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코 대전쟁의 레전드 스토리 15장에 대한 내용은 파르테논 신전(냥코 대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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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
1986년 밧새의 아폴로 에피큐리우스 신전 Ναός Επικουρίου Απόλλωνα των Βάσσες |
1987년 델포이 고고 유적 Αρχαιολογικός Χώρος Δελφών |
1987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Ακρόπολη Αθηνών |
1988년 테살로니카의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기념물군 Παλαιοχριστιανικά και βυζαντινά μνημεία της Θεσσαλονίκης |
1988년 에피다우루스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Αρχαιολογικός τόπος Επιδαύρου |
1988년 로도스 중세 도시 Μεσαιωνική Πόλη της Ρόδο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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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미스트라스 고고 유적 Αρχαιολογικός Τόπος Μυστράς |
1989년 올림피아 고고 유적 Αρχαιολογικός Τόπος Ολυμπίας |
1990년 델로스 섬 Δήλο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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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다프니 수도원, 호시오스루카스 수도원, 키오스 섬의 네아모니 수도원 Μονή Δαφνίου, Μονή Οσίου Λουκά και Νέα Μονή Χίου |
1992년 사모스 섬의 피타고레이온과 헤라 신전 Πυθαγόρειο και Ηραίο Σάμου |
1996년 아이가이(베르기나) 고고 유적 Αρχαιολογικός χώρος Αιγών (Βεργίν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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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미케네 ・ 티린스 고고 유적 Αρχαιολογικοί Χώροι των Μυκηνών και της Τίρυνθας |
1999년 성 요한 수도원과 파트모스 섬 요한계시록 동굴 Ιστορικό Κέντρο (Χώρα) της Πάτμου με τη Μονή του Αγίου Ιωάννου του Θεολόγου και το Σπήλαιο της Αποκάλυψης |
2007년 코르푸 옛 시가지 Παλαιά Πόλη της Κέρκυρ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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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필리피 고고 유적 Αρχαιολογικός Χώρος Φιλίππω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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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유산 |
1988년 아토스 산 Άγιον Όρος |
1988년 메테오라 Μετέωρα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글 |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
영어 | Acropolis, Athens | |
프랑스어 | Acropole d'Athènes | |
국가·위치 | 그리스 아테네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7년 | |
등재기준 | (i)[1], (ii)[2], (iii)[3], (iv)[4], (vi)[5] | |
지정번호 | 404 |
파르테논 신전이야말로 지구에 있는 기념물중 으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랄프 왈도 에머슨
1. 개요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 아테네 시에 위치한 거대 대리석 건축물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를 모시기 위해 건설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와 함께 높은 언덕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아테네 안이라면 어디에 있든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인 파르테논(Παρθενών)은 현대 그리스어로는 파르쎄노나스(Παρθενωνας)라고 불리는데, 이는 '처녀'[6]를 뜻한다. 따라서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처녀 신전' 혹은 '처녀 아테나 신전'이라 할 수 있다[7]. 유네스코의 엠블럼이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디자인 됐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역사와 색이 바래지 않는 예술성을 자랑하며, 서양 건축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다.2. 역사
델로스 동맹의 수장 페리클레스가 그리스가 페르시아의 침략자들을 격퇴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건설했다. 기원전 447년부터 기원전 438년까지 9년에 걸쳐서 건설되었다. 완공된 후, 파르테논 신전은 후에 아테네 제국이 될 델로스 동맹의 금고 역할을 수행하였다.2.1. 아테나의 신전
고대 파르테논 신전 (~5세기) |
기원전 3세기 중반 직후 파르테논 신전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지붕과 신전 내부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다. 그로부터 반 세기가 지난 후, 고트족으로 구성된 헤룰리 해적들이 기원전 276년에 아테네 수비대를 격퇴하고 도시를 약탈했다. 이 과정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포함한 아테네의 공공 건물들이 무참히 파괴되었다. 이 파괴에 대한 수리는 700년이 지난 후인 기원후 4세기에 이루어졌으며, 아마도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치세 동안에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해적의 공격으로 붕괴한 대리석 지붕을 대체하기 위해, 기와를 얹은 목조 지붕이 새로 설치되었다. 새로 설치된 지붕은 원래의 지붕보다 더 큰 각도로 경사져있어서 건물의 날개 부분이 외부에 노출되었다.
이후 파르테논 신전은 천 년 동안 아테나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435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제국의 모든 이교도 사원들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려 신전은 폐쇄되고야 말았다. 이교도 사원을 폐쇄하라는 명령은 순차적으로,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이 5세기 중 정확히 언제 폐쇄되었는지는 아직 학계에서 논의되는 중이지만, 대략 481년에서 484년 사이에 제논 황제의 명령에 따라 되었다고 추정한다. 당시 일러스라는 아테네 정치인이 폐쇄된 그리스 신전들을 재개방하고, 그곳에서 그리스 전통의 헬레니즘 의식들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때 제논 황제에 대항하고 일러스를 지지하는 헬레니즘(이교도) 그리스인들이 파르테논 신전을 정치적 거점으로 사용했다. 제논 황제가 이 사실을 알고 파르테논 신전을 즉각 폐쇄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폐쇄가 진행된 후 5세기 어느 시점에서, 파르테논 신전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 중 한 명에게 약탈당했다.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보물과 고대 유물들을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이 유물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약 700년 동안 보관되다가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해 약탈하는 과정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2.2. 마리아의 성당
마리아 성당 시절 파르테논 신전 (5세기~15세기) |
파르테논 신전은 5세기 말에 동방교회 성당으로 전환되어 (동정) 마리아 성당이 되었다. 동방교회 성당 건축의 전통에 따라 정문은 건물의 서쪽 끝에 놓고, 제대는 건물의 동쪽 벽을 향하도록 설치하였다. 이 시기에 신전의 벽에 동방교회의 성화를 많이 그리고 그리스도교적인 비문들을 기둥에 새겼다. 이러한 개조 과정에서 파르테논 신전 고유의 조각품들이 제거되고 위치가 옮겨졌다.
성당은 콘스탄티노플, 에페소, 테살로니키에 이어 동로마 제국에서 네 번째로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1018년, 황제 바실리오 2세는 성당에서 예배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을 상대로 정복전쟁을 일으켰다. 황제는 불가리아 제국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아테네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중세 그리스 문헌에서는 테오토코스 아테나이오티사 신전이라고 언급되는데, 그리스 정교회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다고 나온다.
라틴 제국이 점령했을 때, 약 250년 동안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 이 시기에 지하실의 남서쪽 모퉁이에 망루나 종탑으로 사용되고 나선형 계단을 포함하는 탑이 건설되었고 성당의 바닥 아래에 아치형 무덤이 세워졌다.
2.3. 이슬람 모스크
이슬람 모스크가된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 (15세기~17세기) |
1456년 오스만 제국군은 아테네를 침공했다. 아크로폴리스는 피렌체군이 방어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오스만군에게 1458년 6월까지 저항하다가 항복했다. 오스만인들은 성당을 약 100년 간 정교회의 성당으로 사용하게 했다. 하지만 16세기가 되기 이전에 파르테논 신전은 모스크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아테네가 독립을 위한 반란 음모를 꾸민 죄에 대한 처벌로, 모든 아테네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 가톨릭이 파르테논 신전을 점령했을 때 건설된 탑은 위쪽으로 확장되어 미나렛[8]이 되었고, 민바[9]가 설치되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제대와 상징물들이 제거되었으며, 기존에 있던 성화들을 덮고자 벽을 하얗게 칠하였다.
파르테논 신전이 교회와 모스크로 개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구조는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1667년, 오스만의 여행자 에울리야 첼레비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에 놀라움을 표현했고, 비유적으로 이 건물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묘사했다. 그는 "하늘 그 자체보다 인간의 손이 덜한 작품으로서 신전은 영원히 서 있어야 한다." 하는 시적인 탄원서를 썼다.
2.4. 파괴
화약 발화로 파괴되는 파르테논 신전 |
1684년에서 1699년까지 베네치아는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프란체스코 모로시니가 이끄는 원정대를 보냈다. 오스만인들은 아크로폴리스를 요새화했는데, 이때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 창고로 사용했다. 1687년 9월 26일, 베네치아가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박격포탄을 다수 발포했는데, 포탄 중 일부는 파르테논 신전의 벽을 부수고 내부에 떨어졌다. 떨어진 박격포탄은 그 즉시 신전 내부에 보관 중이던 대량의 화약을 점화시켰고,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파르테논 신전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성소의 4개의 벽 중 3개는 완전히 무너졌고, 5분의 3은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갔다. 복원과 수리를 수차례 거치며 수천 년간 살아남았던 신전의 지붕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남쪽에서 기둥 6개가, 북쪽에서 기둥 8개가 쓰러졌으며, 동쪽에서는 기둥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쓰러졌다. 기둥들이 지탱하던 거대한 아치형 대리석 구조물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그 아래 있던 모든 유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폭발로 인근 오스만 수비대에 대리석 파편이 쏟아지고 주변 건물에 큰 화재가 발생해 많은 집이 파괴되었으며 약 300명이 사망했다. 오스만 군대는 파르테논 신전이 파괴된 직후에 동쪽으로 후퇴하였고, 베네치아 원정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테네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했다.
베네치아의 군대는 파르테논 신전에 화약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정군 대장 모로시니가 붙잡은 오스만군의 탈영병로부터 수비대가 파르테논 신전을 화약고로 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스만군 포로는 베네치아의 군대가 서양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파르테논 신전을 공격 목표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곳을 화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고, 모로시니가 이 정보를 듣고 포병들에게 파르테논 신전을 겨냥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베네치아가 아테네를 점령한 후, 모로시니는 폐허에서 잔존한 예술품들을 약탈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신전은 또 다시 큰 피해를 입는다. 단적인 예로, 그의 병사들이 폭발에서 살아남은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말 조각상을 건물의 서쪽 페디먼트에서 떼어내려고 하다가 땅에 떨어뜨려서 박살을 냈다.
1688년 베네치아는 칼키스에 집결한 대규모 오스만군 병력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후퇴했다. 당시 파르테논 신전과 근처 파괴된 거주지는 완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파르테논 내부에 세워진 모스크의 모습 |
아크로폴리스를 탈환한 오스만 군은 신전의 잔해를 모아 폐허가 된 신전 안에 작은 모스크를 건설했다. 이후로도 바닥에 흩뿌려진 파르테논 신전의 파편들은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한 건축자재로 사용되었다.
2.5. 파괴 이후의 파르테논
1832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가 아테네의 지배권을 얻으면서 미나레트[10]의 눈에 보이는 부분은 철거되었다. 곧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이슬람과 관련된 오스만 제국의 모든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지하실 안에 있는 작은 모스크의 이미지는 1842년 르베르의 여행 다게리엔에 출판된 졸리 드 로트비니에르의 사진에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은 그리스 정부가 통제하는 역사적 구역이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파르테논 신전은 미국/유럽인들에 의해 인류의 위대한 건축물로 널리 여겨졌고, 많은 예술가들의 인기 있는 여행지이자 창작의 주제가 되었다. 현대 그리스에서 파르테논 신전은 매년 관광객 수백만 명을 끌어들이는 관광명소가 되었다.3. 복원
현재 복원 중인 파르테논 신전 |
파르테논 신전 복원은 1975년 그리스 정부가 ESMA(아크로폴리스 보존/복원 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각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된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복원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들을 습득했다. 복원에 필요한 자본은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고고학 전문가들은 파르테논 신전과 고대 아크로폴리스와 관련이 있는 모든 유물과 기록들을 문서화했고, 건축 전문들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복원 후 예상 건축물을 구현하고, 이를 기반으로 작업 방식과 순서를 결정했다. 또한 위원회는 복원 작업 시작에 앞서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중요하고 부서지기 쉬운 조각품들은 모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안치하였다.
가장 먼저 신전의 서쪽에 크레인이 설치됐다. 크레인은 대리석 블록을 옮기기 위해 사용되었다. 고고학자들이 기존에 파손된 대리석 블록을 분해하면, 크레인이 그 블록을 들어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옮기고, 새로 만든 대리석 블록 사본이 기존 블록이 빠진 자리에 놓인다. 무거운 대리석 블록을 놓는 과정에서 신전의 다른 부분을 파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긴 시간이 소요되는 표면 보존 작업이 진행된 이후에 돌을 놓는다. 돌을 교체한 이후에도 돌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서서히 이동하거나, 부피가 임계치 이상으로 변화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 광섬유 센서를 사용한다.
파르테논 내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하실의 북쪽 벽이 2019년에 복원이 승인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지하실의 복원은 신소재 없이 대리석 블록 360개와 펜텔릭 대리석 90개를 사용해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원되는 중이다.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내부에 진입할 수 없으며, 파르테논 신전 근처에 있던 예술품들은 모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자세한 내용은 YSMA(Acropolice Restoration Service) 사이트 https://www.ysma.gr/en/ 참조.
4. 건축
이오니아 양식의 건축적 특징을 가진 도리아식 신전이다. 3개의 지지기반이나 기단 위에 기둥을 세워 만들었다. 다른 그리스 신전처럼 post&lintel 구조로 지어졌다. post&lintel 구조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간이 있고, 기둥 위에 가로로 된 기둥(lintel : 한국 용어 없음)을 올리는 고대 건축 구조이다.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기둥의 상단부에서 거대한 가로 기둥이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건축 구조의 대표 예시로 스톤헨지가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총 25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양쪽 끝에 8개의 기둥이 있고, 측면에 17개의 기둥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바닥의 크기는 69.5 x 30.9 미터이다. 지하실은 길이 29.8m, 너비 19.2m였다. 외부의 도리아 양식의 기둥은 지름이 1.9m이고 높이는 10.4m이다. 파르테논 신전에는 외부 기둥 46개와 내부 기둥 23개가 있었는데, 각 기둥에는 플루트[11] 스무 줄이 있다. 지붕은 거대한 대리석 기와로 덮여있었다. 지금은 위에서 서술한 폭발 사건 때문에 지붕은 완전히 사라졌다.
||
파르테논 신전에서 정교한 그리스 고대 건축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영국의 귀족 출신 대중 역사가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는 파르테논 신전을 두고 "고대 그리스 건축의 정교함은 전설적이었으며, 특히 기단의 곡률, 나오스 벽의 테이퍼, 기둥의 엔타시스 사이의 미묘한 일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엔타시스는 기둥 중앙이 기둥의 상단/하단보다 두꺼운 기둥 구조를 뜻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중앙은 다른 부분보다 4cm 정도 더 굵게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기둥은 멀리서 봐도 기둥이 똑바로 서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지진과 호우에 대비해서 기단[12]이 미세하게 포물선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은 미세하게 안쪽으로 휘어진채로 건설되어있다. 만약 기둥이 하늘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면, 2400m 위에서 기둥들이 서로 만날 수 있다.
동쪽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의 광학적 예술성에 대해서 많은 역사학자들이 논쟁 중이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파르테논 신전이 동쪽 장면에서 바라봤을 경우 역착시[13]가 일어나게끔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인들은 서로 평행한 두 선을, 여러 개의 직선으로 교차시켰을 경우 평행한 두 선이 구부러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알았다. 역사학자들은 파르테논 신전의 천장과 바닥이 원래는 완벽히 평행을 이룬 직선이지만, 기둥들로 인해 구부러지게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이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곡선 건축을 착시현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이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다고 아크로폴리스 연구자 일부가 주장했으나, 최근의 연구는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 비율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5. 관광
- 파르테논 신전에 들어가 단독 티켓도 판매하는데 상당히 비싸다. 2012년 6월 기준 12유로.[14] 그리스 유학생이나 선생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은 무료로 개방, 유럽연합 학생은 6유로로 할인되나 외국 학생은 국제학생증으로만 할인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가격은 그리스 경제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의 일환으로서 2016년 4월부터 변경될 예정. 10월에는 성인 20유로와 학생 10유로. 2018년 11월 기준 통합권은 계절과 무관하게 30유로, 아크로폴리스 단독 입장권의 경우 4~10월 20유로, 11~3월 10유로이며 해당 가격에서 학생은 50% 할인된다. 참고로 ISIC에서 발급하는 국제학생증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 아크로폴리스 통합권으로 디오니소스 극장, 고대 아고라, 씨씨오, 제우스 신전[15]의 입장도 함께 포함하기 때문에 하루 날 잡고 구경하기에도 좋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파르테논과 디오니소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후 3시에 문 닫기 때문에 하루에 다 돌 요량 이라면 무조건 먼저 갔다 와야 한다. 따라서 신전에서 일몰을 볼 수 없다. 참고로 통합권은 구매 날짜를 포함해 나흘간 유효하다.
- 사진촬영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특정한 유니폼을 입고 사진 찍으면 바로 제재를 받는다는 것. 2013년에 단체로 이곳에서 태권도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였더니 바로 제재를 먹고 사진이 전부 삭제조치된 사례가 있다.
6. 기타
- 파르테논 신전은 황금비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
- 파르테논 신전과 똑같은 건물이 미국에 복원되어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7. 유사한 건물
- 거의 똑같은 구조로 세워진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이 고대 아고라 유적지에 남아있는데, 파르테논 신전의 원래 모습을 상상해보고 싶다면 그쪽으로도 가볼 것. 이 건물은 파르테논보단 작고 역시 조각들은 훼손되었지만, 1863년까지 정교회 성당으로 썼을 만큼 건물 구조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헌데 그리스인들은 이 신전을 시시오(Θησείο)라고 부르며 이 주변 지역의 별칭으로도 정착했다. 테세우스의 그리스어 명칭인 시세아스(Θησέας)에서 비롯된 명칭인데 후대 사람들이 이 신전을 테세우스를 위한 사당으로 착각해서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 로마 제국의 신전들 상당수가 그리스 신전의 구조를 답습하여 파르테논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리스인에 비해 비교적 실용성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그리스인이 지은 거대한 공공 건축물과 달리 신전의 크기는 그리스의 것보다 작은 경향이 있다. 또한 로마의 신전이 모두 그리스의 요소를 답습한 것은 아니며, 에트루리아인들의 신전으로부터 영향받은 점도 있다. 프랑스 지역에 남아 잘 보존된 로마의 신전 메종 카레 등이 이러한 사례다.
- 유럽의 근세에 그리스 로마 건축을 이상향으로 삼는 신고전주의 건축이 대두됨에 따라 파르테논 신전은 서양 세계 건축에 있어서 일종의 모범으로 통했다. 따라서 유럽의 영향을 받은 문화권에서는 파르테논(혹은 로마 신전)과 닮은 건축물을 여럿 볼 수 있다. 내부는 양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프랑스 파리의 마들렌 성당 외형은 파르테논을 모델로 지어졌다. 독일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도 이 건물의 외형을 따왔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제2 은행 건물, 연방대법원을 비롯한 많은 관공서 건축물의 외관이 파르테논을 연상케 한다.
-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는 아예 이름도 파르테논으로 같은, 이 건물을 복원하여 원 건물의 재현를 의도한 건물이 있다. 신전 내부의 아테나 여신상까지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
좀 싼마이하다사실은 1897년 테네시주 100주년 기념박람회 개최로 임시로 짓고 나중에 철거하려고 했는데 내슈빌 주민들이 반대하고 관광상품으로 좋을 것이라는 시의회 판단으로 이후 장기간 보관을 위하여 대대적인 재건축을 한 것이다. 위키백과 퍼시 잭슨과 번개 도둑에서 퍼시 잭슨이 히드라를 물리치는 장소로 등장한다.
8. 매체에서
8.1. 게임
8.1.1. 도미네이션즈
청동기 시대의 불가사의로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불가사의/아크로폴리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8.1.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확장팩 로마의 부흥에서 메인 타이틀의 배경으로 등장.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울리는 배경이다. #그리스의 국정 센터의 외형도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하다. 로마의 국정 센터도 유사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
8.1.3. 문명 시리즈
문명 4와 문명 5에 등장한다. 문명 4에서는 위대한 예술가 점수와 많은 양의 문화를 매 턴 제공하고, 모든 도시의 위인 생성 속도를 증가시킨다. 위인 중심의 플레이를 할 것이라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위인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건설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애매하다는 평을 받는다. 문명 5에서는 문화를 제공함은 물론 이미 걸작이 배치된 걸작 예술품 슬롯 하나를 제공하여, 많은 양의 문화와 소량의 관광을 얻을 수 있다.8.2. 기타
9. 갤러리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5]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6]
파르테노스는 주로 여성에게 쓰이는 말이지만, 드물게 남녀 공용으로 쓰인다.(예:
신약성경
고린토 1서 7장 25절)
[7]
파르테논 신전은 훗날 동정
마리아(처녀 마리아), 곧 '파르테노스 마리아(Παρθένος Μαρία)'에게 봉헌된 성당이 되었다.
[8]
이슬람 모스크 부수 건물로 그림에서 위로 튀어나온 긴 기둥이다.
[9]
모스크에 설치되는 석재/목재 설교집이다.
[10]
이슬람 모스크의 부수건물
[11]
기둥에 세로로 길게 파인 홈
[12]
기둥을 바치는 네모난 돌
[13]
reverse optical illusion: 평행선 교차 착시를 구글에 검색하면 사진이 나온다.
[14]
한화 약 17500원.
[15]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새로운 곳으로 이전한 이후로는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