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존 랜돌프 John Randolp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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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1346년 10월 17일 | |
출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머레이 백작령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더럼 시 외곽 네빌스 크로스 | |
아버지 | 토머스 랜돌프 | |
어머니 | 이사벨라 스튜어트 | |
형제 | 토머스, 아그네스, 이사벨라 | |
아내 | 유페미아 드 로스 | |
직위 | 제3대 머레이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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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과 대적했으나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아버지 토머스 랜돌프는 초대 머레이 백작으로,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로버트 1세와 함께 잉글랜드에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했으며, 데이비드 2세 치세 초기 호국경을 맡았다. 어머니 이사벨라 스튜어트는 윌리엄 월레스의 동지로서 잉글랜드군에 대적했다가 1298년 7월 22일 폴커크 전투에서 전사한 본킬의 존 스튜어트의 딸이다. 형제로 토머스, 아그네스, 이사벨라[1]가 있었다.1332년 7월 20일, 잉글랜드 귀족들의 지원을 받은 에드워드 발리올이 스코틀랜드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쳐들어오자 이들을 막기 위해 출정했던 아버지 토머스 랜돌프가 머슬버러에서 급사했다. 이후 형 토머스 랜돌프가 제2대 머레이 백작으로서 스코틀랜드의 신임 호국경 돔놀 2세의 지휘하에 에드워드 발리올에 맞섰지만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후 존은 제3대 머레이 백작이 된 뒤 데이비드 2세를 프랑스로 내쫓고 스코틀랜드 왕위를 찬탈한 에드워드 발리올을 타도하기 위해 거병해 1332년 12월 아난 전투에서 발리올을 습격해 격파하고 잉글랜드 북부로 축출했다. 그러나 1333년 7월 19일 할리돈 힐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게 참패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1334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서 스코틀랜드의 고위 청지기인 로버트 스튜어트와 함께 공동 섭정으로 선임된 후 잉글랜드군에 맞서 항전했다. 그 해 9월 27일 잉글랜드군 장성 데이비드 드 스트라스보기를 로카버에서 포위한 뒤, 신변의 자유를 보장받는 대가로 데이비드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했다. 데이비드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북부 스코틀랜드에서 데이비드 2세의 총독을 맡았지만, 1335년 8월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퍼스로 진군하자 곧바로 에드워드 3세에게 귀순하고 에드워드 발리올을 주권자로 받들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3세가 돌아간 뒤, 그는 약속을 뒤엎고 나무르 백작 기 2세 드 나무르 휘하의 잉글랜드군 소속 플란데런 분견대를 애든버러 인근의 버로우무어에서 기습 공격해 궤멸시켰다. 이후 나무르 백작의 몸값을 받은 뒤 나무르 백작을 잉글랜드 국경까지 호위했다가 매복 공격을 받아 제드버그의 소장인 윌리엄 드 프레센의 포로가 되었다. 이후 노팅엄 성에 감금되었다가 런던 탑으로 옮겨졌고, 1340년 7월 25일에 윈저 성으로 옮겨졌다. 1341년 프랑스 포로였던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와 교환되어 스코틀랜드로 귀환했다. 1426년 10월 스코틀랜드 국왕 데이비드 2세의 북부 잉글랜드 원정에 참여했다가 10월 17일 더럼 외곽의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 우익을 지휘하던 중 전사했다.
그는 생전에 로스 백작 휴의 딸인 유페미아 드 로스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두지 못했다. 그가 사망한 뒤 머레이 백작위와 영지는 왕실로 돌아갔다가 조카인 존 던바에게 넘어갔다.
[1]
코크번 영주 패트릭 던버의 부인, 던바 및 마치 백작
조지 1세 드 던바, 머레이 백작 존 던바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