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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TV 도쿄 계열에서 1995년 10월 1일부터 2002년 3월 24일까지 방영되었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있다. 개그 콤비 나인티나인이 사회를 맡았다.2. 상세
전신은 1992년 4월 14일 방영을 시작한 '아사쿠사바시 영 양품점'(浅草橋ヤング洋品店)으로 초창기에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패션 등을 소개하는 방송이었으나 후에 버라이어티 방송으로 포맷을 변경했다. 1995년 10월 약칭인 '아사얀'에서 따온 'ASAYAN'으로 개편하면서 전반부는 기존의 버라이어티 코너를, 후반부는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하는 유닛을 뽑는 '코무로 갸루송' 오디션 코너를 배치했다. 반 년 후인 1996년 4월 오디션 코너가 확대되어 완전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ASAYAN을 레전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기억되게 한 오디션은 단연 '여성 록 보컬리스트 오디션'이었는데, 이 오디션의 최종 단계에서 낙선한 5명을 모아 결성한 것이 모닝구 무스메였다. 모닝구 무스메는 이후 4기까지 ASAYAN을 통해 오디션 전 과정을 방영했고, 이는 모닝구 무스메가 일본 내에서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헬로! 프로젝트가 조직된 후에는 오디션 뿐만 아니라 하로프로 유닛의 레코딩, 이벤트 장면을 방영하고 셔플 유닛과 같은 하로프로 내의 이벤트를 ASAYAN을 통해 홍보하기도 하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반쯤은 하로프로 레귤러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도 했던 것.
ASAYAN을 통해 방영된 타이요토 시스코문의 명곡 "가타메키라" 레코딩 장면
모닝구 무스메의 대표곡 "LOVE머신"의 레코딩 장면
ASAYAN은 방송 기간 동안 여러 오디션을 돌아가며 개최하였으며, 가수, 아이돌 뿐 아니라 댄서, 영화 배우, 카메라맨, 패션 모델, 광고 모델, 패션 디자이너, 심지어 J리거까지 다양한 분야의 오디션을 방영하였다. 오랜 방송 기간만큼 여러 유명인들이 ASAYAN을 거쳐갔다. 모닝구 무스메 외에 스즈키 아미, CHEMISTRY 등이 ASAYAN 출신으로 성공한 경우. 뿐만 아니라 낙선자 중에서도 이 방송을 통해 지명도를 높여서 후에 다른 경로로 연예계 데뷔를 이룬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흐지부지 끝난 오디션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재기를 노리는 예능인 오디션"은 1998년 5월~9월 방영되었다. Wink의 스즈키 사치코를 비롯하여 연예계 경험자로서 다시 한 번 데뷔를 노리는 이들을 코무로가 프로듀스한다는 내용이었다. 초기에는 98년 10월 데뷔 확정에 중화권을 대상으로 한 CM 타이업이 예정되어 있고 미국 진출도 한다는 내용으로 거창하게 시작했으며 이를 위해 참가자들이 LA까지 가서 레슨을 하였다. 중간에 코무로가 중국에서 진행하던 오디션 방송 "코무로 마력"의 대만인 참가자 엔젤 리가 합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합격자 없이 끝났다.[1]
ASAYAN으로 리뉴얼한 후 2001년까지 흰색/붉은색 등 강렬한 색조와 단순한 서체를 이용한 특유의 자막 디자인을 사용하였는데,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많은 이들의 인상에 남아있다. 이는 타카하타 히데타(タカハタ秀太)의 작품이다. 타카하타가 2001년 4월 강판된 후 외주 업체인 "와이즈비전"에서 제작을 맡으며 세트, 자막 디자인이 전부 일신되었다.
하지만 CHEMISTRY 이후 이렇다 할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며 방송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져갔다. 하로프로와 모닝구의 인기도 저하된데다 하로프로 관련 내용은 2000년 방송을 시작한 하로프로 전용 칸무리 방송인 "하로모니"에서 다루게 되었다. 결국 2002년 3월을 끝으로 종영하였다. 말기의 ASAYAN에서 특기할 점이라면 방송 말기에 당시 연습생이었던 소녀시대 수영이 한일 합작 그룹 오디션에 합격하여 "route 0"로 활동했다는 점 정도가 있다. route 0의 합격자 발표가 ASAYAN의 최종화였다.
일본 방송계는 이미 1970년대 야마구치 모모에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 스타 탄생!' 등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영해왔다. ASAYAN은 일본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인기를 얻은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큰 인기는 못 끌고 있다.
3. ASAYAN 오디션 출신자
- 모닝구 무스메(1기~5기): 1기 멤버들은 여성 록 보컬리스트 오디션의 최종 탈락자들이고, 2~5기는 별도로 추가 멤버 오디션을 열었다.
- CHEMISTRY: 남성 보컬리스트 오디션 우승
- 스즈키 아미: 보컬리스트 오디션 우승. 코무로 테츠야 프로듀스로 데뷔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 헤이케 미치요: 여성 록 보컬리스트 오디션 우승. 층쿠와 같은 샤란큐 멤버인 마코토의 프로듀스를 받았다. 모닝구 1기 멤버들과 함께 하로프로 원년 멤버.
- 우라타 나오야( AAA의 전 멤버): 하마사키 아유미 백댄서 오디션 우승[2]
- 최수영: 2002년 월드컵을 맞아 개최한 '한일 아이돌 오디션'에서 합격, 타카하시 마리나와 'route0'이라는 유닛으로 활동했다. 훗날 SM 엔터테인먼트에서 그룹 소녀시대로 데뷔
- 타이요 토 시스코문: 예능인 신유닛 오디션 우승자들이 결성한 유닛. 하로프로 소속으로 활동했다.
- pool bit boys: 남성 보컬리스트 오디션 우승. 아사쿠라 다이스케의 프로듀스를 받았다.
- dos: 코무로 갸루송 오디션 우승. asami, taeco, kaba 3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3.1. 유명 탈락자
- 카토 미리야: 하마사키 아유미 백댄서 오디션 참가
- 이연희: 한일 아이돌 오디션 참가
- 코다 쿠미: 모닝구 무스메 3기 멤버 오디션 후보. [3]
- NESMITH( EXILE): 남성 보컬리스트 오디션 후보
- ATSUSHI( EXILE): 남성 보컬리스트 오디션 후보 [4]
- 유게 토모히사: 남자 고교생 파리 콜렉션 모델 오디션 후보
- 마스다 유리( m.o.v.e): 1996년 난발 오디션 1월차 낙선자. 난발 오디션은 에이벡스의 마츠우라 사장이 주관하는 오디션으로 4달간 매달 열렸는데 1월차는 합격자가 없었다. 훗날 t-kimura에게 발탁되어 m.o.v.e의 보컬리스트로 데뷔하였다.
4. 코무로 갸루송 오디션
코무로 갸루송[5] 오디션은 ASAYAN을 오디션 방송으로 탈바꿈시킨 오디션으로서, 총 25,929명이 응모하였다. 때는 1995년, 코무로가 카하라 토모미, 아무로 나미에를 스타로 키워내며 코무로 붐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당연히 코무로가 관여하는 오디션은 일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사실상의 최종 합격자는 asami, taeco, kaba 3인이었다. 이 3명은 dos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코무로 패밀리의 일원이 되었다. 코무로는 이 그룹을 일본의 TLC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96년 데뷔곡 'baby baby baby'는 R&B 장르의 곡으로 오리콘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며 소소하게 히트했다. 총 3장의 싱글과 1장의 앨범을 낸 후, 1997년부터 각자 솔로 위주로 활동하였다.
메인 보컬이던 taeco는 코무로의 프로듀스를 받아 솔로 싱글도 냈다. 2000년부터 탤런트로 활동했으나 2007년 이후는 활동이 없다. asami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코무로와 함께 Kiss Destination으로 활동하고 코무로와 결혼도 했으나 이혼하였고, 현재는 사업가로 일하고 있다. kaba는 여성으로 성별 정정을 하고 본업인 댄서이자 안무가로 활약하며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있다. 결국 3명 중에 연예계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kaba였다.
이 오디션은 참가자가 매우 많았으며, 낙선자를 위주로 데뷔 후보군인 'AIS'를 만드는 등 매우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참가자 중 이 오디션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한 사람이 많았다. 히미코전 OST 'Pure Snow'를 부른 가수 사사키 유코나 코무로의 제자였던 쿠보 코지가 프로듀스하였으며 데뷔 싱글이 게임 배틀 히트에 타이업되었던 아마가타 나오미가 대표주자.
[1]
이 프로젝트는 유럽의 한 담배 회사가 아시아권 시장 진출을 꾀하면서, 담배의 TV 광고가 불가능하니 담배 브랜드명을 그룹명으로 한 가수를 데뷔시켜서 음악을 통해 홍보를 하겠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은 물론 중화권에도 인지도가 있었던 코무로에게 오퍼를 한 것이었는데, 당시 아시아 경제 위기에 따라 담배 회사측이 아시아권 진출을 포기함에 따라 기획 자체가 중단되어버린 것이다.
당시 방송 영상
[2]
그래서 하마사키와는 친분이 깊다. 두 사람은 2010년 Dream ON이라는 듀엣 싱글을 냈다.
[3]
공교롭게도 당시 최종 합격자였던
고토 마키가
하로프로 졸업 이후 코다 쿠미의 사무소인 에이벡스로 이적하며 코다의 소속사 후배가 되었다.
[4]
실력은 좋지만 듀오에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으로 탈락, 당시 EXILE의 전신인
J Soul Brothers의 새로운 보컬을 찾던 HIRO의 눈에 띄어 EXILE의 보컬이 된다.)
[5]
garcons. 꼼데가르송(코무데 갸루송)과의 언어 유희를 노린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