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즈음 스위스군은 국방 강화 문제로 인하여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서방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중형전차를 구매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중형전차 구입이 어려워졌다. 이에 스위스군은 급한대로 프랑스로부터
AMX-13을
판처 51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였고, 중형전차는 자국에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1950년부터 30톤대 중형전차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이 전차는 KW 1950으로 이후 나온 문서들에서 불리게 되었다. KW 1950의 설계도는 1950년에 완성되어서 스위스군에 제시되었지만, 스위스군이 이에 만족하지 않아서 1952년에 개선된 설계도가 등장했다. 1952년에 등장한 개선된 설계안은 KW 30 1952로 명명되었다. KW 30 1952은 목업 1대와 실차 프로토타입 1대가 제작되었다.[3]
1953년 봄, K+W 30의 추가 개발을 위한 250만 스위스 프랑의 대출이 신청되었지만, 연방재무관세부의 검토 끝에 거부되었다. 결국 이미 진행 중인 작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발주도 넣을 수 없었고, 6개월간 작업이 중단된다. 하지만 1953년 9월, 군사부는 의회에 K+W 30의 개발 재개를 요청했고, 10월 30일 승인됨으로써 다시 개발이 시작된다.
Panzer 55
1955년,
판처 55의 도입으로 90mm Pz Kan 48이 아닌 20파운더의 장착이 제안되었으나 전쟁 기술부는 K+W 30에 Pz Kan 48을 장착하고, 판처 55 또한 Pz Kan 48로 주포를 교체한다는 계획을 고수했다.
시제품의 조립은 1956년 초에 시작되었고, 1956년 말 구동계통과 화재 진압 시스템, 전기 시스템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완성되었다. 5월 17일에는 견인 및 사격실험을 진행했고, 1958년에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여 판처 58이라고 명명했다. 1957년 1월 1일에는 10대 분량의 재료를 공장에 전달하여 시제품 완성과 동시에 생산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판처 57을 도입하면서 다시 한번 Pak 55 장착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판처 55와 판처 57들의 주포를 전부 90mm Pz Kan 48로 교체하는것도 무리일뿐더러 판처 58이 Pz Kan 48을 장착해도 주포가 두가지로 나뉘어 군수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았기에 결국 초도 양산분에 Pak 55를 장착하기로 결정되었다.
K+W 30/57 I (전)
K+W 30/57 I (후)
1958년 봄에도 프로토타입은 완성되지 못했다. 첫번째 프로토타입에는 구동계통이 설치되었지만 두번째 프로토타입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변속기마저도 설치되지 않았다. 그해 5월, 마침내 첫 번째 프로토타입의 자력주행 시험이 진행되었고, 동시에 10월 완성될 두번째 프로토타입의 제작에 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프로토타입의 변속기가 최고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첫번째 프로토타입이 개선된 차체와 SLM제 변속기를 가진 프로토타입 III로 변환되었다. 1958년 말 시제품 생산 계획은 원래 계획보다 훨씬 뒤쳐져 6개월 가량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비용 또한 급격하게 상승해 1959년까지 두 프로토타입에 사용된 금액은 1,130만 스위스 프랑에 달했다.
K+W 30/57 II
1959년 9월, 마침내 두 프로토타입이 모두 완성되었다. 초도 생산분의
주조 작업은 ¾가량이 진행되었고, 엔진도 수입이 완료되었다.[5] 5대의 판처 58은 1961년 1분기에 인도할 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었고, 이후 3년간 100대를 인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1959년 10월 1일, 판처 58의 두 시제품은 국방위원회에 제출되었고, 11일 뒤 언론에 공개되었다.
테스트를 위해 10,5cm 포를 장착한 K+W 30/57 I
1960년, 첸투리온들이
Pz Kan 60으로의 업건이 결정되었고, 이는 판처 58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판처 58은 원래 250대 양산이 목표였으나 판처 57의 도입으로 인해 100대가 감소한 150대로 변경되었다. 여기에 판처 58에 Pz Kan 60을 장착하라는 명령을 받고 여러 테스트가 진행됭 후 판처 61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이 계획되며 판처 58은 프로토타입 포함 총 12대 생산이라는 적은 양만 생산된다.
스위스군은 1958년부터 1964년까지 판처 58을 운용했다. 양산된 10대의 판처 58중 일부는 프로토타입에서 사용된 9cm Pz Kan 48을 장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판처 58에는 보조 모터 구동과 스티어링 기어 및 전동 라디에이터가 적용되었고, 구동 유닛은 소형 모듈형이다. 그리고 기본 발전기와 전원을 구동하기 위해 4기통 디젤 엔진을 보조 엔진으로 썼다. 주 모터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단거리 보조 연결을 통해서 보조 엔진으로 나머지 장비가 구동 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K+W Thun에서 판처 61로 전환되는 판처 58
이후 60년대 중반에 판처 58의 개량형인
판처 61이 등장하면서 스위스군이 기존에 운용하고 있던 10여대의 판처 58은 모두 판처 61 사양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판처 58의 양산 버전에는 10,5cm Pz Kan 60이 장착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월드오브탱크에서 잘못된 설명을 기재한 것이 널리 퍼진 것이다. K+W 30/57 I, K+W 30/57 II는 모두 9cm Pz Kan 48을 장착했고, 양산형도 소수가 9cm 포를 장착하긴 했으나 나머지는 모두 8,4cm Pak 55를 장착했다. 아마 양산형들이
판처 61로 업그레이드되면서 10,5cm 포를 장착한 것이 잘못 알려진 것 같다. 덤으로 현재 툰 전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것이 2차 프로토타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2차 프로토타입의 차체번호는 M+0872인데 툰 전차박물관의 판처 58은 M+0895이다.
판처 58과 판처 61은 거의 동일하지만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바로 포방패를 보면 된다. 판처 58은 포방패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판처 61에는 포방패를 덮는 방수포가 존재한다. 또한 보기륜에도 차이가 있다.
독일제 엔진을 장착했는데, 스위스가 자국산 엔진을 장착하려는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니다. 원래는 자우러Saurer에서 600마력 엔진을 공급받으려 했으나 엔진 개발에 무려 4년이나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독일에서 엔진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1]
'미틀레러 판처'라고 읽으며
중형전차라는 뜻이다.
[2]
'라이히터 판처'라고 읽는다.
[3]
당시에는 전부 K+W Thun에서 진행된 30톤급 전차 개발이라는 뜻의 K+W 30이라고 불렸으나 이후 구별을 위해 K+W 30 1952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따라서 K+W 30을 제외한 K+W 30/52, KW 30 1950 등의 이름들은 전부 가칭이다.
[4]
앞서 말했다시피 정식 명칭은 K+W 30이지만 보통 K+W 30/57 I또는 판처 58 1차 프로토타입이라고 불린다
[5]
판처 58의 엔진은 독일제를 사용했다. 자세한 사항은 '기타' 항목에서 서술
[6]
일부 자료에는
토션바 서스펜션으로 표기.
[7]
스위스군 최초의 트랜스여성 지휘관. 성전환 후 Christine Hug로 개명함. 2023년 42세의 나이로 사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