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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민 숲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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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민 숲 전투
루마니아어: bătălia de la Codrii Cosminului
파일:코즈민 숲 전투.jpg
시기 1497년 10월 26일
장소 몰다비아 공국 코즈민(현재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주)
원인 막내 동생 지그문트를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앉히기 위한 얀 1세 올브라흐트의 원정
교전국 파일:몰다비아 국기.svg 몰다비아 공국 파일:폴란드 왕국 국기.svg 폴란드 왕국
지휘관 파일:몰다비아 국기.svg 슈테판 3세 파일:폴란드 왕국 국기.svg 얀 1세 올브라흐트
파일:폴란드 왕국 국기.svg 스타니스와프 초데키
병력 몰다비아인 18,000명
왈라키아인과 타타르인 10,000명
예니체리 500명.
40,000명
피해 미상 5,000명 사상, 수레 6,000대 포획.
결과 몰다비아 공국의 승리.
영향 폴란드 왕국의 위상 실추와 오스만 제국- 크림 칸국의 폴란드 침략 강화.

1. 개요2. 배경3. 경과4. 결과

[clearfix]

1. 개요

1497년 10월 26일, 몰다비아 공국의 보이보드 슈테판 3세 오스만 제국 크림 칸국의 지원에 힘입어 얀 1세 올브라흐트가 이끄는 폴란드군의 침략을 격파한 전투.

2. 배경

1484년 오스만 제국과 크림 칸국의 압박으로 킬리야와 케타테아 알바를 상실하면서 흑해 연안 지역인 부코비나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후, 몰다비아 공국의 보이보드 슈테판 3세는 오스만 제국을 주권자로 받들고 조공을 바치면서도,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외국의 도움을 간절히 희망했다. 1485년, 그는 콜로메아에서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엘론치크와 반 오스만 동맹을 맺으면서, 자신은 몰다비아에서는 독자적으로 통치를 행사하지만, 포쿠치아[1]에서는 폴란드 국왕의 가신이라고 밝혔다. 포쿠치아는 당시 폴란드 왕국의 오른쪽 변경으로, 그는 이곳의 가신으로서 폴란드 국왕에게 매년 공물을 바치며, 카지미에시 4세가 필요로 할 때 군대를 파견하되, 폴란드 국왕은 자국을 보호하도록 했다.

1492년 6월 7일, 카지미에시 4세가 사망했고, 셋째 아들 얀 1세 올브라흐트가 폴란드 국왕이 되었다. 1494년, 얀 1세 올브라흐트와 슈테판 3세는 레보차에서 헝가리 국왕 라슬로 2세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하난 시세로와 접견한 뒤 오스만 제국에 대한 원정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부코비나로 진군해 킬리아와 케타테아 알바를 공략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얀 1세 올브라흐트에겐 오스만 제국의 봉신이 된 몰다비아 공국을 정복한 뒤, 영지가 없는 막내 동생 지그문트를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세우겠다는 숨겨진 목표가 있었다.

1497년, 얀 1세는 40,000 병력을 동원해 몰다비아로 진군했다. 하지만 슈테판 3세는 정보원들을 통해 얀 1세의 진짜 목표를 사전에 확인한 뒤, 즉시 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오스만 제국에 원군을 요청했다. 오스만 제국은 예니체리 500명을 파견하는 동시에, 또다른 봉신국인 왈라키아 공국 크림 칸국에게 몰다비아 공국에 원군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두 나라는 총합 10,000명을 몰다비아에 파견했고, 슈테판 3세는 폴란드군의 진군로 주변을 초토화하는 청야 전술을 감행하고 주요 요충지에 수비대를 배치하면서 폴란드군이 몰려오길 기다렸다.

1497년 여름, 호틴에서 몰다비아 공국에 진입한 얀 1세의 폴란드군은 요새를 하나씩 공략하지 않고 몰다비아의 수도인 수체아바로 직공하기로 했다. 여러 신하는 슈테판 3세가 지난날 바슬루이 전투 때 효과적인 청야전술을 단행해 오스만 제국군을 약화시킨 뒤 완승을 거둔 적이 있음을 상기하며 요새를 하나씩 공략하면서 신중히 진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되었다. 그렇게 얀 1세는 수체아바로 직공했지만, 현지 조달은 청야 전술로 인해 불가능해진 데다 보급 물자를 수송하던 부대가 몰다비아 유격대에게 번번이 공략되면서 원정군의 군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497년 9월 26일 수체아바에 도착한 폴란드군은 10월 16일까지 포위 공격했다. 그들은 대포 200문을 동원해 포격을 가했지만, 슈테판 3세가 공들여 강화한 성벽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식량이 바닥나 버리면서 굶주림이 만연했고, 전염병 마저 창궐했으며, 다가오는 겨울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졌다. 결국 수체아바를 공략할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얀 1세는 슈테판 3세에게 휴전 협상을 요청했다. 슈테판 3세는 폴란드군이 수체아바로 진군할 때와 같은 길로 폴란드로 돌아가야 하며, 그들이 퇴각하면서 자국의 다른 지역을 약탈하지 않는 조건으로 안전한 통행흘 허락했다.

얀 1세는 공식적으로는 슈테판 3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슈테판 3세의 조건을 따르게 되면 굶주린 폴란드군이 청야 전술로 황폐화된 지역을 통과하면서 그대로 죽어갈 것이라 여기고, 약속을 위배하고 딴 길로 가기로 했다. 그는 부코비나를 거쳐 스니아틴으로 이동하는 익숙하지 않은 길을 택했다. 그러자 슈테판 3세는 저들이 약속을 위반했으니 휴전이 결렬되었다고 선언하고, 폴란드군이 다시는 자국을 노리지 못하도록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리하여 코즈민 숲 전투의 막이 올랐다.

3. 경과

슈테판 3세는 정찰병들을 통해 폴란드군의 진군을 살펴본 끝에, 시레트 계곡과 프루트 계곡을 분리하는 코즈민 숲에 군대를 매복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주력군을 숲속에 매복시킨 뒤, 소규모 경기병대를 파견해 폴란드군을 도발하게 했다. 폴란드군은 그들이 소규모 파견대일 뿐이라고 믿고, 추격하면 적 본대와 마주칠 수 있다고 여겼다. 폴란드 기사들은 중갑으로 완전 무장했고, 야전 경험이 풍부했기에, 무장 수준이 열세한 몰다비아군을 전멸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폴란드군은 기사들을 선봉에 내세워 적군을 추격했다.

슈테판 3세가 지휘하는 몰다비아군은 숲에 숨어서 적군이 숲길을 지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적군이 숲이 우거지고 언덕이 많아서 행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진군하면서 숲길에 깊숙이 진격했을 때, 몰다비아군은 요란한 함성을 내지르며 나무 여러 그루를 쓰러뜨려서 적의 행군 대열을 여러 조각으로 쪼갠 뒤 사방에서 덮쳤다. 몰다비아군은 창과 칼을 사용해 폴란드 농민군을 학살했으며, 기사들을 말에서 끌어내린 뒤 큰 망치, 곤봉을 마구 쳐서 죽였다. 폴란드군은 이에 맞서 싸우려 애썼지만, 숲길이 워낙 좁고 험준해서 몰다비아군의 매복 공격에 맞서 전투 대열을 짤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결국 폴란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막대한 무기와 군기, 갑옷 등을 내동댕이치고 도주했다. 프루트 강에 겨우 닳은 도망자들은 재편성할 시도도 하지 않고 서둘러 강을 건너 코드리 플로니니에 이른 뒤, 포쿠치아를 거쳐 르비우로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슈테판 3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보그단 3세도 참여했는데, 전투 도중에 폴란드 기사의 창에 스치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었지만, 고함을 힘껏 내지르며 계속 싸워서 몰다비아군의 전의를 끌어올렸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코즈민 숲 전투는 몰다비아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4. 결과

당대 기록에 따르면, 폴란드군 5,000명이 죽거나 다쳤고, 수레 6,000여 대를 상실했다. 여기에 크라쿠프, 르비우, 산도미르 일대의 군기 3개와 지방 깃발 9개, 상당히 많은 폴란드 귀족 가문의 깃발들이 노획되었다. 몰다비아군의 사상자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몰다비아 원정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뒤, 주변 국가들이 이 기회를 노려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대한 공세를 개시했다.

1498년, 오스만 제국 실리스트라 에얄레트의 파샤 발리 베이가 이끄는 오스만군이 몰다비아 군대의 지원을 받으며 드네스트르강을 건너 루테니아로 쳐들어가서 그 일대를 황폐화시키고, 사노크, 프셰보르스크에 입성한 뒤 100,000명에 달하는 주민을 본국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팔았다. 그 해 여름엔 크림 칸국 소속 타타르인들이 포돌레와 볼린을 공략해 막대한 전리품과 포로를 챙기고 돌아갔다. 그해 가을에는 오스만 제국군이 삼보르까지 쳐들어가서 심각한 약탈을 자행한 뒤 귀환했다. 슈테판 3세 또한 이 시기에 포쿠치아를 몰다비아 공국의 영토로 편입했다. 얀 1세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고 여기고 1499년 4월 15일에 슈테판 3세와 평화 협약을 맺었다.


[1] 갈리치아의 비스트리시아와 세레무스 강 사이에 있는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