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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1949년도의 헝가리 제2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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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2월 1일 ~ 1949년 8월 20일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헝가리 왕국 | 헝가리 인민공화국 | |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1] | ||
국가 | Himnusz | |
위치 | 동유럽 | |
수도 | 부다페스트 | |
정치체제 | 의회공화제 | |
국가원수 | 대통령 | |
주요 수상 | 너지 페렌츠 | |
언어 | 헝가리어 | |
종교 | 가톨릭 | |
민족 | 헝가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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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ásodik Magyar Köztársaság헝가리 왕국이 추축국 일원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다페스트 공방전에서
얼마 안 가 소련에 의해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된다.
2. 역사
2.1. 배경
헝가리는 제2차 세계 대전 바르도시 정권 당시 친독 노선을 타, 적극적으로 나치 독일의 침략전쟁에 협력했다. 1941년 6월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자 자진해서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는 소련을 크게 분노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 1944년 독일이 세계 대전에서 패망할 기미가 보이자 헝가리는 독일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이때 친독파 바르도시는 헝가리의 지도자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중장 출신의하여간 이 부다페스트 포위전으로 인해 1944년 9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하게 된다. 그 전에 소련의 지원을 받아 헝가리 공산당, 독립 소자작농당, 국가 농민당, 헝가리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기구인 헝가리 최고국가평의회가 1944년 12월 21일에 데브레첸에서 수립되었다.
2.2. 틸디 정부의 성립
10월 15일 히틀러가 호르티 제독을 강제로 바이에른에 끌고 가버리고 그 자리에 헝가리 파시스트 지도자 살러시 페렌츠를 수반으로한 국민단결정부라는 괴뢰국을 세웠다. 헝가리인들은 1944년 12월 21일 데브레첸에서 임시 정부(Ideiglenes Nemzeti Kormány)를 세운다. 임시 정부의 대표는 달노크 기사 미클로시 벨러(Vitéz lófő dálnoki Miklós Béla)였다. 임시정부 초창기 설립 당시 지도자들 가운데 공산주의자는 단 두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관급 외 정부요인들이 대부분 공산당, 농민당, 노동 조합원들인지라 당시 점령국이었던 소련은 이 임시 정부를 헝가리의 정식 정부로 인정한다. 이로 인해 해외에 추방되었던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헝가리로 귀국하게 되고 헝가리 내 공산당의 세력이 점점 강력해지기 시작한다.1945년 4월 나치 독일이 헝가리 국경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자 이 임시정부가 부다페스트로 옮기면서 정식으로 헝가리 정부가 된다. 당시 호르티 제독이 이끄는 임시 정부의 각료들은 전부 호르티 제독의 부하들이었다지만 경찰과 국가 보안군 등은 모조리 공산당이 장악한 상태였다. 그렇게 치안권과 군사권을 장악한 공산당은 해방 지역안에 갖가지 공산당 조직들을 만들어 세력을 계속 키워나가게 된다. 당시 설립된 국민 위원회, 공장 위원회, 토지 분할 위원회, 생산 위원회, 헝가리 민주 청년 동맹 등 많은 공산당 조직이 생성되었다.
이런식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간 공산당은 1945년 11월 4일 총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었고, 실제로 1944년에 치러진 헝가리 의회선거에서 공산당이 원내 1당을 차지했고, 사회민주당과 합치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넉넉하게 채웠기에(291석/498석) 소련 입장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회유하기만 한다면 친소정권의 수립이 가능할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시 헝가리 사회에서 큰 영향을 가진 가톨릭교단에서 독립 소자작농당을 찍을것을 권유하고 새로히 투표권을 얻은 여성유권자들도 독립 소자작농당에 몰표를 던지며 중도우파 정당인 독립 소자작농당이 409석 가운데 245석으로 과반수를 훨씬 웃도는 의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웠고, 공산당은 당초 예상되었던 의석을 훨씬 밑도는 70석에 그치는 참패를 거두웠으며 사회민주당과 합쳐도 139석에 불과했다. 공산당이 참패한 선거결과에 소련은 충격을 받았다. 위성국화를 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 의석수였던 것이었다.
11월 15일 소자작농당의 틸디 졸탄[2]을 국가 원수로 하고 각 당의 한명씩 총 3명의 국무부 장관이 함께 선출되었다. 국무부 장관들은 소자작농당의 도비 이슈트반(Dobi István), 공산당의 라코시 마차시(Rákosi Mátyás), 사회민주당의 서커시치 아르파드(Szakasits Árpád)였다. 이때 내무부 장관에 공산당원으로 헝가리에서는 민주화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너지 임레가 임명된다. 이렇게 각 부서별로 장관들이 임명되고 틸디 정부가 완전히 수립하게 된다.
2.3. 공산당의 정권 장악
공산당은 자신들만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온갖 술책을 부리게 된다. 먼저 정당과 정당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이간책을 실시하게 된다. 또한 소자작농당과 그 밖의 정당에 비밀 요원을 심어 두기도 했다. 이러한 이간책으로 정당들끼리 다툼이 잦아졌고 온갖 비난과 폭로가 뒤따르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빠짐없이 보도되었다. 당시 숱한 사람들이 파시스트로 몰려 경찰에 끌려갔었는데, 여기서 소자작농당의 정치 지도자들도 많이 체포되고는 했었다. 결국 각종 추문과 이간질로 지지율이 추락한 소자작농당은 몰락하게 된다.사회민주당의 경우 원래 공산당과 친분과 있고 그 성격이 비슷하여 공산당과 합당하게 되었다.[3] 결국 1947년 11월 총선거에서 소자작농당이 참패하고 공산당은 원내 1당이 되어 사민당, 전국농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식으로 집권하였다. 그리고 1948년 6월에는 사회민주당과 합당하여 헝가리 노동인민당을 출범시킨다. 헝가리 노동인민당 초대 서기장은 라코시 마차시가 맡았다.
1949년 8월 20일 헝가리 제2공화국은 정식으로 헝가리 인민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고, 일당제가 시행되었다.
3. 내정
사회적인 면에서 헝가리 내 민족 구성 비율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1946년 ~ 1948년까지 독일 내 헝가리인, 슬로바키아 내 헝가리인들과 같이 인구 교환을 실시하였다. 경제적인 면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정부가 마구 돈을 찍으면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1946년에 들어서야 화폐 단위를 펭괴에서 현재의 포린트로 바꿈에 따라 경제 안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그러지면 정치적으로는 격동의 변화가 심해졌다. 당시 집권하고 있던 민족주의 우파계열의 정부는 소련의 영향력이 강했던 터라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총리였던 너지 페렌츠의 아들이 소련에 의해 납치된 것도 그러한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