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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 그라운즈 Polo Groun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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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 |
과거 명칭 |
브라더후드 파크 (Brotherhood Park) 브러시 스타디움 (Brush Stadium, 1911~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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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 1890년 4월 19일 | |
재개장 | 1911년 6월 28일 | |
폐장 | 1963년 12월 14일 | |
철거 | 1964년 4월 10일 | |
사용 구단 |
야구 뉴욕 자이언츠 (1891~1957) 뉴욕 양키스 (1913~1922) 뉴욕 메츠 (1962~1963) 미식 축구 컬럼비아 라이언스 (NCAA / 1900~1922) 뉴욕 버클리 자이언츠 (NFL, 1921) 뉴욕 자이언츠 (NFL, 1925~1955) 포덤 램스 (NCAA / 1928~1950, 1953~1954) 뉴욕 불독스 (NFL, 1949) 뉴욕 타이탄스-제츠 (AFL, 1960~1963) 축구 뉴욕 내셔널스 (1927~1930) 뉴욕 자이언츠 (1930~1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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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및 운영 | 뉴욕 자이언츠 | |
크기 |
좌측 폴대 - 85m 좌중간 - 110m 깊은 좌중간 - 137m 중앙 - 147m 깊은 우중간 - 137m 우중간 - 103m 우측 폴대 - 79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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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수 | 55,000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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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없어진 스포츠 경기장.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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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폰 폴로 그라운즈 (좌하단)[1] |
흔하게 부르는 폴로 그라운즈는 폴로 그라운즈 III와 IV로, 1890년 4월 19일에 개장했다. 개장 당시에는 '브라더후드 파크'(Brotherhood Park)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새로운 뉴욕 자이언츠의 홈 구장으로 활용되었다. 1911년 4월 14일 경기장에서 원인 불명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당시 자이언츠의 구단주 존 브러시는 경기장을 보수하기로 결정해 3달이 채 되지 않는 공사를 거쳐 6월 28일에 재개장했다. 이 구장이 폴로 그라운즈 IV로, 재개장 당시에는 구단주의 이름을 따서 '브러시 스타디움'(Brush Stadium)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양키 스타디움이 개장하기 전에는 뉴욕 양키스의 홈 구장으로도 사용되었으며, 1922년까지 베이브 루스가 활약한 구장이기도 했다. 1923년에 한 차례 증축된 뒤 1925년부터는 NFL의 뉴욕 자이언츠도 홈으로 사용했으며, 그 외에 대학 풋볼, 축구의 여러 팀이 활용했다.
그러나 워낙 낙후된 경기장, 야구단 입장에서는 기형적인 구조 때문에 NFL 자이언츠는 1956년부터 양키 스타디움으로 홈 구장을 옮겼고, MLB 자이언츠는 양키스의 위세에 밀려 1957년을 끝으로 샌프란시스코로 연고를 옮기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재탄생하면서 폴로 그라운즈는 주인 없는 구장이 되었다.
이후 1960년부터 아메리칸 풋볼 리그에 참가한 뉴욕 타이탄스가 구단명을 뉴욕 제츠로 바꾼 1963년까지 홈으로 활용했고, 1962년에 MLB 내셔널 리그에 참가한 신생팀 뉴욕 메츠도 폴로 그라운즈를 잠시 홈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미 뉴욕시가 1961년에 구장 부지를 매입해 재개발에 활용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이 두 구단은 셰이 스타디움이 완공되기 전까지 임시로 폴로 그라운즈를 홈으로 쓰는 것에 불과했고, 1963년을 끝으로 두 구단은 모두 폴로 그라운즈를 떠났다. 마지막 프로 경기는 1963년 9월 18일 뉴욕 메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MLB 경기로, 경기는 필라델피아 선발 크리스 쇼트의 1실점 완투로 필라델피아의 5:1 승리로 끝났다. 같은 해 10월 12일 라틴 아메리칸 올스타전을 끝으로 폴로 그라운즈는 모든 경기를 마쳤고, 이듬해 4월 철거되었다.
3. 독특한 구조
폴로 그라운즈의 가장 큰 특징은 괴상한 구조다. 본래 폴로 목적으로 건설된 구장이라 야구를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구조였음에도 야구 경기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좌우측 폴대까지는 90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펜스가 일자로 쭉 뻗어나가면서 좌중간은 최장 137m, 심지어 중앙은 독특하게 푹 파여있어서 홈플레이트로부터 147m라는 괴상한 경기장이 탄생했다. 웬만한 대형 홈런이 아닌 이상 깊은 좌중간이나 중앙 담장을 넘기는 홈런은 보기 힘든 수준.
중월 정중앙의 건물은 클럽하우스 입구다. 유럽 축구장 출입구처럼 약간 들어가있어 앞서 언급했듯 홈플레이트에서 이 구역까지의 거리는 147m다.[2] 입구를 위해 2층의 클럽하우스를 받치는 필로티 기둥이 정중앙에 있었고, 2층 외벽과 지붕 뿐만 아니라 그 뒤의 약 3층 건물의 경기장 쪽을 향한 외벽 및 광고판이 모조리 펜스로 인정받아 이 구역의 펜스 높이는 18m로, 아파트 7층 높이에 육박한다. 이 건물 뒤는 장외였으므로, 정직하게 이 방향으로 홈런을 치려면 아예 구장을 넘겨버려야 한다. 이상적인 홈런 발사각인 35도로 타격한 공이 포물선 궤도로 정중앙을 넘기려면 아무리 못해도 비거리 173m는 나와야 한다. 명물로 평가받는 펜웨이 파크의 그린 몬스터가 11미터 조금 넘고, 이마저도 홈에서 95m 정도로 짧은 걸 보완하기 위함이며 반대로 가장 먼 우중간 128m 지점의 펜스 높이는 1m 정도니 거리 147m+높이 18m 펜스는 그냥 홈런을 치지 말라는 수준이다. 적용된 적은 없었지만 클럽하우스의 열린 창문으로 타구가 들어가면 인정 2루타라는 그라운드 룰도 있었다. 즉, 이론상 비거리 155m 인정 2루타가 가능했던 것(...).
사진을 보면 양 사이드 외야에 BP가 적혀있는데, 이는 Bullpen이다. 즉 경기장 페어 지역 내에 불펜이 있었다. 여러 문서에서 실제로 '불펜이 홈플레이트로부터 약 450피트 떨어진 좌우측 외야 워닝트랙에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통산 첫 홈런은 '클레멘테가 친 공이 불펜 지역에 떨어졌는데, 그것이 그의 첫 메이저리그 홈런이었으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애초에 야구 경기장이 아니라 1루와 3루 파울 라인 바깥쪽도 굉장히 넓었는데 어째서 그런 공간을 활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펜스가 홈플레이트로부터 130m 넘게 떨어져 있으니 어차피 거기까지 공이 안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3] 타격을 했을때 홈런성으로 떠서 가든 라인드라이브로 깔려 가든 타구가 140미터 지점에 굴러서 도달하는 것조차 어려우니 말이다. 불펜의 어원이 투우 경기 전 황소가 갇힌 우리라 야구에서 불펜은 사방이 우리(Pen)처럼 둘러싸여 투수가 몸을 푸는 장소를 가리킨다는 걸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건 불펜이라고 하기도 뭣한 곳인데, 최소한의 보호는 필요했는지 천막을 쳐서 몸을 푸는 투수들을 보호했다고 한다.[4]
대신 특이한 구조 덕분에 윌리 메이스의 The Catch라는 명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중견수가 따라가서 잡기도 힘들 정도로 깊은 가운데 쪽으로 쫓아가 타구를 잡아낸 호수비. 이 뜬공 아웃의 추정 비거리는 130m로(...) 다른 구장이었으면 충분히 담장을 넘어갔을 타구다. 경기장이 폴로 그라운즈였기에 메이스가 야구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