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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1:26:52

파플라고니아

파일:아나톨리아 터키_white.png 아나톨리아 고대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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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튀르키예 아나톨리아.jpg

1. 개요2. 역사

1. 개요

튀르키예어 Paflagonya
영어 Paphlagonia 
그리스어 Παφλαγονία

아나톨리아 반도 북부의 옛 지명. 비티니아 폰투스 사이의 흑해 연안 지역에 해당한다. 이사우리아처럼 현지 주민들은 독립성이 강하고 전투 종족 성격이 있어 로마 시기 각종 요직에 등용되었다.

2. 역사

역사가 스트라보에 따르면 파르테니우스 강이 서쪽 경계, 할리스 (크즐으르막) 강이 동쪽 경계를 이루었고 그리스 신화의 파플라곤에서 유래했다 한다. 상고대에는 카슈카 인이 살았고, 파플라고니아의 왕 필라이메네스가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 시의 몇 안되는 동맹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그 후 에네토이라 불리는 파플라고니아 주민들이 반란으로 추방되었는데, 왕자 안테노르가 이끄는 트로이 유민들과 함께 아드리아 해 북안에 정착하여 베네치아의 선주민이 되었다 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일대는 크로이소스 리디아 왕국에 속했다가, 키루스 대제에 정복되었다. 아케메네스 제국 시기 파플라고니아는 필라이메네스의 후손을 자처한 현지 왕공이 자치적으로 통치했고,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의 그리스 원정에 다수의 병력을 파견했다.

디아도코이 시기 파플라고니아는 미시아 카파도키아와 함께 에우메네스에게 귀속되었지만, 척박한 지형 덕에 사실상 계속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기원전 3세기 말엽에는 시노페를 제외한 전역이 폰투스 왕국령이 되었고, 시노페 역시 기원전 183년 복속했다. 기원전 65년의 미트리다테스 전쟁 후 폼페이우스는 해안 지역은 비티니아 및 폰투스 속주에 병합시켰으나 내륙의 산지는 현지 왕공의 자치를 허가했다. 다만 현지 왕가가 단절된 후에는 로마 제국에 완전 병합되었다. 이름만 남았던 파플라고니아는 5세기 무렵 독자적인 속주로 부활했고, 동로마 제국기에는 옵시키온 테마를 거쳐 부켈라리아 테마에 편성되었다가 820년 재차 독자적인 테마가 되었다. 10-12세기에 파플라고니아 출신들이 자주 수석 환관 등 궁정의 요직을 차지하자, 그리스인 민중이 파플라고니아 인들을 사기꾼이라 여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