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 평택 간 시내버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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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안성 - 평택간 버스경쟁 |
[1]
1. 개요
1998년부터 시작되어 2006년 1월 경부터 50번(現 1150번)의 면허 이관으로 잠잠해졌으나 간접적으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백성운수와 경진여객· 협진여객 간의 안성시- 평택시 버스 노선 경쟁에 관한 일련의 내용. 이후 백성운수가 안성 지역의 버스 노선을 독식하게 된 것과 연관이 없지 않으며, 또한 현재진행형이다.요약하자면 1150번이 경진여객 시절 5-1번으로 가장 먼저 개통되었으며, 또 다른 안성 - 평택간 시외직행버스를 안성의 백성운수는 70번으로 개통시켰다. 5-1번이 50번으로 노선이 바뀌고 기존에는 평택시청까지만 운행하던 70번이 평택터미널까지 연장되자 마침내 두 버스가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물론 경진여객에서 노선을 인계받은 협진여객과 백성운수의 사이는 그래도 좋은 편이다.
2. 기(起): 대신여객의 부도
1998년, 안성시에서 가장 큰 버스 회사라면 대신여객이었다. 이 회사는 서울남부터미널- 안성종합버스터미널간 직행버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 외 안성을 기·종점으로 하는 직행, 시외버스를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예외라고 한다면 천안-안성간 시외버스(현재 천안 201번 버스)[2]와 안성 시내버스 정도였다. 그나마 백성운수가 주로 운행하던 안성 시내버스도 그 위치가 확고하지 못해, 안성-공도-양성(현재의 7-2), 안성-서운(현재의 20)등의 일부 노선은 평택시의 버스회사와 공배, 혹은 해당 회사가 아예 대놓고 운행(…)하기도 할 정도였다.하지만 돈이 되는 노선이 많아도 회사의 운영이 부실하면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부실한 버스로 노선을 돌리던 대신여객은 하루 아침에 망하고 말았다.[3] 넓은 차고지는 그대로 경매에 붙여져서 현재 상가가 들어선지 오래고, 수십 대의 버스는 헐값에 팔려서 폐차장으로 흘러간것이 대다수라는 소문이 안성에서 떠돌지만 확인은 되지 않는다. 다만 대신여객이 도산한 것이 아니라 노선을 용남고속, 경진여객, 백성운수에 매각하고 남은 자산은 모두 경매에 부쳐버렸다는 설도 있는데 이 회사의 사장인 신 모씨는 이후 인천 경향여객을 인수했다가 비슷한 방식으로 처분하고 이후 송도버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선진네트웍스로 매각하면서 처리했기 때문.[4]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슈가 되는 노선이 바로 37번 노선과 50번(당시 5-1)[5]이었다. 말 그대로 시골 촌동네 안성을 각각 규모 있는 장호원과 평택시로 이어주는 핵심 노선이었는데, 당시 안성시는 37번은 백성운수, 50번은 경진여객에 일시적으로 노선을 맡기기에 이른다. 그 가운데 50번의 경우 원래 번호였던 5-1번 임시 버스를 약 한 달 간[6] 운행한 뒤, 현재의 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런 노선 분할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3. 승(承): 백성운수의 직행면허 인수
하지만 대신여객이 가지고 있었던 노선은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안성시내-공도면-평택시내'를 운행하던 직행버스였고 이 노선의 상당수는 용남고속[7]이 인수했는데 어정쩡한 면허였던 이 노선을 덜컥 백성운수가 인수하게 되었다.그리고 평택시는 50번의 차고지를 평택시에 두어서 버스회사간 경쟁을 유도했고, 그에 대한 특혜(?)로 해당 노선이 평택터미널까지 운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다. 그에 따라 '안성시청-평택시청' 간을 운행하는 70번 버스가 탄생하게 된다.
4. 전(轉):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천안역 연장
이 70번 버스는 백성운수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로 군림했었다. 평택시청 일대라 하면 당시 막 개발되기 시작하던 지역 인근이라서 승객이 많지도 않았고, 인지도도 없던 버스였던지라 50번과 70번 버스가 같이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선지와 상관없이 50번 버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이를 확고히 한 이유 중 하나가 배차간격이었는데, 10분 간격을 자랑하던 50번과 무작위 배차(…)였던 70번은 그야말로 넘사벽일 수밖에 없었다.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논의되던 것 중 하나가 노선을 평택터미널로 연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 거부되었던 노선이 별다른 이유 없이 인정될 리 없었고, 결국 노선이 폐지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도권 전철 1호선 병점- 천안 구간이 개통하였다.
결국 안성시민의 교통 편의를 돕는다는 명분 하에 70번의 평택터미널 연장이 결정되었다.[8] 대신 50번과의 차별을 위해서(그리고 50번의 수요를 잠식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9]) 평택시내의 운행을 제한하고 38번 국도로의 우회 운행만을 허가했고, 평택시내에서 70번의 정류장 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이 제약이 바로 70번을 흥하게 만들어주었다.
5. 결(結): 기사 소모전에서 패한 경진여객의 철수
70번의 주요 승객으로 대두된 계층은 한경국립대학교 안성캠퍼스와 중앙대학교 다빈치캠퍼스 학생들이었다.[10] '서울남부터미널-안성터미널' 간 시외버스 요금과 수도권 통합 요금제가 적용되기 이전의 '전철 요금 + 70번 요금'이 비슷한데, 서울남부터미널을 기·종점으로 하는 버스가 환승이 안 되다 보니 하루 2천 원(…)씩 차이가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연히 대학생들이 폭발적으로 70번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해당 노선의 파이 자체가 인구에 비해서 커졌음을 뜻하기도 했다.당연히 평택역으로 바로 이어주는 70번의 호응이 좋았으며, 50번의 경우 주로 현지 주민들이 이용했으나 어느 시점부터 저런 고정관념은 사라지고 목적지에 따라 적당히 골라타는(!!) 시대가 오게 된다. 물론 70번이 훨씬 빠른 만큼 선호도가 높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50번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버스의 증속(!!)을 하게 된다. 별 게 아니라 과속운행을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동안 시골 지역의 버스 운행에 익숙했던 백성운수 기사들은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빠른 버스 = 50번이라는 이미지가 성립되고, 배차 간격도 5분[11]으로 줄이는 초강수 덕에 이 이미지는 굳건해졌다. 사실 여기에는 경진여객의 자금력도 있었지만, 워낙 50번과 70번이 중소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잘 벌리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행정서류만 거치면 증차를 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당연히 백성운수도 과속과 신호위반을 통해서 50번을 따라잡는 치킨레이스를 하기에 이르고, 서로 더 빨리 가려는 경쟁이 극에 달해[12] 교통사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해당 지역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내가 겨우 돈 900원에 목숨을 맡겨야 하나라는 말까지 들릴 정도.
결국 경찰들이 매의 눈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단속을 철저히 하게 되고, 기사들은 신호위반과 과속들로 줄줄이 벌점을 적립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그 가운데 일부는 벌점누적으로 면허정지까지 이르게 되는데, 덩치가 훨씬 큰 경진여객이 피격도 더 많이 당하면서[13], 결국 회사와 노선이 둘 다 흑자였음에도 협진여객에 노선을 인계한 뒤 평택에서 철수하게 된다.[14] 그리고 그나마 말이 통하는(?) 두 향토업체 간의 협상이 이어지면서 이 분쟁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된다.
6.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후 백성운수의 버스노선은 대폭 조정되기에 이른다. 370번의 노선이 몇차례 개편을 통해 370/380/370-1 세개로 나뉘어지게 되는데[15] 여기에는 협진여객와 백성운수간의 신사협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호간의 협정 위반 여부로 한 차례 분쟁이 있었지만, 워낙 그 이전의 싸움이 치열했다.물론 협진여객도 조정한 노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진여객이 평택-중앙대간 500번 노선을 그당시 경진여객에서 쓰던 직행좌석도색까지 발라가면서 좌석형 신차로 야심차게 개통 하였으나 이후 사실상 50번 판떼기 걸고 50번 처럼 운행하였는데도 도색이 좌석 도색에 차량도 좌석형…다른 차량은 다 시내버스로 운행하는데 이차만 오묘하게 좌석버스 스멜이 풍겼고 손님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판단했는지 경진여객은 당시 자사 시내버스에서 이용하던 몬드리안 도색으로 재도색 작업을 진행하였다. 누가봐도 시내버스 처럼 보이게 해 놨는데
하지만 노선조절이 여기에서 이루어진건 아니다. 평택시 택시조합에서 50번버스의 24시 5분전통에 대해 항의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막차는 11시로 변경. 70번 막차가 24시로 변경.
이런 조정 과정을 겪고 난 이후 전보다 과속과 신호위반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디까지나 서로 레이싱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여전히 할 때는 한다(…). 특히 50번은 아직까지도 틈만나면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기 때문에…
백성운수가 현재로서는 승자로 보이는 것이, 승객선호도가 높고 무엇보다도 농어촌버스의 상징인 구형버스들을 이 경쟁에서 완전히 치워버렸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17] 그리고 이 구간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도난 성호여객을 인수하여, 자회사인 평택여객으로 만든 사실은 매우 유명하다. 평택에서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
협진여객도 이에 질세라 새로 뽑는 신차란 신차는 전부 50번에 도입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오래된 기미가 보이는 버스는 전부 타 노선에 대차시키는 강수를 두고 있다. 거기에 2016년 12월에 평택지제역에 고속철도 SRT가 개통한 이후, 노선을 지제역까지 연장하면서 안성에서 역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반쯤 하위호환 취급을 받던 70번과 차별화를 이루어 내려고 하고 있다. 2017년 2월엔 70번에게 안성터미널에서의 수요가 많이 밀리자 50번 버스의 종점이 과감하게 봉산로터리로 단축되었다.
하지만 38번 국도에 점점 헬게이트가 열리고 있고, 그에 따라서 주요 밥줄 노선의 배차간격이 흔들리면서[18] 이 밥줄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2022년 평택 시내버스 개편으로 인해 50/50-9번이 1150번으로 번호가 변경되고 평택지제역 - 공도 구간만을 운행하게 되는 것으로 노선 변경 예정에 있어 이 경쟁의 최종 승자는 백성운수가 될 뻔 했으나, 안성시 민원으로 인해 2023년 평택 시내버스 개편 계획에서 50번의 노선 단축이 무산되었으며, 번호만 1150번으로 변경되고, 50-9번과 통합되는 선으로 개편이 결정되면서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7. 여담
- 경진여객이 50번을 포기하고 협진여객에게 넘기고 물러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백성운수의 70번이나 370·380번과 협진여객의 1150번의 속도는 여전히 매우 빠르다. 이건 단지 두 노선이 38번 국도나 안성제1산업단지 앞 도로가 매우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어 선형이 우수하고, 수요가 폭발적인만큼 다이어가 과밀되고 빡빡해서 난폭운전하는 경우가 많다. 경쟁을 위해 밟는 것은 이미 옛날 이야기다. 상기했듯 백성운수는 경진여객과 관계가 험악했지 협진여객과는 오히려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며 두 회사가 교류도 꽤 하는 편이다.
- 내막을 보면 꽤 그럴듯한 게 경진여객은 평택시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던 외부인에 불과했으며 그 시절에도 초대형 업체 중 하나였다. 안성시에서 힘들게 농어촌버스 노선을 운행하며 지내던 원주민인 백성운수 입장에선 외부의 거대 자본이 습래(襲來)해 자신들의 터전을 망치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그냥 있으면 털릴 게 뻔한 이상 사생결단을 낼 수밖에 없었다. 반면 50번의 새로운 주인인 협진여객은 자기들도 발 대고 있는 평택시의 향토기업인데다, 서로 덩치도 비슷하니 선빵을 때리기도 서로 힘들어서 적당히 상부상조하는 길을 선택한 것.
- 안성과 평택 모두 다 연고가 없던 경진여객과는 다르게 백성운수는 평택에도 연고가 있다. 70번에서 어렵게 벌어들인 돈으로 평택여객을 출범시켜 평택 서부지역 수요를 공략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협진여객의 본사인 용이동차고지 인근에 협진여객 자회사인 평택운수 본사는 물론이고 백성운수 자회사인 평택여객 차고지도 위치해있어 3개 회사 모두 차고지가 사실상 붙어있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평택여객의 모기업인 백성운수도 묶어서 4개 버스회사가 교류를 굉장히 자주 한다.
- 근래에는 1150번과 70·370·380번끼리 경쟁하는 노선치고는 서로 인사하며 지나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며, 이외에도 혼잡도 완화를 위해 양 측 노선들끼리 우리가 태울 테니 먼저 가라고 서로 양보하며 수요를 분산시키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 신호가 걸리면 두 회사 승무원끼리 창문 열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경우도 다반사.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두 노선과 기사 모두 다 정이 든 모양.
- 하지만 백성운수에서 새로운 자회사가 된 평택여객으로 이직하거나 파견되어 근무하는 기사가 많이 있다. 평택여객은 안중읍을 텃밭으로 영업하는 버스회사로서 평택여객 노선들이 모회사인 백성운수와 경쟁했던 경진여객의 안중행 노선인 8471·8472번과 조우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택여객이 백성운수의 자회사가 된 것과 경진여객이 50번을 협진여객에게 넘긴 시기가 거의 같은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백성운수 출신 평택여객 기사들은 경진여객 차량과 조우하게 되면 상큼하게 무시하거나 화난 표정으로 째려보거나 짜증섞인 감정을 퍼붓는 채 분노의 교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경진여객이라는 회사가 백성운수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나 PTSD를 안겨 준 존재였던 모양. 물론 오늘날에는 경진여객과도 화해한 모양인지 안중에서 8471·8472번과 평택여객 노선들도 종종 손인사하며 교행한다.
- 경기도를 포함해서 민영제 지역에는 버스끼리 경쟁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경기도에서도 1150번과 70/370/380번의 경쟁 외에도 고양시와 파주시에서는 (주)명성의 1000번(고양시)과 신성교통· 신성여객의 2000번(파주시)이 경쟁했던 사례가 있고, 양산시 시내버스의 푸른교통 소속 2100·2300번(양산시)과 울산광역시 시내버스 시내버스공동운수협의회 소속 1127· 1137· 1147번끼리 갈등을 빚었던 부산-울산간 버스경쟁이라는 일도 있다. 1군 고속버스와 지역 시외버스끼리 충돌하는 사례도 있는데 동양고속과 중앙고속이 담당하는 고속버스 서울경부-진주 노선과 부산교통 계열이 운영하는 시외버스 서울남부-진주 노선이라던가 속리산고속과 중앙고속의 고속버스 서울경부-청주고속과 (새)서울고속의 시외버스 서울호남-청주시외 노선끼리 서로 소송까지 갔을 정도로 과격하게 경쟁하는 경우도 있었다.[19]
8. 관련 항목
[1]
왼쪽은
평택 1150번이, 오른족은
안성 70번이 자리하고 있다.
[2]
여기는 예전부터 면허 자체가 천안시 면허였다.
[3]
현재는
KD 운송그룹이 운행한다. 현재 안성터미널의 실 주인이 KD그룹이 되어버린 주된 이유.
[4]
강화선진버스 대표이사인 신명범이라는 설도 있고 제물포교통, 송도버스, 인천선진교통 대표이사인 신기범이라는 설도 있다.
[5]
참고로 5-1번은 본래 안성-평택-송탄-오산-수원-안양-용산(…)으로 이어지던 시외버스를 시내버스로 분할한 노선이었다. 용산터미널이
서울남부터미널로 이전한 이후 관악구로 잠시 운행을 했다가 해당 노선을 분할 후 폐지하고, 안성-
서울남부터미널간 직행을 신설했다.
[6]
참고로 이 기간동안 운행했던 예비차량은 당시 경진여객의 직행버스 차량이었다!!
[7]
참고로 당시 용남고속이 운행하던 시외버스의 상당수는 전초기 시기가 끝나기 전에 노선이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되기에 이른다. 축소된 노선은 현재 KD 운송그룹이 인수했고 끈질기게 용남고속이 잡고 있던 노선들은
병점역-
천안역 간 전동열차 개통 한 달 뒤에 전부 폐지되어버린다. 그 흔적 중 하나가
평택터미널에서
수원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점. 본래 수원터미널-천안터미널·
안성종합버스터미널을 운행하던 완행 시외버스 노선이 있었다!
[8]
평택터미널과 평택역은 바로 옆에 붙어있다. 사실상 같은 교통 거점.
[9]
그래서인지 50번 버스에는 '평택역 정차' 안내판이 붙어있었으나 2023년 7월 이후에는 1150번이 되면서 일부 버스 한정으로 밑에 구 50이 표기되어 있다.
[10]
평택대학교 학생도 당연히 수요층이지만, 상술한 두 대학보단 평택역에 가까워서 그나마 시간 차이가 좀 적었다.
[11]
물론 R/H기준. 하지만 첫차 4시 50분에 막차 24시 5분이라는 전통은 2010년까지도 유지되었다!!
[12]
얼마나 과속을 하냐면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있어도, 지금까지 있던 스피드 때문에 버스를 못 멈추고 그냥 가버린다.
[13]
그리고 백성운수는 안성의 향토업체이다보니 안성시청과의 유착으로 안성시민들과 안성시 면허 버스의 자존심을 지키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인해 안성시청이 뒷배를 봐주거나 암묵적으로 묵인해주고 적발당해도 안성의 정치인·공무원들이 선처해주거나 안성 내 지역 유지들이 단체로 일어나서 백성운수의 무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혹은 회사 차원에서도 안성시청이나 안성경찰서·안성소방서에 뇌물을 주면서 라인을 형성하거나 경찰의 단속지점을 미리 파악해서 단속 적발을 최소화하였으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던 화성의 회사인 경진여객은 지역사회와의 유착이나 노선 연선 지리 파악이 불가능했으니
매복까지 해서 단속하는 경찰에게 기사들이 줄줄이 낚여서 타 지역의 기사들을 교체 투입했음에도 공백을 메우지 못하였다. 경진여객이 표적이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가 저렇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
[14]
현재 경진여객은 안중에서 출발하는
수원 버스 8471, 8472를 운행하고 있다.
[15]
지금은 370-1이 폐선되고
370번과 380번만 남았다.
[16]
50번과 500번에 적절히 돌려쓰려고 했는지 다른 지역 경진여객과는 다르게 진짜 저렇게 했었다.근데 재도색 이전부터 500번에 50번 걸고 다니면서 500번은 존재감이 없었는데
[17]
항상 70번/370번/380번 노선에는 50번에 밀리지 않는 연식의 차량을 배차해둔다. 그 때문에 안성시 최초의 초저상버스가 도입된 지 2년도 안 되어 다른 노선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18]
그래봐야 5분 정도 벌어지지만, 불만은 폭주한다.
[19]
다만 운전 기사들끼리는 사이가 양호한 편인 동양/중앙-부팸과는 달리 속리산-서울/새서울은 서로 이를 갈 정도로 사이가 매우 험악하게 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