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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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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언어별 표기3. 역사4. 인구5. 종교6. 경제와 산업7.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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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슬로바키아 동북부에 위치한 3번째로 큰 도시이자 프레쇼우 주(Prešovský kraj)의 주도이다.

2. 언어별 표기

슬로바키아어 Prešov
헝가리어 Eperjes(에페리에시)
독일어 Eperies(에페리스)[2]
루신어 Пряшів

3. 역사

4세기 경 슬라브족이 당도한 것으로 여겨지며, 11세기 말 무렵에는 헝가리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247년,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1299년,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언드라시 3세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1526년, 모하치 전투로 헝가리 왕국이 붕괴된 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으며 오스만 제국 오스만 헝가리 헝가리인의 자치 공국인 에르데이 공국과 접한 국경 도시가 되었다. 1572년부터 솔리바르(Solivar)[3]에서 암염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소금 생산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18세기 초, 흑사병 대화재의 여파로 인구가 급감했으나 18세기 후반에 재건되었고, 여러 공장이 들어섰다. 1870년, 코시체와 프레쇼우를 잇는 철도가 들어섰고 이후 전기, 전화, 하수처리 등 사회 기반 시설이 세워졌으나 1887년 대화재로 도시가 전소되었다.[4]

1918년,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에 편입되었으나 1938년, 제1차 빈 중재로 코시체와 인근 지역들이 헝가리로 재편입되면서 코시체에 있던 주요 슬로바키아 공공기관들이 프레쇼우로 이전했다. 1948년 이후,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산업도시로 재편되었으며 인구도 이때 대부분 늘어났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와 분리되었고 1996년에는 신설 프레쇼우 주의 주도가 되었다.

4. 인구

2020년 기준 87,886명. 역사적으로도 슬로바키아인이 다수였으나 1867년, 대타협으로 헝가리인이 주권을 되찾으면서 마자르화 정책을 강요한 결과 1910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기 전 마지막으로 시행된 인구조사에서는 헝가리인이 슬로바키아인 인구수를 넘어섰다. 슬로바키아인과 헝가리인 외 소수민족으로는 독일인, 루신인, 루마니아인 등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슬로바키아인이 80% 이상을 차지하며 소수의 집시, 체코인, 우크라이나인, 루신인이 거주하고 있다. 헝가리인의 비중은 극소수로 떨어졌다.

5. 종교

가톨릭이 대부분이나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지리 특성이나 루신인이 거주한 역사로 인해 동방 가톨릭 교회, 정교회 신자들도 있으며, 소수의 루터교회 신자들도 있다.

6. 경제와 산업

기계, 전자 제품, 의류 산업이 유명하며 슬로바키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암염 제조 회사인 솔리바리(Solivary)의 본사가 있다.

7. 볼거리

구시가지가 남아있으나 1887년 대화재의 여파로 조촐한 편. 루신인 박물관과 헝가리 귀족 가문이며 에르데이 공국의 공작들을 다수 배출한 라코치 가문의 저택을 사용하는 시립 박물관 정도가 볼만하다.

[1] [2] 뮌헨 협정 이후에는 슬로바키아어 원어 지명을 독일어에 더 가깝게 음차한 프레샤우(Preschau)로 불렀다. [3] 현재는 프레쇼우 외곽 [4] 현재의 프레쇼우는 이때의 대화재 이후 재건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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