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현성당 박해를 피해 안식처를 찾은 교우들의 숨결이 서린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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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6D3> 지번주소 |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201 |
주임사제 | 이겨레 다니엘 신부 (2023~현재) |
도로주소 | 경기도 의왕시 원터아랫길 81-6 |
전화번호 | (031)426-8921 |
팩스번호 | (031)426-8922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love-woohyun |
전자메일 | [email protected] |
문화유산 정보 |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사제관) (2001년 1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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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201에 소재하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본당인 하우현(下牛峴) 성당은, 1900년 9월경 갓등이 성당[1]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성인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2]와 성 루도비코 서 볼리외 신부이다.
2. 역사
1864년, 조선에 해외선교 사제로 파견되는 파리외방선교회 사제 4명의 모습을 담은 <선교사들의 출발(Le depart des Missionnaires)>. 샤를 드 쿠베르탱, 1868년작. 왼쪽부터 위앵 신부, 도리 신부, 볼리외 신부, 브르트니에르 신부. 이들 4명은 모두 병인박해로 순교, 성인품에 올랐다( 한국 103위 순교성인). 그림 속의 뒤돌아보는 어린아이는 작가 샤를의 아들 피에르 드 쿠베르탱으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
하우현은 1884년에 공소공동체의 모습을 갖추고,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프랑스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3] 신부 등이 정기적으로 순방하여 전교하였다. 이때까지도 한국 천주교는 박해하에 있었기 때문에, 뮈텔 신부는 상복으로 변장하고 은밀히 하우현을 방문하였다.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1886년 이후, 한국에서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이 조약이 비준된 이듬해인 1888년 7월, 왕림(갓등이)이 최초로 본당으로 승격하여 하우현의 모(母) 본당으로 하우현까지 관할하였다.
하우현은 현재 200여 명의 신자 수로 교우촌을 형성하고 있는 작은 본당에 불과하나, 본당 설정 역사 [age(1900-09-01)]주년을 맞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한국에서는 이 성당만 유일하게 의자가 없다.
3. 옛 사제관 (경기도 기념물 제 176호)
초대 주임 샤플랭 신부가 1906년에 세운 옛 사제관은, 2001년 1월 22일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다. 옛 사제관은 그 몸체가 서양식 석조 양식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골기와를 이은 전통 한국식이다. 20세기 초반에 성당 사제관을 건립하면서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기법이 혼용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로, 평면 및 구조ㆍ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한편 사제관 앞마당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성(聖) 볼리외 서 루도비코[4] 신부의 기념비와 FRP 소재의 성상이 있었는데, 2010년 태풍 콘파스로 인해 크게 파손되자 청동 소재를 이용해 새 성인상(엄종환 요셉 작)을 복원 제작해 그 해 10월 31일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볼리외 신부는 주로 하우현 인근에서 사목하다가, 인근 청계산의 둔토리 동굴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둔토리 동굴은 기념비 등이 있고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전에는 수원교구 분당 성 마태오 성당에서 관리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우현 성당에서 관리 중이다. 그러므로 천주교 성지순례 스탬프는 하우현 성당에서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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