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2B48C><colcolor=#000000>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 빌헬름 루드비그 Prins Wilhelm, Hertig av Söderman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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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칼 빌헬름 루드비그 (Carl Wilhelm Ludvig) |
출생 | 1884년 6월 17일 |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쇠데르만란드 주 트로사 툴가른 궁 | |
사망 | 1965년 6월 5일 (향년 80세) |
스웨덴 쇠데르만란드 주 플렌 스텐함마르 궁 | |
배우자 |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1908년 결혼 / 1914년 이혼) |
자녀 | 장남 레나르트 |
아버지 | 구스타프 5세 |
어머니 | 바덴의 빅토리아 |
형제 | 형 구스타프 6세 아돌프, 동생 에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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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구스타프 5세와 바덴의 빅토리아의 차남.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동생이다. 마르그레테 2세의 작은외할아버지, 칼 16세 구스타프의 작은친할아버지이다.2. 생애
1884년 6월 17일 쇠데르만란드 주에 위치한 여름 별궁인 툴가른 궁에서 구스타프 5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여느 왕족들처럼 군인으로 활동했다. 14살 때 사관학교에 입학해 졸업 후 스웨덴 해군에 임관했다.
1907년에 할아버지 오스카르 2세를 대표해 미국에서 열린 제임스타운 박람회에 참석했다. 박람회가 끝나고 뉴욕에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빌헬름의 미국 방문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미국 언론은 스웨덴의 왕자를 매우 잘생기고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해에 러시아 황실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상대는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르 2세의 막내아들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장녀 마리야 파블로브나[1]였다. 빌헬름은 모스크바로 향해 마리야를 만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청혼했다. 1908년 5월 3일, 두 사람은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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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왕자 일가, 1911년 |
부부는 스톡홀름에 정착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일단 두 사람은 성격이 매우 달랐다. 차분한 빌헬름에 비해 마리야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는데, 러시아 여대공 출신답게 콧대가 높아 자신이 더 낮은 곳에 시집왔다는 식의 언행을 해 부부 사이에 갈등을 만들었다. 또한 마리야는 스웨덴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향수병에 걸려 힘들어했다. 이런 상황에서 빌헬름은 해군 업무를 위해 자주 바다에 나가있어야 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마리야는 이를 항상 불만스러워 하면서 종종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렸다. 1913년에 마리야는 돌연 러시아로 혼자 돌아가버렸는데, 이는 스웨덴 내에서 대단한 스캔들이 되었다. 결국 1914년 3월에 부부는 정식으로 이혼했다. 아들의 양육권은 빌헬름이 가지게 되었다.[2]
이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빌헬름은 잔느 드 트람코트라는 프랑스 출신의 이혼녀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귀천상혼에 엄격했던 스웨덴 왕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빌헬름이 결혼에 대해 물었을 때 잔느는 자신은 "스웨덴의 심프슨 부인"이 되고 싶지 않고 함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답했다. 이후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동거했다. 아들 레나르트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모두 둘의 관계를 알았으며, 부부와 다름없이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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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데르만란드 공작 빌헬름 왕자, 19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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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과 그의 아들 레나르트, 1924년 |
1952년 1월 2일, 잔느와 함께 레나르트를 만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잔느가 사망했다. 당시 차를 운전했던 빌헬름은 빙판길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책망했다.
해군에서 은퇴한 이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책을 썼다. 빌헬름은 생전 40권 이상의 책을 출판했다. 대부분은 여행기였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주제로 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2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했다.
1965년 6월 5일,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스웨덴의 왕족으로는 이례적으로 왕실 묘지가 아닌 일반 교구 묘지에 안장되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쇠데르만란드 공작 빌헬름 (Prince Wilhelm, Duke of Söderman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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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5세 (Gustaf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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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 2세 (Oscar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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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 1세 (Oscar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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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히텐베르크의 조제핀 공녀 (Princess Joséphine of Leuchten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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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우의 조피아 공녀 (Princess Sophia of Nass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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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우 공작 빌헬름 (William, Duke of Nass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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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템베르크의 파울리네 공주 (Princess Pauline of Württem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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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Ba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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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 대공 프리드리히 1세 (Frederick I, Grand Duke of Ba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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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 대공 레오폴트 (Leopold, Grand Duke of Ba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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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소피아 공주 (Princess Sophie of Swe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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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의 루이제 공주 (Princess Louise of Prus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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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1세 (Wilhelm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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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Weimar-Eisenach) |
3.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비스보리 백작 레나르트 (Lennart Bernadotte, Count of Wisborg) |
1909년 5월 8일 | 2004년 12월 21일 |
슬하 1남 3녀 |
소냐 하운츠 슬하 2남 3녀 |
[1]
1890~1958, 파벨 대공과 첫 부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1870년~
1891년,
요르요스 1세의 장녀(셋째))의 1남 1녀 중 장녀. 즉, 촌수로 장대한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필립 공의 고종사촌이라는 이야기.이렇게 보면 필립 공은 역사속 인물 알렉산드라 공주는 이듬해 드미트리 대공(1891~1942)을 조산하고 사망한다.
[2]
이후 마리야는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를 탈출하여 유럽과 미국, 남미를 돌며 여생을 보냈는데, 1921년 이후 1958년 죽을 때까지 아들 레나르트과 여러번 만나며 교류를 했고, 1949년에는 전 남편 빌헬름 왕자와도 재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