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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갈등/아시아/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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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토( 수도권(일본)) VS 간사이( 케이한신)★

일본 내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간 라이벌 관계이다. 고대에 간토 지방은 에미시의 영역이었으나 간사이를 중심으로 한 야마토 조정이 간토의 에미시를 공격하여 정복하고 그곳에 파견한 것이 바로 쇼군이라고 알려진 정이대장군이다.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란 오랑캐(夷)를 정벌(征伐)하는 대장군이란 뜻인데 그 오랑캐가 바로 에미시(蝦夷)이다. 중세시대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된 후 간토에 있던 막부의 정이대장군은 하라는 오랑캐 토벌은 안하고 오히려 간사이(교토)에 있던 덴노를 토벌하고 덴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다. 간토의 역관광 전국시대에는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일본을 통일했지만 이 영광도 잠시뿐, 도요토미 세력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영지인 에도에 막부를 세우고 결국 오사카 전투에서 에도 막부가 오사카의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정치의 중심은 교토 오사카에서 현재의 도쿄도 에도로 완전히 옮겨가버렸다.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칸사이 지방과 칸토지방 사람들 간의 묘한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다. 헤이안 시대까지 일본의 중심지였고 1000년 이상 수도 역할을 해왔던 교토가 있는 간사이 지방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정통성에 의한 자부심으로 간토 사람들을 야만적인 에조[1] 놈들, 무식한 시골뜨기 놈들이라 놀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일부 간사이인들은 명시적으로 '도쿄가 일본의 수도다!'라고 하는 법률이 없으니 지금도 일본의 수도는 교토이고 도쿄는 단지 덴노가 임시적으로 머무르는 행궁일 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2] 간토 사람들은 간사이인들을 자존심만 세고 겉과 속이 다른 얍삽한 촌놈들[3]이라고 비웃는다.

현재는 오사카 도쿄도가 이런 경쟁관계를 보여주는데 확실한 예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알 수 있다. 도쿄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오사카의[4] 한신 타이거스의 경기( 전통의 일전)가 있는 날이면 두 도시간의 야구 응원은 어느 경기때보다 뜨거워지며 승패에 따라서 소비지출수준이 달라질 정도로 경쟁관계가 뜨겁다. 또한 에로게 업계에서는 엘프 앨리스 소프트를 일컬어 관동의 엘프, 관서의 앨리스(또는 "동쪽의 엘프, 서쪽의 앨리스")라고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또 음식적인 면에서도 우동 스키야키를 가지고 서로 해먹는 방식의 차이에서 서로 물어뜯고 있다. 또한 간토계 야쿠자 조직과 칸사이계 야쿠자 조직도 서로의 영역권을 놓고 으르렁거린다. 칸토와 칸사이 간의 차이

창작물에서도 이런 지역 라이벌 구도를 반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특히 일본이 무대인 느와르물이면 칸토 지역 야쿠자와 칸사이 지역 야쿠자끼리 패권 경쟁을 하는 클리셰가 대부분이다.

2. 오모테니혼(앞일본) VS 우라니혼(뒷일본)

일본의 지역 구분 중 하나로 일본을 길게 횡대로 나누어 태평양 세토내해를 마주하는 지역은 오모테니혼(앞일본), 동해를 마주하는 지역은 우라니혼(뒷일본)이라 부른다.[5]

지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도쿄도, 오사카시, 나고야시, 요코하마시, 후쿠오카시, 고베시 등 일본의 주요 대도시들은 ‘오모테니혼’지역에 속한다.

3. 후쿠시마( 아이즈 번) VS 야마구치( 조슈 번)

막부 말기, 유신의 바람이 불고 있을때, 아이즈 번(지금의 후쿠시마현 서부)은 반드시 막부의 쇼군을 지켜내야 한다는 숙명을 짊어지고 센다이 번, 쇼나이번 등과 함께 끝까지 유신세력들과 맞서싸우게 된다( 보신전쟁). 이 때문에 아이즈는 보신전쟁의 저항지로 유명한데, 이후 아이즈 지방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부터 출세길이 완전히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막혀버렸으며, 전후 처리도 매우 가혹해 아이즈번 사람들을 북쪽의 미개척지로 보내 고생을 시키거나 전사자의 장례를 막는 등의 고통을 받았다. 현대에도 일본, 특히 메이지 신정부를 세우는 데 주도적이었던 조슈 번(長州藩, 현재의 야마구치현)에 대한 이 지역 사람들의 반감은 상당히 강했다. 스스로 '일본인'이라 칭하기보다는 '아이즈인'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1986년 보신전쟁 120주년을 기념하여 야마구치현의 하기시에서 자매결연을 제의하자 제안을 받은 아이즈와카마츠시 측에서는 '보신전쟁 때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며 거절했을 정도. 그러나 야마구치현 출신 전 총리인 아베 신조의 재임 당시의 사과와 세대의 변화 등으로 예전의 악감정은 서서히 변화할 조짐을 보였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이젠 역사적 경위에 더해서 원전 피해로 인한 원한까지 더해질 듯...[6] 메이지 유신 150주년 맞이하는 해에서도 이러한 지역갈등이 잘 드러난다. 다만 후쿠시마와 직접적인 악연이 없는 가고시마의 경우 적어도 야마구치에 비하면 후쿠시마와의 사이가 그나마 덜 나쁜 편이다.

4. 오키나와현( 류큐) VS 일본 본토(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

일본-오키나와 관계 참고. 사실 오키나와현은 '독립국이었는데 일본에게 먹힌 케이스'로 인식되기도 하고 이제 '실질적인 일본의 문화권'이라 인식되기도 해서 논란이 많다.[7] 일본 본토에서 주일미군 기지 설립을 꺼리자, 오키나와에 몰아 세우고 무관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자세한 건 오키나와 참고. 하여간 류큐 독립당(現 가리유시 클럽)도 있고, 일본 자체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도 많이 있다. 실제로 기미가요 제창을 하지 않는 건 기본에 덴노를 같잖게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8][9] 특히 직접 수백년간 오키나와에 대한 가혹한 수탈을 벌인 역사가 있는 가고시마현[10]에 대한 감정은 최악을 달린다. 그래서 오키나와 내에서도 토착 류큐인들과 가고시마계 이주민의 후손들[11] 간에 악감정이 존재한다.[12]

5. 나가사키현, 히로시마현 vs 일본 그 외 지역

오키나와보단 아니지만 만만치 않다.

애초에 최초로 핵폭탄을 맞은 지역이 저 2곳인데 이런 원흉을 만든 당시 일본 군부와 그들의 후신인 일본 극우들을 좋게 볼 리가 없다.

그렇다 보니 극우들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때만 제외하면 이들에 대해 같잖게 보는 시선이 많았으며 동족을 배신했다고 하거나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동정하긴커녕 오히려 경멸 가득한 눈초리만 보냈으며 전후에도 사실상 차별에 가깝게 대했다고 한다.[13]

실제로 이쪽도 기미가요 제창을 하지 않는 건 물론 덴노를 같잖게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14]

이렇다 보니 오키나와나 후쿠시마랑 같이 연대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6. 후쿠오카시 VS 기타큐슈시

후쿠오카현, 나아가 규슈의 제일 도시를 둔 경쟁과 눈치 싸움이 있다. 양쪽 모두 후쿠오카현에 위치해 있지만 거리적으로나 교통적으로나 사실상 별개의 생활권과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현에 위치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감정이 좋지 않다... 두 도시 모두 몇개의 시를 통합해서 정령지정도시에 임명되었는데, 우선 임명 시기 자체는 키타큐슈 쪽이 빨랐고, 인구도 후쿠오카보다 많았으며, 원래 일본 역사에서도 키타큐슈 쪽이 큐슈 지역 제일 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상업이나 무역을 주로 담당하던 곳인 후쿠오카(및 하카타)는 일본의 경제 성장을 통해 점점 성장했지만, 광공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던 키타큐슈는 산업의 발전에 따라 광산이 사라지고 공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경제력도 인구도 후쿠오카에 완전히 역전당한 상태다. 현재도 후쿠오카는 인구가 계속 증가 추세에 있지만 키타큐슈는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7. 히로시마시 VS 오카야마시

주코쿠 지방 제1도시와 제2도시의 싸움. 인구규모로는 히로시마시가 50만명 가량 많지만, 오카야마시가 츄코쿠 지방의 교통결절점인 관계로 도시 규모에 비해서 영향력이 큰 편이며 또한 츄코쿠 지방 제3도시인 인구 47만명 규모의 쿠라시키시가 오카야마시와 붙어있어 도시권 규모로는 오카야마가 크다고 볼수도 있는 관계로 신규 브랜드의 출점이 히로시마시보다 앞서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5ch(구 2ch)에도 영향을 끼쳐, 당시 2ch에는 오카야마를 찬양하면서 히로시마를 깎아내리는 분탕이 있었는데 그 분탕을 까기 위한 '대도시 오카야마'(大都会岡山)라는 밈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오카야마가 뉴욕·런던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도시가 되고, 일본이 오카야마국으로 바뀌고, 지구가 오카야마 행성으로 불린다'는 허무맹랑한 내용들로 분탕을 돌려 까는 것. 지금도 미개의 땅 군마와 함께 5ch발 양대 지역드립으로 불리고 있다.

8. 구마모토시 VS 가고시마시

큐슈 지역 콩라인 싸움. 후쿠오카가 이쪽 지역에서는 워낙 넘사벽급으로 크기 때문에 제2의 도시 자리를 둔 경쟁이 있다. 사실 키타큐슈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3위 싸움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쿠마모토를 비롯한 다른 큐슈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쿠마모토를 우위로 치고 있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카고시마에서만 유독 쿠마모토에 라이벌 의식 비슷한 걸 느끼고 있는 것. 그러나 2012년에 쿠마모토 시가 먼저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면서 카고시마는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다.

9. 오사카 VS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 원조 문제로 서로 물어뜯는다. 히로시마에 가서 타지역에서 타 지역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広島焼(히로시마야키)주세요" 라고 하거나 지역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음식 이야기가 거론되면 판이 흉흉해지는 수준. 또 오사카에서 이걸 밥반찬으로 먹는다는 것 때문에 더 흉흉해진다. 그외에 일본판 PK 대 TK 구도의 정치적 갈등도 있다.

10. 나머지 VS 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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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근래 주목받기 시작하는 소재. 다만 이쪽은 실제로 지역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엄연히 말하면 단순한 인터넷 지역드립에 가깝다.

11. 치바 VS 사이타마

둘다 도쿄도 위성도시고 고만고만하다. 지바를 무대로 하는 라노벨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에서 스쳐가듯이 언급되었다. 야구 팀 치바 롯데 마린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또한 라이벌로 인식된다.

12. 오사카 VS 요코하마

일본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로 감정이 있다. 인구로는 요코하마가 앞서지만[15] 경제규모는 오사카가 앞서고[16] 특히 요코하마는 도쿄 광역권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 오사카를 쳐주는 분위기.

13. 후쿠오카 VS 삿포로

일본 제 4의 도시라는 타이틀로 감정이 있다. 인구로는 삿포로가 앞서지만 광역권의 경제규모는 후쿠오카 쪽이 앞선다. 행정구역상으로 나눈 시의 규모를 기반으로 실제 일본의 5대 도시를 뽑으면 삿포로시만을 뽑는 경우가 많다. 커져서 가끔 넷상에서 큐슈 vs 홋카이도 사이의 키보드 배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니까 제N의 도시라는 용어를 사회적인 금기어로 정해야 하는 것

14. 도치기현 VS 군마현

감정적인 이유로 다투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각 현의 경계를 두고 실제로 서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개로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미개의 땅 군마와 함께 싸잡아서 가장 낙후된 동네 1, 2위의 싸움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15. 오키나와 VS 아마미 군도

본래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은 일본 본토계였으나 류큐 왕국 치하에서 류큐화되었다. 그래서 사실상 류큐계 주민이나 다름없지만 지리적으로 일본에 더 가깝고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 또한 스스로를 류큐인보다는 일본인에 더 가깝다고 여긴다. 아마미 군도의 류큐화 자체가 류큐 왕국의 강제 침략에 의한 것이었고 가고시마의 일본인들과 빨리 동화된 탓에 동족의식이 없고 쓰는 방언도 꽤나 다르다. 게다가 오키나와는 아마미 군도가 자기들에게 편입되길 원하나 정작 아마미 군도는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 심지어 공산당까지 따로 있을 정도고 미국에게 반환될 때 일본에 편입되고 싶다고 소망하는 주민들도 있을 정도다.

16. 야마구치현(조슈) vs 가고시마현(사츠마)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이 대립의 기원은 이 두 지역으로부터 나온 거다. 그 이전에도 이 두 지역은 오랫동안 싸워온 앙숙이며 현재도 해자대와 육자대가 서로 으르렁 하는 것처럼 이 두 지역도 서로 적대하고 멸시한다. 그렇게 되면 가고시마는 앙숙이 세 지역이나 된다. 오키나와랑 야마구치는 말 안해도 될 것 같고 구마모토와도 라이벌 의식이 있으니...

17. 아오모리현 서부( 츠가루시 일대)VS 아오모리현 동부 ( 하치노헤시 일대)

매우 유서 깊은 갈등. 위의 후쿠시마현 VS 야마구치현과 비슷하게 보신전쟁이 원인이다.

그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나오는데, 난부 하루마사의 난부 가문은 지금의 아오모리현 전체와 이와테현 일부를 다스리던 가문이었다. 그러던 난부 가문에 내분이 일자 그 틈을 타 부하인 츠가루 타메노부가 하루마사의 작은 아버지이자 아오모리현의 서부를 담당하던 이시가와 다카노부를 살해, 아오모리현의 서부를 차지한 뒤에 난부 가문에서 독립했다. 가문의 내분에 하루마사는 손을 쓰지 못한 채 방관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츠가루 타메노부의 영지를 인정한 데다 영주 간 사적인 전쟁은 금지했다. 에도 막부 수립 이후로도 마찬가지로 사적인 전쟁은 금지.

그렇게 300년이 지나 일본 서부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를 타도하고 정부가 수립된다. 서부의 정부는 동부의 32개의 영주 가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댔고, 아이즈 마츠다이라 가문과 동부의 32개의 가문, 총 33개의 가문은 정부를 없애자며 단합하면서 전쟁이 발발한다. 이것이 바로 보신전쟁이다. 하지만 아키타의 사타케 가문과 아오모리 서부의 츠가루 가문이 동부의 통수를 치는 등 동부에게 불리하게 전황이 흘러갔다. 더 나아가 전쟁이 정부의 승리로 끝났는데도 츠가루 가문은 공적을 쌓기 위해 아오모리 동부에 불을 지르고 침공을 한다. 다만, 아오모리 동부의 난부 가문은 아오모리 서부의 츠가루 가문의 침공을 무사히 물리친다. 단, 정부는 두 가문의 사적인 전투로 간주하여 츠가루 가문에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역사로 인해 동부를 배신한 아키타현과 아오모리 서부(츠가루 지방)는 지금도 동부에서 배신자 취급받고 있으며 아오모리현의 현청 소재를 정할 때도 이 두 지역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딱 중간에 있는 아오모리시가 현청소재지가 되었다고 한다.[17] 이거 무슨 시드니 멜버른이 싸워서 캔버라가 수도가 된 거하고 토론토 몬트리올이 싸워서 오타와가 수도가 된 거랑 비슷하네....?

18. 쓰시마[18] VS 이키

19. 쓰시마 VS 오키노시마

20. 요코스카시 VS 구레시

카레라이스의 원조를 두고 대립 중이다.

21. 교토부( 카메오카시) VS 효고현( 탄바시 VS 탄바사사야마시)

탄바 지역의 중심지를 두고 대립 중이다. 탄바국의 영역은 교토부 효고현에 걸쳐 있었는데, 2006년 탄바시가 출범할 때 카메오카시와 사사야마시(現 탄바사사야마시)에서 반발했다. 전통적으로 탄바 지역의 중심지는 교토부 카메오카시 일대였고, 사사야마시 역시 자신이 탄바를 대표한다는 의식이 존재했다. 이후 2019년 사사야마시가 탄바사사야마시로 시명을 변경할 때 카메오카시와 탄바시에서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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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蝦夷를 고대에는 에미시, 중세 이후로는 에조라고 불렀다. [2] 사실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도 명시적으로 '서울이 수도다'라는 법률은 없다.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판결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3] 단 이것은 교토 지역으로 특정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4] 사실 한신 고시엔 구장은 오사카가 아닌 효고현에 있고 오사카 연고팀은 따로 있지만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간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팀이 한신이라 간토의 요미우리와의 라이벌리가 심하다. [5] 홋카이도 오키나와는 번외로 구분한다. [6] 원자력 발전소가 있던 곳은 아이즈 번이 아닌 소마나카무라 번의 영역이지만, 여기도 엄연히 보신전쟁 당시 오우에쓰 열번 동맹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신정부군에 대항했다. [7] 다만 오키나와현이 일본어족 문화권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류큐어 자체가 일본어족이기 때문이다. [8] 마침 이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건 히로시마현 나가사키현도 마찬가지인지라 이에 대해선 같이 연대하는 편이다. [9] 쇼와 덴노가 사망했을 당시 유일하게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역언론에서는 태평양 전쟁의 전범이 죽은 것 뿐이라며 대놓고 디스했다. 다만 아키히토 덴노는 태평양 전쟁을 탐탁지 않게 보았으므로 그 이후로는 일본 황실에 대해 딱히 뭐라 하지 않는다. [10] 과거 사쓰마 번 [11] 오키나와의 야마토 민족계 주민들 중 가장 인구가 많다. 이들 중 일부는 류큐인에 동화되기도 했다. [12] 다만 가고시마와 대립하던 야마구치에 대한 감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리고 일본 본토 중 오키나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인 홋카이도에 대한 감정도 그나마 나은 편이다. [13] 더 심하면 비국민 같은 막말도 퍼 부었다고 한다. [14] 쇼와 덴노가 사망했을 당시 유일하게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역언론에서는 태평양 전쟁의 전범이 죽은 것 뿐이라며 대놓고 디스했다. 다만 반전주의자였던 아키히토가 천황이 된 이후부터는 일본 황실과의 관계는 개선된 편이다. [15] 요코하마는 370만, 오사카는 270만 명이다. [16] 요코하마는 12조엔, 오사카는 18조엔 [17] 다만, 아오모리시도 츠가루 가문의 영지였다. [18] 쓰시마 섬도 같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