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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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도동에 위치한 섬으로 유인도이며 시내에서 춘천대교로 연결되어 있다.[1]2. 역사
강 중간에 있는 섬인 하중도로 1967년 의암댐 건설로 인해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누어졌다.[2] 강원도로 놀러오는 사람들에게는 주로 레저나 캠핑을 오는 관광지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었다. 또한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MBC 강변가요제도 중도에서 진행했었다. 중도유원지와 남이섬 이 두 곳이 유원지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었는데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으며[3], 섬 안에는 자전거 대여 등 인기있는 유원지였다.[4] 이 지역에는 1970년대 발견된 중도 적석총과 같은 선사 시대 유적지들이 발견되어 예전부터 학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1980년대에 5차례 발굴이 이루어졌다.[5] 그 후 발굴이 한동안 없다가 2000년대에 강원도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동계 올림픽 유치는 물론 도 내 주요 관광명소에 테마파크들을 대대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가장 야심차게 유치한 테마파크가 바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였고 인근의 춘천역으로 교통편이 좋은 중도에 레고랜드를 지을 계획이었는데...2014년 공사 작업을 하던 중에 청동기 시대 대규모 촌락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 발견된 유적지의 규모가 워낙 커서[6] 고조선 시대판 경주시라고 불릴 정도로 대규모라서 학계와 강원특별자치도민 사이 난리가 났다. 학계를 비롯한 역사 관련 단체에서는 유물 보존을 위해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였으나 강원특별자치도 개발정책의 핵심 중 하나였던 레고랜드 포기는 강원특별자치도나 부동산 투자자들 측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 개발 강행을 외치는 상황이었다. 일단 유적지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레고랜드를 짓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은 상황.
2015년 12월 들어서는 원삼국시대( 철기 시대)로 추정되는 환호[7]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재 발견된 것은 크기가 800m가 넘는데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한반도 환호 중 최대 규모다. 심지어 이건 발굴 작업이 진행된 일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 2014년 발견된 비슷한 시기 이곳에서 고구려 귀고리[8]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한반도 내에서 유일하게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삼국 시대의 변천사를 한 번에 연구할 수 있는 최중요 유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고랜드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발견된 유물들 또한 깨먹은게 많다고 한다. 비판이 거세지자 겨우 30여 점만 복원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나왔다. 문화재 발견 등 여러 장애물에 걸려 레고랜드 개발은 계속 연기되어 2020년 4월경까지 중도는 허허벌판의 기초공사 밖에 안되어있는 상황이었으나 결국 2022년 3월 개장을 목표로 공사를 했고 같은해 5월에 개장했다. 레고랜드 건설 계획으로는, 레고랜드, 씨라이프, 광장, 워터파크, 숙박시설, 문화재 보존 구역 등 다양하며 인근에 컨벤션센터 건설도 계획 중이다. 이 문제 때문에 일부는 현재까지도 레고랜드를 반대하고 유적을 보존해야한다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비슷한 사례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일대에도 백제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 청주테크노폴리스라는 신도시가 개발될 예정이라 반발 여론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유적을 덮어버리고 개발하는 사례[9]는 생각보다 흔하기 때문에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중도 유적의 경우에는 가치가 높은 유적이라서 레고랜드 건설 이전에도 보존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이 강했기 때문에 동일한 사례로 보긴 어렵다.
[1]
서면 금산리와 현암리의 경우는 신매대교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2]
의암댐 건설로 섬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암댐으로 인해
의암호가 생기기 전에도 중도는 섬이었다. 다만 댐 건설 전에는 중도의 서북단은 육지와 이어져 있었고 장마 때만 완전히 섬이 되었다. 심지어 가뭄이 들면 바지를 걷고 강을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3]
춘천대교가 개통된 건 2010년대다.
[4]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 편에 유원지 시절의 모습이 나온다.
[5]
실제로 구 중도유원지에 움막이 전시된건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6]
925 가구 이상이 거주한 지역으로 최대 1만까지 거주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학계에서
고조선의 유물로 추정하는 비파형 동검도 발굴되고 있다.
[7]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도랑.
[8]
휴전선 이남에서
고구려 유물이 발굴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9]
대표적인 것이 서울 동남부 한강변에 위치한 고구려-백제 시대의 유적인
풍납토성,
몽촌토성 일대이다. 몽촌토성은 88올림픽을 위해 체육시설이 되어 묻혔지만 공원화만 된 것이라 향후 발굴-복원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는데, 풍납토성은 주택과 빌딩이 들어서서 천문학적 보상 비용 때문에 발굴하기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