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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21:32:44

지네딘 지단 vs 호나우두

지단 vs 호나우두에서 넘어옴
파일:단두.jpg
파일:돈단1.jpg

1. 개요2. 상세3. 두 선수의 팀 커리어 비교
3.1. 지네딘 지단3.2. 호나우두
4. 두 선수의 개인 커리어 비교
4.1. 지네딘 지단4.2. 호나우두
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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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Zidane_Ronaldo.jpg

"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중에서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 다만 메호대전이나 크루이프 vs 베켄바워에 비해서 조금 애매한 라이벌이기도 하다.

메시와 호날두, 크루이프와 베켄바워 같은 경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선수 두 명을 꼽으라면 별다른 이견 없이 꼽히는 선수인 데 반해, 호나우두는 독보적인 시대의 지배자였던 기간이 20대 초반 즉 무릎 부상 이전인 1996~1998년에 불과하며 부상과 기량 하락 이후에는 호나우두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활약상을 보인 선수가 적지 않았고, 지단은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호나우두를 꺾고 1인자 자리를 굳힌 뒤에도 기량이 꾸준했으나 동시대에 뛰었던 선수 중 등 수상 경력이나 단기적인 퍼포먼스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1] 뒤집어 말해서 호나우두와 지단은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오랜 기간 동안 시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고 보기엔 힘들다. 한쪽은 전성기가 짧아(1996-97, 1997-98 2시즌) 오래 가지 못했고, 다른 한쪽은 롱런했지만 단순 1인자를 넘어선 온리원급 포스의 시즌(2001-02 시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오랜 시간 동안 압도적 기량을 유지하며 커리어 내내 승부를 벌인 메날두나[2] 크루이프, 베켄바워와 달리[3] 호나우두와 지단의 경우에는 둘만의 천상계 대전이라 할 만한 시간이 길지 않았다.

아무튼 이 둘도 축구사의 다른 라이벌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형세를 보였다. 1998 월드컵 결승 이전까지는 클럽과 코파 아메리카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호나우두가 압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지단이 결승에서만 2골을 터뜨리며[4] 프랑스를 3-0 승리로 이끌자 승부의 추가 약간 기울었고,[5] 이어서 2년 뒤 유로 우승까지 차지하자 지단은 축구계 최정상 레벨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반면 호나우두는 1998 월드컵 결승전의 충격적 패배에 이어 1999년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까지 발발하며 지단이 월드컵-유로 우승을 연달아 해내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호나우두 역시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부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복귀해 2002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득점왕+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반대로 이때 지단은 다리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어 프랑스가 형편없는 조직력으로 조별리그에서 침몰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지단의 철저한 자기 관리에 비해 호나우두는 방탕한 생활+무릎 부상 재발의 콤보로 호나우두의 기량이 지단에게 비하기 초라할 정도로 급하락하여 2006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벌어진 맞대결에서 또 다시 호나우두가 참패했다.

이 둘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흥미로운 비교거리로 여겨지며 실제로 여러 언론사에서 꽤 많이 비교되는데, 그 이유는 이 둘이 국가대표로서, 특히 세계 최고의 축구 대회인 FIFA 월드컵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족적을 남기며 각국을 이끌고 경쟁해왔기 때문이다. 한 세기 가까이 되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 둘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더 위로 평가받을 만큼 훌륭한 활약을 한 선수는 매우 적다.

여담으로 두 선수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을 지배한 라이벌이지만, 사적으로는 정기적으로 "호나우두와 친구들 팀" vs "지단과 친구들 팀"으로 자선경기를 할 정도로 아주 사이가 좋다.

뿐만 아니라, 재밌는 것은 두 명 모두 함께 뛰어 본 선수 중 최고의 선수로 서로 상대방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굉장히 훈훈한 당대의 슈퍼스타들 간의 우정이라 할 만하다.
'“지단이 최고였다. 확실하다. 그에게는 모든 게 너무 쉬웠다. 그의 컨트롤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내가 함께 뛰어본 선수 중 최고다.” - 호나우두 #
'"호나우두는 내가 함께 뛰어본 공격수 중 단연 최고였다. 단순히 공격수로서가 아니라,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최고였다." - 지단 #

2. 상세

세계 축구계에 먼저 이름을 떨친 것은 호나우두였다. 1994-95 시즌 에레디비시의 PSV로 이적하자마자 32경기 30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당시 에레디비시는 유럽에서 빅리그 다음급으로 꼽히는 수준이었다.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체급 한계와 유망주 키우기→빅리그 수출이란 중계무역으로 돌아갔던지라 정말로 세리에 A, 분데스리가, 라리가, 리그앙[6]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중소리그라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큰 현재로 치자면 리그앙 정도의 위상이었다. 호나우두는 이런 PSV에서의 훌륭한 활약을 바탕으로 4살 많은 지단보다 먼저 발롱도르 유효표를 받았다. 1995년 발롱도르 26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지단도 1994년즈음부터 리그앙 신인상을 차지하는 등 프랑스에서 주목받는 수준의 선수까지 올라왔으나 유럽에서 손꼽히는 신성이었던 호나우두가 우위에 있었다.

지단은 1996년이 되어서 월드클래스라 불릴만한 활약을 펼쳤다. 1995-96 시즌 팀의 에이스급으로 성장한 지단은 유럽대항전에서도 활약했고 리그앙 MVP로 선정되었고, 1996년 발롱도르 28위에 오른다. 하지만 당시의 호나우두는 지단보다 훨씬 앞서나갔다. 호나우두는 1996년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마티아스 잠머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할 뻔했다. 만 20세의 선수가 최다 1위표를 득표하고 단 1점 차이로 발롱도르를 놓쳤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놀라웠다. 호나우두는 1996-97 시즌에 49경기 47골을 기록하며 바르사의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끌고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선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로 선정된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7년에는 압도적인 점수로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도 차지했으며, 단 21세의 나이로 펠레와 마라도나에 비견되며 이들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함께 받고 있었다. 같은 해의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로 꼽혔지만 호나우두의 활약과 비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모두 3위에 올랐다.

1998년은 두 선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호나우두는 인테르에서,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1997-98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7] 그리고 세계 최고의 대회인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나우두는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널리 인정받던 선수답게 원숙한 기량을 선보이며 파죽지세로 브라질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지단 또한 준수한 활약[8]으로 프랑스의 결승행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결승전의 날이 밝았다. 결승전 직전 갑자기 호나우두가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후 전 세계가 호나우두를 주목했으나 그는 곧 경기장에 합류했다.[9] 이날은 브라질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뼈아픈 날이었다. 지단을 타겟맨으로 하여 세트 피스 전술을 철저히 준비한 프랑스에게 완전히 압도당했고, 호나우두와 호베르투 카를루스 릴리앙 튀랑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철의 포백에게 가로막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할때 지단은 헤딩으로 2골이나 넣으며 그대로 3:0, 프랑스가 완승했다. 결승전 이전에 시행된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골든볼을 받은건 호나우두였지만[10] 결승전에서는 지단이 2골이나 기록하며 우승을 이끈 것이다. 호나우두와 지단은 나란히 대회 올스타팀에 포함되었다. 연말에 실시된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와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지단이 1위를 차지했다.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 2위, 발롱도르 3위를 차지했다. 지단과 호나우두의 라이벌리가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궁극의 무대에서 제대로 불붙었던 시즌이다.

호나우두는 1998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부진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슬럼프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1998-99 시즌이 시작되었고, 호나우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이전에도 부상이 몇번 있었지만 1999년에 당한 부상은 선수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큰 부상이었고, 결국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날려먹으며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지단 역시 1999년에는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발롱도르 19위에 그쳤다. 호나우두는 23위를 기록했다. FIFA 올해의 선수에서는 지단은 4위를 기록했지반 호나우두는 10위 이내에 입상하지 못했다. 이후 호나우두는 1999년 11월 21일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2000년 4월에 펼쳐진 5개월만의 복귀전에서 드리블을 하다가 6분 만에 부상이 재발해 경기장에 그대로 쓰러졌다. 호나우두는 그 부상으로 인해 2002년 봄까지 경기장에 돌아오지 못했다.

호나우두가 없는 축구계는 지단 천하였다. 2000년의 지단은 그야말로 커리어의 피크를 맞았는데 1998 월드컵 우승에 이어 유로 2000에서도 프랑스를 이끌고 우승하며 대회 MVP까지 차지한 것이다. FIFA 올해의 선수를 받은 것은 물론이요 2000년 발롱도르 1위 루이스 피구와 적은 차이로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절정의 활약을 보여주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11] 이듬해인 2001년에도 지단은 기량을 잘 유지하며 발롱도르 9위, FIFA 올해의 선수 4위에 올랐다. 반면 호나우두는 2000년과 2001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모두 유효표를 받지 못한다.

2002년 봄, 1년 반이 넘는 긴 재활치료를 마치고 호나우두가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리그 경기에 조심조심 복귀한 그는 월드컵에 맞춰 기량을 끌어올렸다. 지단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스를 제패하는 등 절정의 활약을 보이면서 월드컵을 잘 준비하였으나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양 팀 에이스의 존재 여부는 곧 각 팀의 희비와 같았다.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비극을 맞았다. 비교적 약체인 세네갈, 우루과이, 덴마크와 한 조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1무 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반면에 호나우두가 돌아오고 호나우지뉴와 히바우두까지 있는 브라질은 엄청났다. 거기에 좋은 대진운이 겹치며[12] 무난하게 결승에 진출했고,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호나우두가 히바우두의 기막힌 어시스트에 힘입어 올리버 칸이 지키는 골문에 2골을 넣음으로서 브라질의 5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끈다. 호나우두는 8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고, 대회 실버볼도 차지했다. 결국 호나우두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개인 통산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와 두 번째 발롱도르를 거머쥔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활약이 워낙 뛰어났던 덕에 발롱도르 4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지만 부상으로 월드컵에서 단 한 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호나우두가 울고 지단이 웃었던 지난 월드컵과 달리 이번에는 지단이 울고 호나우두가 웃은 셈.

2002년.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지단과 함께 뛰게 되었는데, 호나우두는 2002-03 시즌까지는 라리가에서 23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이전의 호나우두가 가지고 있었던 다이나믹한 드리블은 부상의 영향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호나우두의 실력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하락했다. 2004년, 2005년에는 발롱도르 후보에 언급만 되었을 뿐 유효표를 받지도 못했다. 반면 지단은 나이가 더 많음에도 상당히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며 호나우두가 2003년 발롱도르 11위를 기록할 때 본인은 5위를 기록했고 개인 통산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까지 받았다. 반면 호나우두는 FIFA 올해의 선수 3위를 기록하였다. 지단은 2004년과 2005년에는 노쇠화가 눈에 띄긴 했으나 여전히 월드클래스의 기량을 유지했다. 지단은 2004년 발롱도르 23위, FIFA 올해의 선수 5위를 기록하고, 2005년에도 발롱도르 발롱도르 18위, FIFA 올해의 선수 13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호나우두 2004년과 2005년 모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유효표를 받지 못한다.

2006년 월드컵은 지단의 커리어 마지막 대회이자 월드컵이면서 호나우두에게도 특별히 중요한 월드컵이었다. 당시 월드컵 개막식 날을 기점으로 보면 지단은 만 33세[13], 호나우두는 만 29세로 둘 다 전성기 기량에서 꽤나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지단은 나이 때문에, 호나우두는 부상 때문이었다. 호나우두와 지단 모두 조별리그를 이겨내고 16강에 진출, 16강에서도 두 선수 모두 골을 터트리며 팀을 8강으로 올린다. 그런데 프랑스와 브라질이 1998년 월드컵 결승 이후 8년 만에 월드컵에서 다시 만나버렸다. 두 팀 모두 우승 후보였지만 언론은 판타스틱 포가 포진하고 있는 브라질의 우세를 점쳤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지단이 마치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중원을 장악하며 브라질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가? 반면에 호나우두를 필두로 한 브라질의 판타스틱 4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지단의 어시스트를 받은 앙리의 결승골로 프랑스가 승리했고, 호나우두와 브라질은 1998 월드컵 결승전의 설욕에 실패한다. 호나우두의 월드컵 커리어도 여기서 끝.[14] 반면에 지단은 준결승에서도 PK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또 한 번 월드컵 결승에 오르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맞이한 결승에서도 주인공은 지단이었다. 부폰을 속이는 멋진 파넨카로 PK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1:1로 정규시간이 끝나고 진행된 대회 최우수 선수 투표에서 1위를 한 것은 다름 아닌 지단이었다. 연장 전반에도 결정적인 헤더로 이탈리아의 골문을 위협한 지단은 그러나 연장 후반 마르코 마테라치의 도발에 넘어가서 그를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 당하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킨다. 그것이 결국 프랑스의 승부차기 패배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날 언론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무려 월드컵 결승전을 은퇴 무대로 삼아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며 대회 내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함에 이어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 발롱도르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호나우두는 2006년에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유효표 획득에 실패한다.

이후 지단은 선수 은퇴를 선언했고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서 멀어져 발롱도르 후보 50인에 오르지 못하고, FIFA 올해의 선수도 유효표를 박지 못했다. 그래서 2006년을 마지막으로 둘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3. 두 선수의 팀 커리어 비교

3.1. 지네딘 지단

3.2. 호나우두

4. 두 선수의 개인 커리어 비교

4.1. 지네딘 지단

* 발롱도르: 1998

4.2. 호나우두

5. 총평

17-18 시즌 중에 나온 9개 언론사 순위 (2017년 6월~2018년 3월)
2020년에 나온 10개 언론사 순위
2022 월드컵 이후 나온 언론사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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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지단 6위, 호나우두 7위

축구 전문 매체들의 종합적인 평가는 대체로 지단이 우세하다. 분명 전성기의 퍼포먼스는 펠레, 마라도나에 비견되던 호나우두 쪽이 더 우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나우두의 전성기는 그 기간이 2년 정도로 매우 짧았으며 무릎 부상 이후론 그 기량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했다.[31] 반면에 지단은 호나우두와의 월드컵 맞대결[32]에서 두 번 모두 완승을 거두었고, 같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 시절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호나우두보다 더 컸다. 또한 명성 대비 떨어지는 클럽 커리어[33]와 짧은 전성기[34]를 보유한 호나우두와 달리 지단은 완벽에 가까운 커리어[35]를 보유하고 월드클래스의 활약을 11년 동안 꾸준히 보여줬다는 점[36]으로 인해 종합적인 평가가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1996~98년, 이 기간 동안 호나우두가 보여준 놀라운 활약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호나우두를 지단보다 높게 평가하며 역대 5위권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37] 특히 호나우두의 전성기에 축구를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프랑스 풋볼이 주관한 발롱도르 드림팀 투표에서 세컨드 팀에 뽑힌 지단과 달리 호나우두는 퍼스트 팀에 뽑히며 고점만큼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38] 또한, 골닷컴이 선정한 1990년대 최고의 선수에서 호나우두가 1위를 차지하고, 마르카의 시대별 최고의 선수 투표 또한 호나우두가 65%를 득표하면서 28%를 득표한 지단을 크게 따돌리고 1990년대의 1인자로 선정되는 등 두 명 모두 전성기를 보낸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는 언제나 호나우두가 뽑힌다.

물론 이건 관점을 어떠하냐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것이다. 대체로 커리어 전체를 보면 지단, 전성기만을 보면 호나우두로 평가가 갈린다. 언제나 팀의 주인공이자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했던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 축구사에서 스트라이커의 최고점을 보여주었던 '페노메노' 호나우두.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축구계를 대표한 두 선수.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1] 루이스 피구, 프란체스코 토티, 히바우두, 파벨 네드베드, 티에리 앙리, 안드리 셰브첸코, 라울 곤살레스, 마이클 오언, 데이비드 베컴, 호나우지뉴, 마티아스 자머,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올로 말디니 등. [2] 메날두는 무려 15년 동안 둘만의 천상계 대결을 펼쳤다. 그래서 아예 이 둘을 논외로 하고 '인간계 최강'을 가리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3] 어떤 의미에서는 메날두 시대보다 더 라이벌다웠는데, 메날두는 엘 클라시코로 엄청 부딪혔고 챔스 결승에서도 만나봤지만 결승전 중의 결승전인 월드컵 결승에서는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크루이프와 베켄바워는 두 사람 모두 챔스 3연패를 달성했고(베켄바워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달성한 3연속 우승 중 2회는 1974 월드컵 우승 이후다), 월드컵 결승에서 문자 그대로 정상대전을 벌였다! [4] 호나우두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비진 중 하나로 꼽히는 철의 포백의 벽을 넘지 못했고, 직전 경기들에 비해 매우 부진했다. [5] 결승 이전까지만 해도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슈퍼스타는 단연 호나우두였고 지단은 경기력 자체는 뛰어났으나 사우디전에서 퇴장으로 2경기를 출장 정지 징계를 받는 등 임팩트가 부족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두 선수의 운명이 뒤바뀐다. [6] 1990년대 리그앙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UEFA 리그 랭킹 2위를 하는 등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 [7] 호나우두는 인테르에서 UEFA컵 우승을 이끌었고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이끌었다. [8] 경기력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조별리그 2차전에서 퇴장당해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아 조별리그 3차전과 16강전을 결장하는 등 임팩트가 부족했다. [9] 호나우두가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것은 파라소니아라는 수면 중 몸을 떠는 몽유병과 비슷한 증세를 동료들이 간질발작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10] 이 시절에는 대회 최우수 선수를 결승전 이전에 투표했었다. 결승전 이후 언론들은 일제히 지단의 골든볼 수상을 예측했지만 결국 투표 시점의 차이와 사우디전 퇴장이 발목을 잡아 6위에 그쳤다. [11] 이 시기 발롱도르 역시 지단이 1순위 후보였는데, 하필 이 시즌 챔스 조별리그 함부르크 전에서 지단이 박치기를 시전하여 퇴장 당하는 불미스러운 일과 함께 유베가 챔스 조별리그 탈락의 굴욕을 당하면서 피구 쪽으로 발롱도르 표가 쏠리게 되었다. [12] 중국, 터키, 코스타리카, 벨기에 등 브라질 국대 사상 역대급 꿀대진으로 불린다. 다만 8강의 잉글랜드는 상당한 강팀답게 꽤나 브라질을 고전시켰으며 호나우두 역시 전경기 골을 기록하다가 잉글랜드 상대로는 골을 넣지 못했다. [13] 지단의 생일은 6월 23일이라 조별리그를 통과한 시점에서 34세가 된 상태였다. [14] 그래도 호나우두도 총 3골로 브론즈슈를 수상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15] AM 3위 [16] 링크 [17] 돈 발롱 어워드 [18] 링크 [19] 링크 [20] 123,582표를 받으며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A] 프랑스 풋볼 선정 [22] B팀 [23] 링크 [24] 링크 [25] 링크 [26] CF 1위 [27] 돈 발롱 어워드 [28] B팀 [29] B팀 [30] 링크 [31] 주력 자체는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도 매우 빨랐으나 부상 후유증으로 무릎을 완전히 접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했다. [32] 1998 월드컵 결승전, 2006 월드컵 8강전 [33] 라리가, 차상위 클럽 대항전인 컵위너스컵과 UEFA컵을 한차례씩 우승한 것이 전부이며 최상위 클럽 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는 아예 무관인데다 통산 스탯도 40경기 14골로 많이 빈약한 편이다. [34] 호나우두가 커리어에서 월드클래스의 활약을 펼쳤다고 할 만한 기간이 PSV에서의 1시즌, 바르사에서의 1시즌, 인테르에서의 1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3시즌 정도다. 그나마도 프라임 타임은 바르사와 인테르에서의 각각 1시즌씩이 끝이니 호나우두가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보여준 기간이 얼마나 짧았는지 알 수 있다. [35] 월드컵 우승+MVP, 유로 우승+MVP, UCL 우승, 리그 1 MVP, 세리에 A 우승+MVP, 라리가 우승+외국인 MVP,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36] 리그 1 MVP에 오른 1995-96 시즌부터 은퇴 시즌인 2006 월드컵까지 월드클래스의 활약을 11년 동안 보여줬다. [37] 대표적으로 한준희 해설위원은 둘 중 '더 위력적인 선수'의 손을 들어 호나우두를 선택했다. [38] 그러나 지단은 공격형 미드필더 후보군에 같이 포함된 후보들이 하필 펠레, 마라도나였기에 참작이 가능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