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파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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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 스퍼스 기록 보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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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던컨 (Tim Duncan) - 1392경기 (1997~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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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 스퍼스 영구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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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 00 | No. 6 | No. 9 | No. 12 | No.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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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파커 (Tony Par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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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빈슨 (David Robinson)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토니 파커 | |
헌액 연도 | 20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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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샌안토니오 스퍼스 No. 9 | |
윌리앙 앙토니 파르케 주니어 William Anthony Parker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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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5월 17일 ([age(1982-05-17)]세) |
벨기에 브뤼헤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INSEP[3] High School |
신장 | 188cm (6' 2") |
체중 | 84kg (185 lbs) |
윙스팬 | 198cm (6' 6")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드래프트 |
2001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8순위 샌안토니오 스퍼스 지명 |
소속팀 |
파리 바스켓 레이싱 (1999~2001) 샌안토니오 스퍼스 (2001~2018) 샬럿 호네츠 (2018~2019) |
등번호 | 9번 - 샌안토니오 / 샬럿 / 프랑스 농구 국가대표팀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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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의 前 농구 선수.벨기에 출신 프랑스인[4]으로, 낮은 드래프트 순위로 NBA에 입단했으나, 꾸준히 성장한 결과 팀 던컨, 마누 지노빌리와 같이 2000년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황금기를 이끈 빅 3의 일원이었다. 실적이나 경기력 모두 탑 클래스의 포인트 가드지만, 스퍼스가 사실 파거의 입단 때부터 이미 강팀이었고 던컨이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주목도가 낮은 편이었다. 이 문서 역시 올스타급 가드 중에서 상당히 늦게 작성되었다.
NBA가 75주년을 맞이하면서 올타임 유럽선수들을 뽑았는데 퍼스트팀에 들면서[5] NBA가 인정하는 유럽 선수 5위안에 들었다.
2. 커리어
2.1. NBA 이전
토니 파커의 아버지는 시카고 로욜라 대학의 농구 선수였고 어머니는 모델이었다. 파커는 본래 축구를 좋아했으나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보고 반해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추어 리그에서 2시즌 활동한 다음 프랑스 리그의 프로 팀에 입단했다. 2000년 나이키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파커가 활약하는 모습을 본 NCAA의 몇몇 대학이 접촉을 시도했으나 프랑스에 남았다가 2001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다.2.2. 신인 시절
파커에게 관심을 가졌던 건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뿐이었고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 결과 28픽까지 내려온 파커는 무사히 샌안토니오에 입단했다.[6] 루키 시즌부터 파커는 주전 포인트 가드로 뛰면서 평균 9.2득점 4.3어시스트 2.6리바운드라는 성적을 기록하고 루키 퍼스트 팀 자리를 차지했다.2002-03 시즌에 전 경기 스타팅 멤버로 나선 파커의 평균 득점은 15.5점으로 크게 향상되었고 팀 역시 던컨의 활약으로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면서 데이비드 로빈슨을 떠나 보냈지만 파커는 경험 부족으로 플레이오프 동안 안정적이지 못한 플레이로 팬들에게 까였던데다 감독인 포포비치에게 신나게 욕을 먹었으며 이 일로 파커는 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2.3. 발전
우승 다음 시즌에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막혀 백투백 우승에 실패했으나 2004-05 시즌 평균 16.6득점 6.1어시스트 3.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그에 적응해 갔고, 스퍼스는 다시 한 번 2005 NBA 파이널에 진출해 디펜딩 챔피언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맞붙었다. 빡빡한 수비를 자랑했던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 파커는 고생했지만 정점에 도달한 던컨, 2002년에 합류한 마누 지노빌리와 같이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다시 우승 반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2005-06 시즌에는 야투율이 54.8%에 달하는 활약을 하면서 생애 첫 올스타로 선발되었고[7] 이듬해에는 물에 오른 기량을 바탕으로 다시 서부를 정복하고 2007 NBA 파이널에 진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만났다. 르브론이 수비에 꽁꽁 막힌 사이 파커는 시리즈 평균 24득점 이상을 올리며 맹폭, 클리블랜드를 4-0으로 완파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인 최초로 NBA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8]
2.4. 베테랑이 되고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빅3 중 던컨과 마누가 30줄이 꺾이면서 노쇠화가 시작된 반면 나이가 조금 더 어린 파커는 후배 포인트 가드인 크리스 폴, 데런 윌리엄스, 라존 론도, 데릭 로즈, 러셀 웨스트브룩 등에게 꿀리지 않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샌안토니오 프랜차이즈 어시스트 리더는 토니 파커였으며, 득점 역시 역대 4위에 도달한 상태였다.파업이 있었던 2011년에는 잠시 프랑스 리그에서 뛰기도 했었다. 2012-13 시즌에는 All-NBA 퍼스트 팀에 들 만한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발목 부상으로 한 달 정도 결장을 해 퍼스트 팀 자리를 놓치기도 했으나 무사히 팀에 복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3.0득점 7.2어시스트를 찍으며 LA 레이커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차례로 격파, 6년 만에 다시 2013 NBA 파이널 무대에 도착해 마이애미 히트와 만났다. 그러나 3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데다 르브론 제임스의 마크에 막혀 제 컨디션을 모두 낼 수 없었고, 스퍼스는 7차전에서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2013년 NBA 시즌이 끝나고 프랑스 대표팀 소속으로 유로 바스켓에 참가해 종횡무진으로 활약해 결승에서 리투아니아를 격파해 프랑스의 첫 유로 바스켓 대회 우승을 이끌며 MVP까지 차지했다. 다만 그 여파로 2013-14 시즌엔 전 시즌보다 부진한 시즌을 보내기도. 그래도 팀이 우승을 차지했으나 다음 시즌인 2014-15 시즌엔 하락세가 좀 더 뚜렷해졌다...
나이 때문인지 2016-17 시즌 초반에는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이 초반에도 햄스트링 부상 및 잔여 부상들을 달고 있었다.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은 더 이상 없었고, 수비에는 확실히 구멍이긴 했지만 게임 리딩을 할 만한 포인트 가드가 없었던 지라 여전히 기용되고 있었다.[9] 물론 스퍼스 시스템 자체가 한 선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고 벤치 멤버들의 활용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크게 체력을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대략 25-27분 사이를 뛰며 팀을 이끄는 역할로 자리 잡은 듯 했다.
4월 15일 멤피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첫 경기에서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18득점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며 건재함을 과시했는데, 문제는 요즘 리그가 포인트 가드 중심이라 앞으로 어떤 팀을 만났든 그 팀들의 포인트 가드들이 다 들 하 나 같 이 전 부 괴 물 들이라 파커의 고생은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그나마 조금 만만한 수준이 마이크 콘리, 조지 힐, 라존 론도, 그리고 제프 티그 정도임을 감안하면...
하지만 1라운드에서 정말 좋은 활약을 보였고 팀은 4-2로 시리즈를 승리하며 1라운드를 돌파하여 2라운드에서 휴스턴 로키츠를 만났으나... 휴스턴과의 2차전 경기 4쿼터에서 파커는 허벅지 부상을 입어서 경기에서 아웃되었고 스퍼스는 2차전을 승리하여 시리즈를 1-1 원점으로 돌려놓았으나 파커의 부상으로 인해 크게 기뻐할 수 없었고, 결국 수술로 인해 시즌 아웃되면서 모든 스퍼스 팬들은 매우 슬퍼했다. 파커 개인으로서도 플레이오프에서 4,000득점과 1,000어시스트를 달성한 역대 4번째 선수가 된 경사스러운 날에 이런 부상을 당했으니 더욱 속상했었다.
2018년 7월 6일 17년간의 정들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떠나 2년 1000만달러에 샬럿 호네츠와 계약 후, 2019년 6월 10일 마침내 파커가 은퇴를 발표했다. 최근 20시즌을 채우고 은퇴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다음 시즌 계약 옵션이 있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전적은 경기당 평균 15.8 점 / 5.7 어시스트.
은퇴 후에는 농구 관련 교육 사업과 고향 리옹에서 운영중인 농구팀 관리에 집중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로써 스퍼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3 인 방은 모두 은퇴하게 되었다. 은퇴 선언 전 샌안토니오에서 이미 던컨과 지노빌리와 식사하면서 은퇴 의사를 밝혔고 모두들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선수 시절부터 지분을 보유해온 ASVEL 리옹 농구팀의 구단주 및 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9년 11월 11일 스퍼스와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홈 경기 행사에서 그의 등번호 9번이 영구결번되었다.
2023년에는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 초중반에 같이 NBA에서 활약하였던 다른 레전드 선수들인 디르크 노비츠키, 파우 가솔, 드웨인 웨이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감독이자 사장, 그리고 파커의 은사인 그렉 포포비치와 함께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특히 파커, 노비츠키와 가솔은 유럽인으로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NBA의 탑급 플레이어였다는 공통점이 있는 선수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세 선수가 2023년에 같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 프랑스의 전설
프랑스 농구 역사에서는 사실상 전설적인 선수로 현존하는 프랑스 역사의 최고 농구선수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대표팀에 매번 뛰려고 했던 마누 지노빌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모든 국가 대표를 뛰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0년에 이미 20세 미만 선수들이 뛰는 유로 르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고, 유로바스켓에 여러번 참가하였으며 2013년 금메달, 2011년 은메달, 2015년에 동메달을 따는 등 강한 프랑스 팀을 이끌었다.2012년에 프랑스의 프로 농구팀인 ASVEL의 소액 주주로 있었다가 2014년에 대주주가 되었고, 지금은 사장으로 부임중이며 이 프로팀은 여러 차례 우승을 거두는 등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21년에 빅터 웸반야마의 잠재력을 보고 그와 계약하기도 했다.
실제로 빅터 웸반야마와 스퍼스의 인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스퍼스가 1픽을 얻고 빅터를 선택하자 그를 환영해주고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NBA 챔피언 4회 (2003, 2005, 2007, 2014) NBA 파이널 MVP (2007) 올-NBA 세컨드 팀 3회 (2012-2014) 올-NBA 서드 팀 (2009) NBA 올스타 6회 (2006-2007, 2009, 2012-2014)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2) 올타임 NBA 유로피언 퍼스트팀 NBA 스킬스 챌린지 챔피언 (2012) NBA 슈팅스타스 챔피언 (2006) 유로바스켓 금메달 (2013) 유로바스켓 은메달 (2011) 유로바스켓 동메달 2개 (2005, 2015) 유로바스켓 MVP (2013) 유로바스켓 득점왕 2회 (2011, 2013) FIBA 유럽 U-18 챔피언십 MVP (2000) 프랑스 리그 라이징 스타 어워즈 (2001)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3) |
5. 플레이 스타일
데뷔 초에는 전형적인 드리블러이자 듀얼 가드였지만, 이후 기량이 꾸준히 발전하여 6~7년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상급 포인트 가드로 꼽히기 시작했으며, 무려 10년차가 넘어 리그 No. 1 포인트 가드를 다투는 위치까지 올라선 대기만성형 선수. 커리어 초반에는 '난 림밖에 보이지 않아' 스타일의 닥돌형 선수였다. 돌파가 뛰어나고 득점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동시에 돌파만 잘한다는 혹평을 받았으며 스퍼스의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10]라는 정교한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떨어져 포인트 가드 본연의 역할 수행에 미숙하고 BQ가 의심되는 플레이를 많이 했다. 또한 기복이 심해서 국내에서는 이름과 관련하여 욕설이 섞여서 불릴 정도.[11] 데뷔 때부터 파커를 보아온 대부분의 팬들이 오늘날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이 정도까지 클 줄은 예상 못했다." 농담 아니라 진짜로 전호장이랑 플레이가 똑같았다.일단 엄청난 순발력과[12] 바디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돌파 후 페인트존 득점력은 데뷔 때부터 그의 대표적인 장점으로,[13] 매치업 상대로 수비가 약한 선수가 붙을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영혼까지 털어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레이업 및 플로터[14] 마무리 능력은 NBA 포인트 가드들 중 단연 최고 수준. 특히 특유의 러닝 플로터는 거의 경지에 오른 수준이었는데 플로터는 높게 띄워올리는 퀵릴리즈의 푸시샷인 만큼 대체로 자유투라인 안쪽에서 상대의 블락을 피할 요량으로 던지는게 일반적이다. 플로터라는게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타이밍에 휙 올려놓는 것이기에 거의 손끝감각에만 의존해야하고 안정적인 슛폼으로 던지기도 힘들다. 태생적으로 슛거리가 짧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파커는 그런 러닝 플로터를 과장 조금 보태어 롱투거리에서도 던졌고 적중률까지 높았다.[15] 만일 파커가 플로터라는 무기를 장착하지 못한 채로 페인트존 득점에만 의존하는 단신가드로 커리어를 보냈다면 골밑에서의 잦은 컨택으로 부상을 당하거나 단선적인 플레이가 읽히면서 원툴 플레이어로 벤치멤버나 겨우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더 파고 들어서 페인트존 레이업이겠지?' 라고 상대가 예상할 때 갑작스런 이지선다를 걸 수 있는 플로터의 존재는 공격에서의 위력을 배가 시켜주었고 부상위험도 줄여주었다.
파커의 성장에서 역시 팀 던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안그래도 리그 정상급 퍼스트스텝을 가진 파커에게 리그 최고의 롤맨이자 스크리너인 던컨이 붙어 있으니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 던컨의 스크린이 없어도 파커의 퍼스트스텝은 위력적인데 던컨의 거대하고 타이밍 좋은 스크린까지 피해야 하니 사실상 페네트레이션 레인을 열어주고 디펜스를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위력적인 퍼스트스텝을 바탕으로 페네트레이션 위주의 경기를 하는 단신가드들 대부분이 부상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한 커리어를 보내고는 하는데 파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플로터에 더해 던컨이라는 강력한 보디가드가 옆에 붙어 있었기에 큰 부상이슈 없이 롱런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언젠가부터 안정적인 중거리 풀업 점프 슛이 장착되면서 팀 던컨과의 콤비 플레이도 더욱 강력해졌다. 파커가 있는 스퍼스 모션 오펜스의 시작은 던컨과의 픽 앤 팝을 통해 1선 수비를 벗겨낸 뒤, 노 마크에서 공을 잡은 던컨이 나머지 팀원들의 포지셔닝을 이용해 패스를 돌려 상대 수비를 소몰이하듯 휘두르고, 그렇게 난 노 마크 3점 슛을 나머지 3명이 성공시키는 전형적인 모션 오펜스이다.
던컨이 족저근막염 부상 이후 팀의 절대적인 No. 1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사실상 1옵션으로 꾸준히 기용되며 판단력과 패싱, 게임 운영도 원숙해졌으며, 확률 높은 중거리 점퍼를 장착하면서 무리한 공격이나 볼 호그 짓을 안 하게 되어 기복도 적어지고 턴오버도 적은 꾸준한 선수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클러치 상황에서 결정적인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배짱도 있고 폭발력도 여전했다.
풀업 점퍼를 던지긴 하지만 안정적인 3점 슈터가 아닌 것 빼고는[16] 약점이 거의 없는 선수이고 탑 포인트 가드임에는 분명하지만, 철저한 팀 오펜스를 중시하고 수수한 플레이로 유명한 샌안토니오 특성 및 분명히 잘하긴 하는데 뭔가 임팩트가 적은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이 맞물려 비슷한 수준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인기가 좀 없다.[17] 그렉 포포비치가 주전들의 출장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는 스타일이라 별로 오래 뛰는 편이 아님에도[18] 2012-13 시즌 평균 20.3득점, 7.6어시스트, 3.0리바운드, FG 52.2%, 3P 35.3%, FT 84.5%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All-NBA 2nd 팀에 선정되었다.
동시대에 비슷한 유형의 가드로 새크라멘토 킹스의 마이크 비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천시 빌럽스가 있다. 이 두 선수 모두 파커와 마친가지로 접전 상황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차 스탯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당대 최강이였던 샤크, 코비의 레이커스 시절에 대항하는 팀들의 엘리트 포인트 가드였다.
6. 기타
- 2015년 유로바스켓 대회에서 대회 통산 득점 1위를 차지했다.
- 2012 런던 올림픽 직전 클럽에 놀러 갔다가 리아나의 남친 크리스 브라운과 래퍼 드레이크의 싸움에 휘말려 유리병으로 눈을 강타당해 눈 부상을 입고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아서 호위를 받으며 가는 등 험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 그의 모습을 본뜬 레고 미니피겨가 레고 스포츠 시리즈 3561 제품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다.
-
준수한 얼굴과 패션 감각의 소유자로
맥심에 나오기도 했다. 미모의 연상 여배우인
에바 롱고리아와 결혼해 뭇 남성들의 질투를 샀는데[20], 동료 브렌트 배리[21]의 아내와 바람피우다가 3년 만에 이혼했다. 그래도
SNS를 보면 에바 롱고리아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스퍼스를 응원하는 듯하다. 이미 파커와 사귀기 전부터 스퍼스 팬이었다고 한다.
- 한 관중이 토니 파커의 불륜으로 인해 이혼 절차가 진행중인 에바 롱고리아의 전신대를 들고와 자유투를 방해했다 실제로 토니 파커는 이것을 보고 적잖이 멘탈이 흔들렸는지 자유투 2개를 모두 실패했다.
- 이혼 후 2011년에 데이트를 시작한 여자친구 악센 프랜시과 결혼했다. 2014년 첫 아이인 아들 조쉬 파커를 낳았다. 2016년 2월 둘째 아들 임신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20년 8월, 이혼 소식이 들렸다. 파커에게는 두 번째 이혼.
- 2016년 5월 7일 펼쳐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 3차전에서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의자에 앉아서 작전 지시를 하는 것이 국내 NBA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자기 마음대로 앉은 건 아니고, 포포비치 감독이 지금 상황에선 자기가 지시하는 것보다는 파커가 지시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자리를 비워준 것이라고.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프랑스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 데뷔 초기, 그리고 전성기가 오기 전까진 감독이었던 포포비치에게 갈굼을 정말 많이 당했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그게 큰 효과를 본 것인지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고 나중에는 경기가 어느 정도 기울었다 싶으면 포포비치가 그냥 벤치에만 앉아 전체적인 경기운영 자체를 일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 2020년 9월 10일, Rainbow Six World Cup의 초대 홍보대사가 되었다.
- 넷플릭스에 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업로드되었다. 샬럿 소속의 마지막 시즌에 촬영되었다.
- NBA 75주년 팀에는 뽑히지 못했는데 드와이트 하워드만큼은 아니지만 꽤 논란이 있다. 4번의 ALL NBA 입성과 3개의 세컨팀, 1개의 서드팀, 6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4번의 우승과 파이널 MVP을 수상한 선수이기에 아예 1옵션으로 팀을 파이널에 진출시키지 못한 데미안 릴라드나 카멜로 앤서니보다는 낫지 않냐는 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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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바스켓 득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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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바스켓 MVP & 득점왕 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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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 national du sport, de l'expoertise et de la performance의 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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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 어머니는 네덜란드인. 파커는 벨기에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린 시절 프랑스 파리로 이사를 해서 유년기를 보냈고 15세의 나이에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이후 프랑스 대표팀에서 맹활약했다.(http://www.france24.com/en/20160803-rio-olympics-tony-parker-chases-medal-nba-basketball) 미국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선천적인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10대 후반 NBA에 드래프트 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다 보내고 프로 데뷔까지 한 완벽한 프랑스인이다. 현재는 미국-프랑스 이중국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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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돈치치,
야니스 안테토쿤포,
파우 가솔,
디르크 노비츠키,
토니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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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장족의 발전을 거쳐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터지면 좋고 안 터지면 말고에 가까운 픽이었다. 당시 드래프트 뎁스가 나쁜 것도 아니었고 파커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원석에 가까웠기 때문에 스퍼스 입장에서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파커는 패스 위주의 정통 포인트 가드가 아니라 득점과 패스를 같이 하는 듀얼 가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듀얼 가드는 주가가 매우 낮았고 파커는 아직 만 19세의 어린 유망주, 심지어 유럽 선수라 정보도 많지 않았다. 상위픽으로 뽑힐 리가 없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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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때도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파커의 자격 논란과 더불어 "그렉 포포비치가 올스타전 감독이라 뽑아준 것 아니냐"는 다소 어이없는 음모론이 돌았는데, 이게 왜 어이없냐면 파커가 뽑힌 올스타 감독 추천 자리는 올스타 감독을 제외한 29개팀 감독의 추천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포포비치는 파커에게 표를 던질 수조차 없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여담으로 올스타 주전은 다들 알다시피 팬투표이며, 부상으로 인한 대체 선수는 총재가 직접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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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까지 유럽인 NBA 파이널 MVP는 파커와
디르크 노비츠키,
야니스 안테토쿤포, 그리고
니콜라 요키치 단 넷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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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밀스가 포가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포가이기보다는 활력을 불어넣는 식스맨스러운 역할이 더 크고, 또 다른 포가 디욘테 머레이는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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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얘기하면 스퍼스는 전통적인 프린스턴 오펜스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큰 맥락에서 보았을때 모션 오펜스의 일종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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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를 변경한 X커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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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때는 NBA에서 가장 빠른 선수중 하나로 매번 언급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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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 시즌에는 페인트 존 득점 NBA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6-2의
포인트 가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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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Tear Drop이라고 불리는 샷의 마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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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감각으로만 따지면 역대를 논할 스테픈 커리가 이따금씩 먼거리에서 플로터를 집어넣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파커만큼 자주 던지지 않을 뿐 커리의 플로터 완성도 또한 파커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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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주전
포인트 가드들은 적어도 경기당 3회 이상의 3점 시도를 하지만, 파커는 1회 정도밖에 안된다. 물론 이것도 스퍼스의 시스템상 탑의 가드보다는
스윙맨들의 코너 3점을 주력으로 활용하는 스퍼스의 모션 오펜스 시스템 영향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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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임팩트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지금처럼
듀얼 가드가 NBA의 대세가 되기 이전, 대세는커녕 듀얼 가드 활용법이 제대로 연구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기피하기까지 하던 리그 트렌드에서 벗어난 득점 위주 포인트 가드였던 점이 크다. 특히 정통 포인트 가드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은 한국에서 파커가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된 원인. 듀얼 가드가
시즌
MVP까지 차지하게 된 최근에는 이런 스타일 때문에 생기는 평가절하는 상당히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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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당 30~32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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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는 파커가 다리에 큰 부상을 당했을때 먼 길을 날아와서 파커의 재활을 도와줬었다. 파커의 명예의 전당 입회식때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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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고리아는 2006년 당시 인터뷰에서 "불이 꺼지면 그가 (파커가) 선생님이고 난 학생이다"라고 해서 파커의 잠자기 스킬을 칭찬한 적이 있다. 물론 이건 이전에 본인이 "사랑 관해선 내가 경험많은 쪽이죠"라고 한 걸 확대해석해서 파커의 잠자리 스킬이 형편없다는 설이 돌자 이에 대한 반박으로 한 얘기라, 당시 남편이었던 파커를 띄워주려고 한 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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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릭 배리의 아들. 1995년 클리퍼스에서 데뷔하여 14시즌을 뛴 후 2009년 로케츠에서 은퇴했다. 1996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자유투 라인 점프 후 덩크슛을 성공시켜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2022년 현재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농구 운영 부사장(Vice President of Basketball Operations)을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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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명을 뽑고 다섯명은 퍼스트팀, 나머지 다섯명은 세컨드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