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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언어 | 한국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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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 1995년 4월 24일([age(1995-04-24)]주년) | |||
소유 | 카카오 (옛 다음커뮤니케이션) | |||
연 방문자 수 | 약 3억 4,610만 명 (2018년 기준[1]) | |||
회원 수 (국내) | 약 3,800만 명 (2014년 2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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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1995년 4월 24일 선보인 인터넷 검색 포털 사이트이다.2. 역사
2.1. 한메일넷
한국에서 포털 사이트 개념을 최초로 전파한 기업은 다음(당시 한메일넷)이다. 1995년에 이재웅과 박건희 본디 촉망받던 사진작가로 파리에서 유학하던 도중에 이재웅과 이택경과 만난 이후로 인터넷과 예술의 결합이나 인터넷으로 사진을 전시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 같이 회사를 차렸는데 회사를 차리자마자 무리를 많이 해서인지 회사를 차린 지 8개월 만에 28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여러 번 주목을 받았던 촉망받던 사진작가였던데다가 다음이 나름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못 보고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인지 이재웅과 이택경이 미안함을 가져서 나중에 둘이 돈을 출자해서 유족들과 같이 박건희의 이름을 딴 문화재단을 차렸는데 바로 박건희 문화재단. 이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다음의 콘셉트가 예술적인 취향이 다소 반영되는 등 다소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가 도는 편이다.
이택경[3] 3명이 인터넷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김에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는데 사업 초기에는 버추얼 갤러리라고 해서 사진과 회화를 전시하거나 광주 비엔날레와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을 생중계하는 등 예술 사이트였었고, 당대 온라인 상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종합 PC통신 업체의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외부 개발용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영화 웹진 서비스를 만든다거나 패션이나 여행정보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사업을 하나하나 확장함으로써 포털사이트 다음의 모습이 조금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 무료 메일로 유명한 '한메일넷'을 오픈하고 검색 서비스도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메일 개념이 없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PC통신을 통해서 메일을 써야 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액제가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PC통신 이용으로 돈이 적지 않게 나가던 데다가 PC통신에서 제공하던 메일은 대부분 해당 PC통신사 내부용으로 이용하던 메일을 기반으로 확장한 것이라 본격적인 메일이라 하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호응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거대 포털사이트화가 진행되었다.
그 흔적으로 한동안 다음의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시장이 벌어들이는 돈이 변변치 않은데 반해 사업 투자비 때문에 운영비는 월등하게 많이 들고 있다. 1999년 매출액이 77억원 정도이다. 독일계 언론재벌인 베텔스만[4]의 도움으로 서버 증설하고 포털사이트 사업을 해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던걸 보면 사업자금 투자로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여하튼 베텔스만은 2002년까지도 다음의 2대 주주였지만 2002년에 주식을 죄다 처분해서 현재는 별 관계가 없다.
2.2. 다음
1998년에 회원 수 100만 명을 달성한 이후로 1999년에 지금의 다음으로 바뀌었다.IT버블 시기에 주가가 폭등하였기에[5]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어서 1999년 11월에 코스닥 시장에 등록[6]했을 때 26 일 연속 상한가를 쳤던 기록이 있다. 당초 공모가는 1만 1200원으로 책정되었으나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40만 원까지 주가가 폭등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최종적으로 54만 원(무상증자 후에는 27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코스닥에 등록하는 김에 전 직원들에게 우리사주 식으로 일정 수준의 주식을 나눠준 덕택에 이 시기 한정으로 전 직원이 수억 원대의 자산을 가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다음의 주가도 동반 폭락하였고 현재까지도 10만 원을 좀체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7] 그래도 점유율 2위를 지키면서 다른 포털사이트들이 몰락하는 것에 비하면 썩어도 준치는 준치였기에 코스닥 대장주로써의 위상은 지키기는 했다.
IT버블이 꺼졌다고 해도 매출액 자체는 급속히 늘었기에 2000년 하반기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로는 포털 사이트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으며 2002년 매출액 1000억 원을 달성했다.
2.2.1. 온라인 우표제
다음 계정이 수신처인 대량 메일을 보내면 수신 차단된다. 다만 보내기 위해서는 한통에 얼마씩 줘야 했다. 대신 수신자가 "정보성"이라는 버튼을 눌러주면 발신자가 낸 '우표값'을 돌려줬다. 대량 메일 발신자에는 요금을 지불하거나 정보성을 입증하려면 사업자등록증 및 관련 서류를 다음 측에 보내라라는 기업간 거래를 안내하는 오류 메시지가 한국어로 나타났는데, 각종 학회/취미 메일링 리스트들을 비롯한 해외 뉴스레터 같은 경우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사정을 듣고 나서는 황당해 할 뿐이었고 한국 내에 사업자가 없으니 우표값을 내고 싶어도 낼 방법도 없었다.다음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당시 한메일넷은 막 PC통신에서 벗어난 한국 인터넷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특히 스팸으로 인해 시스템 부하가 늘어나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고도화된 필터링 기능도 없던 시절이라 스패머가 스팸 메일을 보내면 서버도 사용자도 그 메일을 다 받아야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스팸 메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고안한 방법이 메일을 대량으로 발신하는 사이트의 메일 수신을 거부하고 온라인 우표제라는 딱지를 붙여서 스팸도 막고 수익도 창출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 올 스팸은 다 오고 뉴스레터들만 먹통이었다. 국내 스패머들이 이를 알고 계정을 쪼개서 스팸 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이 휴대전화 문자에서도 일어난다. 발신자 번호를 못 바꾸게 법이 바뀌었지만 스패머는 번호를 잘 바꿔서 보내고,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 전화기를 이용해서 문자를 보낼 때 보내는 이 번호를 자신의 번호로 바꿔서 보내는 선량한 이용자만 불편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불법 중계기를 이용해서 발신 번호를 바꾸는 방법을 썼다.[8]
어쨌든 이 때문에 수많은 사이트들은 이메일란에 다음 메일을 적으면 가입을 거부하였고 결국 사람들이 다른 이메일을 적게 쓰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 제도는 2004년에 폐지되었지만 사이트를 개편하지 않은 곳은 지금까지도 다음 메일 사용자를 거부한다. 심지어, 온라인 우표제 철폐 이후에도 일부 사이트는 메일 주소 변경하지 않은 회원의 개인정보를 주민등록상 신생아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였다. 결국 다음은 @hanmail2.net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그런 곳에 쓰라고 했고, hanmail 키워드 자체가 막힌 경우에는 @daum.net을 쓰라고 했다. 그래서 한메일넷 계정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계정 하나로 @hanmail.net, @hanmail2.net, @daum.net 세개를 모두 쓸 수 있다.[9]
결국 사이트들이 다음 메일 가입을 거부하자 다음 메일을 아예 벗어나는 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최후의 보루 다음 카페까지 빼앗겨 버렸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우표제 하나 때문에 잘 나가던 회사 하나가 꼬꾸라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음의 최대 오판이었다. 포털을 바꾸려면 이메일 주소를 바꿔야 하고, 그러면 다른 수많은 사이트에 가입했던 이메일 정보를 새로 시작하는 사이트로 돌려놔야 하는 이메일의 특성상 무언가 크게 뒤집을 만한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은 암울하기만 하다.
온라인 우표제 폐지 이후 다음 메일은 일일이 사이트 관리자들을 설득하여 한메일넷을 다시 복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온라인 우표제로 신뢰가 한번 깨지자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논란을 피하고자 한메일넷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이트들도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개편되지 않아 너무 오래된 사이트들이 한메일넷을 거부하지만 일부 개편된 사이트들도 한메일넷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사건은 IT 기업 최악의 실수로 꼽힌다. 이후 2011년을 기해 한메일넷은 서비스명을 다음 메일으로 변경하였고, 2014년 카카오에게 우회상장 형식으로 인수합병이 되면서 다음은 사실상 간판만 남게 되었다.
3. 서비스 문제
3.1. 2030 세대의 유입 저조
다음의 주 사용자 연령층은 4050 세대로, 다음의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짐과 동시에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2030 청년 세대 유입이 거의 없다. 오히려 2030 세대는 다음을 인수한 카카오와 다음과는 달리 지속적인 개발과 개선과정을 거쳐 국내 포털 1위를 차지한, 공공기관 이용시 필요한 인증서류나 국민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 기능이 있는 네이버로 유입된다. 사용자가 대부분 4050 세대 이상이라는 것은 다음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에 카카오 측은 다음 계정을 카카오로 통폐합해 버렸다.3.1.1. 다음 로그인 종료 및 카카오 계정 통합
이러한 문제가 컸는지 2022년 8월 31일 다음카카오는 공지사항으로 신규 다음 로그인을 종료하고 10월 1일 카카오 계정으로 통합시키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다음 카페 이용자들이 우리식당 정상영업합니다라고 반발했다.3.2. 불법 광고 관련
대형 포털의 카페 서비스 같은 곳에 불법광고가 몰리는 것은 흔한 사안이긴 하지만, 2012년 1~2월부터 다음 카페에서 댓글과 게시글로 이루어진 불법광고가 계속 몰려들고 있다. 물론 이것을 처리하는 것은 해당 카페의 관리자들이기는 하나, 다음 측에서 이것을 막지 못하는, 즉 보안이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1년 말까지는 해당 광고를 올릴 경우 "~에 의해 차단된 글입니다."라는 문구로 대체되었지만[10] 2012년 6월 기준으로 그마저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3.3. 문재인 후보 당선 오보
18대 대선 개표가 진행되던 2012년 12월 20일 새벽, 이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다음은 아래와 같이 문재인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치명적인 오보를 대문에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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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뒤늦게 잘못된 대문을 교체했지만 이 상황은 이미 여러 접속자들에게 목격되어 퍼 날라진 상태였고, 보수 지지층에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개표 내내 단 한순간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이긴 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고작 3.5% 정도 차이의 박빙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승리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런 선거나 스포츠 승패 같은데 사용되는 이미지는 결과가 알려지고 나서 제작하면 기사 전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서, 결과가 나오기 전 양쪽의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 놓는데, 새벽에 결과가 알려지고 이미지를 링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런 승패 관련 이미지 사고는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
3.4. 특별 세무조사 논란
다음은 2008년 5월, 2014년 5월, 2015년 6월 세무조사를 받았다.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의 세월호 참사 직후, 2015년의 메르스 사태 발생한 직후 진행된 특별 세무조사여서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된 세무조사라는 논란이 있었다. 다음은 정부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는 시기마다 특별 세무조사를 받아 정부가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포진된 다음을 겨냥한 '다음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4. 여담
-
직원에게 스마트폰 지급
2009년 11월, 870명쯤 되는 전 직원에게 스마트폰을 무상으로 지급하며, 2년간 다음이 데이터 요금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빠르게 추모 배너를 걸고 전면 흑백 처리해서 친노 성향 유저들에게 큰 호감을 얻었다. #
- 다음 아이디가 갑자기 사라지고 있다. 지금 네이버에 '다음 아이디 사라짐'이라고 치면 네티즌들의 분노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입하면 2~3일이면 아이디가 사라지고 다시 가입하려니 같은 이메일을 두 번 사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고객센터에 따지자니 절차가 복잡하고 해서 가입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관련 글)
- 2014년 5월 26일 카카오와 합병한다는 소식이 정식 발표되었고 # 10월 1일에 합병이 완료되었으며 #. 10월 31일 다음카카오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 명목상으로는 다음이 인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합병 후 실제 최대주주가 김범수 이사회 의장 등 카카오 측이다. 때문에 사실은 카카오가 다음을 역합병하여 우회상장을 하는 쪽에 더 가까워 한국거래소, 공정위, 국세청 등 관련기관에선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있으며 이후 회사명이 카카오로 변경되었다. 카카오 참조.
- 2016년 2월 8일 현재 접속이 되고 있다.[11] 이점은 2016년 3월 3일 자 재차 확인한 결과 해당 페이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해당 문제점이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 1인당 가입 가능한 아이디 개수가 무제한이다.[12] 아고라 글의 추천수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가 이 때문도 있다고 한다. 단 언제 명시된지는 모르지만 2011년 1월 기준 ID는 주민번호 1개당 5개까지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현재 삭제됨) 다음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을 다음 계정으로 접속해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부분 유료화 게임 계정을 여럿 만들기 위해 다음 계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 우분투 한국 사용자 모임이나 KLDP 등의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이미지가 좋다. 우분투, 페도라, 젠투 등의 큼직한 배포판들의 업데이트 미러를 지원해주며, 한국에서 가장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가 있다. 파이어폭스 지원 등의 웹 표준을 일찍 지원하고, 태터툴즈 지원과 오픈소스 미러링 등의 오픈소스도 신경을 써 줬다고. 그런데 정작 자기 서비스 개선은 등한시하기도. 2011년 5월 들어서는 마이피플과 다음 클라우드의 리눅스 버전을 제공하기도 했다(서비스 종료).
- 다음 검색창에 /를 이용한 몇 가지 숨은 기능이 있다.
|
-
인물검색 기능의 경우 네이버와 달리 생년월일이나 출신지 등 특정 조건을 입력하면 검색결과를 보여준다.
[1]
방송통신위원회 -
2018년도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계획 자료, 네이버에 이은 2위이다.
[2]
모바일 버전
[3]
다음에서 퇴사한 후
매쉬업엔젤스라는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를 설립하였다. 벤처투자라는 업의 특성상 일반 소비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으나 업계에서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4]
한국에서는 유럽 대륙 방송하면 ZDF나 프랑스2 정도나 좀 알려진 수준이기에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의 민영방송인
RTL과 프랑스의 민영방송인
M6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 언론재벌그룹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베텔스만 북클럽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했다가 이후
대교그룹에 인수되었다.
[5]
1998년 6월에 277P까지 폭풍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4배 가까이 오르고 코스닥 지수는 6배 이상 올랐다.
[6]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 되어서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등록이라는 표현을 썼다.
[7]
카카오와 회사를 합병한 이후로 잠시 동안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시너지 효과를 불어 일으키지 못하면서 10만 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8]
다만 이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가 부각되고 불법 중계기를 단속하면서 일정 부분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모르는 전화나 문자가 와도 인터넷이나 해외발신이면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이후 다음 계정과 카카오 계정의 통합서비스가 종료되면서 그 이전에 통합서비스를 신청한 사용자들만 한메일넷 이메일 계정을 쓸 수 있다.
[10]
이것도 말이 많은 게, 차단되긴 했지만 이 차단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쉽게 말하자면 마룻바닥의 껌을 떼었는데 흠집을 내버린 격이다.
[11]
접속 문제와는 무관한 문제로 Internet Explorer 필요라는 문구로 다음으로 이동시 불편함을 끼치고 있다
[12]
간단히 일회용 메일 사이트에서 주소 생성한 후 무한 가입이 가능하다. 어처구니없게도 2020년 5월 17일 현재, 해외 가상번호로도 가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허술한 가입 시스템이 뉴스 서비스에서 조직적 댓글 추천 조작, 어그로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13]
단, 팝업 차단 기능이 동작하므로 예외 설정을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