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5E3B1><colcolor=#000000> 스웨덴 요한 3세의 왕비 카타지나 야기엘론카 Katarzyna Jagiellon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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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폴란드어 |
카타지나 야기엘론카 (Katarzyna Jagiellonka) |
스웨덴어 |
카타리나 야겔로니카 (Katarina Jagellon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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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26년 11월 1일 | |
폴란드 왕국 크라쿠프 | ||
사망 | 1583년 9월 16일 (향년 56세) | |
스웨덴 스톡홀름 | ||
배우자 | 요한 3세 (1562년 결혼) | |
자녀 | 이사벨라, 지그문트 3세 바사, 안나 | |
아버지 | 지그문트 1세 | |
어머니 | 보나 스포르차 | |
형제 | 야드비가, 안나, 이자벨라,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조피아, 안나, 올브라흐트 |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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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국왕 요한 3세의 왕비이자 지그문트 3세 바사의 어머니.폴란드 왕국의 국왕 지그문트 1세의 막내딸이자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안나 야기엘론카 여왕의 동생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526년 11월 1일 지그문트 1세와 보나 스포르차의 6녀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 자매들 중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카타지나는 이탈리아인 가정교사로부터 독일어와 라틴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승마, 춤, 노래 등을 익혔다.보나 스포르차는 아들 지그문트 2세의 결혼 문제로 아들과 반목했다. 1548년에 지그문트 1세가 사망하자 보나 스포르차는 크라쿠프를 떠났고, 카타지나를 포함한 미혼의 세 딸들은 어머니와 함께 마조프셰에 정착했다.
2.2. 판란드 공작부인
카타지나는 아름다웠지만 결혼을 통한 정치적 이익을 까다롭게 쟀던 폴란드의 내부 상황으로 인해 혼기가 늦어질 때까지 결혼하지 못했다. 외지오스트리아의 대공 페르디난트 2세[1], 루스 차르국의 이반 뇌제 등과 혼담이 오갔지만 모두 결렬되었다. 1561년에 지그문트 2세는 스웨덴 국왕 에리크 14세에게 에리크 14세의 동생 핀란드 공작 요한과 카타지나의 결혼을 제안했다.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이 외국의 공주와 결혼하면 자신의 위치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에리크 14세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요한은 에리크 14세의 동의 없이 혼담을 진행했다. 1562년 10월 4일, 서른을 넘긴 카타지나는 11살 연하의 핀란드 공작 요한과 결혼식을 올렸다.분노한 에리크 14세는 요한의 거처인 오보 성을 함락시키고 그를 붙잡았다. 카타지나에게는 폴란드로 돌아갈지 성에 유폐될지 선택지가 주어졌고, 카타지나는 남편 곁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요한과 카타지나는 그립스홀름 성에 유폐되었다. 에리크 14세는 카타지나와 요한의 결혼을 무효화하고자 이반 뇌제에게 카타지나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스투레 가문 인사 살해, 평민 카린 몬스도테르와의 결혼으로 스웨덴 귀족들의 미움을 산 에리크 14세는 그전에 폐위되었다.
2.3. 왕비
1569년에 요한과 카타지나는 스웨덴의 왕과 왕비로 즉위했다. 힘든 시기를 함께 한 요한 3세와 카타지나는 금슬이 매우 좋았다. 폴란드의 공주 카타지나는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방면에서 요한 3세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톨릭교도인 카타지나 왕비의 영향은 요한 3세의 친가톨릭 정책에서 잘 나타난다.아들 시기스문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가톨릭교도로 성장했다. 이로 인해 훗날 왕위에 오른 그는 루터교회 중심의 스웨덴 귀족들과 반목하였고, 종국에는 숙부 칼 공작에게 스웨덴 왕위에서 폐위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1583년 9월 16일, 56세의 나이로 급사했다. 유해는 웁살라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3.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1녀 |
이사벨라 바사 (Isabella Vasa) |
1564년 | 1566년 | |
1남 |
지그문트 3세 바사 (Zygmunt III) |
1566년 6월 20일 | 1632년 4월 30일 |
오스트리아의 안나 슬하 3남 2녀[2] |
오스트리아의 콘스탄체 슬하 5남 2녀[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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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녀 |
안나 바사 (Anna Vasa) |
1568년 5월 17일 | 1625년 2월 2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