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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반 Cobán Santo Domingo de Cobán Kob'an |
|
국가 | <colcolor=#000000> 과테말라 |
지역 | 알타베라파스 주 |
면적 | 2,132㎢ |
시간대 | UTC-6 |
인구 | 237,572명[1] |
인구 밀도 | 111.43명/㎢ |
[clearfix]
1. 개요
코반은 과테말라 중부의 도시로 알타베라파스 주(Departamento de Alta Verapaz)의 주도이자 해당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또한 과테말라의 3대 대도시권 중 하나인 라스베라파세스 연담도시권(Conurbación Metropolitana de las Verapaces)의 종주도시이다.[2] 여기서 라스베라파세스는 특정 지역명이 아니라 알타베라파스 주(Departamento de Alta Verapaz)와 바하베라파스 주(Departamento de Baja Verapaz)를 한데 묶어 부르는 말이다.면적은 2,132㎢, 인구는 23만 7,572명(2021). 인구를 따지면 과테말라시티를 잇는 제2의 도시지만, 코반이 워낙 넓다보니 도시 치고는 인구밀도가 낮아서 실질적으로는 도시나 도시권 인구로 보나 케찰테낭고를 제2의 도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지리적으로는 해발고도 1,320m에 있으며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북쪽으로 219km 떨어졌다. 마야어 이름, 정확히 말하면 마야어의 일파인 켁치어 이름은 한글로 옮기면 똑같이 코반(Kob'an)이지만 미묘하게 발음이 다른데, 마야어에서 '는 성문 파열음 /ʔ/이기 때문이다.
2. 역사
1898년 현재 코반 전경 |
독일인 농업 이민자들은 1863년부터 코반을 비롯한 베라파스 지역(알타베라파스, 바하베라파스)에 이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커피를 비롯한 상품작물 재배와 수출에 주력하던[3] 자유주의자들은 독일인 농민들을 반겼다. 후스토 루피노 바리오스와 그의 뒤를 이은 자유주의 성향의 대통령들은 베라파스 일대의 토지들을 그들에게 넘겨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마야 원주민들의 토지까지 몰수해서 넘겨주었다.[4] 독일인 특유의 근면함과 자유당 정권의 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1890년 즈음 독일인 이민자들은 베라파스 일대의 커피 생산을 거의 독점했다. 알타베라파스 주의 철도와 도로 등의 인프라도 독일인 소유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를 팔기 위해 건설되었는데, 1895년 완공된 철도는 알타베라파스 주 서부 판카흐체에서 시작, 코반과 산타카탈리나라틴타를 거쳐 동부 판소스까지 이어졌다.[5] 코반도 독일인 이민자에 의해 개발되었다. 1888년 독일인 회관이 설립되었고 1935년에는 독일인 학교도 문을 열었다. 1930년 코반에 거주하는 독일인은 2천명에 달했다. 당시 코반은 마치 과테말라 속의 작은 독일처럼 거진 반독립적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과테말라 독일인의 전성기는 2차대전을 계기로 끝장났다. 당시 과테말라의 독재자 호르헤 우비코는 파시즘을 예찬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미국 앞마당에서 히틀러 따까리짓을 하는 미친놈은 아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우비코는 과테말라의 독일인들을 가혹하게 박대하기 시작했고 코반의 독일인들도 해를 넘기기 전 모두 추방되었다. 이 독일인들은 미국 텍사스 주의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나치 독일에 잡힌 연합군 포로들과 교환되었다.[6] 혹자는 독일인의 농장과 인프라가 진짜 목적이었다고 보는데,[7] 정작 우비코 자신도 2차대전이 끝나기 전인 1944년 과테말라 혁명으로 쫓겨났다.
과테말라 내전 중인 1970년, 과테말라 대통령 카를로스 아라나 오소리오는 과테말라 북중부의 농업개발을 목적으로 북부횡단지대(Franja Transversal del Norte)를 선포했다. 북부횡단지대는 국토 동서로 뻗어 과테말라 북부와 남부를 나누었는데 우에우에테낭고 주, 키체 주, 알타베라파스 주, 이사발 주까지 이어졌다. 1970년 중반 이 일대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과테말라 정부는 대대적으로 투자하여 자원을 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빈민게릴라군(EGP)의 방해로 개발 계획은 뒤로 미뤄졌다. 반군과 정부군의 충돌이 증가하면서 알타베라파스 일대에서는 정부군의 학살이 벌어졌고, 코반 일대도 살육이 자행되었다.
2020년 현재 코반 전경 |
3. 현재
2013년 과테말라 국립통계청(INE)에 따르면 코반 주민의 64.6%는 마야계 켁치인이다. 25%는 독일인 이민자의 후손이며 나머지는 라디노인이다. 오늘날 경제는 커피와 카르다몸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생태자원 그리고 독일인 이민자들이 남긴 건축물을 바탕으로 한 관광업도 성하다. 17세기에 세워진 교회도 아직까지 남아있다. 코반은 과테말라 북부 교통의 요지로 티칼과 플로렌스 인근 페텐이차호 등 북부의 마야 유적지를 보려면 이곳을 지나야 한다. 코반 공항은 도시에서 서쪽에 있다.안티과과테말라만큼은 아니지만 코반도 나름대로 커피 산지로 유명하다. 화산재로 덮인 다른 과테말라 커피 산지와는 환경이 다르다.
[1]
2021년, 과테말라 발전재단(FUNDESA) 추계(2019)
#
[2]
나머지 2개는
과테말라시티를 종주도시로 하는 과테말라 대도시권(Área Metropolitana de Guatemala), 서부
케찰테낭고를 중심으로 하는 로스알토스 대도시권(Área Metropolitana de Los Altos)이다.
[3]
1880년 과테말라 수출의 90%를 커피가 차지할 정도였다.
[4]
이 원주민들은 졸지에 독일인 이민자들을 위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극소수의
크리오요와 독일인 이민자들의 토지 독점은 훗날
과테말라 내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5]
폴로칙 강의 항구의 선박들이 판소스까지 수송된 커피들을 선적하여 이사발 호를 경유,
카리브해로 나갔다.
[6]
하지만 모든 독일인들이 쫓겨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이주 과정에서 과테말라인과 통혼한 독일인도 꽤 많았고 오늘날 이들은 과테말라 사회에 완벽히 동화되었다. 오늘날에도 독일식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7]
실제로 알타베라파스 주의 철도도
1943년
국유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