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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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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빌보드와 VIBE 매거진에서 힙합 50주년을 기념하여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Top 50을 선정했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제이지 켄드릭 라마 나스 투팍 에미넴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노토리어스 B.I.G. 릴 웨인 드레이크 스눕 독 니키 미나즈
<rowcolor=#fff>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칸예 웨스트 안드레 3000 라킴 엘엘 쿨 제이 제이 콜
<rowcolor=#fff>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스카페이스 50 센트 아이스 큐브 미시 엘리엇 빅 대디 케인
<rowcolor=#fff>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DMX 고스트페이스 킬라 커티스 블로우 KRS-One 메소드 맨
<rowcolor=#fff>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빅 펀 큐팁 블랙 소트( 더 루츠) 푸샤 티 로린 힐
<rowcolor=#fff>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릴 킴 티아이 버스타 라임즈 척 디( 퍼블릭 에너미) 퓨처
<rowcolor=#fff>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야신 베이 커먼 구찌 메인 루다크리스 닥터 드레
<rowcolor=#fff>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E-40 레드맨 번 비( UGK) 퀸 라티파 아이스-T
<rowcolor=#fff>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제이다키스 MC 라이트 멜리 멜 레브 런( Run-D.M.C.) 릭 로스
같이 보기: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 가장 위대한 록 가수 · 가장 위대한 알앤비 가수 · 가장 위대한 래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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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ce-cubㅛㄱe.jpg
이름 <colbgcolor=#fff,#191919>아이스 큐브
Ice Cube
본명 오셰이 잭슨
O'Shea Jackson
[1]
출생 1969년 6월 15일 ([age(1969-06-15)]세)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사우스센트럴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3cm
학력 피닉스 공과대학 (건축제도과 / 전문학사)[2]
활동 기간 1986년~
가족 킴벌리 우드러프(결혼. 1992년 ~ 현재)
오셰이 잭슨 주니어[3](아들)
종교 이슬람교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일생3. 특징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4.2. 싱글
4.2.1. 빌보드 핫 100 1위 ~ 40위4.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5. 필모그래피
5.1. 영화5.2. 애니메이션5.3. 게임
6. 여담7. 참고 자료

[clearfix]

1. 개요

Straight outta Compton
컴튼에서 나온
crazy motherfucker named Ice Cube
미친 씹새끼에 이름하여 아이스큐브

미국 래퍼, 연예기획자, 방송인. 본명은 오셰이 잭슨(O'Shea Jackson).

N.W.A 멤버이자 렌치맙 레코드 설립자, Westside Connection(준말로 WC)의 리더. WC라는 동명의 래퍼[5]도 웨스트사이드 커넥션의 멤버이다.

2. 일생

1969년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빈민가 사우스센트럴에서 UCLA의 정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 호셰이 잭슨(Hosea Jackson)과 병원 사무원이던 어머니 도리스 벤자민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여동생이 남자친구의 총에 맞아 죽는 등 흑인 사회의 빈곤과 부조리를 몸소 체험했고, 조지 워싱턴 예비 고등학교 진학 뒤엔 랩 음악에 관심을 지니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힙합으로 담겠다는 다짐을 했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차터 고등학교로 전학간 뒤인 1986년에 K-Dee, Sir Jinx와 함께 그룹 'C.I.A.'를 결성해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시작했다가, 1987년 닥터 드레에게 포섭되어 N.W.A.의 결성에 참여한 뒤 피닉스 공과대학 제도공학과로 진학을 위해 애리조나로 떠난 바 있다. 1988년 졸업 뒤 LA로 돌아와서 N.W.A에 합류하여 1집 《 Straight Outta Compton》으로 데뷔해 점차 명성을 얻었다. 당시 이 그룹에서는 멤버들 중 랩 스킬이 제일 뛰어났으며, 곡의 벌스 중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였다. 심지어는 이지-E의 고스트 라이터를 담당하기도 했다.

1989년에 리더이자 루슬리스 레코드 대표 Eazy-E와의 불공정 계약 및 수익 배분 문제로 그룹을 떠나 1990년에 독자 레이블 '스트릿 노리지 레코드(현 렌치맙 레코드)'를 세우고 1집 《Amerikkka Most Wanted》로 솔로 활동을 시작해 점차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위에서 서술한 폭력성으로 언론에게 철저하게 씹혔다. 하지만 이 앨범은 강한 사회의식이 담긴 혁신적이고 전설의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나머지 N.W.A 멤버들은 1991년에 2집 《Niggaz4Life》를 내고 수록곡 'Real Niggaz', 'Message to B.A.'[6] 등의 곡으로 큐브를 비난했다. 다른 한편 1990년에 EP앨범 《Kill at Will》을 내면서 EP 앨범으로선 이례적으로 플래티넘을 받았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음악계 동료 Public Enemy에게 소개받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거기에 여성 갱스터 래퍼 '요요'를 데뷔시키기도 했다.

1991년 2집 《Death Certification》[7]을 내고서 당대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 인종 차별문제를 도전적으로 비판해서 파문을 일으켰고, 같은 해 나온 N.W.A.의 디스곡에 응수해 N.W.A. 때의 압도적으로 쌓인 작사 내공으로 ' No Vaseline'이란 곡을 수록해가며 나머지 N.W.A. 멤버 및 제리 헬러 매니저를 깠는데, 이 노래는 Eazy-E의 ' Real Muthaphuckkin G's'와 함께 디스곡 중에서도 명곡으로 손꼽힌다. 같은 해에 존 싱글턴 감독의 영화 《보이즈 앤 더 후드》에 출연한 것을 시초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에 J-Dee, 칠리 칠리 등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Da Lench Mob(1990년 결성)'을 이끌며 1집 《Guerillas in tha Mist》를 내고 갱단들의 이야기를 읊어낸 솔로 3집 《The Predator》를 내고서 절정기에 도달하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옛 동료 닥터 드레가 솔로 1집 《 The Chronic》을 내고 신종 장르 ' G-펑크'로 휩쓸면서 점차 침체기가 생겼다. 1993년에 4집 《Lethal Injection》을 내면서 로드니 킹을 옹호하는 'Cave Bitch'와 ' Bop Gun (One Nation)'[8], 싱글 ' It Was a Good Day'를 MTV에서 거하게 히트시키기도 했지만 경찰들의 감시 대상으로 찍히기도 했다.[9] 이 앨범은 화제성을 모았으나 흥행에선 망했다. 그가 키웠던 J-Dee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면서 루슬리스 출신의 멀키를 Da Lench Mob에 합류시켜 1994년 2집 《Planet of da Apes》를 냈지만 1995년에 해체시켰다. 이후 제자 맥 10 및 WC랑 '웨스트사이드 커넥션'을 결성해서 1996년 1집 《Bow Down》을 내고 반등에 성공했고, 이후에는 후배 양성 및 배우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1998년과 2000년에 《War & Peace》 란 타이틀로 각각 1장씩 내서 예전만큼은 못했으나 건재를 과시했다. 2007년에는 배우 활동에 전념코자 WC를 해체했고, 2017년에 낸 싱글 'Good cop Bad cop'[10] 같은 경찰이 자신의 인종에 상관없이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고, 부패경찰이 날뛰는 사회를 풍자 및 비판하는 곡을 작곡 및 작사하고 있다.[11] 같은 해에는 할리우드 거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를 누렸다.

3. 특징

1990년대 힙합 전성기를 대표하는 힙합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동시에 서부 힙합의 전설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아이스 큐브의 랩은 노련한 라임배치와 박력 있는 드럼 사운드로 어우러져 있다. 왕년에는 힙합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과격한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었으나 이후엔 배우 일에 더 치중한다고 한다.

현재 힙합이 가지고 있는 Swag 그러니까 상당히 박력있고, 거친 이미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들 중 한 명이다. 험상궂은 외모에 걸맞게 상당히 폭력적이고 사회비판적 가사가 특징이다. 한때 여성, 백인,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루머가 나돌았으나[12], 본인은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아나콘다의 대니 리치 역, 박력이 넘치는 'Why We Thugs'와 한국계 미국인 1세대를 디스하는 ' Black Korea'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이스 큐브 본인은 한국계 미국인 1세대에게 위협을 가하진 않고 경고만 주었다며 -가사를 보면 경고라기엔 좀 그렇긴 하다.- 한국계 미국인 1세대들에 혐오감까진 없음을 밝혔다. 이 일로 한국 뉴스까지 탔다.

Black Korea 곡이 나온 뒤, 미국에서 어느 한국인 고등학생이 역사시간에 논문과 음악에 대한 반박하는 랩을 하면서 교내에서 상을 받았고 이어서 그에 관련된 소문이 커져서 힙합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그 힙합 페스티벌에 초청된 고등학생은 바로 한국 힙합계의 전설로 유명한 타이거 JK였고, "Call Me Tiger[13]"를 통해 한인 비하에 대해 반박한 뒤 즉흥 랩 부문에서 수상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한국계 미국인 DJ 샤인[14]을 만나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하게 된다. 이후 당시 최고의 토크쇼인 < 자니 윤 이야기쇼>에도 초대되는 등 많은 화제를 일으킨다.

코미디언 김형곤도 생전에 나오던 한 개그 코너에서도 이 노래 제목을 언급하면서 "지들도 차별당해왔으면서 만만한 게 결국 한국인이냐?" 라고 흑인들을 까던 풍자를 할 정도로 국내에 악명을 떨쳤고, 당시 재미 한인 음반상들은 집단 불매운동을 벌였으며 한인 주류상들도 그가 전속모델로 나온 맥주 'St. Ides'를 불매했다.

LA 폭동 이후 본인도 'Black Korea'가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후폭풍을 남겼던 것을 의식하고 있는지 2018년 6월 울트라 코리아 내한 당시 다시 한 번 사죄했다. 내한 자체는 그럭저럭 호응이 있었던 편이다. 뉴스

커먼과 디스전이 있었다. 시카고 출신의 컨셔스 래퍼인 커먼은 그의 대표적 명곡이자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이라고도 불리는 I used to love H.E.R.에서 힙합이 동부에서 탄생했을 때는 순수한 영혼을 간직했으나 서부로 넘어가면서 힙합이 갱스터들과 어울리며 폭력적으로 변질되었고 여성을 비하하는 등 질이 나빠졌다는 내용의 가사를 썼다. 실제로 힙합은 동부에서 탄생했으나 서부에서 힙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갱스터랩이 탄생했으니 커먼의 가사는 사실 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서부 밑바닥 흑인들과 후드의 폭력적인 현실을 잘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갱스터랩이 힙합의 타락한 형태라는 커먼의 의견은 서부 래퍼들로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부분. 이에 서부 갱스터랩의 대표주자인 아이스큐브는 Mack 10의 곡 Westside Slaughterhouse에서 커먼의 I used to love H.E.R.에 대응하여 커먼을 디스한다. 물론 둘 사이의 디스는 음악 내에서의 디스일 뿐 현실에서는 두 사이는 상당히 돈독한 사이이고 서로의 음악을 리스펙트 하는 사이이다. 훗날 아이스 큐브가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커먼을 디스 했을 당시 자신은 음악적으로 상당히 침체되어 있던 시기였고 자신의 디스가 커먼에게 적합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훗날 커먼이 한 인터뷰에서 아이스 큐브가 본인을 디스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커먼의 대답이 걸작인데, 아이스 큐브의 대응곡을 처음 들었을 때 화가 나기는 커녕 아이스 큐브 같은 레전드가 자신 같은 래퍼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무척 기뻤다고 했다. 디스 당해서 기뻤다는 대답에 인터뷰어들이 폭소를 터트리는 건 덤. 커먼의 인터뷰 커먼은 아이스 큐브가 속한 NWA는 전설적인 그룹으로 아이스 큐브의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며 아이스 큐브는 좋은 친구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실제로 아이스 큐브가 출역하고 제작한 영화 Barbershop: The Next Cut에 커먼이 배우로 참여하고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 했다.

사이프러스 힐과도 디스전이 있었다. 디스를 자사이프러스 힐과는 아이스큐브가 자신의 곡을 따라했다고 생각한 리더 B-real이 아이스 큐브를 비판하자 아이스 큐브가 이에 사이프러스 힐을 디스하면서 시작되었다. [15][16] 현재는 디스전을 끝낸 상태이다.

많은 서부 래퍼들이 그랬듯이 서부 진영을 크게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No Vaseline, It Was a Good Day, Check Yo Self, You Know How We Do It, Bop Gun (One Nation), Pushin' Weight, You Can Do It 등이 있다. No Vaseline은 본인이 한때 몸담았던 N.W.A. 디스곡으로 큰 임팩트를 남긴 디스곡 중 하나로 꼽히며, It Was a Good Day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노래는 빌보드 10위권에 랭크되며 연말 차트에도 진입하는 등 당대 대중적으로 성공한 힙합 트랙이자 아이스 큐브의 대표곡으로 평가받으며,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 개정판에 선정되었다.

배우로선 아나콘다 외에 2000년에 쓰리 킹즈로 인지도가 더욱 올라갔으며 2005년에는 트리플 엑스 2 - 넥스트 레벨로 유명해졌다. 빈 디젤이 다시 트리플 엑스 시리즈에 복귀하면서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서도 2편에서 맡았던 다리우스 스톤 역으로 다시 출연한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배우로 활동중이며 동시에 "큐브 비전"이라는 제작사도 세워 영화 제작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우리 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 시리즈와 라이드 어롱 시리즈, 프라이데이 시리즈가 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4.2. 싱글

4.2.1. 빌보드 핫 100 1위 ~ 40위

4.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5. 필모그래피

5.1. 영화

5.2. 애니메이션

5.3. 게임

6. 여담


그런데 이 밈에는 사실 지명도가 좀 낮은 후속 씬이 있다. 베트남 예수님. "이거 한국 예수님이잖아?" "한국 예수님 좆까라 그래. 이거 베트남 예수님이고, 베트남 교회거든? 이 인종차별 예수쟁이 새끼야. 똑바로 봐 븅신아. 베트남 예수님은 스웩을 줄줄 흘린다고."

7. 참고 자료



[1] O'Shea를 오쉬어, 오시어 식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 발음은 오셰이다. [2] Phoenix Institute of Technology.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했던 커뮤니티 칼리지이며, 1993년에 폐교했다. [3]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 아버지인 아이스 큐브를 연기했다. [4] 이 곡의 가사가 그의 공책에서 나왔다. [5] 본명은 윌리엄 칼훈 주니어. 1970년 2월 3일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태어나 어릴 적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빈민가 사우스센트럴로 이사해 이곳에서 주로 살았고, 1987년 DJ 알라딘과 함께 '로우 프로필'을 결성한 뒤 1990년 1집 《We're This Together》로 정식 데뷔했다. 해당 그룹이 해체된 후 1991년에 동생 DJ 크레이지 툰스(1971~2017), 빅 지, 쿨리오 등과 함께 'WC 앤 더 매드서클'을 결성해서 활동한 바 있다. [6] 여기서 B.A.는 미국판 이완용으로 일컬어지는 베네딕트 아놀드의 이니셜 약자이며, 아이스 큐브를 베네딕트 아놀드에 빗댔다. [7] No vaseline과 Black Korea가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8] 펑카델릭의 1978년작 노래 ' One Nation Under a Groove'가 샘플링돼 있으며, 이 그룹의 멤버였던 조지 클린턴이 피처링했다. [9] 해당 곡은 갱스터 랩을 상징하는 명곡으로 추앙받는 곡이자 아이스 큐브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곡이기도 하다. [10] 이 곡은 2017년에 나온 2집 25주년 에디션에 수록됐고, 2018년 정규 10집에도 들어있다. [11] 동시에 스눕 독이 발매한 'Revolution (feat. October London)'도 비슷한 주제로 만들어진 곡으로, 이 둘이 아직 서부래퍼들이 건재함을 알린 셈이다. [12] 백인 유대인 혐오설은 아무래도 유대인 N.W.A 매니저인 제리 헬러(1940~2016)를 두고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듯. 제리 헬러는 N.W.A와의 계약 과정에서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작성한 계약서를 근거로 멤버들에게 가야 할 돈을 착복하는 바람에(특히 아이스 큐브는 작사 면에서, 닥터 드레는 음악 프로듀싱 면에서 상당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전적으로 상당한 박한 취급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N.W.A 출신 멤버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는 게 함정) 그룹 탈퇴 러시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 헬러는 말종으로 묘사되었기에 당시 심장이 아퍼 투병생활하던 헬러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법정투쟁 중에 사망했다. 헬러의 변호인은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의 상영이 사망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자꾸 닥터 드레와 아이스 큐브가 제리 헬러를 향한 고인드립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일부 힙합 팬들이 있는데, 오히려 아이스 큐브는 제리 헬러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13] 몇몇 방송에서 이 노래를 짧게 재현했던 적이 있다. 태권도를 하던 JK의 경험 때문인지, 가사에 앞차기, 돌려차기 등이 한국어로 나온다. [14] 샤인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드렁큰 타이거 극초창기 시절 당시 댄스그룹이었던 C2K(aka Cost Cost)의 멤버를 겸했다. [15] 아이스 큐브는 King of the Hill이라는 사이프러스 힐 디스곡을 발표하였고 사이프러스 힐 역시 이에 대응하여 Ice Cube Killa라는 곡을 발표한다. 여담으로 B-Real은 해당 디스곡에서 아이스 큐브를 갱스터 연기하는 Studio Gangsta라고 엄청나게 깠다. 참고로 둘은 나중에 TV쇼에 같이 나와서 화해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두 사람의 몇몇 팬들은 싸우는 중이며 사이가 예전처럼 좋아지지는 못했다. [16] 실제로 당시 사이프러스 힐 측과 곡 유사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아이스 큐브가 꽤 비판받기도 했다. [17] Yo-Yo의 곡에 피쳐링. [18] Scarface의 곡을 Devin the Dude와 함께 피쳐링. [19] with Shaquille O'Neal, B-Real, Peter Gunz and KRS-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