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토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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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토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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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 1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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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비 카운티 FC 잭 스탬스 트로피 수상자 (초대~25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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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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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콜린 토드 Colin To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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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8년
12월 12일 ([age(1948-12-12)]세) 영국 더럼 카운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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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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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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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선덜랜드 AFC (1966~1971) 더비 카운티 FC (1971~1978) 에버튼 FC (1978~1979) 버밍엄 시티 FC (1979~1982) 노팅엄 포레스트 FC (1982~1984)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 (1984)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1984) 루턴 타운 FC (1984) |
감독 |
미들즈브러 FC (1990~1991) 볼턴 원더러스 FC (1995~1999) 스윈던 타운 FC (2000) 더비 카운티 FC (2001~2002) 브래드포드 시티 FC (2004~2007) 라네르스 FC (2007~2009) 달링턴 FC (2009) 라네르스 FC (2012~2016) 에스비에르 fB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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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27경기 ( 잉글랜드 / 1972~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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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2. 클럽 경력
선덜랜드 유스 출신이었던 토드는 1966년 1군에 콜업된 후 주전으로 활약한다.선덜랜드에서 통산 173경기 3골을 기록했으며,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된 후 토드는 더비 카운티로 이적한다.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게 된 토드는 같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동료인 로이 맥칼랜드와 센터백 듀오를 결성하여 두 번의 1부 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1974-75 시즌에 그는 활약을 인정받아 P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다.
1978년, 더비 카운티와 이별한 후에는 에버튼, 버밍엄 시티, 노팅엄 포레스트,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루턴 타운을 거쳐 1984년, 현역 은퇴를 한다.
3. 국가대표 경력
1972년 5월 23일, 북아일랜드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A대표팀에 데뷔했다.1966년 월드컵 우승을 이끈 알프 램지가 1974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로 사임한 뒤 새로 부임한 돈 레비 체재에서 본격적으로 중용되며 대표팀 경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정작 토드는 피지컬 훈련만 주구장창 시키는 레비를 향해 불만을 내비쳤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A매치 출전 경기 상대도 북아일랜드와의 경기였으며, 1977년 5월 28일로 월마저 똑같았다.
4.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후, 1990년 3월에 미들즈브러 FC 감독으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이후, 1991년에 사임한 뒤 1992년에 볼턴 원더러스 FC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고, 브루스 리오치가 아스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995년 6월, 지난 시즌 더비 카운티를 이끌었던 로이 맥팔랜드와 함께 공동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다 맥팔랜드가 성적 부진으로 1996년 초에 해임된 후, 단독 감독이 되어 당시 프리미어 리그 강등권에 위치한 팀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실패하며 2부 리그로 강등을 맞이했고, 1996-97 시즌에 뛰어난 지도력으로 우승을 거두며 볼턴을 다시 프리미어 리그 무대로 올려놓으면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시즌 전부터 선수 보강을 많이 했음에도 하위권팀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한 시즌만에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1998-99 시즌에는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에 올려놓으면서 다시 한번 승격을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왓포드에게 덜미를 잡히며 승격에 실패했고, 1999년 9월을 끝으로 감독직을 내려놨다.
볼턴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스윈던 타운, 선수 시절 레전드로 활약했던 더비 카운티, 브래드포드 시티 등 여러 자국팀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나마 브래드포드에서는 3년 가까이 머무르며 근 20년간 구단에서 오래 지휘봉을 잡은 감독으로 남기는 했다.
여튼, 브래드포드에서 물러난 뒤 덴마크로 건너가 2007년 여름, 라네르스 FC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해외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부임 후 인터뷰에 따르면, 영국 내에서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덴마크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2009년 1월에 라네르스와 상호 합의 하에 계약 해지로 떠난 뒤 자국으로 돌아가 달링턴 FC 감독직과 버밍엄 시티 FC 스카우트 직을 맡다가 2012-13 시즌을 앞두고 다시 덴마크로 떠나 3년전 지휘봉을 잡았던 라네르스로 복귀했다. 그리고 1기 때와 달리 2기 때는 준수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라네르스를 4년간 이끌면서 덴마크 리그에서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던 팀이었다.
라네르스에서 나오기 전부터 지도자 은퇴를 표명했으나 마지막 경기를 지휘한 지 40일만에 같은 리그 팀인 에스비에르 fB 감독직에 부임하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데뷔전이었던 브뢴뷔전에서 0-4로 패하며 시작부터 불안하더니, 이후 팀이 21경기 동안 겨우 3승에 그치는 끔찍한 부진에 시달리자 결국 2016년 12월 5일 부로 경질되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더비 카운티 FC (1971~1978)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71-72, 1974-75
- FA 채리티 실드: 1975
-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 (1984)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984-85
5.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선수: 1974-75
- PFA 올해의 팀: 1973-74, 1974-75, 1975-76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75,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