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38><colcolor=#fff> 조지 찰스 빙엄 George Charles Bingham GC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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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3대 루컨 백작 조지 찰스 빙엄 George Charles Bingham, 3rd Earl of Luc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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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0년 4월 16일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잉글랜드 런던 | ||
사망 | 1888년 11월 10일 (향년 88세) |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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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
복무 | 영국 육군 (1816~1877) | |
학력 | 웨스트민스터 스쿨중퇴 | |
최종 계급 | 원수 | |
참전 | 크림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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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군인.2. 생애
런던에서 제2대 루컨 백작 리처드 빙엄의 아들로 태어났다. 웨스트민스터 스쿨에서 수학 중 1816년 제6보병연대 장교로 입대했다. 1818년 제11경용기병연대로 배치되었으며 보병, 기병을 오가며 복무했다. 1826년 중령으로 진급하고 아일랜드 군사경찰,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러시아군을 참관했다.1839년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아 아일랜드 의원이 되었다. 1841년엔 대령으로 진급했고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벨리노브의 300개의 민가를 파괴하고 2000명의 주민을 쫒아내 말살자라는 명칭을 붙었다. 1851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크림 전쟁 당시 기병사령관으로 경기병여단을 이끌던 제임스 토머스 브루더넬 카디건 백작과 같이 참전했다. 발라클라바 전투 당시 피츠로이 서머싯 래글런 남작의 무모한 지시를 거부하려했으나 계속되는 독촉에 포대로 돌격하게 되고 중간에 자신이 이끄는 중기병은 빠지게되어 카디건 백작의 경기병여단만 돌격하게 되어 참사가 발생했다.
전투 후 본국으로 송환되어 명령을 내린 래글런 백작과 이를 전달한 루이 에드워드 놀란 대위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받아들여져 처벌받지 않았다. 이후 다시는 현역으로 복귀하지 못했지만, 바스 훈장을 받고 육군 (명예) 원수와 정치직에 있다가 1888년까지 88세로 사망했다. 발라클라바 전투에 관련된 인물 가운데 가장 장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