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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8:24:00

한대화/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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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2. 5월3. 6월4. 7월5. 8월6. 9~10월7. 총평

예끼 니미 X발[1]

1. 4월

그의 감독 인생을 건 트레이드의 핵심 장성호가 부상으로 2011시즌 후반기에나 겨우 출장 가능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옴에 따라 한대화 감독도 덩달아 같이 까이고 있다. 그의 코칭 커리어에도 먹구름이 끼고있다. 다행히 장성호는 4월 말에 복귀했다.

여기에 구단 프런트에 잡아달라고 그리도 사정했던 이범호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면서 더욱 더 먹구름이…. 속이 상해서 술도 안 넘어간다고;; 비극이 따로없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치열한 탈꼴찌 싸움 중. 기대를 모았던 김강은 뜬금없이 부진하고 타선에 홀로 남은 최진행도 주춤하는 등 타격쪽에선 정말 되는 일이 없다. 게다가 수비도 엉망으로 수시로 실책이 나와 팀을 패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 다행히 투수진은 송창식이 복귀하고(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안승민 장민재 같은 유망주의 대두로 희망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이번에는 또 류현진이 부진하고 유원상은 분식집을 차렸으며 오넬리 페레즈는 제 값을 못해주고 있다.

4월 2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드디어 시즌 첫 감독 인터뷰를 했는데 내일 선발이 누구냐는 질문에 투수 이름을 갑자기 까먹어서 당황하는 귀여움이 대폭발했다. 참고로 그 다음날 선발투수는 양훈.





아래쪽 이미지의 원본은 헨리 1세

2. 5월

승률 3할 찍던 팀이 장성호가 복귀하며 타선에 힘이 붙고 김혁민 등 유망주에 머물렀던 젊은 선발투수의 활약으로 5월 들어서 LG전 이후로 승패승패승패로 5할을 찍자 팬들이 야왕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야구의 왕이란 의미다. 처음에는 이따위 전력으로 이만큼 하는 것도 가상하다는 조롱과 자조적 의미였지만 예끼니미 이후로 5월간 진짜 왕이 되었다. 야왕의 미소. 야왕의 욕설 이후로 6월 중순까지 대부분의 경기를 위닝 시리즈로 가져갔다. 루징시리즈는 단 3번인데, 롯데와 LG, SK에 각각 1승 2패로 당했다. 그런데 LG전은 아래에 서술되는 임찬규 보크 오심 사건, 롯데 및 SK전은 에이스 류현진이 털리는 사태가 발생한 경우.

5월 21일 기아와의 3연전 중 2전을 먼저 가져가면서 본격적으로 야왕으로 등극했다. 특히 전날 경기에서 소름돋는 용병술을 선보였고, 이날 경기로 4연승과 연속 위닝시리즈를 달성하며 28일 만에 탈꼴찌 이뤄냈다.

5월 24일 SK 와이번스와의 3연전 첫 경기를 9회까지의 접전끝에 강동우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는 야신 김성근과의 피말리는 작전싸움이 있었고 이 작전싸움에서 승리하여 칰갤러들에게 야신은 사실 야臣, 아비뇽 유수,신권왕수설, 신은 죽었다 등의 드립을 끌어내며 진짜 야왕으로 향하는 길에 한 걸음 다가섰다.

더욱 소름돋는 것은 강동우의 끝내기 안타를 이끌어내었다는 점이다. 야왕의 삼고초려. 오오.

하지만 25일에는 8-1로 털렸고, 26일에는 2-6으로 7회까지 앞서갔지만 7회까지 계속 공을 던지던 류현진이 7회에 4점을 내주면서 6-6이 되어 10회 연장까지 간 끝에 8-6으로 야신의 분노에 역스윕을 당했다.

27일 두산전에서는 엎치락 뒤치락 하던중, 9회 초 9-10에서 오선진의 스트라이크 낫아웃때 동점을 만들고, 강동우가 역전 결승타. 다시 한번 야왕에 등극하였다. 더군다나 이 날은 박정진의 생일이기도 하였고 팬들이 야왕에게 바친 조공이 뉴스기사까지 나와 지면 매우 쪽팔릴 상황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세종대화라고 쓰여진 드링크가 뉴스를 탔다.

5월 28일, 선발로 나온 양훈이 2007년 이후로 생애 두번째 완봉승을 기록하며 또 다시 위닝시리즈를 확정지었다. 혹자는 위닝시리즈를 위해 야왕이 류현진을 제물로 바쳤다고….

커뮤니티에서 불리던 별명 야왕은 기사와 방송에까지 인용되며 공식별명이 되었다.


3. 6월

6월, 한화의 팬들이 원래 뭐여!였던 견제 응원'예끼!'로 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뭐여! 이후에 예끼가 불리는 방식. 당사자인 야왕께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며 윤허하셨다고 롯데 자이언츠마!를 뛰어넘는 견제응원이 될 듯 싶다.

6월 2일 삼성전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베테랑 포수 신경현을 기용하여 결승타를 치고 위기상황에서 무명 신주영을 발굴하여 승리를 지켜냈다.[2] 게다가 또 위닝 시리즈를 이끌어냈다.

6월 8일 대 엘지 트윈스전에서 6:5 2사 주자 3루의 상황, 정원석이 홈스틸을 감행했고 투수 임찬규는 당황했는지 투구동작에서 바로 뒷발을 빼며 송구를 하는 보크를 저질렀는데, 심판 4명 중 어느 누구도 이 보크를 보지 못해 그대로 홈에서 아웃으로 경기가 종료되고 말았다. 정상 판정이라면 홈에서 세입 여부와 상관없이 동점이 되는 상황이었으니 한대화 감독은 격노를 했다. 임찬규 보크 오심 사건 참조.

한대화 : 예끼 니미 심판

당시 상황과 해설자들의 오심 지적.



다음 날 오심에 대해서 제소 등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야왕의 자비를 베풀었다. #

6월 9일 LG전에서 전날의 오심때문에 폭탄주 6잔 마시고 고동진을 간만에 기용했다. 그런데 고동진이 상대팀 에이스 박현준을 무너뜨리는데 맹활약하였다. 이 날의 승리로 한화 이글스는 6위에 올랐다. 이 3연전은 8일날의 보크 오심 탓에 전반적인 분위기는 '루징 시리즈가 루징 시리즈가 아니야' 라는 분위기.

6월 10일 롯데와의 시리즈 첫 경기에서 믿었던 류현진이 2이닝만에 강판되는 수모를 겪으며 먼저 1승을 헌납했지만, 8,9회 뒷심을 보여주며 1점차까지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롯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결국 다음날 11일엔 상대 투수 이재곤을 똑같이 2이닝만에 강판시키고 9:3으로 깔끔하게 이겨버렸다. 이 날 승리의 공신이 된 선제 솔로홈런의 주인공 강동우에게 친히 쪽집게 과외를 한 것이 그 비결. 역시 야왕의 한수! 그러나 이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챙겨가는 데에는 실패.

6월 14일 기아와의 3연전 중 첫번째 경기를 12 : 3으로 대승. 기아 팬들은 왜 롯데한테 맞은 뺨을 우리한테 후려치냐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원래 쉬기로 한 류현진이 나와 11K. 이에 야황즉위용 제물로 기아가 바쳐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류현진 뿐만 아니라 나오는 족족 성공 시킨 대타 작전 등 실로 힘과 지략의 승리라 할 수 있는 경기였다. 대타를 연속으로 3명을 썼다. 고동진, 이대수, 이여상. 이중 고동진은 나오자마자 동점 적시타를 때려냈으며, 이대수는 역전 안타를 때려내고 다음 타석에서는 만루홈런을 쳤다. 이여상은 아웃으로 물러났지만 다음 타석에서 홈런을 쏘아올리면서 대타 3명이 모두 타점을 올리게 된다. 대타만이 아니라 추격 도중에 강동우가 페이크 번트까지 성공시켰다. 이 경기 후 도대체 야왕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일까라는 기사도 떴다.

6월 15일 경기를 4-1로 뒤지고있다가 카림 가르시아가 로페즈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쏘아올려서 4-5로 앞서다가 다시 역전당해서 경기를 내주게 되었다. 가르시아의 만루포 가동으로 져도 그렇게 찜찜한 경기는 아니었다는 평.

6월 16일 다시 기아와의 3연전의 마지막 경기, 장민제의 호투속에 2-1로 앞서고 박정진이 아슬아슬하게 동점주자들을 묶고, 다시한번 카림 가르시아가 만루홈런포를 쏘아올리고 강동우의 홈런포가 터지면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게 됐다.

6월 17일 8:8로 박빙의 승부였던 두산전에서 카림 가르시아가 이번엔 끝내기 쓰리런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6월 18일 두산전 니퍼트가 초반에 흔들려서 볼질을 했지만 점수를 많이 내지 못하고 탈탈 털렸다. 하지만 5위 롯데가 넥센에게 2연패하는등 부진하고 있어 승차는 여전히 1.5게임차

6월 19일 경기를 1:2 류현진의 완투승으로 가져가면서 두산과의 경기도 위닝시리즈로 가져갔다. 특히 이 경기에서 류현진은 6회 김현수, 최준석을 삼진아웃 하면서 "최연소, 최소경기 1000K"달성이라는 기록을 가져가게 된다.

하지만 6월 21~23일간의 삼성과의 3연전에서 처음으로 3연전 전패를 당했다. 그래도 1차전의 경우 역전의 소지가 다분했지만 모상기가 쐐기 홈런을 박아 버리는 바람에 4~6월 와서 처음으로 스윕을 당했다.

버뜨, 6월 28~30일 동안 있었던 SK와의 3연전에서는 가르시아의 홈런포를 앞세워 우천으로 취소된 2차전을 제외한 나머지 2경기를 모조리 가져가며 문학 13연패 종결과 함께 SK를 스윕해버렸다.

4. 7월

현재까지 상황과 리그 순위를 보면 아직까지 하위권에 있는 한화가 야구를 잘하는 팀이 됐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원래 한화 이글스라는 팀은 2011시즌 꼴찌 0순위로 평가받던 팀이다. 그런 전력을 가지고 비록 하위권일지언정 5, 6위권 팀들을 지속적으로 추격권 내에 놓고 있다는 점만 봐도 한화는 선전중이다.

게다가 이전과는 달리 무기력하게 상대팀에게 휘둘리지 않고 팀이 활기가 생겼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은 역전당하고 추격당하고 주자가 한가득 쌓여도 힘들어진다는 느낌이 들지언정 망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덕분에 한화팬들은 요새 야구볼 맛이 난다. 아니 현시점에서 프로야구 최대의 흥행카드중 하나가 바로 야왕이다.

예를 들어서 7월 19일 vs 기아전. 9회말 6:3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대타 박노민 볼넷 - 신경현 2루타 - 김회성 몸에 맞는 공으로 만루 - 대타 전현태[3] 2타점 적시타! - 장성호 몸에 맞는 공으로 다시 만루 - 최진행 끝내기 2타점 적시타로 이어지는[4] 9회말 화려한 역전극은 예전 한화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

7월 21일 vs 기아전, 8회 말 한화에 약한 손영민이 올라오자 상대실책과 안타에 힘입어 득점에 성공, 좋은 기세를 이어갔으나 하필 가 오는 바람에 경기는 강우콜드로 패배. 칰갤과 야갤,엠팍에서는 이를 호로곡 전투로 비유하며 기아를 궁지로 몰다가 비가 내려서 패배한 한화를 안타까워했다.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이병규가 5대 4로 서군을 승리로 이끄는 안타를 쳐낸 후 방방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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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싸안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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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반기에 한대화를 상징하는 아이스크림 제품이 실제로 출시되었다. 이른바 야왕바, 물론 자매품인 야신바도 있다.

5. 8월

다만 2011년 올해 한대화 감독에게 아쉬운 점은 노쇠화가 심각한 신경현에게 집착한다는 점이다. 8월 현재까지도 수비실력이 퇴보한 신경현이 계속 주전 풀타임으로 뛰고 있는 모습을 보는 한화팬들은 점점 한대화 감독에게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다만 이를 보고 실망하기도 그런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신경현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그의 심정을 알수 있는게... 일단 베테랑인 데다가 할때는 투타 양면에서 잘해준다는 것. 다만 안될때는 정말 속쓰리게 안되는지라... 그야말로 계륵이 따로 없다. 무엇보다도 박노민 이희근의 성장이 계산외로 잘 안풀린다는 것도 있어서 보는 팬도 지도하는 감독도 속쓰린 상황.

8월 7일 대 트윈스전에 11대 4로 대승. 그런데 전현태가 삼진 당할때 'ㅅㅂㅅㄲ'를 시전했다. 이날은 박현준을 털기위하여 1번부터 7번까지 좌타자로 도배를 하는 작전을 써서 승리하였다.

6. 9~10월

하위권에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10월 1일 넥센 히어로즈를 꺾으면서 5위까지 올라왔다. 허나 방망이가 터진 롯데 자이언츠에게 스윕패를 당하며 LG 트윈스와 공동 6위로 마감했다. 한화 팬들은 6월 8일 임찬규의 보크 판정만 받아냈더라면 단독 5위도 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비교적 뒤떨어지는 전력으로 6위까지 했다는 사실에 내년에는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가지게 되었다.

7. 총평

리그 독보적 최악의 전력을 가지고 6위를 달성하며 '야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시즌이다.

투수진은 류현진 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5] 타선도 장성호, 최진행을 빼면 믿을 만한 타자가 없다시피 했으나,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적중한 대타 작전과 유격수 규정타석 3할을 찍으며 커리어 하이 기록을 쓴 이대수, 크보 최고령 테이블 세터 강동우, 그 외 가능성을 나름대로 보여준 오선진 등의 맹활약으로 8위가 아닌 공동 6위를 차지하였다. 사실 시즌 막판 롯데 자이언츠에 싹쓸이를 당해서 그렇지 그거만 안 당했더라도 단독 5~6위까지도 노려볼 만 했던 시즌이었다.

초반과 7~8월에 연패를 꽤 당하고 투타 엇박자가 약간씩 났는데 이게 이 시즌의 한화에겐 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자원 짜내서 기어이 탈꼴찌에 성공한 것은 높게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더불어서, 이 해 한화의 야구는 끝내기가 시즌 최다였으며 대타 작전 성공률도 높게 나오는 등,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시즌을 보냈다. 비록 다음 해에 거하게 말아먹어 꼴찌로 돌아왔고 2013,14년에도 연속 꼴찌를 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 하나 덕분에 한화가 롯데의 8888577을 뛰어넘는 6년 연속 꼴지 기록은 피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한화가 100억에 달하는 돈을 쏟아붓고도 또다시 6위에 그치자 재평가 받고 있다. 2015 한화와 2011 한화를 비교해보면, 전력차가 압도적이다.

2017년 5월까지 한화의 감독을 맡았던 김성근과 비교해보면 6-7-9(경질)라는 성적 자체는 한대화보다 나으나, 그 이면에 감춰진 혹사 및 부상과 선수단 노쇠화 유망주 유출등을 생각하면 더욱 한대화의 2011시즌의 가치가 높아진다. 박정진의 방출을 막고 그 기량을 필수 있게 했고, 송창식을 입단 테스트를 거쳐 다시 영입했으며, 양훈, 김혁민 등의 자원들을 시험해볼 수 있었기도 하다. 최소한 2년 연속 7점대 평균자책점을 찍는 송은범을 사오고는 임기영을 내주고 김민우의 어깨를 작살낸 그 양반보다는 팀에 도움이 된 셈이다.

[1] 6월 8일, 박근영의 보크 판정 오심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2] 신주영은 당시 2군에 있었던 송진우 코치의 추천을 받아 기용했다고 한다. [3] 이부분에서 야왕이 미쳤다고 까던 칰팬들이 있었지만.. 오오 야왕 오오. 빗맞은 타구로! [4] 신경현과 김회성 사이에 한상훈이 삼진, 김회성과 전현태 사이에 강동우가 투수 앞 땅볼로 3루주자가 잡히고 만루 상황은 유지되었다. [5] 그 류현진도 이 시즌에는 다른 시즌 대비 상당히 못 하던 시즌이었다. 이 해 류현진은 부상과 부진을 겪고 야왕의 5선발이라는 명칭이 붙었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크게 혜택을 본 투수가 해당 시즌 정규리그 MVP 윤석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