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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22 23:30:03

FNN 슈퍼 뉴스

방영 기간 1998년 3월 30일 ~ 2015년 3월 27일(17년)

1. 개요2. 방송시간3. 상세4. 연혁
4.1. 1998년 ~ 2000년 (미야가와/구로이와 시대)4.2. 2000년 ~ 2015년 (안도 시대)
4.2.1. 2000년 ~ 2001년4.2.2. 2001년 ~ 2010년4.2.3. 2010년 ~ 2011년4.2.4. 2011년 ~ 2015년
5. 타이틀 및 그래픽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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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 테레비 계열의 前 저녁뉴스 프로그램. FNN 슈퍼 타임의 사실상의 후신으로, 슈퍼 타임의 종전 13년 기록을 깨고 17년간 방영한 후지 테레비 역사상 최장수 저녁뉴스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2. 방송시간

날짜 방송시간 전국 방송시간 지역 방송시간
1998.3.30~1998.9 17:55~19:00 17:55~18:25 18:25~19:00
1998.10~1999.3
1999.4~2000.3 17:25~19:00
2000.4~2005.3 17:00~19:00 17:54~18:18 18:18~19:00
2005.4~2007.9 16:55~19:00 17:54~18:17 18:17~19:00
2007.10~2011.3 16:53~19:00
2011.4~2012.3 17:54~18:15[1] 18:15~19:00
2012.4~2013.3 16:50~19:00[2]
2013.4~2013.9 16:30~19:00
2013.10~종영 16:50~19:00

3. 상세

FNN 슈퍼 타임이 1997년 종영되고 FNN 뉴스 555 더 휴먼이 그 뒤를 이었으나, 더 휴먼은 일본의 저녁뉴스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결국 후지 테레비는 1년 만에 타이틀을 FNN 슈퍼 뉴스로 바꾸고 보도 스타일을 슈퍼 타임 시절처럼 연성화하여 진행하였고, 그 결과 슈퍼 타임의 단절된 명성을 잇는 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 시간대는 슈퍼 타임 때와는 달리 매우 자주 바뀌었다. 저녁뉴스가 60분을 할 때도 있었고, 120분을 할 때도 있었으나 전국뉴스 보도 시간은 거의 항상 30분 내외였다.

4.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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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1. 1998년 ~ 2000년 (미야가와/구로이와 시대)

초대 앵커는 미야가와 슌지와 야기 아키코였으나 미야가와 슌지는 1년만에 하차하였으며, 노지마 타카시와 구로이와 유지[3]가 합류했고 방송 시간이 30분 늘어났다. 3달 후에 오오바야시 히로시가 합류하며 4인 체제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2000년 3월을 끝으로 4인의 앵커 모두 슈퍼 뉴스에서 하차했다. 후지 테레비가 슈퍼 뉴스의 앵커 4인 전원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둔 것.

4.2. 2000년 ~ 2015년 (안도 시대)

4.2.1. 2000년 ~ 2001년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슈퍼 타임의 보조 진행자를 맡다가 1994년에 방영이 시작된 마감뉴스인 NEWS JAPAN[4]의 진행자를 맡고 있던 안도 유코, 신인 시절 슈퍼 타임의 기상캐스터를 맡았었으며 1996년부터 프로야구 뉴스[5]를 진행하던 키사 아야코[6], 슈퍼 타임 시절 이츠미 마사타카를 대신해 나오기도 했던 아나운서전임부장 스다 테츠오, 베테랑 언론인으로 NEWS JAPAN의 코멘테이터였던 키무라 타로[7]가 2000년 4월부터 슈퍼 뉴스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특히 사실상의 전신이었던 슈퍼 타임의 주요 진행자들 중 이츠미 마사타카는 세상을 떠났고, 코다 차밍은 사실상 은퇴 상태였기에, ​안도는 '슈퍼 타임의 귀환'에 알맞은 인선이기도 했다. 그래서 뉴스 재팬의 진행자 두 명을 빼오는 등의 전격 스왑으로 슈퍼 뉴스의 앵커진을 재구성했고, 결과는 대성공. 이리하여 후지 테레비 저녁뉴스의 영광이 다시 찾아왔다.

2001년 4월 2일부터 주말 방영분이 FNN 슈퍼 뉴스 Weekend로 독립했다. 그런데 말이 2001년에 독립한 것이지, 실제로 슈퍼 뉴스 주말판은 독립 이전이나 이후나 타이틀을 빼고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슈퍼 뉴스는 평일 앵커와 주말 앵커가 원래 달랐었기 때문에, 달라진 것이라고는 상징색을 별도로 부여받은 것 정도.[8]

키사 아야코는 2001년 7월 31일부로 진행자에서 내려오고, 그 뒤를 니시야마 키쿠에[9]가 이어받았다.

4.2.2. 2001년 ~ 2010년

슈퍼 뉴스의 최전성기를 논한다면 단연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는 물론, 후지 테레비의 마지막 전성기와 맞물려 슈퍼 타임 시절과 맞먹는 인기를 자랑했다. 이 기간만큼은 그야말로 슈퍼 타임의 부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이른바 안도 시대가 시작된 2000년부터 나가노와 스다가 하차한 2011년까지가 슈퍼 뉴스의 전성기였지만, 2001년 키사가 나가고 니시야마가 들어온 후 안정기에 접어든 때부터 스튜디오 디자인 및 2002년부터 사용하던 시그널을 변경하기 전까지인 2010년까지가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사용된 시그널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사용하던 FNN 스피크[10] 오프닝 시그널과 함께 후지의 옛 전성기를 상징하는 오프닝곡으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이다.[11]

2005년 4월에 방송 시간을 5분 더 늘렸고, 2007년 10월에 재차 2분 더 늘린 방송 시간이 2011년 3월까지 이어졌다. 니시야마가 출산으로 인해 2007년에 하차했고, 요시다 케이와 타케시타 카나가 두 달 동안 그 자리를 채웠다가 나가노 츠바사[12]가 둘을 대신해 들어와 2011년까지 진행하였다.

4.2.3. 2010년 ~ 2011년

안도와 키무라가 진행을 맡은지 10년이 되었다. 스튜디오가 리뉴얼되었고 시그널도 바뀌었다. 후술하겠지만 기존 2부 시그널은 어레인지하였고, 1부 시그널을 2부 시그널의 작곡가가 새로 만들었다. 이후 2011년에 스다가 물러났고, 오쿠데라 타케시가 스다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 시그널을 다시 바꾸었는데, 이때 1부와 2부와 달랐던 시그널이 통일되었다.

그러나 이 즈음부터 후지 테레비는 서서히 부침을 거듭하기 시작했으며, 나가노가 3월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하며 슈퍼 뉴스에도 서서히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4.2.4. 2011년 ~ 2015년

후지 테레비의 부진은 제아무리 슈퍼 뉴스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후지 테레비는 슈퍼 뉴스의 인기가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개편을 단행했다. 단적인 예로 2013년경에는 150분 동안 진행한 적도 있었다. 물론 전국 뉴스는 여전히 30분. 반대로 말하면, 전국 뉴스는 고작 30분만 편성하고 로컬 뉴스와 기타 뉴스를 나머지 시간에 편성하는 것을 시도할 정도로 슈퍼 뉴스가 FNN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잦은 개편이 무색하게 슈퍼 뉴스는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스다와 나가노에 이어 2013년에는 2000년부터 진행해온 키무라마저 물러났고, 다른 캐스터들이 물러난 이들을 대신해 안도를 보조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카타카나였던 기존의 타이틀을 영어로 표기하고,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해 왔던 주황색 테마를 붉은색으로 바꾸는 등 이미지 쇄신을 꾀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결국, 슈퍼 뉴스는 2015년 3월 27일을 끝으로 17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슈퍼 뉴스 최종회에서, 2000년 전성기의 시작을 열었던 4명의 캐스터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13] 4명이 모이고 안도가 진행을 시작하려다가 울컥하자 키사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놀란 투로 웃으며 아직 이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이들은 슈퍼 뉴스 진행 당시를 회상하고, 안도의 취재 영상 등을 보며 안도의 기자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은 슈퍼 뉴스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지만, 안도의 기자 인생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 방송을 끝으로 안도 유코는 뉴스 진행을 그만두게 되었다. 1988년 첫 뉴스 진행 이후 27년만의 일이었다.

5. 타이틀 및 그래픽

슈퍼 뉴스는 그래픽과 시그널의 교체가 잦았다. 방영 초기였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슈퍼 뉴스의 입지가 매우 불안했기 때문이었고, 2010년 이후에는 개편을 자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그널이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6. 여담



[1] 뒤에 이어질 모두의 뉴스 프라임 뉴스 이브닝에도 이 기조가 이어진다. [2] 프라임 뉴스 이브닝은 이 시간대에 방송했었다. [3] 전신인 슈퍼 타임을 짧게 진행한 적이 있었다. 2012년부터 가나가와현지사를 역임하고 있다. [4] 1994년부터 2015년까지 방송된 후지 테레비의 마감뉴스 프로그램. 후지의 마감뉴스는 DATE LINE-FNN NEWSCOM-NEWS JAPAN 순으로 계보가 이어지다가 2015년 이후 너무나도 잦은 개편 끝에 2019년부터는 Live News α로 방송되고 있다. [5] 전신까지 따지면 1961년 4월 1일부터, 1965년에 폐지된 이후 부활한 때부터 기산해도 1976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2001년 지상파 방송 종료 후에도 CS 방송으로서 방송 중이다. 이것 역시 시간대로는 마감뉴스에 해당된다. [6] 1994년에 입사하였기에 4명 중에서 가장 어리고 신참이었다. 남편이 前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 야구선수이자 現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단장인 이시이 카즈히사이다. 키사가 프로야구 뉴스 진행자를 맡았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7] 1938년 저널리스트. 1980년대에 이미 당대의 유명 뉴스 프로그램이었던 NHK 뉴스센터 9시의 앵커를 맡았었을 정도로 상당한 경력과 연륜을 자랑했다. NHK 퇴직 후 후지 테레비 심야 뉴스였던 DATE LINE, NEWSCOM 메인 앵커를 맡다가 NEWS JAPAN으로 개편된 이후 고정 코멘테이터를 맡아 왔다. 2000년 당시 이미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76세였던 2013년까지 코멘테이터로 슈퍼 뉴스의 자리를 지켰으며, 안도 유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랫동안 슈퍼 뉴스를 진행했다. KBS 2TV 드라마 각시탈의 등장인물 기무라 타로와 이름이 같다. [8] 사실 더 휴먼 시절에도 평일과 주말의 앵커가 달랐지만 그래도 더 휴먼 때는 주말판이 평일판과 타이틀이 달랐었기에 특별한 점은 아니었는데, 슈퍼 뉴스로 개편된 이후 평일판과 주말판의 타이틀이 통합되었음에도 더 휴먼 주말 앵커들이 그대로 슈퍼 뉴스의 주말 앵커로 유임한 것이 주말판의 독립성을 더욱 굳게 했다. 사실 전 세계를 봐도 뉴스 프로그램들 중에는 주말판이 평일판과 꽤 다르게 굴러가는 것들이 많은 만큼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9] 1992년 입사. 키사보다 2년 먼저 입사했다고 해도 나머지 3인보다는 신참이었다. 전임이었던 키사가 그랬듯 슈퍼 타임에서 기상캐스터를 맡았었으며, 와랏테 이이토모! 등에 출연하며 키사와 마찬가지로 영건 여성 아나운서로서 인기를 누렸다. 2022년 현재 메자마시 토요일의 진행을 맡고 있다. [10]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1년 동안 방송된 낮 뉴스 프로그램. 종영 이후 FNN 프라임 뉴스 데이즈가 그 뒤를 이었다가, 2019년부터 Live News days로 방송되고 있다. [11] ​1부 시그널도 그렇지만, 특히 2부 시그널이 시대를 상징하는 시그널로 각인되었다. 2010년 시그널도 호평이 상당하지만, 보통 2002년 시그널이 대표적인 슈퍼 뉴스의 시그널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도 2002년 시그널이 8년 동안 사용된 것과 달리 2010년 시그널은 얼마 안 가 교체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12] 슈퍼 뉴스 진행 당시 아직 한창의 나이였고 후지 테레비의 촉망받던 여성 캐스터였으나, 2010년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결혼한 후 우치카와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하여 사실상 별거 상태에 이르게 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해 말에 2011년 3월을 끝으로 퇴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퇴사할 무렵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자신이 슈퍼 뉴스를 진행하는 마지막 날인 3월 25일에는 대지진과 관련하여 뉴스 시간의 절반 이상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소식을 전하는 데 할애할 수밖에 없었기에 나가노는 촉망받던 캐스터였음에도 시청자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캐스터로서의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말았다. 현재로서는 그녀의 뒤를 이을 만한 인지도와 능력을 가진 후지의 여성 캐스터가 없는 상태. [13] 키무리와 스다는 물론, 2001년까지 진행했던 키사까지 4인이 모두 모였다. 방송 화면 우상단에는 안도를 제외한 3인이 '부활'했다는 자막을 달았다. [14] 앵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가 취재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바뀐 그 부분에서 나오는 가락을 말한다. [15] MBC의 前 프로그램인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얼굴'(1997~2002)의 테마곡으로 유명하며, KBS N SPORTS의 프로그램 아이 러브 베이스볼의 오프닝에 쓰이는 그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