 100년을 이어지던 무신정권은 무너졌으며 이에 개경 환도도 이뤄지게 된다.
당시 수도 방어를 위해 강화산성, 중성, 외성을 쌓았는데, 궁전 등은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모두 흔적도 없이 무너뜨렸다. 다만 고려 이궁지가 흥왕리서 발굴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