津野親忠
1572-1600
1. 개요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삼남.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쵸소카베 모리치카의 가이에키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의 가신에게 살해당하였고, 이로 인하여 쵸소카베 모리치카도 개역당하였다.2. 생애
1572년 태어났다. 아버지 모토치카가 토사의 호족 츠노 가문을 복속시킨 뒤 츠노 가문의 양자로 보내져 츠노 가문의 가독을 상속했다. 1585년 쵸소카베 가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항복하였고, 이로 인해 인질로 보내져 도도 다카토라 등과 친분을 쌓았다.1586년 쵸소카베 가문의 후계자 쵸소카베 노부치카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오토모 요시무네를 도와 시마즈와 전투 중 전사해 쵸소카베 가문 내 상속을 두고 갈등이 일어났다. 그러나 지카타다는 다카토라와 친했던 점과 모토치카의 미움을 사던 점 때문에 패했고, 후계자는 쵸소카베 모리치카로 결정되었다. 1599년에는 모토치카에 의해 유폐되기까지에 이른다.
이듬해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모리치카는 패하였고, 치카타다를 비롯한 쵸소카베 가문은 이이 나오마사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사죄하고자 했다. 모리치카는 본래 동군에 참여하려했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용서를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모리치카의 가신 히사타케 치카나오가 치카타다가 도도 다카토라와 모의하여 모리치카의 영지 토사국을 반으로 나누어 갖고자 한다고 모함하였고, 결국 치카타다는 그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렇듯 모리치카가 직접 명령을 내려 벌어진 일이라는 설과 치카나오가 모리치카의 명령을 조작해 모리치카의 의사와 상관 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설이 있다.
이 일에 더불어 토사에서의 이치료구소쿠들의 반란이 이에야스의 분노를 샀고 치카타다와 친분이 있던 다카토라가 이에야스에게 참소하여 결국 쵸소카베 모리치카는 가이에키되어 토사국은 야마우치 카즈토요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카즈토요는 이 치카타다 암살 사건의 진상을 가신인 카시와바라 신노죠가 소개한 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