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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없음 |
제호 | 결황제(缺皇帝) |
휘 |
쿠츨루크(Küčülüg) 커추루커(克出魯克) / 취추뤼(曲出律) 굴출률(屈出律)[1] / 곡출률(曲出律)[2] 고출로극(古出魯克)[3] 쿠츨루크 칸(Kūchuluk Khān) |
부왕 | 타이양 칸(太陽汗) |
생몰년도 | 1156년 ~ 1218년 |
재위 기간 | 1211년 ~ 1218년 |
종교 |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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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요의 제4대 황제이자, 요나라의 제17대이자 마지막 황제. 이 결황제는 서요의 국호는 유지했으나 요의 황제 가문이었던 야율씨족이 아니라 나이만족의 왕자이자 타이양 칸의 아들로 야율씨족으로부터 황위를 찬탈해서 황제가 되었다.탐욕스러운 성격으로 악명높았다. 그리고 나이만의 고유 종교였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신봉했다. 하지만 이후 서요의 국교인 불교로 개종해 다른 나이만인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된다.
2. 생애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성장하자, 칭기즈 칸의 숙적이자 의형제(안다)였던 자무카[4]의 부추김을 받아 몽골 초원의 패권을 둘러싸고 그들과 다투지만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참패하고 아버지 타이양 칸마저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쿠츨루크는 몽골군의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도주했는데 서요에서 그를 받아주어 서요의 망명객 신세가 된다. 서요의 황제였던 야율직로고는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딸을 시집보냈을 정도로 우대해줬지만 도리어 쿠츨루크는 야율직로고를 폐위시키고는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저질렀다.[5]한편 그는 원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지만 서요에 망명한 후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요의 국교였던 불교로 개종했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교를 끔찍히도 싫어했고 황제가 된 후 이슬람교를 탄압하고 이슬람교 신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인심을 잃은데다가 그가 불교로 개종하자 그와 함께 서요에 귀화했던 나이만인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6]
이때 제베가 이끄는 몽골군이 서요에 쳐들어오자 그의 폭정에 불만이 폭발한 서요의 백성들이 수도 발라사군의 성문을 열어버렸고, 몽골군은 손쉽게 발라사군을 접수하면서 결국 거란족 최후의 국가였던 서요는 멸망하고 말았다. 한편 쿠츨루크는 간신히 탈출해 파미르 고원 쪽으로 도망갔지만 결국 바다흐샨 주에서 몽골군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다.[7][8]
[1]
요사.
[2]
원사(元史).
[3]
원조비사(元朝秘史).
[4]
이 당시의 자무카는 토그릴 칸에게 패배한 후 나이만 족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5]
그러나 쿠츨루크는 야율직로고의 목숨을 곧바로 뺏진 않았고, 야율직로고는 2년 동안 명목상으로 태상황 대접을 받으며 살다가 사망했다.
[6]
당시 나이만인들은 모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고 있었다.
[7]
쿠츨루크는 몽골에 붙잡혀 목숨을 잃었기에 '결제'로도 불린다.
[8]
사실상 이 시점에서 거란족의 국가는 모두 멸망했다.
동요는 이미 1215년 몽골 제국에 복속되어 명목만 유지하는 상황이라 자립성이 없었고 쿠츨루크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후요의 야율함사도 자결하여 멸망하기 때문. 애초에 동요와 후요는 제대로 된 국가라기보단
금나라에 대항해 일어난
요나라 부흥운동에 가까웠다. 그나마
쿠틀루그 칸국이 요나라 황실이 세운 나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