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초대 | 제2·3대 | 제4대 | 제5대 |
벤저민 링컨 | 헨리 녹스 | 티모시 피커링 | 제임스 맥헨리 | |
<rowcolor=#FFF>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
새뮤얼 덱스터 | 헨리 디어본 | 윌리엄 유스티스 | 존 암스트롱 | |
<rowcolor=#FFF>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
제임스 먼로 | 윌리엄 크로포드 | 존 C. 칼훈 | 제임스 바버 | |
<rowcolor=#FFF>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제17대 | |
피터 포터 | 존 이튼 | 루이스 캐스 | 조엘 포인세트 | |
<rowcolor=#FFF>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제21대 | |
존 벨 | 존 스펜서 | 제임스 포터 | 윌리엄 윌킨스 | |
<rowcolor=#FFF>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
윌리엄 마시 | 조지 크로퍼드 | 찰스 콘래드 | 제퍼슨 데이비스 | |
<rowcolor=#FFF> 제26대 | 제27대 | 제28대 | 제29대 | |
존 플로이드 | 조셉 홀트 | 사이먼 캐머런 | 에드윈 스탠튼 | |
<rowcolor=#FFF> 제30대 | 제31대 | 제32대 | 제33대 | |
에드윈 스탠튼 | 존 M. 스코필드 | 존 롤린스 | 윌리엄 벨크냅 | |
<rowcolor=#FFF>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제37대 | |
알폰소 태프트 | 제임스 캐머런 | 조지 맥크래리 | 알렉산더 램지 | |
<rowcolor=#FFF> 제38대 | 제39대 | 제40대 | 제41대 | |
로버트 링컨 | 윌리엄 엔디코트 | 레드필드 프록터 | 스티븐 엘킨스 | |
<rowcolor=#FFF> 제42대 | 제43대 | 제44대 | 제45대 | |
대니얼 라몬트 | 러셀 A. 앨저 | 엘리후 루트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
<rowcolor=#FFF> 제46대 | 제47대 | 제48대 | 제49대 | |
루크 라이트 | 제이콥 디킨슨 | 헨리 L. 스팀슨 | 린들리 개리슨 | |
<rowcolor=#FFF> 제50대 | 제51대 | 제52대 | 제53대 | |
뉴턴 베이커 | 존 윅스 | 드와이트 데이비스 | 제임스 굿 | |
<rowcolor=#FFF> 제54대 | 제55대 | 제56대 | 제57대 | |
패트릭 헐리 | 조지 던 | 해리 우드링 | 헨리 L. 스팀슨 | |
<rowcolor=#FFF> 제58대 | 제59대 | |||
로버트 P. 패터슨 | 케네스 로열 | }}}}}}}}} |
미합중국 초대 육군 선임장교 | |||
<colbgcolor=#000><colcolor=#fff> 미합중국 제2·3대 전쟁장관 헨리 녹스 Henry Kno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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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50년 7월 25일 | ||
매사추세츠 만 직할 식민지 보스턴 | |||
사망 | 1806년 10월 25일 (향년 56세) | ||
매사추세츠주 메인구역 토머스빌[1] | |||
묘소 | 토마스턴 빌리지 묘지 | ||
재임기간 |
초대 육군 선임장교 제2대 전쟁장관 |
||
1783년 12월 23일 ~ 1784년 6월 20일 | |||
제3대 전쟁장관 | |||
1785년 3월 8일 ~ 1789년 9월 12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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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학력 | 보스턴 라틴 스쿨 | |
배우자 | 루시 플러커 녹스 | ||
자녀 | 3명 | ||
복무 | 영국 육군 | ||
1745년 ~ 1769년 | |||
대륙군 미합중국 육군 |
|||
1775년 ~ 1783년 | |||
최종 계급 | 소장 (대륙군) | ||
병과 | 포병 | ||
주요 참전 | 미국 독립 전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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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보스턴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는 조선업이 파산하자 신트외스트티위스섬으로 도주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보스턴 라틴 스쿨을 졸업하고 12세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사무 보조원으로 일했다. 한편 보스턴 거리의 갱들과 관계를 맺고, 주변에서 가장 거친 싸움꾼이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서점을 차리고 군사학, 특히 포술을 독학으로 배웠다. 이후 1749년 영국군에 입대해 1769년까지 복무했다.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인해 식민지와 본토와의 갈등이 첨예화 되자 자유의 아들들을 지지했고 1772년 대륙군에 입대해 1775년 아르테마스 워드의 지휘아래 매사추세츠 찰스타운인근에서 벌여진 벙커힐 전투에 정찰병으로 참가해 공을 세웠다. 이 당시 조지 워싱턴과 사적으로 친해지게 된다.
1776년 3월 뉴욕의 타이컨더로가 요새를 점령하고 보스턴을 포위할때 요새에서 획득한 화포를 보스턴으로 옮길것을 제안했고 이에 워싱턴은 녹스를 대령으로 파격승진해주고 허드슨 강을 거쳐 올버니, 우스터를 거쳐 59문의 화포를 56일만에 옮겼고 보스턴을 점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재공격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트렌턴 전투당시 델라웨어강을 한밤중에 도하해 트렌턴을 점령했다. 이 공으로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에도 독립전쟁의 주요 전투에 참가했으며 대륙군이 쓰는 화포를 개량하고 탄환을 보급하기 위해 스프링필드 조병창을 설립했으며 포병을 양성했다. 요크타운 전투후 소장으로 진급했다.
1783년 신시내티 협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또한 영국군이 철수한 뉴욕에서 대륙군을 이끌었다. 사령관 워싱턴의 퇴역 후 대륙군 선임장교로 임명되었다.
이후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미합중국 육군의 선임장교로 임명되었다. 해군 상비군 창설을 추진하여 총괄하고 미국 원주민 정책, 국내의 군 계획, 그리고 대서양 연안의 요새 시설 강화를 관리했다. 녹스는 또한 주요 군수 시설의 하나인 스프링필드 무기 제조창을 포괄적으로 감독했다. 1791년에는 녹스의 상세한 제안에 따라 미국 의회가 미국 군단을 창설했다.
1794년 12월 31일, 녹스는 가족을 돌보는데 전념하기 위해 육군 장관을 사임했다. 은퇴 후 메인구역에서 낙농과 조선에 종사했다. 녹스는 국무장관을 물러났지만, 매사추세츠 의회 하원 의원을 지냈다. 1806년 친구의 집을 방문해 닭을 먹다가 잘못 삼킨 닭뼈가 장에 박혀 복막염을 일으켜 사망했다.
3. 여담
- 상당한 비만이였다. 절친이자 상관인 워싱턴도 이 부분으로 녹스를 놀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