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 세계 프로야구계에서 꿈의 영역으로 평가받는 경지. 페넌트 레이스에서 규정타석을 넘긴 타자가 타율 4할을 넘기는 것을 말한다.140년의 역사가 넘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총 24번의 4할 타자가 배출되었으며, 사람 수로만 치면 16명[1]뿐인 영역이다. 3시즌이나 4할 타자를 했던 에드 델라헌티,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가 있고, 2시즌이나 4할 타자를 한 제스 버켓과 조지 시슬러가 있다. 라이브볼 시대의 4할 타자는 조지 시슬러(1920, 1922), 타이 콥(1922), 로저스 혼스비(1922, 1924, 1925), 해리 하일먼(1923), 빌 테리(1930), 테드 윌리엄스(1941), 조시 깁슨 (1943) 까지 7명뿐이다.
일본프로야구는 아직 단 한 명의 4할타자도 배출하지 못했다.[2] KBO 리그는 프로 원년인 1982년 백인천이 달성한 이후 없다.
대만 프로야구 리그는 총 3번의 4할 타자가 배출되었는데, 2016년 중신 브라더스의 장즈셴, 2016, 2017시즌에 기록한 왕보룽(전 라미고 몽키스, 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이 그 주인공이다.
2. 왜 4할타자가 꿈의 영역인가
야구가 발전하면서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고, 따라서 현대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4할 타자는 MLB에서는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가, KBO에서는 원년인 1982년의 백인천 딱 1명을 마지막으로 나온 적이 없으며, NPB에선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3] 꿈의 기록이다.[4] CPBL은 왕보룽이 2016년에 .414로, 2017년에 .407로 달성.[5]
2018년 미국 ESPN에 실린 "4할 타자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이유"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 의하면, 고타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1.높은 홈런율(무조건 안타), 2.낮은 삼진율(무조건 아웃), 3.높은 BABIP(1,2를 제외한 상황에서 안타를 만들 확률) 이렇게 3가지인데, 기사작성 시점 기준 최근 3년간 해당 3가지 지표가 가장 우수한 MLB 타자 3명으로는 안드렐톤 시몬스(최저 삼진율), 크리스 데이비스(최고 홈런율), DJ 르메이휴(최고 BABIP)가 각각 꼽혔다. 하지만,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는 당연히 삼진을 많이 당할 수 밖에 없으므로, 4할 타자가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또한 시몬스의 삼진율, 크리스 데이비스의 홈런율, 르메이휴의 BABIP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꿈의 타자가 있다고 가정한 후 풀시즌 시뮬레이션에서도 이 꿈의 타자는 타율 .396을 기록하여, 4할 기록에는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
사실 .396과 .400은 고작 4리 차이니까 운에 좌우될 수 있으므로, 기사에서처럼 삼진 안 당하고 컨택 능력도 기가 막힌 홈런 타자가 출현한다면 어찌됐든 4할을 꿈꿔볼 수 있는 선수는 맞을 것이다. 현대에 비해 선수간 편차가 더 심하긴 했겠지만 어찌됐든 라이브볼 시대인 1941년에 4할을 친 테드 윌리엄스도 해당 시즌에 삼진은 안드렐톤 시몬스보다 더 안 당했고 BABIP은 .378로 DJ 르메이휴의 최전성기와 비슷한 급이었고, 장타율도 .735로 62홈런을 친 2022 시즌 애런 저지보다 5푼 가량 높았다. 그런데 1941년의 윌리엄스에게도 4할 타자는 어려운 영역이었는지 마지막 날까지 4할 턱걸이로 버티다가 도망치지 않고 남자답게 승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출장한 더블헤더에서 8타수 6안타를 쳐서 타율이 .406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테드 윌리엄스처럼 다 갖춘 선수가 나오기는 쉽지 않으며, 테드 윌리엄스 이전 시대의 최고 타자이자 야구계 GOAT인 베이브 루스나 현시대 최고의 야구선수라는 마이크 트라웃처럼 시대를 대표할 만한 선수가 나오더라도 플레이 스타일이 타율을 높이기에 최적화되어있지 않다면 4할을 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대 야구에서는 차라리 1994 시즌의 토니 그윈이나 2004년의 스즈키 이치로처럼 테드 윌리엄스급 장타율은 내지 못하더라도 컨택트에 최적화된 선수가 가능성이 높을 지도 모르겠다.[6] 사실 약물 투여로 전설의 기록을 만든 2004년 배리 본즈가 4할 타자들도 달성해본적 없는 출루율 6할대, 장타율 8할대, OPS 1.422[7]라는 영원히 다시 나오지 않을 대기록을 달성할 때도 타율은 고작 .362였다.
KBO 규정타석 충족 단일시즌 역대 2위의 타율 기록을 보유한 이종범은, 2년차였던 1994년 8월 21일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지만, 도루를 84개씩이나 하느라고 70kg대였던 체중이 60kg대까지 감소하는 등 체력고갈[8]로 인해 타율이 급락(?)해서 124경기 561타석 499타수 196안타 .393으로 마감했다.
KBO의 역사에 남을 희대의 타신투병의 연도였던 1999년, 김한수는 당시에 100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었으나 후반부에 결국 와르르 무너지며 3할 4푼으로 내려갔고,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은 2010년대 현대 야구에서, 그것도 2010년대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으로 뽑히는 2012년에 8월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는 괴력을 보이다가 결국 체력 고갈로 3할 6푼 3리로 떨어졌다.
1982년 당시 백인천 전 감독이 4할 타율을 기록했던 한국 프로야구 원년에는 경기 수가 매우 적었다. 백인천 전 감독은 당시 72경기를 출장했으며[9] 거기에 '일본 선진야구 경험으로[10]+ 워낙 적은 경기 수의 시너지 효과(BABIP의 영향)로 만들어진 4할 타율'이라는 시선이 팽배하다. 즉,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현대 야구에서도 100경기 미만 정도에 해당하는 타석 수를 유지한다면 4할 타율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소리지만[11], 현재 경기수가 원년에 비해 2배에 가까이 되는 144경기인 상태로는 역시 힘든 기록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MLB는 162경기를 한다.
3. 주요 4할타자 명단
3.1. 메이저리그
전체 목록은 해당 페이지 참조150년이 되어가는 압도적 역사를 자랑하는 MLB답게 4할 타자도 24번이나 나왔다. 우타자는 7명[12], 좌타자는 9명으로 총 16명이다.
- 로스 반스(1876)[13]
- 빌리 해밀턴(1894)
- 샘 톰슨(1894)
- 휴 더피(1894)[14]
- 제스 버켓(1894, 1895)
- 에드 델라헌티(1894, 1895, 1899)
- 휴이 제닝스(1896)
- 윌리 킬러(1897)
- 냅 라조이(1901)
- 조 잭슨(1911)
- 타이 콥(1911, 1912, 1922)[15]
- 조지 시슬러(1920, 1922)
- 해리 하일먼(1923)
- 로저스 혼스비(1922, 1924, 1925)
- 빌 테리(1930)
- 테드 윌리엄스(1941)[16]
-
조시 깁슨(1943)[17]
이 16명의 4할 타자 중 로스 반스[18]와 조 잭슨[19]을 제외한 15명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다.
3.2. KBO 리그
- 백인천(1982)
3.3. 대만 프로야구 리그
4. 창작물에서
- 게임빌 프로야구 시리즈(2010 이후)의 나만의 리그에서는 4할 타자가 칭호 획득에 있어서 사실상 기본소양이다.
[1]
이보다 더 많은 숫자를 주장하는 사이트들은
캡 앤슨처럼 내셔널 리그 출범 전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때 4할을 기록한 경우를 넣거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선수의 4할을 포함하는 것인데, 이는 메이저리그가 아니기에 인정되지 않는다. 참고로
캡 앤슨은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에서는 4할을 기록했지만, 내셔널 리그 출범 후 커리어하이로 .399를 기록하여 4할 타자가 되는데 실패하고 은퇴했다.
[2]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고타율 기록은 1986년
랜디 바스의 .389, 2위는 2000년
스즈키 이치로의 .387, 3위가 1994년 이치로의 .384, 4위가 1970년
장훈의 .3834이다.
[3]
NPB 최고 기록은
랜디 바스가 1986년에 세운 .389다.
[4]
여자 프로야구 리그나, 독립 리그에서 나온 적은 있다.
[5]
CPBL의 경우 4할 타자가 4번이나 나왔고 그 중 2번이 왕보룽이 낸 기록이다. 단 2016, 2017년 2년 한정이다.
[6]
94시즌 토니 그윈이 참 아까운 경우였는데, 후술할 이종범이나 김한수, 김태균 등 시즌 중후반까지 4할 유지하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케이스도 아니었고, 5월 중순에 진즉에 4할이 깨지고 6월에는 3할 7푼대까지 타율이 내려갔지만 시즌 막판(8월)에 .394까지 복구시켰기 때문이다. 해당 시즌이 단축시즌이기도 했고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직장 폐쇄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어찌 됐을지 모를 일이다.
[7]
원래 1위 기록은 베이브 루스의 1.379였다.
[8]
본인 증언에 따르면 후반부에 생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린 문제도 있었다.
[9]
몰수경기로 인한 출장정지 5게임과 상대타율 5할대이던 삼미전, 4할대의 롯데, OB전 1경기씩 3경기 결장
[10]
일본에서 통산 200-200도 하고 온 사람이다... 참고로 KBO에서 200-200을 달성한 선수는
박재홍,
박용택,
황재균 3명뿐이다.
[11]
언급했듯 백인천보다 많은 경기를 뛰면서 4할을 잠깐이나마 찍어본 선수도 다섯 명이 채 안 된다. 절대 백인천의 기록이 폄하될 수 없다는 것.
[12]
로스 반스, 휴 더피, 에드 델라헌티, 휴이 제닝스, 냅 라조이, 로저스 혼스비, 해리 하일먼.
[13]
여러 분야에서 메이저리그 최초의 사나이로서, 역사상 최초의 홈런을 친 대타자(1876년 5월 2일. 참고로 KBO 최초는
이만수)이자 최초의 4할타자로, 사실 굉장히 안타까운 인물이다. 내셔널리그 출범 전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최고의 선수여서, 보스턴 레드 스타킹스의 대표 타자로 4할을 치며
캡 앤슨과 라이벌 관계를 가졌고, 내셔널리그 출범 원년에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로 이적 후에도 메이저리그 최초 4할인 4할3푼2리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3할대였던 캡 앤슨을 압도하며 최고의 타자가 되었지만, 다음해 바로
말라리아에 심각하게 걸리고, 당시 안 좋았던 의료 환경상 치료를 잘못 받아 극심한 후유증(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세부기록은 없으나 투병과 회복 이후 운동 중에 주기적으로 한번씩 현기증 증세가 오는 경우가 적잖게 있었다고 한다. 집중력에 치명타를 맞은 것.)을 겪어, 다시 선수 복귀 이후 4년간 부진을 면치 못하여(원년에 4할, 그 이전 NA시절에도 4할을 자주 친 선수가 은퇴할 때까지 3할은커녕 2할대만 쳤다.) 32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은퇴한 비운의 선수이다. 참고로 우타자이자 유격수였다. 즉 한국으로 치면, 1994년
이종범이나 2014년
강정호 같은 인물.
[14]
4할 4푼으로 역대 최고기록. 당시 트리플 크라운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초의 동일 시즌 4할 타자 겸 트리플 크라운 선수가 되었다. 후대의
로저스 혼스비와 함께 단 두 명뿐인 기록이다. 따로따로 기록한 선수조차
타이 콥과
테드 윌리엄스 두 명 뿐이다.
[15]
메이저리그 최고령 4할 기록 보유(만 35세)
[16]
원래는
메이저 리그 마지막 4할타자였으나 2020년 12월 부터 니그로리그 기록을 메이저리그 역사에 포함시켜 마지막 4할타자는 조시깁슨이 되었다.
[17]
메이저리그가 아닌 흑인리그인 니그로리그 선수.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니그로리그의 역사를 메이저 리그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4할 타율 기록으로 인정된다.
[18]
1876년 한 해 이후에는 제대로 성적을 올린 적이 없어 명예의 전당에 못 갔다. 천재적 재능을 말라리아 후유증으로 인해 살리지 못한 안타까운 케이스.
[19]
블랙삭스 스캔들이 결정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