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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4:06:55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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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제2차 세계 대전의 소련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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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소련군 해군 함선
#3399ff,##0065cc 상륙함 볼린데르급RE
어뢰정 Sh-4급, G-5급, D3급, PT 보트US
잠수정 / 함 슈카급, 칼레브급노획, M급, A급, L급, P급, S급, D급, K급, 로니스급노획, 바르스급, L급UK, S급UK, U급UK, 퀘벡급C
호위함 타코마급 호위함US
구축함 노빅급( 데르즈키급, 오르페이급, 이쟈슬라프급, 피도니시급)RE, 오피트니급, 프로젝트 흑해 1929년형, 그녜브니급, 스따라졔보이급, 레닌그라드급, 민스크급, 타슈켄트급, 프로젝트 30형, 키예프급, 프로젝트 35형, 프로젝트 36형, 프로젝트 37형, 프로젝트 40형, 프로젝트 24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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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 C: 전후 완공, 윗첨자 UK/US: 영국/미국 해군에서 도입, 윗첨자 노획: 전쟁 중 노획한 함선, 윗첨자 RE: 러시아 제국 시절 개발된 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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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래 최후 세대의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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Линейные корабли проекта 23 «Советский Союз»

1. 개요2. 제원3. 건조계획4. 함선 목록
4.1. 소비에츠키 소유즈4.2.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4.3. 소비에츠카야 로시야4.4.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4.5. 소비에츠카야 그루지야
5. 설계
5.1. 형태5.2. 무장5.3. 장갑5.4. 엔진5.5. 기존 러시아 전함들과 달라진 점
6. 개량형
6.1. 프로옉트 24형 전함
7. 평가
7.1. 한계
8. 미디어에서의 등장9. 모형화10. 관련 항목11. 외부 자료

1. 개요

소련이 1930년대 후반 건조하고있던 전함으로, 건조 진행 중 독소전쟁으로 인한 노획및 자원부족에 따라 건조가 중단되어 최종적으로 전쟁 이후 건조가 취소된 전함이다.

초도함 소비에츠키 소유즈(Советский Союз[사볫츠키 사유스][1])를 필두로 총 16척의 건조계획이 잡혔으며, 발틱함대와 흑해함대에 각 1척, 북방함대에 2척을 배치할 목적으로 4척이 실제로 건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독소전쟁이 발발하면서 소련에 긴급한 위기가 닥치자 추가적인 건조 계획은 모두 취소되었고, 실제로 건조되고 있던 함선들의 작업도 전부 중단되어 건조에 할당될 예정이던 재료들은 다른 곳에 유용되었다. 이후 소련이 승리하며 전쟁이 마무리되어 미완공 상태로 남았던 함선들의 건조를 재개하려 하였으나, 전함이라는 함급 자체에 대한 효용성과 건함 지속에 대한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최종적으로는 전부 해체 처리되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기함급 전함으로써 설계된 전함이라 초도함의 함명 자체가 소련이라는 국가의 이름이며, 후계함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소련의 각 공화국들의 이름이 붙을 예정이었다.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이라는 이름은 함명을 고유명사로 취급하는 것에 기반하여 음역한 것으로, 의미를 번역하자면 '소련급 전함'이다.

사실 이는 흔한 경우는 아니었는데, 군함의 함명은 보통 인물이나 지역의 이름을 붙이지 국호나 국가 자체를 상징하는 대상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상징성이 지나치게 커서, 만에 하나 전투에서 격침당하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국가가 침몰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 이러한 함명을 선택한 것은 건조 시기 자체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이었고, 비전시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의 총기함이라는 상징성을 줌으로써 현시 효과를 노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명명법을 취한 케이스로 독일의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이 있는데, 네임쉽 도이칠란트 역시 실전 투입 직전에 상술한 악영향을 우려해서 함명을 뤼초우로 개명했다.[2] 다만 현대에도 비전시 상황에서 기함급 함선에 자국의 국호나 국가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위대한 차크리 왕조"라는 뜻인 태국의 차크리 나루에벳. 당연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비슷한 명명법을 취한 군함으로는 1차대전 전기에 건조된 독일의 도이칠란트급 전함과 앞서 언급한 전간기에 건조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미국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항공모함이 있는데, 후자는 건조 중 취소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라는 함명이나 함급이 붙을 군함은 총 3척(렉싱턴급 순양전함 6번함(CC-6)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CVA-58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항공모함 1번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니미츠급 항공모함 8번함(CVN-75) 해리 S 트루먼.)이 있었으나, 전자의 2척은 건조 중 취소되었고, 후자의 1척은 다른 명칭으로 변경되는 등 이름의 운수가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후 이 이름은 아르크티카급 핵발전 쇄빙함 4번함에 계승된다.

2. 제원

함급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3]
이전함급 프로젝트 1058형 전함[4]
프로젝트명 Project 23
소속 소련 해군
건조계획 16척 계획, 4척 기공, 4척 취소
기준배수량 59,150톤
만재배수량 65,150톤
길이 269.4m
38.9m
출력 201,000마력
속력 28 노트
항속거리 14,220km
주포 406 mm/50 (16") B-37 Pattern 1937 3연장포 3기
부포 152 mm/57 B-38 Pattern 1938 연장포 6기
100 mm/56 B-34 Pattern 1940 연장 양용포 6기
대공포 37 mm/67 70-K 4연장포 10기
주장갑대 180~420mm
갑판장갑 25~155mm
포탑장갑 230~495mm
바벳 425mm
격벽 75~365mm
함교 425mm

3. 건조계획

소련이 건국되고 러시아 제국 해군을 계승한 소련 해군은 기존 제국 해군의 강구트급 전함 4척을 근대화 대개장을 거쳐 재취역한 옥챠브리스카야 레발루챠(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급 전함 4척을 기함으로 함대를 운영하여야 하였다. 결국 이는 12인치 주포를 탑재한 구식 전함을 기반으로 주변국을 상대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전함을 새로 설계하려 해도 자국 기술력은 충분치 못했던 데다가 외국에 발주하려 해도 적백내전을 거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열강 대다수와 사이가 틀어진 상태여서 이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이는 독일 해군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건조하려 했을 때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으로 급격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함의 성능이나 설계사상이 강구트급 전함을 설계했을 때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그 당시 사용했던 기술과 노하우는 부분적으로 손실되었을 뿐 아니라 손실되지 않은 나머지도 상당 부분은 별 도움이 안 되는 구식에 불과했음을 의미했다.

1920년대 소련 공업이 스탈린의 5개년 계획에 맞추어 빠르게 성장하고, 내부 상황도 안정되자 소련 정부는 함대를 새로 재건할 계획을 새우게 된다. 거기다 가상 적국 독일이 빠르게 재무장하며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해서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에 신형 전함을 자체적으로 설계할 능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소련은 이를 대대적인 연구와 이탈리아의 도움으로 극복해내고자 하였다.

1930년대 함대 정비 계획을 새로 수립한 소련은 전함 6척, 중순양함 4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이탈리아 안살도, OTO 社 등과 설계 계약을 맺은 후 다수의 설계도를 받는 등 이탈리아 측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듯 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양자간의 사이가 험악해지게 되고, 소련은 이탈리아와의 관계를 파기하게 된다.[5] 그러나 대독 포위망을 만들려던 영국의 정책에 따라 소련과 1937년 7월 17일에 영소 해군 조약을 맺어 소련의 16인치 함포 탑재 전함 4척을 포함한 신형함의 대량 건조를 공인해주는 한편 자국산 장비의 구입도 허용하면서 상황은 크게 호전되었고, 이에 소련은 안살도 측에서 넘겨주었던 리토리오급 전함의 강화판 전함 설계를 독자적으로 재설계하였다.[6] 이후 이것을 완성한 설계안에 따라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으로 건조가 시작되게 되었다.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 구성에 필요한 장비들이 먼저 테스트를 거쳐 실증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주포 선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계획안에 따르면 16인치 주포를 탑재하기로 되어있어 충분한 화력으로 판단되었으나, 타국의 기존 전함 뿐만 아닌 새로 건조되는 전함까지 상대하려면 18인치 주포를 탑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새로 추가되었다. 이후 18인치 주포를 탑재할 경우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선체는 이러한 중량 배분과 선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차기 전함 건조 계획안에 반영하되 현 설계에서는 16인치 주포를 그대로 탑재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제작된 16인치 주포 1문이 테스트 포탑에 장착되어 레닌그라드에서 성공적으로 발사 시험에 성공하였으나 이 주포는 이후의 전쟁 발발에 따라 레닌그라드 방어에 사용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7]

1939년부터 레닌그라드 공창에서 1번함 '소비에츠키 소유즈'가 제작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동년에 2번함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가 니콜라예프(미콜라이우) 공창에서 기공, 3번함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와 4번함 '소비에츠카야 로시야'가 몰로토프스크(세베로드빈스크) 공창에서 기공되어 총 4척이 기공되었으나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1941년에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여 소련을 침공하자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던 소련은 사방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은 우선순위에서 처지고, 건조가 중단되어 완성된 함체의 일부, 그리고 발주된 자재들은 야포, 전차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그러다 독소전쟁의 종전 후, 건조가 중단되었던 3척의 전함[8]에 대해 판단한 결과 건조가 적합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워 최종적으로 건조를 취소하게 된다. 이후 1957~59년에 걸쳐 해체되면서 프로젝트 24형 전함, 프로젝트 66형 순양함을 비롯한 기존 함포 위주의 대형 군함들은 소련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실제로 건조되는 일이 없게 된다.

4. 함선 목록

4.1. 소비에츠키 소유즈

소비에츠키 소유즈 ( 러시아어 : Советский Союз - 소비에트 연방)

1938 년 7 월 15 일 발트 조선소(당시 명칭은 제 189공창)에서 기공되었으며, 이 함급의 1번함이자 가장 건조가 빨랐다. 독소전쟁 개전 당시 소비에츠키 소유즈는 공정이 21.19 % 가량 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15,818 톤 가량의 선체가 선대 위에서 완성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 중 독일의 폭격으로 가벼운 피해를 입었으며 레닌그라드 공성전에서 일부 자재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소비에츠키 소유즈는 전쟁이 끝난 후 19.5 % 정도의 공정이 완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 후 소비에츠키 소유즈는 공사를 진행하여 완성할 것인지 해체할 것인지 의견이 있었으며, 전쟁 중에 얻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대에 맞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결국 해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허나 프로젝트 23급 전함이 하나라도 완성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소련 군부의 욕망 때문이었는지 동형함과 달리 소비에츠키 소유즈의 본격적인 해체는 1년가량 지연되었다. 그러나 결국 1948년 5월 29일에 소비에츠키 소유즈에 대한 해체 명령이 내려졌고, 1949년 4월에 해체가 완료되었다.

4.2.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 러시아어 : Советская Украина -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1938년 10월 31일 니콜라예프 조선소에서 기공되었다. 차파예프급 순양함 오르조니키제, 스베르들로프함도 본함과 함께 건조가 개시되었으며, 독소전쟁 개전 당시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는 공정률 17.98%, 13,001톤 (12,796톤)가량이 완성되어 있었다. 소련에서는 선체를 진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선대 앞의 강을 준설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1941 년 8월 18일 소련군은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를 버려두고 퇴각하기 직전 선체를 약간 손상시켰다. 소련군을 몰아내고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를 접수한 독일군은 요새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의 함수부 200 피트 (61m)와 함미부 100 피트 (30m)를 해체했다. 이후 전황이 불리해지자 독일군은 1944년 3월 17일에 니콜라예프에서 후퇴하기 전에 상술한 순양함 두척과 더불어 본 함의 함미 쪽의 지지대를 파괴했고, 그 결과 함체가 5~10도 정도 기울며 차파예프급 두척을 포함 세척다 건조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소비에츠카야 우크라이나의 해체 명령은 1947년 3월 27일에 내려졌다.

4.3.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러시아어 : Советская Россия - 소비에트 러시아)

1940년 7월 22일 몰로토프스크의 제402공창에서 기공되었다. 종전 당시 소비에츠키 로시야는 2,125톤 정도만 완성되어 있어서 0.97 %라는 매우 낮은 공정률을 보였다. 소비에츠키 로시야의 해체 명령은 1947년 3월 27일에 내려졌다.

4.4.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 ( 러시아어 : Советская Белоруссия - 소비에트 벨라루스)

1939년 12월 21일 몰로토프스크의 제402공창에서 기공되었다. 하지만 1940년 중반, 선체를 결합하는데 사용된 70,000개의 리벳의 품질이 불량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이러한 결함은 1940년 10월 19일 이 함선의 건조를 취소하기로 한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소련 정부는 4번함의 건조를 취소하고 4번함을 위한 자원을 1번함의 건조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하며 소비에츠카야 벨로루시야를 위해 발주된 자재들은 레닌그라드 방어를 위한 부유포대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4.5. 소비에츠카야 그루지야

소비에츠카야 그루지야 (러시아어: Советская Грузия - 소비에트 조지아)

1941년 발트해 조선소에서 건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며 건조가 취소되었다.

5. 설계

5.1. 형태

이탈리아 리토리오급과 영국 KGV급의 영향을 받은 장선수루형 함선으로, 충분한 너비를 확보하여 포격 시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으나 능파성은 아주 나쁜 형태로 설계되었다. 또한 3연장 포탑 3개였기에 공간이 넉넉해져 조타함교와 사격통제실을 따로 두고 전문화시킬 수 있었다. 거기다 넉넉한 공간에 다른 대공포등 부수장비나 정찰기를 올릴 수도 있는데다 부포곽이 없이 전부 포탑식이었기에 전체적인 형상은 상당히 현대적이었다.[9]

또한 3번 주포탑 뒤쪽이 격납고로서 베리예프 Be-2 함재 정찰수상기의 운용이 가능했다. 격납고 역시 상당히 현대적이었는데, 셔터 형식의 장갑도어였다.

5.2. 무장

주포로 최신식 16인치 1937년형 3연장 포탑 3개를 함교 앞에 적층식으로 2기, 후방 함교 뒤에 1기가 올려져 있었다. 이는 러시아 전함들로써는 최초로 시도된 구조였다. 선체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주포는 실제로 개발되었는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함선답게 1.108톤의 초 고질량 포탄을 분당 1.75발씩 830m/s의 속도로 발사할 수 있었으며 최대사거리는 45km였으나 13km안에서 16인치 장갑판을 뚫어버릴 수 있었다. 빠른 탄속에서 나오는 화력은 상당히 강했는데 영거리에서는 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포다도 더 강력했다.[10] 수명은 대략 300발 정도였는데 아이오와급 전함 주포의 350발에 비해서는 조금 짧지만 나가토급 전함 넬슨급 전함의 16인치 포가 각각 300발, 250발의 수명을 가진다는 사실과, 830m/s라는 16인치급 함포로서는 대단히 빠른 포구 초속을 가지며 거기다 고질량탄을 쓴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뛰어난 수명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부포로는 차파예프급 순양함의 B-38 6인치 2연장 부포를 6기 사용했으며, 55kg 짜리 포탄을 분당 7.5발의 속도로 발사, 25km 밖까지 날려보내 경순양함 이하 함정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양 측면에 3기씩을 가까이 붙여 배치하고, 중간 부포탑은 앞뒤 부포탑보다 더 높게 적층식으로 설치하여 사격 방향을 확보하였다.

대구경 대공포로 100mm 양용포 2연장 6기를 설치하여 총 12문을 보유했다. 해당 양용포는 대공, 대수상 양쪽에 모두 쓰였으며 발사 속도는 분당 16발이다.[11] 소구경 대공포로는 M1939 37mm 대공기관포 4연장 10기를 설치하여 총 40문을 보유했다. 발사 속도는 분당 160~180발이며 전반적인 성능은 보포스 40mm 포와 비슷한 편이다.[12] 대공포들은 기본적으로 360도 회전이 가능하나 실제로는 상부 구조물로 인해 발사 각도에 제약이 있었다. 대공포의 수량 및 종류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전반적인 대공화력은 사우스다코타급이나 아이오와급 등 동시대의 미국 전함보다는 다소 약한 편이나 비스마르크급이나 킹 조지 5세급 같은 동시대의 유럽 전함들과 비교하면 강한 대공무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13] 설계상으로는 100mm 양용포 2연장 4기, 37mm 대공기관포 4연장 8기를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건조 중에 각 2기씩을 증설하는 것으로 설계를 변경했다.[14]

사격통제장치로 DM-12 12m 거리측정기가 모든 주포탑에 달려 있었고 이는 사격통제함교 꼭대기에 2개, 코닝 타워에 1개가 달린 KDP-8 사통장치 세 개중 하나에 하나씩 연결되어 있었다. KDP-8은 하나당 두 개의 8m 광학 측거의가 달려 있어 하나는 목표를 추적하고 또 하나는 탄착 지점을 찾아내도록 했으며, 여기서 나온 자료는 TsAS-0 기계식 컴퓨터에 입력되어 자동으로 포격에 관한 정보 처리 결과를 산출하도록 했다. 부포는 각각 2개의 4m 측거의가 달린 4개의 KDP-4t-II 통제장치에 연동되었고, 양용포는 SPN-300 4m 측거의에 연동되어 있었다.

5.3. 장갑

6만 톤짜리 거체에 맞게, 방어력은 상당히 우수했다. 주포탑이 적층식 3개뿐이기 때문에 남는 면적과 여유중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어용으로 23,306톤의 배수량이 할당되었는데 이는 본 함보다 더 큰 야마토급 전함의 그것보다도 조금 더 많은 양이었다. 주포탑 정면에는 경사장갑으로 19.5인치 두께의 장갑이 발라져 있었고 선체 주장갑대 역시 420mm 정도로 두꺼운데다 10도의 경사장갑이었다.[15] 주갑판은 155mm 정도로 자신의 함포에 대한 일정 거리 면역 능력은 확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6] 500kg 항공 폭탄에 대한 방어능력도 확보되었다. 거기다 조약형 전함들이 '비장갑 구획'이라 하여 장갑을 얼마 두르지 않던 곳들, 예를 들어 함교와 다른 상부 구조물들에도 200~420mm 정도로 아낌없이 발라 당시 존재하는 대부분의 전함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17]

하지만 수중 방어력은 그렇게 강하지 못했다. 리토리오급 전함의 설계대로 중유와 공기로 2개의 막을 채워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의 벌지가 설치될 예정이었는데, 이는 상당히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공업력이 떨어지는 소련이 이 구조를 도입한다면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원판인 리토리오급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혔을 정도다.

5.4. 엔진

중유 고온 고압 보일러 6기와 스위스제 터빈 3기가 조합되어 201,000마력의 출력을 냈다. 보일러는 380°C에서 37kgf/㎠의 증기압을 내는 것으로, 독일이나 미국의 고온고압 보일러 다음가는 성능을 가진 우수한 보일러였다. 터빈은 원래 영국 카멜 레어드 사의 증기터빈을 구입하려 했으나 70만 파운드나 되는 가격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비슷한 성능의 스위스 BBC사의 40만 파운드짜리 증기터빈을 기술제휴와 함께 구입했다.[18] 최고 속도는 나름 고속전함이라 부를 만한 속도인 28노트로 계획되었다.

항속거리는 7,200해리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이는 이 함급이 원거리 작전보다는 연안에서의 활동을 상정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속도를 28노트 정도로 설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5.5. 기존 러시아 전함들과 달라진 점

포탑의 배치 구조가 획기적이었다. 기존 러시아 전함인 강구트급,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그리고 계획으로만 끝난 정복자 니콜라이 1세급 모두 포가 12인치 3연장 포탑 4개로 상당히 빈약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이마저도 펜실베이니아급 전함이나 뉴멕시코급 전함같은 적층식 구조로 설계했다면 집중방어도 되었을 것이고 여유공간 활용도 효율적으로 했을 수 있었겠지만 이들은 기술력의 한계로 그 악명 높은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의 비적층식 구조와 같은 형태로 설계되었다. 그런 설계에서 탈피하여 여유공간을 대폭 확대하고 방어 효율을 늘린 이 함급은 상당히 발전된 것이었다.

또한 기존의 러시아 전함들은 설계시기의 한계로 인해 포곽식 부포를 장비하고 있었으나 이 함급은 부포탑을 전면 도입하여 부포의 운용 효율이 올라가고 방어력도 증대되었다.

그 밖에 포탑이 적층식 3기뿐이라 갑판에 여유공간이 많았기 때문에 대공무장을 설치하기가 비교적 수월했고 덕분에 최우등까지는 아니라도 나름 괜찮은 수준의 대공무장을 갖출 수 있었다.

6. 개량형

6.1. 프로옉트 24형 전함

파일:USSR_BB_Project24.jpg

파일:USSR_BB_gun.png

1941년 Project 24의 간략도 및 주포 선택안[19][20][21]

1941년에 프로젝트 24형 전함이란 이름으로 개발을 실시했다. TKSB-4 설계국서 13만톤의 초전함으로, QNII-45 설계국에서 6만톤급 염가판으로 설계하여 비교 검토에 들어가 8만톤급으로 축소시키는 것으로 전자가 선택되었다. 총 9척이 건조될 계획으로, 초기 10만 톤급 설계안에서는 457mm(18인치) 주포를 장착하는 안도[22] 연구되었으나 4~5년 전 프로젝트 1058형 전함에서도 그랬지만 당시 소련의 조선소에서는 그러한 거함을 만들 수 없었으므로 소유즈의 406mm 주포를 개량하여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외에도 양용포가 130mm 포로 교체되는 것을 포함해[23] 다양한 개선 사항이 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전함의 효용성이 의심받기 시작한 데다가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이 등장함에 따라 취소되었다.

7. 평가

소련 해군의 기함으로 건조 및 취역 이후 기존 전함들을 대신하여 붉은 함대의 기함을 물려 받을 예정이었지만, 결국 중단 및 취소가 결정되어 완성되지 못한 비운의 전함이다.

성능적으로도 상당히 강력하고 현대적이며 주변국들의 해군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된 함선이기에 1차대전식 설계에 자리잡은 함대의 구식 전함들을 대신하여 주요 강대국의 기함으로 자리잡은 독일 해군 비스마르크급 전함, 프랑스 해군 리슐리외급 전함, 이탈리아 왕립 해군 리토리오급 전함, 미국 해군 아이오와급 전함, 일본 제국 해군 야마토급 전함과 비등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로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중 계획 된 알자스급 전함, A-150 전함등의 다른 페이퍼플랜 전함들과 달리 설계가 완료되고 실제로 건조단계 중 중단되어 최종적으로 취소된 함급이었기에 독소전쟁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완성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소련 해군이 이 함급을 기적적으로 주포를 사용 가능할 정도로까지만이라도 건조하여 실전배치한 상태에서 독소전쟁이 터졌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소전쟁 당시 해군의 기함으로는 건조가 중단된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을 제외하면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 4척을 기함으로 두고 키로프급 순양함(Крейсера проекта 26) 6척을 중심으로 함대를 이끌었으나, 압도적 전력차에 기반한 전투 이후 전력 공백을 우려하여 프로젝트 7형 구축함, 프로젝트 1형 구축함의 두 구축함급이 사실상 소련 해군의 주역이었고 소량이나마 운용하는 순양함과 전함들은 귀중한 전력으로 다루어져 비교적 전방에 나서는 일이 적었다. 결국 이는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독일 공군의 공습을 버티지 못하고 격침당한 전함 마라(Марат)의 사례로 남겨지기도 하였다. 물론 구식 전함이라 대공무장이 부실했던 기존 전함들과는 달리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은 나름 괜찮은 수준의 대공무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마라에 급강하폭격을 가하는 것에 비해 공격의 난이도가 더 높았을 것이고, 그나마 마라가 버티고 있던 상황보다 독일군을 훨씬 더 애먹게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이 4척 모두 건조가 완료되어 설령 이 함급들이 운용중이라 하더라도, 독소전쟁 초기 소련 해군의 상황을 보면 당시의 소련으로써는 이 함선들을 제대로 운용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북방함대에 배치 예정이었던 3, 4번함은 수송선단 호위에 쓸 수도 있었겠지만 3, 4번함은 공정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으며, 흑해함대에 배치 예정이던 2번함은 우크라이나에서 건조되던 중 독일군에게 접수되어 버렸기에 기대를 걸기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이 조기에 완성되었다면 주변 인접국인 독일 해군의 ' 티르피츠' 또는 비시 프랑스 해군의 ' 장 바르'와 같은 전함들을 상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티르피츠와의 교전을 상정할 경우 화력, 방어력, 대공화력 등 속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티르피츠를 압도하는 성능을 지니기에 티르피츠를 정면 교전에서는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 바르 또한 티르피츠보다는 공방능력이 좋지만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의 공방능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7.1. 한계

현실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즉 제국주의-전체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임박론에 입각해 상시 총력전 태세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당시 소련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큰 국가적 재난이 없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을 완성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나, 결국 목표로 한 성능을 충족하여 취역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라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더라도 설계안에서 목표로 잡은 성능과 실제 건조한 물건의 성능 간 괴리가 큰 경우는 다수 존재하며, 미국 해군이나 일본 제국 해군만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부분이 다수 발견된다. 거기다 역사적으로 12인치 주함포를 탑재한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전함 이후로 대형함 신규 건조가 없던 러시아 제국 해군을 이어받은 소련 해군이 이 스펙의 전함을 최종 설계안 성능 그대로 취역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독일의 사례만 보아도 독일 제국 시절 15인치 주함포를 탑재한 바이에른급 전함을 건조한 이력이 있지만, 이를 이어받은 독일 해군(크릭스마리네)은 노하우 유실로 인해 최신 전함 설계 방식(집중방어이론)은 끝끝내 완성하지 못하였다. 결국 독일 해군이 대형함 건조에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건조를 한 노하우를 축적했는데도 비스마르크급 전함이 약체 평가를 받는 제일 큰 이유는 독일의 기술력 부족이라는 결론으로 정리된다. 소련은 설계 자체는 미국과 이탈리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시대에 적합한 것으로 가지고 있지만 건함 역량 부족에 의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실제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건조를 살펴보면 3년여에 걸쳐 건조가 진행중이었던 두 척의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을 건조하는데 그 공정률이 겨우 20%에 그쳤으며 4번함의 리벳 불량 논란으로 건조가 지체되는 문제도 발생하였다. 당시 시대적으로 해군력에서 순위권을 차지하지만 공업 역량이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일본 제국 해군의 야마토급 전함과 비교해 보면 두 척을 취역시키는데 4~5년이 걸렸기에 이러한 건조 진행률과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체급이 야마토급보다 약간 작다는 것을 반영한다면 두 척의 취역까지는 족히 10년을 잡아야 하며, 만약 미국이 전함 건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몬태나급 전함은 족히 취역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물며 2번함을 포기해서라도 모든 자원을 1번함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아이오와급 전함과 비슷하거나 늦은 시기에 취역했을 것이므로 취역하더라도 설계 시기가 무려 3세대 전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동시대이기에 이미 구닥다리 전함 소리가 나올 세대격차로 건조가 되었을 것이다. 즉,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이 4척을 모두 건조한다고 하면 프랑스 해군의 리슐리외급 전함 2번함 '장 바르'를 뛰어넘는 건함계의 티스푼 공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다양한 과정을 지나 설령 완공했어도 하루가 빠르게 바뀌는 당시 해전 양상에서 거함거포주의의 상징인 이러한 전함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었다고 봐도 된다. 전후에는 거함거포주의가 몰락함과 동시에 해군 항공대의 중요성 및 초기 미사일 해군의 시대가 열려가는 시기였으므로 다른 국가의 해군과 마찬가지로 신규 건조 없이 선전용 병풍으로 전략하였을 것이다. 영국 해군 뱅가드급 전함 처럼 황혼기의 얼굴마담으로 활동하거나, 미국 해군 아이오와급 전함처럼 2차 대전 당시 함포전의 해전이 아닌 지상 포격 화력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을 가능성도 있다.[24]

8. 미디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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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츠키 소유즈 프로젝트 23형 프로젝트 24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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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 Moscow
* 게임 모던 워쉽에서 전설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소유즈급 전함에 현대 무장을 탑재한 창작 함선이며, 마켓에서 아트코인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높은 생존성과 화력, 대잠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방공이 무려 10개나 달려있어서 전부 레이저 무기로 갈아낀 다음 기관포 슬롯에 래피드 파이어를 달면 엄청난 방공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문제는 거대한 덩치와 넓은 선체로 인해 어그로가 많이 끌린다는 점. 이로인해 적 항모 폭격기한테 항공폭탄을 얻어맞을 수 있다.

9. 모형화

10. 관련 항목

11. 외부 자료



[1] "소비에트 연방"의 러시아어 [2] 참고로 도이칠란트급은 네임쉽 도이칠란트만 국가 이름이었고 2번함 아드미랄 셰어와 3번함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는 모두 인명이었다. 꽤나 특이한 경우. [3] 원래 발음: 싸볫츠끼 싸유스. 한국어의 키릴 문자 표기법 참고. [4] 프로젝트 23형 전함 이전 취소된 계획이다. [5] 계약 파기의 부분에서 이탈리아 쪽에서 파기를 한 것인지 소련의 스탈린에 의한 일방적 파기인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없다(Monakov, Mikhail; Rohwer, Jurgen. Stalin's Ocean-going Fleet: Soviet Naval Strategy and Shipbuilding Programs, 1935-53. Routledge, 2001). 또한 미국과의 기술이전 협상을 실시하지만 미 정부의 태클로 무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협상 주체였던 깁스&윌콕 사는 네 가지 통상 전함형 설계안과 세 가지 항공전함형 설계도를 제시하였다는 언급도 있으나 동일하게 명확한 자료는 없다. [6] 사실 리토리오급의 영향을 받은건 사실이나 재설계는 아니다. [7] 성공적으로 생존하여 현재도 남아있으며, 르제프스콤 시험장(르제프 시험장)에 위치하고 있다. 좌표는 59.9927021, 30.5275641 지점이다. [8] 건조 중 결함 발생으로 이미 1940년 건조가 취소되었던 4번함을 제외한 나머지 3척의 함선이다. [9] 다만 부포탑을 굳이 2연장으로 한 것은 실수라면 실수다. 만약 부포탑을 차파예프급 순양함의 포탑 그대로 3연장으로 설치했다면 부포탑을 두 개 줄이고 대공무장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 다만 아이오와의 주포는 탄속이 느린 대신 중량이 더 많이 나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이오와의 주포가 화력이나 명중률에서 앞선다. 13,600m에서 현측 장갑을 아이오와는 585mm, 소비에츠키 소유즈는 406mm까지 관통할 수 있다. [11] 다만 이 대공포의 경우, 회전속도가 좀 느린 것이 흠이다. 회전속도가 좌우로는 초당 12°, 상하로는 초당 10°였는데 좌우 초당 25°, 상하 초당 15°인 미국의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나 좌우 초당 16°, 상하 초당 16°인 일본의 89식 대공포에 비하면 좀 느린 편이다. [12] 이 M1939 대공포는 스웨덴 보포스 사의 25mm 기관포를 바탕으로 개발한 45mm 대공포를 소구경화한 것이다. 때문에 보포스 40mm 포와 많은 특징을 공유하는데, 가령 보포스 40mm 포와 마찬가지로 클립 장전방식을 사용한다. [13] 대공무장에서의 한 가지 약점은, 미국 전함과 달리 20mm급 대공기관포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전함은 좀 거리가 있는 적기는 보포스 40mm 포로, 가까이 접근하는 적기는 20mm짜리 오리콘 기관포로 막지만 이 전함은 가까이 접근하는 적기까지도 37mm 기관포로 상대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물론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이 완성되어 2차 세계대전에 투입되었다면 티르피츠나 KGV급이 그랬던 것처럼 대공무장이 증설되어 대공화력이 더 강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랜드리스를 통해 받은 오리콘 대공포를 장착하거나 VT신관을 받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다. [14] 여담으로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설계변경 전 대공포 배치가 구현되어 있다. [15] 선체 주장갑대 장갑의 두께는 몬태나급의 409mm, 야마토급의 410mm보다도 두껍지만 경사도는 다소 낮다. 사우스다코타급 아후의 미국 전함들과 야마토급의 현측 주장갑대는 19도 정도의 경사를 가지고 있었다. 주장갑대 면적이 야마토보다 넓기는 하다. [16] 아이오와급 전함의 장갑 갑판은 봄덱 38mm 아머덱 153mm 구성으로 16인치 함포에 쓰인 마크5 철갑탄에는 28km대 마크8 철갑탄에는 25km대의 갑판 대응 방어력을 가졌다. [17] 하지만 이는 거꾸로 말하면 굳이 장갑을 두껍게 바를 필요가 없는 부분에까지 장갑을 할당해 과도한 용적 낭비를 발생시켰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소련은 워싱턴 해군조약의 당사국이 아니라 얼마든지 큰 군함을 만들 수 있었고 물자도 풍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18] 여담으로,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비롯한 크릭스마리네의 대형함들도 이 터빈을 이용했다. [19] 소련의 457mm(18")주포는 계획 단계에서 취소 [20] 비교를 위하여 표 3번째 항목은 아이오와의 16"/50 Mk.7, 4번째 항목은 야마토의 460mm 주포의 스펙이 기입되어 있음 [21] # А.М.Васильев-"Линейные корабли типа Советский Союз" [22] 457mm 연장포 4기 혹은 3연장포 3기. [23]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에서는 대수상용인 152mm 부포와 대공포인 100mm 대공포를 따로 장비했으나 미국의 신형 전함들처럼 이를 130mm 양용포로 통일함 [24] 후자는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데, 지상 포격 화력지원을 하려면 우선 자유 진영 해군과 맞붙어서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해야 하는데 50년대 소련 해군의 전력으로는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이 있다고 해도 자유 진영 해군과 맞붙을 시 승산이 없다. 또 이후 소련이 참전한 전쟁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물밑 지원이나 소수의 병력 파견 정도에 그쳤으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정도가 그나마 대규모의 군대가 투입된 전쟁이었고, 내륙국인 아프가니스탄에 전함으로 포격을 할 가능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