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黃춘추시대에 존재했던 소국들.
2. 영성 황국
춘추시대에 존재한 소국으로 지금의 하남성 황천현 서쪽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군주의 작위는 자작(子爵)이고, 성씨는 영성 황씨(嬴姓 黃氏)이다.백익(伯益)의 아들 대렴(大廉)이 세운 황(黃)나라가 하(夏)나라 시절부터 있었다. 그런데 죽서기년이나 갑골문에서는 황이(黃夷)라고 적혀 있으니, 같은 영(嬴)성 나라와 비슷하게 이민족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서기년에 의하면 하나라의 상왕(相王)에게 정벌당하였고 갑골문에 의하면 상(商)나라에게 공격받은 적도 있다. 발견된 청동기에 의하면 대대로 수(隨)나라와 혼인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704년, 초무왕의 침록(沈鹿)에서 회맹을 열었는데 수(隨)나라와 같이 참석하지 않았다. 수나라는 결국 초나라의 침공을 받고 초나라의 속국 신세가 되었지만, 황나라는 초나라 사신 위장(薳章)에게 문책당하는 선에서 그쳤다.
기원전 675년, 파(巴)나라에게 패하고 온 초문왕은 육권(鬻拳)이 성을 열어주지 않자[1]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돌려 황나라를 적릉(踖陵)[2]에서 쳐부수고 돌아오는 길인 추(湫) 병이 들어 그해 가을인 6월 15일에 죽고 육권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장되었다.
기원전 658년 9월, 제환공, 송환공, 강(江)나라의 군주와 황나라의 군주가 송(宋) 땅 관택(貫澤)에서 동맹을 맺었다. 강(江)과 황은 원래 제나라와 송나라가 위치한 중원과는 거리가 비교적 먼 나라라서 초나라와 뜻을 같이 했지만, 이제부터는 제나라에게 복종하여 제후들과 화합을 맺은 것이다. 이때 관중(管仲)은 "강나라와 황나라는 제나라에선 멀지만 초나라에는 가까우니 초나라에 이로움을 주는 나라입니다. 만약 (초나라를) 정벌하여 (강과 황)을 구하지 못한다면 제후들이 (제나라를) 으뜸으로 섬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기원전 658년 10월, 초나라가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때문에 기원전 657년 가을, 제(齊) 땅 양곡(陽穀)에서 제환공, 송환공, 강과 황의 군주가 다시 한번 회맹을 가져 초나라 토벌을 논의하였다. 이때 제환공이 "곡식을 저축하지 말고, 물길을 막지 말고, 적자를 바꾸지 말고, 첩을 아내로 삼지 말아라(無貯粟 無鄣谷 無易樹子 無以妾爲妻)"라고 하였다.
기원전 656년 가을, 제환공이 진(陳)나라의 대부 원도도(轅濤塗)의 일 때문에[3] 진나라의 불충을 문책하려고 노(魯)나라에게 명해 강(江)과 황나라와 같이 진나라를 치게 하였다.
기원전 655년 8월, 초나라의 대부 투누오도(鬪穀於菟)가 현(弦)나라를 멸하였고 현나라의 군주는 황나라로 도망쳤다. 현나라는 자신의 외척(外戚) 관계인 강(江), 도(道), 백(栢), 황(黃)가 제나라와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초나라를 섬기지도 않았고, 방비를 해놓지도 않았다.
기원전 659년 가을, 황나라가 제나라를 믿고 초나라에게 공물을 받치지 않자 겨울에 초나라가 황나라를 쳤다.
기원전 658년, 황나라의 군주가 "영(郢, 초나라의 수도)에서 우리나라까지 9백 리이니 어찌 우리를 해칠 수 있겠나?"라고 했다. 황나라 군주는 제나라를 믿고 이런 말을 했겠지만 그 해 여름 초나라는 황나라를 멸하였고, 제나라는 도와주지 않았다. 공자는 이 사실을 민망히 여겨 기록하였다.
동래박의(東萊博義)에서는 현나라와 황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오직 남을 믿고 스스로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제나라한테는 자신을 믿어준 두 나라를 구하지 않았기에 오랑캐가 중원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졌다고 비판하였다.
3. 공손성 황국
춘추시대에 존재했던 소국으로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분수(汾水)에 위치하고 있었다. 군주의 작위는 불명이고 성씨는 공손성 황씨(公孫姓 黃氏)이다.소호 금천씨(少昊 金天氏)의 후예이자 수관(水官)의 우두머리인 현명사(玄冥師) 매(昧)의 두 아들 중 작은아들인 대태(臺駘)가 치수(治水)에 성공한 공으로 분천(汾川) 땅에 분봉되었다. 이후 그곳엔 황(黃), 침(沈), 사(姒), 욕(蓐) 네 나라가 들어서니 모두 대태의 후손으로 대태에게 제사지냈다.
후에 진(晉)에게 멸망당하였다.
[1]
신하도 전쟁을 하러나가 아무런 공적 없이는 돌아올 수 없는데, 왕이 아무런 공적 없이 돌아와서 그렇다. 참고로 육권은 초문왕이 자신의 간언을 안 듣자 병기로 초문왕을 위협해 강제로 듣게 한 적이 있었다.
[2]
'踖' 대신 '작(碏)'을 쓰기도 하지만 오류이다.
[3]
원도도가 제환공을 속여 일부러 험한 길로 돌아가게 하였으나, 그 길을 가던 도중 늪을 만나 지나가기 어렵자 정(鄭)의 대부인 신후(申侯)가 사실을 말하여 원도도는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