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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2-16 15:13:50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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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황남대총 남분 금반지1.jpg
Google Arts & Culture :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

파일:황남대총 남분 금반지2.jpg
사진 출처, 문화컨텐츠닷컴

1. 개요2. 내용

1. 개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반지 18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지름 1.8~2.1cm.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의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반지들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당시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금반지 19점이 출토되었고, 남분에서는 18점의 금반지가 출토되었는데, 모두 껴묻거리 상자나 넛널 상부에서 출토되었다. 남분의 것은 북분의 것과는 약간 양식이 다른데, 밋밋한 형식의 북분 금반지와는 달리 남분 금반지는 반지의 앞면을 마름모꼴로 만든 후 그 표면에 꽃잎모양으로 금알갱이를 붙여 장식하였으며 그 사이에 작은 유리구슬이나 보석을 끼워 장식해놓았다.

신라는 삼국 중 유일하게 반지 문화가 성행하였던 국가로, 고구려의 경우 안학궁지 제2호분에서 청동제 반지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유물이 많지 않고 형태도 조잡하며, 백제 역시 각종 호화스러운 유물이 출토된 무령왕릉에서조차 반지는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반지 두 국가 모두 반지 유물, 특히 금반지가 발견된 경우는 고구려는 총 2점, 백제는 공주읍 우금리 고분에서 단 1점이 나왔을 뿐이다.

반면에 신라는 고분을 하나 조사할 때마다 금반지들이 쏟아지는데, 특히 이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의 경우 함께 출토된 금방울과 함께 신라의 누금세공품 중에서 매우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반지들로, 함께 발견된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와 함께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반지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