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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23:33:15

조지프 오거스터스 재럴리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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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하여 만든 생전의 모습

조지프 오거스터스 재럴리(Joseph Augustus Zarelli)
1953년 1월 13일~ 1957년 2월 (요 4세)

The "Boy in the Box"
(America's Unknown Child)
1. 개요2. 상자의 발견3. 수사4. 최근 연구5. 신원 확인6. 관련 사건

1. 개요

1957년 미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자 미제사건. 살해된 시신이 골판지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상자 속의 소년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참 동안 사망한 아동의 신원조차 밝혀내지 못했다가 65년 만인 2022년 12월 1일에 마침내 희생자의 신원이 밝혀졌으나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1]

2. 상자의 발견

파일:blog boy 2.jpg
실제 소년이 발견된 상자
1957년 2월 25일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시 북동부에 위치한 폭스 체이스(Fox Chase)에서 프레더릭이라는 대학생이 우연히 골판지 상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상자는 미국의 백화점 체인점인 J.C. 페니에서 당시 판매 중이던 아기용 요람의 포장상자였는데[2] 안에는 한 소년이 온 몸에 멍이 든 채 알몸 상태로 죽어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한 프레더릭은 당국에 신고하는 것을 왜인지 망설였는데 그가 그 상자를 발견하게 된 동기는 상자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 있었던 여학교의 여학생들을 훔쳐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더릭은 고해성사 가톨릭 사제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프레더릭의 고민을 들은 가톨릭 사제가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3] 다음날 오전 10시 프레더릭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3. 수사

실제 발견된 소년의 시신 사진. (열람 주의)

생년은 1951~1953년생으로 당시 4~6세 정도로 추정되었던 이 상자 속 소년은 102cm에 13kg으로 성장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였고 백인에 파란 눈을 지니고 성기에 할례의 흔적이 있었다. 손톱과 발톱은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금방 잘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몸 전신에서 여러 개의 멍 자국들이 발견되었으며 직접적인 사인은 두부 외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시신의 상태가 온전하고 주변에 위치한 마을들은 모두 작은 시골마을들이며 상자 속에는 소년의 것으로 보이는 빵모자와 담요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소년의 신원이 금세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소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은 소년의 시신 사진과 지문, 할례의 흔적 등을 토대로 필라델피아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나 그들은 소년을 진료한 적이 없었고 미국 의학 협회의 협조로 전국의 의사들에게 아이의 정보가 전달되었지만 마찬가지로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발견된 상자와 담요, 빵모자의 경우 판매처와 제조사까지 추적했지만 역시 단서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 외에도 경찰은 소년의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영양상태와 얼굴형과 외양으로 보아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미국으로 대거 흘러왔던 난민 부부 사이의 아이가 아닐까 추정했으나 이마저도 당시 미국 이민국에서 모든 헝가리 난민들에게 실시했던 예방접종 자국이 발견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리고 고아원 및 아이들을 맡는 기관들에서도 아이의 정체를 알려 줄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아이의 모습을 담은 전단지 [4]수십만 부가 펜실베이니아주 전역은 물론 인근의 뉴저지주 오하이오주, 델라웨어 지역까지 배포되었으나 이 아이를 아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시신 부검을 통해 추가로 밝혀진 사항인데 소년의 오른손에서는 장시간 수중에 노출될 시 나타나는 손의 주름이 발견되었고 성적 학대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온 몸에 멍이 들었고 머리는 이발된 상태였는데 이발 상태는 대단히 엉성했으며 머리에서는 다수의 멍 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소년의 머리를 힘으로 고정시킨 채 이발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었다.

결국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이 와중에 두가지 가설이 나왔는데 하나는 소년이 발견된 장소에서 24km 정도 떨어진 한 위탁 가정의 운영진의 의붓딸이 미혼 상태로 낳은 자녀라는 설이었으나 문제는 근거라고 해봤자 J.C. 페니 요람과 비슷한 요람과 상자에서 나온 담요가 그 위탁 가정에 있었다는 것뿐이었고 1998년 DNA 검사를 통해 소년이 의붓딸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2002년 자신을 M이라고만 밝힌 한 여성의 가설인데
"그 소년은 1954년 여름에 학대 습관이 있던 내 어머니가 소년의 친부모에게 돈을 지불하고 데려온 '조나단'이라는 아이이다. 그 소년은 내 어머니에 의해 2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극도의 신체적, 성적 학대를 받아 왔다. 소년이 살해된 이유는 욕조에서 구토를 했다는 것에 분노한 내 어머니가 소년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는 소년의 신원을 숨기고자 소년의 길었던 머리를 깎은 뒤 나를 데리고서 당시 인적이 드물던 폭스 체이스의 길거리에 시신을 유기하러 가서 현장에 버려져 있던 골판지 상자에 시신을 유기하였다. 당시 소년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서 내리려 했을 때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탄 한 남성이 우리가 사고를 당한 것인 줄 오해하고는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오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차 번호판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그 남성의 말을 무시했고 결국 그 남성은 자리를 떠났다."
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M의 증언은 소년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와 상당 부분 일치했고 경찰은 그녀의 말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으나 M은 정신 병력을 갖고 있었고 당시 M의 집안과 교류가 있었던 이웃 주민이 경찰과의 사정 청취에서 M의 집에 소년이 살고 있던 것을 본 적이 없으며 M의 주장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증언했고 그 오토바이를 탄 남자 역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되어 두 건의 목격담이 확보되었지만 이는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목격담으로만 남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뉴저지 남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소년을 목격했는데 당시 그 아이는 함께 있던 남성의 품에 잠들어 있었고 남자는 자신들이 뉴저지 주 캠던에서 승차했다고 말했어요."
당시 아마추어 예술가였던 여성
"한 남자가 소년의 손을 잡고서 제가 일하는 가게 앞을 지나갔는데, 그는 자신들이 필라델피아행 열차를 타야 한다고 말했어요."
당시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여성
그러나 이 목격담을 마지막으로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고 수사를 통해 시신이 최초 발견되기 이틀 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목격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수사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학대를 당해 죽은 데다 시신마저 발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 버려진 이 불쌍한 아이는 끝내 이름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매장되었다. 결국 1957년 7월 27일 소년의 시신은 가족 대신 필라델피아 경찰들의 애도를 받으며 필라델피아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HEAVENLY FATHER BLESS THIS UNKNOWN BOY(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 이름 모를 소년을 축복하소서.)'라고 적혀 있다.

4. 최근 연구

이 사건이 발생한 지 59주기를 맞이한 2016년 로스앤젤레스 출신 작가 짐 호프만(Jim Hoffmann)과 뉴욕 출신 작가 루이스 로마노(Louis Romano)가 이 아이가 테네시 멤피스 출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멤피스에서 그들이 소년의 가족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추적했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DNA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주장의 2가지 단서를 말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모친이 1954년에 소년을 부모로부터 돈을 주고 데려왔고 학대 끝에 소년을 살해했다는 M이란 여성의 주장과 두 번째로 그의 아들을 팔았다는 남자의 집을 자기 가족이 임차했다는 한 필라델피아 출신 남성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이 소년의 형제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DNA 샘플을 추출했다.

그레그 맥도널드 박사는 소년의 사진과 그의 형제와 아버지로 추정되는 자의 사진을 검토했다. 맥도널드 박사는 필라델피아의 검시관 조수로 일하다가 몽고메리 보안관의 법의학자가 되었다. 그는 이 사진들에 몇몇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고 더 많은 실험을 통한 더 많은 조사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충분한 유사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맥도널드 박사는 이 3명의 남자에게서 유전적인 일치점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음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일치한다면 이 소년은 멤피스 출신으로 막장 부모에 의해 누군가에게 팔려갔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돈 몇 푼에 팔아버렸으니 당연히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때문에 아이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었고 소년의 신원은 오리무중이었다. 참고 자료

아니면 샤론 리 가예고스 살인사건처럼 실종 신고가 된 아이가 상자 속의 소녀일 수도 있는데 이 사건은 당시 경찰이 나이대가 안 맞다고 샤론이 시신이 아니라고 부정했다가 60여년만에 DNA 검사로 시신의 주인이 샤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어쩌면 상자 속의 소년도 경찰이 추측한 나이대보다 실제로는 나이가 많거나 적은 소년일 가능성이 있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41년이 지난 1998년에 소년의 치아에서 DNA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고 소년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다.

5. 신원 확인

2022년 12월 1일, 마침내 신원이 DNA 검사를 통해 밝혀졌다. 실명 공개는 추후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얼마 후 소년은 조셉 어거스터스 재렐리라는 4세 남아로 밝혀졌다. 부모는 모두 사망했으나 형제자매는 살아 있다고 하며 재수사에 들어갔다.

추가 조사에 따르면 재럴리의 아버지 오거스터스 재럴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이민자 가정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메리 아벨이란 인물인데 둘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메리 아벨은 1950년에 고등학교 졸업 직후 조셉의 누나를 낳았고 낳자마자 불상의 가톨릭계 조직에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3년 후에 오거스터스 재럴리와의 사이에서 아들 조셉이 태어났는데[5] 이 아이 역시 친척의 제안에 따라 가톨릭계 조직에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즉, 조셉은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생부모와 이별한 후 양부모 손에 아동학대를 당하다 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버지 오거스터스 재럴리는 이후 다른 여성과 결혼해 55년을 해로했고 4명의 자녀와 9명의 손주를 보았으며 메리 아벨 역시 극장에서 일할 당시 지배인과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한다. 다만 두 사람이 어떤 과정에서 만나 아기를 갖게 되었는지는 두 집안 사람들의 함구로 인해 알 수 없게 됐다. 상자 속 소년이 두 사람의 아들이란 사실이 밝혀진 후 재럴리 집안에 온갖 악성 댓글 등이 쏟아졌는데 이복형제들은 자신들도 소년의 죽음을 슬퍼하고 동정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

6. 관련 사건



[1] 정황으로 볼 때 희생자들을 입양한 양부모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2] 외부에는 '가구이므로 날카로운 도구로 개봉하지 말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3]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자신이 고해성사로 들은 내용을 발설할 수 없는 비밀엄수 조항이 있기 때문에 사제 본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4] 아이의 얼굴 사진이 개인에 따라 불쾌감을 일으킬수 있으므로 열람시 주의 [5] 당시 어머니 메리 아벨은 겨우 21세에 불과했다. [6] 에피소드 제목도 상자 속의 소년(The Boy in the Box)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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