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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0:04:48

2005~2006 봉숭아 학당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2000년~2002년 2003년~2004년 2005년~2006년 2008년~2011년 2017년~2019년 2023년~2024년 특집


1. 특징2.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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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징

2005년의 봉숭아 학당은 복학생 유세윤, 경비 장동민, 출산드라 김현숙 등 또 한 번의 세대교체로 들어온 공/특채 19 ~ 20기 코미디언들의 활약으로 다시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1]

특히 2005년 4월 24일부터 자막으로 출연진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인지도를 올리려던 신인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고, 그러면서 녹화에서 재미가 없었던 캐릭터는 가차없이 편집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비중이 점차 줄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여서 "들어가 이 녀석아."라는 대사가 봉숭아 학당 선생의 고정 대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 김대희가 선생으로 부임하면서 캐릭터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방송 시간은 그러잖아도 제한되어 있는데[2] 출연할 캐릭터의 수는 점점 늘어나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캐릭터들 가운데 현장 호응이 가장 적었던 캐릭터는 늘 편집되었다. 그래도 늘 나오는 캐릭터는 계속 나오는 경향이 있어 결국 있으나 마나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2006년 7월 16일 방송분에서 8개월 만에 새 캐릭터로 출연한 유세윤의 분량이 통편집돼 봉숭아 학당에서의 경쟁이 장난이 아니게 됐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런 방송 사고도 있었다.

2006년 4월 16일 방송분에는 2년 만에 봉숭아 학당 코너 자체가 방송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는데[3] 항간에는 이를 놓고 봉숭아 학당이 아예 영구 종영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제작진의 해명으로 봉숭아 학당 종영설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2006년 10월부터 봉숭아 학당 몰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봉숭아 학당 앞에서 역대급 인기를 구가하던 세 코너( 패션 7080[4], 사랑의 카운슬러, 마빡이[5])의 런닝타임이 늘어날대로 늘어나면서 피날레 코너 봉숭아 학당의 방송시간이 반토막이 나버렸고, 새 캐릭터(노량진 박, 야야야 브라더스)를 투입한 것도 모자라 11월 19일 선생과 인기 캐릭터 다수를 교체하는 전면 개편까지 단행했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그 주 반응이 좋았던 캐릭터만을 내보내려다 보니 시청자들의 눈에 익숙해질 만큼 방송에 제대로 나온 임팩트 있는 캐릭터가 거의 없었고, 냉정히 말해 인기를 끌만한 캐릭터도 거의 없었다. 또한 개편 첫 주에 하필 착한 녀석들의 난입(?) 때문에 난잡해지기도 했고...

2006년 늦가을에 새로 봉숭아 학당에 부임한 선생 박성호도 바람직한 선택이라 보기 어려웠다. 봉숭아 학당 선생의 가장 큰 덕목은 캐릭터가 자신이 준비한 개그를 편하게 선보일 수 있도록 잘 받쳐주는 것인데,[6] 개그 코드가 가장 공격적인 편에 속하는 박성호는 이런 받쳐주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 그래도 물갈이 폭이 큰 상황이라 캐릭터들이 자리를 잘 잡으려면 선생부터가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팔토시 패션에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상한 캐릭터를 잡기 시작했고,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기보다 본인의 감만 믿는 듯한 모습[7]으로 오히려 흐름을 끊는 경우가 종종 나왔다. 플레이어로서는 최고였지만 흐름을 조율해야 하는 지휘자로서는 최악이었던 것.[8]

그리고 더 길게 끌 것도 없이 개편 2주차에 봉숭아 학당을 시궁창에 빠트린 최악의 사건이 터졌는데... 이름하여 사랑의 대박기금. 방청객들의 웃음과 호응을 "많이" 얻어낸 출연자에게 그 출연자의 이름으로 불우이웃에게 성금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듣기에는 괜찮은 취지로 기획되었는데, 문제는 이 "많이"의 기준이 오락가락했다는 거다. 사랑의 대박기금이 도입된 그 주 첫 타자로 나선 당시 에이스 노마진 장동혁이 개그 내용도 괜찮았고 현장 호응도 좋았는데도 합격하지 못했고, 잠시 후 나온 홍인규와 김대범은 누가 봐도 장동혁보다 현장 호응도가 낮았는데도 합격하면서 선정 기준에 의심을 가진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만약 코미디빅리그처럼 투표로 정하는 방식이었으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텐데...

결국 야심차게 내놓은 사랑의 대박기금은 유명무실해졌고 이후 3주 동안 듣보잡 캐릭터들[9]이 난무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지다가 2006년 12월 17일 방송을 끝으로 봉숭아 학당은 무기한 방학을 선언했으며, 그 시간대는 "뒤풀이 개그"를 신설해 개콘 출연진들의 장기자랑 시간을 마련했다.

돌이켜 봤을 때 봉숭아 학당 1기의 종영은 KBS 21기 개그맨과 22기 개그맨의 운명을 결정지은 사건이었다. 봉숭아 학당 역사를 되짚어보면 봉숭아 학당에서 맹활약한 주역 중 다수는 2년차 개그맨들이었고[10], 이제 막 데뷔한 1년차 신인 개그맨들은 오히려 봉숭아 학당에 나와도 본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전학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06년 당시 데뷔 1년차였던 21기 개그맨들은 봉숭아 학당에서 제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채 자신들의 '꿈의 무대'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지만[11], 그나마 22기 개그맨들은 2년차에 접어든 2008년에 부활한 봉숭아 학당에서 펄펄 날아다녔다. 그 결과 22기는 이후 개콘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반면 21기는 한민관, 박나래, 김지민 등이 뒤늦게나마 인기 개그맨 반열에 오른 걸 제외하면 개콘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한동안 전전해야만 했다.[12]

2. 등장인물

등장인물중 메인 이벤터급은 ★로, 흑역사/캐릭터데뷔 취소의 경우는 취소선으로 따로 표기한다.


[1] 참고로 김현숙은 공채 출신이 아니다. 그 당시 경력 8년차 배우였고, 개콘으로 처음 방송에 나온 것. [2] 당시 봉숭아 학당의 방송시간은 약 15분에서 18분 사이였다. [3] 이 방송분의 엔딩 코너는 집으로였다. [4] 분장 컨셉이 촌티 패션에서 코스프레+빨간 내복로 바뀌면서 방송시간이 길어졌다. [5] 봉숭아 학당 폐지의 최대 원인 가운데 하나. 코너에 스토리가 생기고 시청자 UCC 소개가 이어지면서 코너 시간이 10분 안팎으로 늘어나 봉숭아 학당과 비슷해졌다. [6] 박준형 선생 시절 3대 캐릭터였던 복학생, 경비, 출산드라의 히트 요인 중 하나로 박준형과의 호흡을 꼽기도 한다. [7] 예를 들어 노량진 박을 뜬금없이 '진박이'라고 부른다던가, 야야야 브라더스를 부르는 방식을 멋대로 바꾼다던가... [8] 나중에 개그전사 300에서 김준현 이광섭이 '유일한 정상적 연기로 봉숭아 학당을 없앴다'는 개그를 하기도 했다. [9] 이 중에는 2기에 왕비호로 대성한 윤형빈도 있는데, 이 때 그의 캐릭터는 횡설수설하는 교장이었다. [10] 2003년의 갤러리 정 정형돈, 2005년의 복학생 유세윤과 경비 장동민, 2006년의 신봉선, 2008년의 박성광, 박지선, 허경환 등. [11] 일례로 박나래는 귀신 역할로 봉숭아 학당에 투입되었다가 비호감 캐릭터라는 평만 들은 채 금방 하차했고, 여러모로 운이 없었던 1기 종영 당시 멤버 중에서도 유독 21기가 가장 많았다. [12] 특히 김기열, 송병철 등은 니주 전문 개그맨이다. [13] 집으로에서 봉숭아 학당 선생님으로 취직하였다고 말하여 바보 대구와 동일인물이라는 개그를 보였다. [14] 담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봉숭아 학당 선생이다. 정확한 담임 기간은 5주. 본인 스스로도 왕년에 가요톱10은 5주 하면 최고의 영예였는데 자신은 봉숭아학당 5주로 최악의 굴욕을 맛 봤다고 고백했다. [15] 예로 "잘때마다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지릴라에요" 등이 있다. [16] 5월 7일까지는 노우진이 맡았다. [17] 코딱집니다, 귓밥입니다, 코털입니다 등이 있었으며. 처음 시작은 무슨 향수 썼냐고 하면 방귀 꼈습니다, 씻으셨냐고 하면 물로만 헹궜습니다 였다. [18] 옹박 이후에는 주먹이 운다에 단역출연하기도 하고, 마지막 출연작은 둘다 단명 작이었던 굳세어라 조기자와 사이코. [19] 회가 갈수록 1억원씩 높아졌다. [20] 예로 난 제 2의 아이비 아이씨야 등이 있다. [21] 경비는 신봉선이 춤을 출때 "어디서 개수작이여!" 하면서 발로 차는 역할, 장동민 하차 이후엔 유상무가 신봉선이 작업을 걸면 "감히 어디다 들이대니!" 하면서 불평하는 역할. [22] 심지어 그 물건을 어느 제품인지를 소개할 때 누군가 딱 한번 듣고 놀랬다는 상표랍시고 영어 약자를 사용하는데, 문제는 이게 어감이 영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SSRG(더블에스알지)를 쓰레기의 약자로 소개하는 것이 압권이다. 그 외에도 BDNK를 부도난 것, KB를 개밥, KJM을 구정물이라고 하는 등의 약자를 소개하기도 했다. [23] 예로 스님에게 드라이기를 파는 남자. [24] 사실 손을 씻으려고 비누를 얘기한거라고 했다. [25] 실제 안일권은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26] 해당 출연자는 1985년 10월 9일 브라질 출신으로 한국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27] 1982년 12월 17일 독일 출신으로 이쪽도 모델로 활동했다. [28] 헐리웃 스타들과 놀았다고 하는데. 품위없게 말뚝박기를 했다던가 하는 식. [29] 8월 27일부터는 외국인 출연자를 부르는데, 그 중에서 라파엘과 콜리. 초기에는 외국인 출연자가 없었으나 중반부에는 라파엘이 첫 출연하다가 이후에는 콜리로 변경되었다. 가끔 샘 해밍턴이 라파엘이나 콜리의 라이벌로 등장했다. [30] 2004.5.23일 타락토비에 단역 출연한 이승윤과 비슷하다. [31] 예로 풀이 들어간 풀빵, 붕어가 들어간 붕어빵, 빈대가 들어간 빈대떡, 제조업자들이 누드인 채로 만든 누드김밥 등등. [32] 이주일의 말투를 따온 부분도 있다. [33] 그래서인지 900회와 막방에서도 재연된다. [34] 뒤풀이개그 출연. [35] '짝' 소리가 나도록 때리는 게 포인트. 한 번은 윤성호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때리기도 했다. [36] 녹화는 3번 했으나 2005년 12월 25일만 방송을 탔다. [37] 방송을 탄 건 2006년 4월 23일 뿐이다. [38] 앉아있는 모습만 나오고 편집되었다. [39] 여담으로 경비 역의 장동민이 과로와 감기몸살로 입원해 출연을 못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날 현대생활백수의 모습으로 대신 나온 적이 있었다. [40] 2006년 5월 7일(일)(339회) → 2006년 5월 14일(일)(340회) → 2006년 5월 21일(일)(341회) → 2006년 5월 28일(일)(342회) → 2006년 6월 4일(일)(343회) → 2006년 6월 11일(일)(344회) → 2006년 6월 18일(일)(345회) → 2006년 6월 25일(일)(346회) [41] 유상무 하차 이후에는 '맨 뒷자리' 이다. [42] 그래서 2기에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무대 안쪽 열에 받침대를 둬서 화면에 잘 띌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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