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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09:29:25

캐벗 로지 가문

미국의 정치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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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인 가문
캐벗 · 로지 가문
Cabot · Lodge family
<colcolor=#fff><colbgcolor=#e81018> 가문 이름 캐벗 가문 (Cabot family)
로지 가문 (Lodge family)
설립 1720년
혈통 잉글랜드계
활동 지역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소속 정당 [[연방당|
연방당
]]
→ [[민주공화당(미국)|
민주공화당
]]


관련 집단 보스턴 브라민
1. 개요2. 상세3. 주요 구성원4. 케네디 가문과의 관계
[clearfix]

1. 개요

보스턴 브라민의 일원 중 하나인 미국의 정치인 가문으로, 많은 미국의 정치인 가문 중 가장 유서 깊고 귀족적인 가문으로 잘 알려져있다. 별명은 "보스턴의 첫번째 가문"(First families of Boston).

2. 상세

영국 저지 섬에서 출생한 존 캐벗은 노예와 아편 장사로 큰 돈을 벌었으며, 1700년 신대륙으로 이주해 1720년 조지프 캐벗을 출생하고 캐벗 가문을 성립시켰다. 조지프 캐벗의 두 아들인 조지 캐벗과 새뮤얼 캐벗은 각각 상원의원과 운송업자로 성장해 정치인 가문과 기업인 가문을 구성했다.

조지 캐벗은 알렉산더 해밀턴 존 애덤스[1]의 정치적 동지 중 하나로 연방당의 창립 멤버 중 하나였으며, 매사추세츠 주에서 선출된 2번째 상원의원이었다. 그의 손녀 안나 캐벗은 또다른 보스턴 브라민 가문의 일원 존 엘튼 로지와 결혼, 정치 가문인 캐벗-로지 가문을 성립하였다. 그들의 손자인 헨리 캐벗 로지는 1892년 증조 할아버지가 상원 의원을 지낸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1924년 사망할때까지 상원의원을 지냈고, 상원 외교위원장을 오래 지내면서 윌슨의 국제연맹 가입 시도를 저지시키는 등의 행적을 남겼다.

헨리 캐벗 로지의 손자 헨리 캐벗 로지 주니어[2] 역시 정치인이 되었고 할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출마해 당선되었다. 다만 할아버지와 달리 존 F. 케네디에 밀려 1952년 선거에서 재선에는 실패했고, 이후 외교관으로 여생을 보냈는데, UN 대사와 남베트남 대사, 서독 대사 등 요직을 거치면서 냉전기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외교관으로 활약했고 말년에는 리처드 닉슨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헨리 캐벗 로지 주니어의 형제 존 데이비스 로지는 코네티컷에서 활동해 그곳에서 하원의원과 주지사를 지냈다.

한편 새뮤얼 캐벗의 자손들은 대대로 사업가로 성장했는데, 다른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 재산을 계속 증식하였으며 운송업과 화학공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예술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시켜 현재도 매사추세츠에서 가장 큰 기업인 가문 중 하나로 남아있다.

3. 주요 구성원

4. 케네디 가문과의 관계

케네디 가문과 케벗-로지 가문의 악연이 유명하다. 두 가문은 성격이 완전히 정 반대인 가문이었는데, 로지 가문은 영국계 노예 상인의 후손들로 미국이 독립을 하기 전부터 보스턴 지역에서 제일 잘나가는 정치인 겸 사업가 집안이었다면, 케네디 가문은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보스턴으로 이민을 온 아일랜드계 하층민의 후손이었다. 자연스럽게 로지 가문은 북동부 WASP의 이권을 대변하는 공화당에서 활동한 반면, 케네디 가문은 가톨릭 이민자들을 대변하던 민주당에서 활동했다.

1913년 윌슨 대통령에 의해 상원 의원 직선제가 시행된 후 처음 열린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선거에서 보스턴 시장을 역임한 존 피츠제럴드(John F. Fitzgerald)와 헨리 캐벗 로지가 맞붙었는데, 이때는 헨리 캐벗 로지가 존 피츠제럴드를 약 3만 표차로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존 피츠제럴드는 이후 케네디 가문과 맺어졌는데, 그의 외손자가 바로 존 F. 케네디였다. 그리고 1952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캐벗 로지의 손자 캐벗 로지 주니어와 존 케네디의 대결이 성사되었는데 이때는 반대로 존 F. 케네디가 아일랜드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승리했다.

이후에도 둘의 재대결이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해 성사되었다. 존 F. 케네디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헨리 캐벗 로지 주니어가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된 것. 결과는 0.1%p 차이의 진땀 승부 끝에 케네디의 승리였다. 한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 취임을 위해 의원직을 사직함에 따라 치러진 1962년 상원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다시 캐벗 로지 주니어의 아들 조지 C. 로지(George C. Lodge)가 케네디 대통령의 막내 동생 테드 케네디와 맞붙었는데, 이때는 테드 케네디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러한 결과는 보스턴 지역의 인종 구성 변화를 잘 보여주는 흐름이라고 평가받는다. 본래 보스턴을 비롯한 뉴잉글랜드 지역은 로지, 캐벗 가문을 비롯해 독립혁명을 전후해 이민을 온 영국계 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던 지역이었지만,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폴란드 대분할 등을 계기로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 폴란드,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이민을 오면서 인종 구성에 변화가 생겼다. 실제로 1928년 대선에서,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계 혼혈인 앨 스미스가 전국적으로 참패하는 와중에도 보스턴에서만큼은 60%가 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을만큼 매사추세츠 지역이 인종 구성에 따라 정치적으로 격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952년~1962년 사이 아일랜드계인 케네디 가문이 잉글랜드계인 캐벗-로지 가문을 계속 꺾은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인 결과로서 받아들여졌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실 캐벗-로지 가문과 케네디 가문의 사적인 사이는 꽤 괜찮았다고 한다. 헨리 캐벗 로지 주니어의 아들인 조지 로지는 케네디 가문과의 선거 경쟁에서 패배한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F. 케네디와는 테니스도 같이 칠 정도의 절친[5]이었다고 하며, 헨리 캐벗 로지 주니어도 남베트남 대사를 맡아달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제안에 선뜻 응해 케네디와 손발을 맞추어 남베트남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6] 또한 두 가문은 종교나 혈통 등은 달랐지만 대대로 하버드 대학교를 나왔다는 등의 공통점도 많았으며, 케네디 가문에 밀려서 그렇지만 캐벗 로지 가문 일원들도 꽤 미청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1] 로지와 마찬가지로 보스턴 브라민인 "애덤스 가문" 소속이다. [2]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헨리 캐벗 로지"라고 하면 이 사람을 칭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사람의 할아버지인 헨리 캐벗 로지 시니어가 훨씬 유명하기 때문에 헨리 캐벗 로지라고 하면 시니어를 일반적으로 칭하고 손자 캐벗 로지는 "캐벗 로지 주니어"라고 따로 부르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3] 1937-1944 [4] 1947-1953 [5] 둘이 나이 차이가 2살밖에 안된다. 놀랍게도, 조지 로지는 96세의 나이로 아직까지도 정정하게 살아있다. [6] 물론 이 과정에서 응오딘지엠 축출 쿠데타를 도운 것으로 후대에 케네디와 함께 쌍으로 까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응오딘지엠 축출을 주도했으면서 정작 응오딘지엠이 전화를 걸자 새치미를 떼고 "도움이 필요하면 내 개인 전화번호로 연락해라"라는 식의 말을 한 녹취록이 까발려져 더 욕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