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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1:56:00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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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비판점
2.1.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2.2. 출처없는 독자연구
3. 기타

1. 개요

나그네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2004년에 쓴 삼국지 인물 평론 도서다. 작가의 본명은 이형근으로 부친이 남자중의 남자가 되라고 대한민국 군번 1호로 유명한 이형근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까지 똑같다고. 1973년생.

'삼국지를 좋아하는 이라면 나그네를 모르는 이가 없다'라는 도발적인 홍보문구를 사용했다.[1]

2. 비판점

2.1.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

이런 류의 책에서 작가의 주관을 100%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일정한 기준을 갖고 있다면 그래도 또다른 해석으로 볼 여지는 남는데, 이 책은 저자가 좋아하는 인물은 정사고 연의고 뒤섞어 놓은 후 좋은 면만 가져와 과찬을 하지만, 싫어하는 인물은 역시 정사고 연의고 나쁜 이야기만 모아와서 폄하를 한다는 아주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 밖에도 기본적으로 연의와 정사의 구분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서황은 정사에선 사인이 없이 죽었다지만, 연의에서는 맹달에게 죽었는데 나그네가 서황까라서 죽었을 때 겨우 맹달 따위에게 죽었다고 깐다. 어떤 인물을 논하느냐에 따라서 폄하한 인물도 끌어올리고, 찬양한 인물도 끌어내릴 때는 가차없이 끌어 내린다.

누가 결국 '당신의 평은 연의기준이냐 정사기준이냐' 따지니까 내놓는 대답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고정관념 타파가 기준입니다. 제 글은 연의기준이다 정사기준이다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고 저러한 예가 있으며 우리가 일관적으로 고정적으로 생각한 그런 사람만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독자의 기준이고, 제가 하는 것은 보편타당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라고 질의를 드리는 것이지요.

정사와 연의를 구분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인용하는 시점에서 연구자가 갖출 태도가 아니다. 연의 역시 많은 자료를 통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니만큼 정사 연구의 중요한 참고자료이기는 하지만, 정사와 연의의 기록을 합당한 기준도 없이 골라잡기 하는 건 당연히 잘못된 일. 흡사 조선시대 연구하면서 2000년대 만들어진 사극을 가지고 실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나그네 본인의 독선적인 태도 또한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도 주장했던 여포 이민족설을 가지고 " 여포는 아무튼 이민족 맞다" 라는 식으로. 심지어는 전위가 죽게되는 원인인 추씨 장수의 형수이고, 장수가 추씨를 조조에게 소개한 것은 형사취수로 자기 부인 삼으려고 했다가 소개한 것이 틀어진 것이라는 썰을 푼 적도 있다. 당연하지만 추씨는 장수와는 숙질지간인 장제의 부인이니 장수에게는 숙모뻘된다.

유비는 천하를 속인 사기꾼이라고 폄하하며,[2] 조조도 부정적인 시선이지만 유비보다는 조금 쳐준다. 정사에서나 연의에서나 훌륭한 인물인 제갈량은 까도 너무 깐다.

원소가 연의에서 유비의 구원요청을 단지 자신의 아이가 병이 났다는 이유로 원군 요청을 거절한 것이 자신의 처자까지 팽개치며 독하게 대업을 이루려는 조조나 유비보다 더 인의롭다는 이유로 소시민적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공손찬은 이민족에게까지 인망이 높던 유우를 사소한 구실로 죽였던 인물인데, 이를 소시민적이라고 추켜세우는 점은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거기다가 공손찬의 폭정+사람 자주 죽이기+이민족은 무조건 조지기 등으로 인해 그의 통치 지역에서 이민족 침략+반란이 자주 일어났다는 점도 생각 안한다. 결정적으로 공손찬과 원소가 중소규모의 군주라는 망언은 삼국지를 제대로 읽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3]

노숙이나 비의같은 A- 급 무장들은 또 별 이유없이 과찬한다. 하지만 노숙을 단순히 A- 급으로 단정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근거가 부족하다. 기존의 편견에 대해, 과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숙에 대한 평가는 분명 다르게 볼 여지는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별 근거 없이 칭찬을 해서 오히려 정말 그런가? 라는 의문만 준다.

2.2. 출처없는 독자연구

가끔 뻔히 아는 사실을 숨겨진 사실인 것마냥 묘사할 때도 있다. 조조와 원소가 어렸을 때 가까운 사이라는 건 이문열 삼국지에도 실렸을 정도로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인데, 나그네는 마치 이게 삼국지 연구의 중대한 전환을 가져온 발굴인 것마냥 묘사한다.

그리고 나그네가 주장한 결론은 '조조가 원소에게 컴플렉스가 있어서 이를 기반으로 성공함'이었다. 중상시 조등의 손자라 60대 할아버지들이나 얻을 자리를 20대에 얻은 조조가 외모면 몰라도 무슨 신분에 컴플렉스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실권자들인 십상시들조차 자기들을 환관으로 만들어준 존재가 바로 조등이니만큼 그들조차 그 의붓손자인 조조에게 꼼짝못했을 정도로 조조의 신분적 위세는 실로 막강했다. 실제로 저자가 고려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별개로 두고, 원소와 조조의 집안으로 치면 이야기가 많이 복잡해진다.

일단 원소 우위로 보면 원소의 가문은 사세삼공의 명문이고, 반면 조조의 경우 조부 조등은 평판은 좋았으나 환관이고 부친은 말할 것도 없는 막장관료였으니 둘 모두가 소속되어 있던 청류파 내부에서는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원소는 적장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점에서 마이너스를 가지는데, 이 모든 부분에서 마이너스가 없는 원술은 또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4]

삼고초려의 경우, 제갈량이 유비를 피하려다 지쳐서 낮잠을 잤는데, 그 때 유비가 들이닥쳐서 할 수 없이 유비를 주군으로 모셨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말년씨리즈의 명 에피소드인 <제갈공명전>이 이 가설을 개그로 써먹었다. 그런데 이런걸 너무 진지하게 주장한다.

대체적으로 글의 흐름이 '이건 이것이 아닐까'라는 스스로 결론을 내고 그것에 따라서 자료를 선별취합하여 결론을 맞춰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굳이 좋은 부분을 짚어보려한다면, 잘 조명되지 않는 등장인물, 예를 들면 유비 사후 촉의 장수나 문관, 오의 중견급 인물을 소개하려 노력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도 다 자기 독자연구라는 문제는 남지만.

독자연구에 대한 비판이 제기 되었을 때, 자기가 예전에 본 삼국지에서 그렇게 나온 것을 기억해서 썼다는 식으로 말했다. 레퍼런스를 대지 못하고 기억에 의존해서 서술했다는 것은 글의 신뢰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3. 기타

이문열 평역 삼국지가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때 발매되어 묻어가는 식으로 많은 판매부수를 올린 탓에, 여기에 나온 잘못된 논거를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삼국지를 전문으로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삼국지 덕후인지라 지식은 얕다.[5] 게다가 오류에 대해 비평하거나 충고하는 이들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나몰라라하는 태도를 견지해 팬덤에서도 취급이 안좋다.

이 책이 나올 당시에는 삼국지 팬덤이 접하는 저작이나 사료도 적었던 탓에 제법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가 번역 출간되고, 팬덤 내부에서도 연의 원문과 삼국시대 사료를 연구하는 팬들도 많아져 전반적으로 수준이 올라간 현 시점에서 나그네의 글은 그냥 근거 없는 뻘글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시작된 문제점은 아직도 또 다른 의미로 재생산, 유통되고 있는데, 삼국전투기의 작가 최훈이 참고했다는 언급이 그것이다. 그래서 삼국전투기 까들에게 가만히 있는 최훈에게 못된 물을 들였다는 이유로 작가는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삼국전투기에 위에 언급된 비판요소는 그다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서황은 위나라의 중반기 대표 맹장에 예의를 갖춘 장군으로 묘사되고, 유비의 경우 초반기는 미묘하지만 촉나라를 건국한 시점에서부턴 천하에 대한 자기만의 확고한 주관이 있는 걸로 나온다. 김운회 삼국지 해제에서 주장했던 여포 이민족설도 없으며, 공손찬과 원소 또한 하북지역 패자 자리를 놓고 겨룬 강자로 묘사했는데 최훈은 나그네의 책을 어디까지나 여러 가지 참고문헌 중 하나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인 전투에서 창천항로의 하후돈이 화웅을 벤 장면을 언급한 것도 있고.

작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곽가빠로도 유명하다. 곽가를 제갈량이나 순욱보다도 높게 평가하는데, 덕분에 애꿎은 곽가까지 욕먹고 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삼국지는 정비석 삼국지라고 한다.


[1] 저자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삼국지 커뮤니티의 네임드였기에 나름대로 이름값이 있었던 것은 맞다. [2] 그런데 이 말을 또 뒤집어서 보면, 사기만으로 시골 듣보잡에서 황제 자리까지 오를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고 칭찬할 수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책의 평가 기준이 대개 이런 식이다. [3] 조조와 유비는 원소계/공손찬계 군벌로 시작했다. [4] 김운회도 삼국지 해제에서 원소는 명문 출신이니 청류라며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원소는 얼자였기에 오히려 원술 쪽이 출신성분만 놓고 보면 원소보다 청류에 가깝다. [5] 국내에서 삼국지는 인기가 많을 뿐 국사도 아닌데다, 중국사에서도 상당히 짧은 시기여서(시기로 따지면 고작 100년이고 그 중에서도 주로 다뤄지는 건 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제갈량이 아기일 때 일어났던 황건적의 난부터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가 연의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인데 제갈량은 헌제와 같은 해에 태어나고 죽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 자체가 우리나라에는 사실상 없어서 이미 덕후들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덕후들이 중국산 고대 자료를 구해와서 번역하고 자기들끼리 돌려보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