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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데이터 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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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의 PDP 10
1. 개요2. 상세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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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0년대 DEC에서 내놓았던 미니 컴퓨터의 종류중 하나. 정식 명칭은 프로그램 데이터 프로세서(Programmed Data Processor)이다.

얼핏 " 미니컴퓨터"라는 말만 듣고 위의 사진을 보면 저 크고 아름다운 크기에 당황하는 경우가 있지만, 당시엔 저 크기도 작다고 미니컴퓨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에는 그냥 '컴퓨터'였던 메인프레임에 비해서는 확실히 아담한 크기였다. 지금도 산업용, 학술용으로는 여전히 미니 컴퓨터가 나오고 있다. 덧붙히자면, 이 물건이 나왔을 당시엔 미니 컴퓨터란 단어조차 없었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라는 물건이 개발되자 미니라는 단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미니보다 더 작다고 마이크로 컴퓨터라고 부르기도 했다.[1] 물론 마이크로 컴퓨터라는 이름은 대세가 되지 못하고 대신 개인용 컴퓨터라는 뜻을 가진 PC(Personal computer)라는 이름이 대세가 됐다.

2. 상세

당시 컴퓨터는 크고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PDP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요즘에야 컴퓨터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연상하지만 저 시대에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물건은 아예 없었고 컴퓨터라고 하면 사람들은 커다란 빌딩의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수 톤 혹은 수십 톤짜리 거대한 물건을 연상했다. 때문에 DEC에서는 자기네 신 상품에 컴퓨터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PDP(Programmed Data Processor)라는 이름을 따로 지어서 붙였다. 이후 사람들은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던 크기에서 캐비넷 몇 개 크기로 줄어든 컴퓨터를 미니 컴퓨터라고 부르게 되었다.[2]

PDP는 기존에 짜여진 논리 모듈을 활용하여 새롭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데이터 프로세서(Programmable Data Processor)[3]를 만들 수 있는 컴퓨터로, 메인프레임을 도입할 수 없는 시장을 주 목표로 삼아 빠르게 시장에 퍼져나갔다.[4]

지금이야 누구든지 약간의 프로그래밍 지식만 있으면 간단한 계산기쯤은 만들 수 있지만, 이 시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일심동체인 시절이었기 때문에, 컴퓨터 소비자가 컴퓨터를 발주하면 제조자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서 하드웨어도 만들고 그에 따라 소프트웨어도 만들어 탑재한 뒤 판매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PDP의 등장으로 기존에 짜여진 몇 개의 요소들을 활용하여 자신 스스로 운영 체제도 만들고 그 위에서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으니 엄청난 각광을 받은 것이다. 즉, 컴퓨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컴퓨터를 학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PDP 이전에는 주로 군사적이나 과학 연구 목적으로 컴퓨터를 연구한 각국의 연구기관을 제외하면 HP, IBM 같은 기업이나 AT&T의 벨 연구소 같은 곳에서만 상업적 목적으로 컴퓨터가 연구되었다.

PDP는 수많은 대학이나 민간 연구기관으로 퍼져나갔으며, 특히 MIT 인공지능연구소에서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된다. UNIX의 원형도 PDP에서 탄생하였고, 이후 GNU의 창시자 리처드 스톨먼도 이 컴퓨터의 연구에서 GNU 정신을 기초하였다. 또한 각국의 기업에서 1980년대까지도 널리 사용되었다.[5]

PDP가 한 시대를 풍미한 컴퓨터인 것은 사실이나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HP, IBM과 같은 기업의 컴퓨터(메인프레임)보단 절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DEC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운영체제였던 VMS도 성능과 호환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정부 기관이나 록히드 마틴, 아메리칸 항공, 보잉 등과 같은 신형 컴퓨터를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기업들은 PDP를 외면했다.

사실 DEC 계열의 컴퓨터는 하위 호환성이 없다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PDP-10에서 작성해 둔 프로그램들은 PDP-11에서는 쓰레기가 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다. 그리고 나아가 DEC는 신제품이 나오면 구제품을 단종하고 그에 대한 사후 지원 업무를 제공하지 않았다. 리처드 스톨먼이 잠시 좌절하는 것도 10에서 11로 넘어가며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들이 쓸모 없게 된 때이다. 이 시기 스톨먼뿐만 아니라 수많은 컴퓨터 공학자[6]이 좌절하고 기업으로 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컴퓨터를 연구하던 교수들의 엄청난 수가 기업이나 미 국방부 컴퓨터 연구소로 빠져나가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니 말 다한 것.

3. 여담

PDP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캐비닛이나 모니터 등 PDP의 부품이나 완제품이 거래되기도 한다. PC 이전 컴퓨터들이 거의 다 그렇듯 수집 목적 이외로는 가치가 별로 없다.[7] 각종 빈티지 컴퓨터 페스티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이 컴퓨터(?)와 인연이 많은데 학창 시절 C 큐브드 사의 PDP 10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결함기록을 써준다는 조건 하에 허락을 받아 자신의 그룹 임원들과 함께 사용하였고 이후 회사 암호장치를 풀다가 시스템을 고장내 쫓겨나기도 했고[8] 고등학교 시절 대학 도서관 컴퓨터실에서 또 PDP 10을 보고 직원들이 소방 훈련에 나간 사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작성해 사이버 네트로 연결된 시스템에 보냈다가 돌아온 직원에게 걸렸고 사이버 네트에 연결돼있던 시스템들이 또 고장나 잠시 동안이었지만 감옥 신세도 져야 했었다.


Spacewar!라는 비디오게임도 만들어졌다. 1962년에 스티브 러셀이란 사람이 PDP-1용으로 작성한 프로그램이다.

소련의 사실상 국책전자기업이나 다름없던 일렉뜨로니까에서 PDP-11을 베껴서 만든[9] 일렉뜨로니까-60이라는 소련제 컴퓨터가 있었는데, 이 컴퓨터는 다름아닌 테트리스가 최초로 나온 플랫폼이다. PDP 시리즈가 어떤 의미에서는 비디오 게임사에 굵직한 업적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남긴 셈.


[1] 마이크로프로세서, 마이크로아키텍처 등 고집적도와 신기술을 상징했던 '마이크로' 돌림자의 일환이다. [2] 명칭인 “프로그램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장치”는 “컴퓨터(계산기)”라는 단어보다 컴퓨터의 정의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는 명칭이다. [3] 쉽게 말해서 과정을 처리하는 순서 즉 프로그램. [4] 여담으로 IBM PC도 비슷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5] 패밀리 베이식도 PDP-11을 통하여 개발되었다. [6] 순수하게 학술적으로만 컴퓨터를 연구하던 사람들. 쉽게 말해서 덕후들. [7] 스페이스워!같은 게임이 있기는 하나 이걸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위호환 미지원으로 인해 사용에 까다로운 점도 많다. [8] 쫓겨날 때 빌 게이츠 혼자만 쫓겨났고 그 친구들은 결함 보고서 작성에 매달려야 했다. [9] 사실 컴퓨터뿐만이 아니라 닌텐도 게임 & 워치에 이르기까지 리버스 엔지니어링 할수 있는 전자제품은 최대한 리버싱한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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