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이집트 쿠데타 ثورة يوليو ٢٠١٣[1] 2013 Coup d'État in Egy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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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반대 시위 | |
기간 | |
2013년 7월 3일 | |
장소 | |
이집트 전 지역 | |
교전국 및 교전세력 | |
[[이집트| ]][[틀:국기| ]][[틀:국기| ]] |
[[틀:깃발| | ]][[틀:깃발| ]][[이집트군| ]]
지원의사 표명국 |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카타르| ]][[틀:국기| ]][[틀:국기| ]] |
[[사우디아라비아| ]][[틀:국기| ]][[틀:국기| ]] [[쿠웨이트| ]][[틀:국기| ]][[틀:국기| ]] [[아랍에미리트| ]][[틀:국기| ]][[틀:국기|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 |
지휘관 | |
[[이집트| ]][[틀:국기| ]][[틀:국기| ]] 무함마드 무르시 |
[[이집트| ]][[틀:국기| ]][[틀:국기| ]] 압델 파타 엘 시시 |
병력 | |
불명 | 불명 |
결과 | |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 압델 파타 엘 시시의 정권 독점[2] 튀르키예와 카타르 간 교류 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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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이집트에서 일어난 쿠데타. 이집트 국방장관인 압델 파타 엘 시시가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을 통해 무함마드 무르시가 이끌던 문민정부가 전복되고 엘시시의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섰다.
2. 상세
2011 이집트 혁명에 따라 30여년 간 이집트를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군부독재정권은 붕괴되었다. 혁명 세력은 이집트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선되었다.무함마드 무르시는 민주적인 절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민주주의라면서 샤리아를 따를 것을 강요하는 등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막장 행보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정책은 본인의 제 살을 깎아먹는 매우 무모한 행동이었다.
1952년 7월 23일에 무함마드 나기브와 자유장교단을 이끄는 가말 압델 나세르가 주도한 쿠데타 이후로 군부는 이집트 사회 전반적으로 매우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군림해 왔고, 호스니 무바라크의 실각 이후로도 이러한 사회 구조는 변하지 않아서 무함마드 무르시로서는 군부의 협조 없이는 통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여전히 강력한 군부가 무력을 동원한다면 무함마드 무르시로서는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하면서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지만 이슬람주의를 밀어붙이는 행보는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주의를 반대하는 군부의 반감까지 얻으면서 사실상 강력한 무력집단인 군부에게 정권교체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어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이를 보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시민들과 이집트의 군인들은 불복종을 일으켰으며 이집트군의 총사령관이자 국방장관인 압델 파타 엘 시시가 무르시 정권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무르시 정권을 축출하였다.[3]
이후 무르시는 퇴진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엘 시시가 출마했고 최종적으로 엘 시시가 당선되면서 비록 민주주의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이집트에 다시 군사독재 정권이 설립되었다. 많은 이집트 국민들은 이집트가 이슬람주의화되는 것이 싫었고 차라리 예전처럼 군사정권이 다시 설립되는 게 낫다고 여겼던 것이다.
무르시는 2019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당시 증언에 따르면 무르시는 엘 시시 집권 후 체포되어 고문에 준하는 구금 상태였다고 한다.
[1]
"2013년 7월 혁명". 이집트에서는 이 사건을 쿠데타로 지칭하지 않는다.
[2]
엘 시시는 쿠데타 주도 이후 이집트군 제대를 선언한 뒤 2014년 이집트 대선에 출마하였다. 결국 엘시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집트는 군사정권에 불만을 품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난 지 3년만에 군사정권이 재림인 셈이다.
[3]
아이러니하게도
압델 파타 엘 시시를
이집트군의
총사령관이자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은
무함마드 무르시 본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집트군은 오랫동안
군부 출신의 대통령 밑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던 만큼 군부에 적대적인 문민 대통령에게 순순히 복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