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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4 02:07:59

한소희 실종 사건


파일:한소희 양 실종 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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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
2.1. 실종2.2. 수사2.3. 발견?
3. 이후4. 출처

1. 개요

1989년 5월 18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남창동[1]에 있는 가정집에서 한소희 양( 1988년생)이 30대 초반의 여성에게 납치되어 실종된 사건.

2. 내용

파일:한소희양.jpg
▲ 한소희 양의 사진

2.1. 실종

1989년 5월 18일 한소희 양의 어머니 이자우는 두 살 배기 아들(한소희의 오빠)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한소희 양만 등에 업고 다음날 있을 가족 나들이를 위해 돗자리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다녀왔다. 이자우는 한소희 양을 보행기에 앉혀놓고 마당 한 켠에 놓인 평상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30대 초반의 어떤 경상도 말씨[2]를 쓰는 젊은 여자가 "계세요? 여기가 진영엄마네 집인가요?"라고 말하며 문을 두드리자 이자우가 문을 열어줬는데, 불쑥 집안으로 들어와서 마루에 턱 걸터앉으며 '진영엄마'를 찾아 온동네를 뒤지고 다니느라 힘들다며 물 한 컵을 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이웃 간에 왕래가 많았기 때문에 이자우는 거절하지 못하고 물 한 컵을 갖다주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보행기에 앉아 놀고 있는 한소희 양을 보며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안아도 보고 입맞춤도 해대며 자기도 요만한 딸이 있는데 참 이쁘다고 연신 너스레를 떨었다고 한다. 이자우는 무언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그만 가보라는 말을 차마 못했다고 한다.

이자우는 남편 한상유가 올 시간이 다가오자 쌀을 씻으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길래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와 한소희 양이 둘 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자우는 남편에게 전화하고, 파출소에 바로 신고했다. 이자우는 "주변 이웃들은 한 여성과 소희가 집 밖을 나서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며 "그 여자가 내 신발을 신고 가길래, 친척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2.2. 수사

한소희 양의 가족들과 경찰은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리며 한소희 양을 납치해 간 30대 여자를 추적하는 한편, 부산·마산·대구 등 전국의 고아원과 보육원을 찾아 헤맸다고 한다. 이자우는 "내가 바로 뛰쳐나가서 찾았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파출소에 신고한 다음에 찾으러 나섰다"며 자책했다. 그 여자가 두고 간 신발과 소희 양의 신발도 있었고, 그 여자가 마신 컵에서 지문 검사도 해봤지만 이자우 본인의 지문과 경찰관 지문만 나왔으며, 설상가상으로 이자우가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그 여자의 몽타주 작성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자우 본인의 말로는 경찰에서 동네에 사는 30대 여자들의 사진을 다 보여줬는데, 이 여자 같기도 하고 저 여자 같기도 해서 몽타주 작성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2.3. 발견?

2년 뒤인 1991년 11월 경,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소희 양을 키우고 있다는 제보가 한국어린이재단으로 통보됐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같은 해 9월 3일 한국방송공사 방송의 날 특집 프로그램 《더불어 사는 사회》에 출연한 한소희 양의 가족들을 보고 마산에서 자신의 이종조카 부부가 소희 양을 키우는 것 같다는 어떤 남성의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해당 여아는 1989년 10월 18일부터 마산예린아동상담소에서 최씨 성을 가진 부모에게 입양되어 최미영이라는 이름으로 길러져 왔다. 한소희 양의 어머니 이자우도 11월 5일 마산으로 내려가 최미영 양을 처음 보는 순간 자신의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혈액형도 소희 양과 O형으로 똑같아 자신의 딸 한소희가 맞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1991년 11월 6일 동아일보 기사)

그렇게 한소희 양을 찾은 것 같았지만, 한소희 양을 찾았다는 기사가 나오고 하루 뒤인 1991년 11월 7일에 해당 여아가 한소희 양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해당 여아를 경찰서에 인계했다는 마산시 부림동 삼계88식당의 주인 김순남(당시 34세)이 "한소희 양이 실종됐다는 1989년 5월보다 2개월 전인 89년 3월 12일 마산시 부림동 남이식당 부근에서 버려진 두 살 가량의 어린 아이를 경찰에 데려다 준 적이 있다. 이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6살 가량의 남자아이와 함께 3~4일 동안 시장 안을 돌아다녔고, 여자아이를 경찰에 데려다준 뒤 그 남자아이도 시장에 버려져 있는 것이 발견돼 창원군 칠원면[3] 유원리에 사는 아버지 김아무개씨(당시 40세)에게 데려다 준 일이 있다"고 증언한 것. 당시 마산시 애리아동상담소의 서상진(당시 59세) 총무도 "양부모 최씨에게 입양됐을 당시 그 여자아이가 걸음마를 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나이가 2살 가량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위 주장에 한소희 양의 아버지 한상유는 "아이를 만나본 결과 혈액형이 O형으로 소희와 같았고, 가르마가 비뚤어진 점, 머리털이 곧추선 점으로 보아 내 딸 소희가 분명하다. 애리아동상담소의 소희에 대한 입양기록카드가 잘못되었다"라고 주장했다.

하루 뒤인 11월 8일, 해당 여아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유원리 달전마을에 사는 김이웅(당시 46세)과 최두선(당시 37세)의 딸 김미선(당시 5세)으로 밝혀졌다. 마산 부림시장의 남이식당에서 밥을 사먹은 최두선이 내버려두고 간 아이였던 것. 해당 여아는 애리아동상담소에서 한국에서 제일 흔한 성인 '김'씨에 남이식당의 '남이'를 붙인 '김남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다가 마산의 최씨 부부에게 입양되어 길러졌던 것. 해당 여아가 김이웅 부부의 딸이라는 것은 김미선 양의 양부였던 최씨가 통화로 "아이의 오른쪽 어깨에 푸른 반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이웅이 그렇다고 대답한 점. 남이식당의 주인 이남이와 삼계88식당의 주인 김순남을 만난 최두선이 "부림시장 식당 아줌마"라고 대답한 점, 최두선이 평소 데리고 다니던 김유성(당시 7세) 군이 혼자 시장을 떠도는 모습을 보고 택시를 대절해 함안에 데려다준 적이 있다고 대답하여 김미선 양이 김이웅 최두선 부부의 두 아이 중 딸아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점을 통해 검증되었다.

해당 여아가 한소희 양이 아님이 밝혀진 후 한소희 양의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 상태다.

3. 이후

이자우는 "어디서 구박받고 살지는 않았는지 걱정 뿐"이라면서 "소희를 만나게 되면 먼저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어릴 때 입었던 옷과 가장 좋아했던 곰인형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4. 출처


[1] 지금의 팔달구 남창동. [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1991년 11월 6일 기사 출처. 2004년 파이낸셜뉴스 기사에는 그 여자가 전라도 말씨를 썼다고 나온다. [3]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창원군은 함안군을 오기한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