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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03 22:01:34

FNN 슈퍼 타임

방영 기간 1984년 10월 1일 - 1997년 3월 28일(13년, 4497회)
방영 시간 월-금 18:00 ~ 19:00
토 18:00 ~ 18:30
일 17:30 ~ 18:00
역대 진행자 이츠미 마사타카, 코다 챠밍, 안도 유코, 노마 슈헤이
1. 개요2. 연혁
2.1. 1984년 ~ 1988년: 마사타카-챠밍 체제2.2. 1989년 ~ 1991년: 아키오/유지-유코 체제2.3. 1992년 ~ 1994년: 시게루-유코 체제2.4. 1994년 ~ 1997년: 시게루-카오리 체제
3. 상세4. 진행자5. 타이틀 및 그래픽6. 여담7. 종영, 그 이후

1. 개요

후지 테레비의 前 저녁뉴스 프로그램. 일본 저녁뉴스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전설적인 프로그램으로서 일본의 뉴스 편성 및 개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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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2.1. 1984년 ~ 1988년: 마사타카-챠밍 체제

오프닝 - 헤드라인 - 전국뉴스 - 로컬뉴스와 스포츠뉴스, 날씨예보로 구성되었으며, 1985년 4월 1일부터 주말판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1987년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는 금요일 보조 진행자를 월~목 보조 진행자와 달리 했는데, 이 때 금요일 보조 진행자가 노마 슈헤이. 그러나 10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는 금요일 보조 진행자와 토, 일 보조 진행자가 안도 유코로 동일했다.

슈퍼 타임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로 마사타카-챠밍 콤비의 호흡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2.2. 1989년 ~ 1991년: 아키오/유지-유코 체제

1988년 4월 1일부로 코다 챠밍이 하차하고, 금토일 보조 진행자였던 안도 유코는 월~금 보조 진행자로 이동한다. 1989년 3월 31일부로 이츠미 마사타카가 하차하고 후임 앵커맨으로 럭비선수 출신의 우에다 아키오가 발탁되었다. 우에다는 메인 앵커로서는 2년만 진행했고, 이후 스포츠뉴스에 전념하게 되면서 구로이와 유지[1]에게 메인 앵커직을 넘긴다.

2.3. 1992년 ~ 1994년: 시게루-유코 체제

구로이와 유지가 1992년 3월 31일부로 하차하고, 츠유키 시게루[2]가 그 뒤를 이어 종영할 때까지 진행했다.

1993년 10월 1일, 시그널 음악이 어레인지됐다.

이와 별개로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매년 한 번 '헤이세이 교육 테레비'가 25시간동안 방송되면서, 기존 슈퍼 타임 시간대에는 슈퍼 타임 특집의 형식으로 대체하여 방영했다.[3] 1992년과 1993년의 헤이세이 교육 테레비 진행자는 바로 이츠미 마사타카였다. 그러나 이츠미가 1993년에 사망하여 1994년의 교육 테레비는 비트 타케시가 단독으로 진행했다.

2.4. 1994년 ~ 1997년: 시게루-카오리 체제

1994년 3월 31일부로 안도 유코는 동사의 마감뉴스인 뉴스 재팬으로 자리를 옮겨갔고, 후임 보조 진행자로 마츠야마 카오리가 발탁되었다. 그해 10월 1일에는 10주년을 맞아 스튜디오를 새단장했고, 10년 동안 사용한 헤드라인의 배경음악도 교체됐다. 이 때 스포츠 뉴스 캐스터나 기상 캐스터는 많이 바뀌었지만 메인 진행자는 대체로 종영시까지 유지되었다.

후지 테레비 본사 이전에 맞추어 개편이 결정되면서 4497회째인 1997년 3월 30일을 끝으로 종영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보도한 기사 수는 총 6만 개라고 전한다. 카오리는 동사의 마감뉴스인 뉴스 JAPAN WEEKEND 캐스터로 이동하였다.

3. 상세

상술했듯 이전까지는 따로 놀았던 전국 뉴스와 지역 뉴스가 통합되었던 일본 최초의 뉴스이다.[4] 이전에는 SBS 8 뉴스처럼 6시부터 30분 동안 전국에 같은 뉴스를 송출하고, 30분 동안은 각 지역 방송사마다 따로 뉴스를 편성했다. 하지만 슈퍼 타임 이후로는 각 지역 방송사도 1시간 동안 뉴스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6시에 간토를 가청권으로 하는 FNN의 키국인 CX에서는 FNN 슈퍼 타임이 송출되고, 홋카이도를 가청권으로 하는 FNN 가입국인 uhb에서는 이브닝 뉴스[5]로 송출되는 식. 즉 각 지방의 FNN 계열 방송사마다 저녁뉴스 타이틀이 다 달랐으며, 진행하는 앵커도 제각기 달랐다. 물론 포맷과 시간대를 공유하였고, 90년대에 들어서는 타이틀과 그래픽도 '방송사+슈퍼 타임'으로 거의 통일되었기에[6] 키국의 슈퍼 타임과 다른 것은 진행자와 보도 소식 뿐.

헤드라인은 첫 2-3개 소식은 키국의 앵커들이 전하다가, 지역국 앵커들이 각 지역의 주요뉴스 2-3개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7] 지역국의 앵커가 오프닝을 진행한 후 키국의 앵커들이 헤드라인을 소개하다가 곧바로 지역국의 앵커들이 각 지역의 주요뉴스를 소개하는 방식. 때문에 각 지역마다 헤드라인이 처음에는 일치하는 듯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엄연히 다른, 후지 테레비 계열 저녁뉴스만의 특징이었다. 이는 FNN 슈퍼 뉴스 때 2개의 소식을 키국에서 전하고 1개의 소식은 지역국이 전하는 방식으로 계승된다.[8]

뉴스 진행자가 서서 뉴스를 진행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실제 방송 자료를 보면 진행자들은 1시간 동안 앉아 있는 때가 거의 없이 계속 서서 뉴스를 진행하였다. 다리 아팠겠다 물론 스포츠 코너에서는 다른 아나운서가 진행하니 그 때는 진행자가 쉴 수 있었을지도(...). 서서 뉴스를 진행하는 뉴스 역시 슈퍼 타임이 최초이다. 이후 후지 테레비의 저녁뉴스는 앵커들이 서서 진행하는 유구한 전통이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슈퍼 타임 이후에는 그나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진 듯하다. 후지 테레비 저녁뉴스의 앵커들이 앉아서 진행하게 된 것은 프라임 뉴스 이브닝이 편성된 이후부터이다.[9] 슈퍼 타임의 영향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한민국에서도 1990년대에 서울방송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출발! 모닝와이드의 진행자가 서서 진행하기도 했다.[10]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뉴스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뉴스 연성화에 있었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뉴스 연성 화를 하면 실패하는데 비해 일본의 뉴스는 유독 연성화에 관대한 면이 있다. 일본에서 뉴스는 '어떤 것을 전하느냐'보다 '어떻게 전하느냐'가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슈퍼 타임은 포맷이나 진행 등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형식으로 뉴스를 전하는 데 온 힘을 들였고 지금도 뉴스 연성화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헤드라인을 전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씩 기사 제목이 나오는 것부터, 주요 뉴스 이후 직접 어촌에서 물고기를 잡아본다던지 하는 것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선거 및 올림픽 특집 방송도 탁월했다. ' 국민의 선택 특집 SBS 8 뉴스'나 ' 2018 우리의 선택 특집 정치부회의'처럼 간단하게 제목을 정하는 것이 아니고, 각 행사나 선거마다 임의로 캐치프레이즈를 정해 그것을 주제와 제목으로 하여 뉴스를 진행한다. 선거나 행사가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특집 기획을 종종 방송하기도 했다.

4. 진행자

5. 타이틀 및 그래픽

금색의 공간이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FNN'이라는 글자를 남기고 축소되면서 빛과 함께 사라지고, 왼쪽에서 슈퍼, 오른쪽에서 타임이 날아와 제목이 완성된다. 제목 완성 후 어안 렌즈가 나타나면서, 주위에 냉기 같은 효과가 회전한다.

ED는 슈퍼 타임 로고가 위에서 나타나 오른쪽 하단에 축소한다. 제목의 로고는 슈퍼가 파랑색, 타임이 하늘색.
초대 오프닝을 어레인지하였다. FNN이 어안 렌즈로 축소하고, 슈퍼와 타임이 좌우에서 나오는 것이다.

ED는 제목이 좌우에서 나타나 오른쪽 하단으로 축소한 뒤 END가 표시되었다.[16]

원래 에코가 적었지만, 후에 에코가 강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 때부터 제목에 FNN이 붙었다. OP는 아래에서 나타나 약간 비스듬하게 되면 FNN이 나와 로켓 발사처럼 왼쪽 구석으로 향해 사라져 가는 애니메이션.[17]

ED는 날씨 카메라 혹은 뉴스 영상을 배경으로 슈퍼 타임이 축소 + FNN이 왼쪽에서 등장, 축소와 동시에 끝표시가 나오는 것이다.(주말로만 확인)[18]

제목의 색은 FNN이 빨간색, 슈퍼 타임이 오렌지 색.
제목을 형상하고 확대한 뒤 제공 스폰서가 나오는 것.

1994년 10월에 주요뉴스 자막, BGM이 변경되었다.

1996년 10월에 주요뉴스를 폐지하고, 오프닝이 5초로 단축되었다.

1997년 3월 10일부터 30일까지는 CG의 출현 방법이 컷 인-컷 아웃으로 변경되고, 제목 주위에 있던 테두리도 없어졌다.[19]

6. 여담

7. 종영, 그 이후

1997년 종영 이후, 방영 시간을 5분 앞당긴 FNN 뉴스 555 더 휴먼(FNNニュース555 ザ・ヒューマン)[21]FNN 뉴스 더 휴먼(FNNニュース ザ・ヒューマン)이다. 주말판 스튜디오에는 작은 글씨로 'WEEKEND'가 붙는다.]이 편성되었으나, 기존의 포맷을 모조리 바꾸어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슈퍼 타임과는 달리 더 휴먼은 뉴스 연성화 실패의 대표적인 예. 첫 방송 당시 앵커들이 다음 순서를 소개하려 했는데 갑자기 앵커들이 이야기한 것과는 다른 특집보도가 방송된다는 자막이 나오는 사고가 벌어지는 등 이미 그 망조를 드러냈다.[22]

일단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는 슈퍼 타임과는 달리, 더 휴먼은 다소 딱딱하더라도 정석적인 보도를 추구했다. 이게 잘 되었다면 '연성화 때문에' 악평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체감[23]시킨답시고 뉴스의 버라이어티 예능를 꾀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일례로 진행자들은 헤드폰 비스무리한 것을 쓰고 뉴스를 전달하기도 했는데, 진짜 헤드폰이 아니었다.[24] 또 슈퍼 타임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스튜디오를 선보였는데, 방영 당시 세기말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 구조가 뉴스 스튜디오인지 테마파크인지 모를 정도로 난해했다.

앵커의 능력 문제도 있었는데 남성 진행자 카사이 신스케는 슈퍼 타임 주말판의 스포츠뉴스 진행을 맡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쇼 버라이어티에서 주로 활약하던 아나운서였으며, 여성 진행자 사사구리 미네는 보도국 기자로 더 휴먼이 생애 첫 진행이었다.[25] 그러면서도 슈퍼 타임에서의 코너 구성은 유지되어 뉴스와 제품 할인 등의 행사, 특집 보도 등이 번갈아 나왔다. 그러나 신참 앵커들의 진행 능력 문제와 후술할 뻘짓 탓에 이러한 코너 배치의 메리트를 슈퍼 타임 때와는 달리 전혀 살리지 못하면서 구성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26]

이 모든 문제점이 합쳐진 결과 더 휴먼은 연성화에 관대한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난해한 뉴스 프로그램이 되어버렸고, 13년간 쌓아올린 명성은 1년 만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일기예보 코너에서 예보를 할 때는 야외에 일본 전도 모형을 설치해 놓고 비닐을 씌워 구름을 표현하고 부채를 부쳐 바람을 만드는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1997년 3월 11일 발생한 동연[27] 도카이사업소 화재 폭발 사고[28]를 더 휴먼이 연일 보도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이 사건을 보도하던 앵커 카사이 신스케는 "이제 더 이상 동연에 할 말은 없습니다."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그러나 하필 이 때 뉴스 구성상의 차질이 발생하는 바람에 이를 무마한답시고 이 코멘트를 두번 세번 반복했다. '오토코오바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카루베 신이치[29]는 카사이에게 할 말이 없다면서 왜 계속 말했느냐고 물었고, 카사이는 "더 휴먼이 1년밖에 못 간 이유는 이렇게 대응한 게 컸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어 위키백과)

요약하자면, 더 휴먼은 슈퍼 타임의 그 어떤 것도 지켜내지 못했다. 쉽고 친절한 설명 대신 경직된 보도를 한 것까지는 기존 시청자들의 이탈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치더라도, 어찌 되었든 시청자 개개인의 취향의 영역이니 잘 해냈다면 시청자들의 신규 유입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시청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체감했다면 또 다른 전설적인 뉴스 프로그램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만한 스튜디오와 진행 동선은 시청자들을 집중시키지 못했고,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한 행동들은 되려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반듯한 보도로 뉴스 프로그램의 본분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면 기본은 지켰으니 어느 정도 참작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으나, 베테랑도 아닌 신참 앵커들이 난잡한 뉴스 구성 속에서 보도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슈퍼 타임을 보던 시청자들은 모조리 나가떨어졌고, 더 휴먼은 종영하는 순간까지 악평을 만회하지 못하였다.

결국 더 휴먼은 경성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연성 뉴스의 단점들만 드러낸 후지 테레비 최악의 저녁뉴스로 전락하고 말았다. 괴이한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은 더 휴먼은 1년 만에 종영되었고 완벽한 흑역사가 되었으며, 종영 이후 해당 시간대에는 슈퍼 타임의 보도 스타일로 회귀한 FNN 슈퍼 뉴스가 편성되었다. 사실상 슈퍼 타임의 진정한 후신으로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FNN 슈퍼 뉴스의 후속 프로그램인 모두의 뉴스 역시 더 휴먼 시절처럼 뉴스의 예능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 그러나 적어도 구성상의 차질 같은 문제는 보이지 않았으며, 3시간 방송이라는 특징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더 휴먼과는 달리 3년 동안이나 방영되었다. 모두의 뉴스가 프라임 뉴스 이브닝으로 개편된 후에는 모두의 뉴스 때처럼 3시간 방송을 바라는 일본 시청자들이 있었을 정도였고, 이후 Live News it!에 이르러서 어느 정도 실현되었음을 생각하면 더 휴먼과 모두의 뉴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모두의 뉴스 입장에서는 실례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1] 가나가와현지사 [2] 1963년 입사, 2002년 정년퇴임. [3] 1994년의 헤이세이 교육 테레비는 7월에 '헤이세이 여름방학 버라이어티'라는 타이틀로 방송되었다. 1994년 7월에는 안도가 하차하고 마츠야마 카오리가 뒤를 이은 후였기에 엄밀히 말하면 시게루-유코 체제가 아니라 시게루-카오리 체제 시기이지만, 1994년을 마지막으로 교육 테레비는 방영이 종료되었으므로 편의상 이 문단에서 같이 서술한다. [4] 당시 후지산케이그룹 의장이었던 시카나이 하루오가 전국 뉴스와 지역 뉴스의 통합을 원했기 때문에 슈퍼 타임에서 통합된 것이라고 한다. 시카나이 의장은 1985년 후지산케이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5] 1984년에서 1988년까지 방송된 uhb의 저녁뉴스. 오프닝 타이틀에서는 'uhb 이브닝 뉴스'라고 표기하기에 이쪽으로 더 많이 불리었다. 1988년 3월 이후 'uhb 슈퍼 타임'으로 타이틀을 변경. [6] 예외적으로 FNN 계열 지방 방송사 중 KTV, TOS는 '슈퍼 타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독자 타이틀로 방송했고, FTV는 오히려 전국뉴스에 한해 슈퍼 타임을 썼다가 후에 독자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FNN 뉴스 555 더 휴먼, FNN 슈퍼 뉴스에서는 모든 계열사가 통일된 타이틀로 방송했다. [7]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는데, 유튜브 등에 올라와 있는 실제 방송 자료로도 확인할 수 있다. [8] 슈퍼 타임의 후신이자 슈퍼 뉴스의 전신인 FNN 뉴스 555 더 휴먼은 지역국 방송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9] 단, 예외적으로 평일에는 2000년 앵커 교체(안도 유코가 NEWS JAPAN에서 슈퍼 뉴스로 돌아온 시기) 때 잠깐 앉아서 진행한 적이 있었으나, 곧 서서 진행하는 것으로 환원되었던 바 있다. 또, 슈퍼 뉴스가 2013년 개편된 후 평일판의 앵커들은 여전히 기본적으로는 서서 진행했지만 주말판인 슈퍼 뉴스 위크엔드의 앵커들은 앉아서 진행했다. [10] '출발! 서울의 아침' 시절이었던 1993년경부터 '출발 새 아침' 등을 거쳐 '출발! 모닝와이드'로 개편된 후인 90년대 말까지는 앉아서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스튜디오 내 왼쪽에, 서서 진행하는 곳이 오른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슈퍼 타임처럼 방송 내내 서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어떤 날은 앉아서 진행하거나, 때에 따라 서서 진행하다가 앉아서 하다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 90년대 말 이후 스튜디오가 개편되면서 서서 진행하는 공간은 사라졌다. [11] 1994년부터 2015년까지 21년 동안 방송되었다. 여담으로 그 전신인 FNN DATE LINE을 이츠미의 후임이었던 우에다가 진행한 바 있다. [12] 슈퍼 뉴스 최종회에는 안도 유코의 27년 역사를 정리하는 특집을 꾸리기도 했는데, 이 때 2000년 안도 유코가 슈퍼 뉴스로 돌아온 후 안도와 함께 진행했던 앵커(키사 아야코, 스다 테츠오, 키무라 타로)들을 같이 모셔왔다. 진행 장면뿐 아니라 사형수부터 욘사마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과 나눈 인터뷰는 물론, 현장에서 취재를 위해 직접 뛰었던 영상들도 나왔다. [13] 백지연은 후지 테레비와 협력 관계인 문화방송 소속 아나운서였는데, MBC 뉴스데스크 최장수 여성 앵커 기록을 세웠으며 커리어 초기에는 안도와 마찬가지로 학업과 뉴스 진행을 병행했다. 메인 뉴스 진행을 시작한 시기도 얼추 비슷하다. [14] 1987년 4월부터 반년동안 이츠미 마사타카와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최종회에서는 남성 2인의 드문 조합으로 소개됐다.) [15] 1987년부터 2018년까지 31년동안 방영된 낮 뉴스 프로그램. [16] ED에 대해서는 BBT(93년 12월까지의 약칭은 T34), TKU 등에서도 사용되었으며, 도카이 TV, 칸사이 TV에서도 제목 부분을 제외하고, 그대로 사용되었다. [17] 그러나 평일에는 마스터 업데이트로 인해 왼쪽으로 사라지기 전에 중단되는 일이 많았다. [18] 도카이 TV는 오프닝 애니메이션으로 사용되었다. [19] 이는 다른 FNN 뉴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20] 시그널은 뉴스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수록 그 프로그램의 평가도 높아진다. ABC 월드 뉴스 투나잇은 2020년에 시청률 1위를 탈환한 것을 계기로 오프닝 시그널을 2000년 버전으로 롤백했는데 피터 제닝스 시절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21] 여기서 '555'는 방송이 시작되는 오후 5시 55분을 의미한다. 더 휴먼 주말판의 경우 방송 시간이 슈퍼 타임 주말판과 다르지 않았기에(토 6:00 ~ 6:30, 일 5:30 ~ 6:00) 주말판의 타이틀은 '555'가 빠진 [22] 니코니코 동화의 FNN 계열 저녁 뉴스 모음 영상에서 확인함. 앵커의 실수 때문인지 난잡한 진행 순서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23] 더 휴먼은 사람이 사람에게 뉴스를 전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을 체감시키는 뉴스를 전해야 한다며 이른바 '체감뉴스'를 내세웠다. [24] 다만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마이크는 실제로 작동되는 것이어서 취재기자 연결에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5] 더 휴먼 종영 이후 다시 기자 일에 전념하며 2001년 미국 워싱턴 D.C. 특파원으로 활동하다가 데이비드 볼링 검사와 결혼하여 퇴사했다. 퇴사 후에는 워싱턴 D.C.에서 저널리스트 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26] 일본어 위키백과에 있는 웬만한 일본의 메인 종합 뉴스 프로그램 문서들은 코너 진행을 간략하게라도 서술하는데 더 휴먼 문서에는 구성에 관한 내용이 단 한 글자도 없다. 오히려 지역 뉴스의 명칭 완전 통일을 설명하는 표가 해당 문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아도 몇몇 실제 방송 영상 외의 자료는 찾기 어렵다. [27] 동력로·핵연료개발사업단(現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의 약칭. 일본식 발음은 도렌(どうれん)이지만, '동연'으로 표기한 한국 기사가 존재하기에 이 문서에서도 '동연'으로 표기한다. 영문 약칭은 PNC. [28] 이날 10시경 방사성 폐기물(정확히는 아스팔트 고화체)이 들어있던 일부 드럼통의 온도가 정상 수준보다 높아졌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면서 인근 건물로 방사성 물질이 퍼졌다. 이에 인부들은 대피하였고, 오후 8시에 해당 시설에서 폭발이 발생하여 폭발에 휘말린 건물들의 문과 창문이 파손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 기준 원자력 사고 3등급. 일자를 보듯이 더 휴먼 방영 이전인 슈퍼 타임 방영 말기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더 휴먼은 이 사건의 후속 보도를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9] 슈퍼 타임 평일판 리포터 중 한 명이었으며, 오토코오바상에서 카사이 신스케와 콤비를 이루었다. 현재 카사이는 후지를 퇴사하여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카루베는 메자마시 테레비에는 1994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계속 출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