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제6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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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식 | 이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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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 을 | 성북 갑 | 성북 을 | 서대문 을 | ||
박준규 | 조윤형 | 서범석 | 김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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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 용산 | ||||
박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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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숙 | 박한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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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거 결과
2.1. 서울특별시 제1선거구 (종로구)2.2.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중구)2.3. 서울특별시 제3선거구 (동대문구 갑)2.4. 서울특별시 제4선거구 (동대문구 을)2.5. 서울특별시 제5선거구 (성동구 갑)2.6. 서울특별시 제6선거구 (성동구 을)2.7. 서울특별시 제7선거구 (성북구 갑)2.8.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 (성북구 을)2.9. 서울특별시 제9선거구 (서대문구 갑)2.10. 서울특별시 제10선거구 (서대문구 을)2.11. 서울특별시 제11선거구 (마포구)2.12. 서울특별시 제12선거구 (용산구)2.13. 서울특별시 제13선거구 (영등포구 갑)2.14. 서울특별시 제14선거구 (영등포구 을)
1. 개요
본 항목은 제6대 국회의원 선거의 서울특별시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2. 선거 결과
2.1. 서울특별시 제1선거구 (종로구)
서울특별시 제1선거구 종로구 일원[종로]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주열(崔柱烈) | 1,078 | 5위 |
[include(틀:자유당(1963년))] | 1.49% | 낙선 | |
3 | 박수형(朴秀衡) | 1,404 | 4위 |
[include(틀:자유민주당(1963년))] | 1.95% | 낙선 | |
4 | 원일(元一) | 878 | 6위 |
|
1.22% | 낙선 | |
7 | 박노일(朴魯一) | 766 | 7위 |
|
1.06% | 낙선 | |
8 | 신상초(申相楚) | 16,264 | 2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22.60% | 낙선 | |
9 | 전진한(錢鎭漢) | 36,123 | 1위 |
[include(틀:민정당)] | 50.20% | 당선 | |
11 | 이세열(李世悅) | 443 | 8위 |
[include(틀:추풍회)] | 0.61% | 낙선 | |
12 | 여운홍(呂運弘) | 14,998 | 3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0.8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7,880 |
투표율 64.58% |
투표 수 | 77,012 | ||
무효표 수 | 5,058 |
제헌 총선때부터 두개의 선거구로 나누어진 종로구 선거구가 하나로 합쳐진뒤 치러진 선거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민정당의 전진한 후보가 당선되었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직후 민족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 여운형씨의 동생인 여운홍 후보를 공천했으나, 서울의 야당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참패했다. 여운홍 후보도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 친일 강연을 하는 바람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2.2.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중구)
서울특별시 제2선거구 서울 중구 일원 [중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노중신(魯重信) | 619 | 5위 |
[[자유당|]] |
1.07% | 낙선 | |
2 | 김경석(金景錫) | 408 | 7위 |
|
0.70% | 낙선 | |
3 | 김재인(金在寅) | 993 | 5위 |
|
1.71% | 낙선 | |
6 | 손원일(孫元一) | 6,123 | 4위 |
[[국민의당(1963년)|]] |
10.60% | 낙선 | |
8 | 정일형(鄭一亨) | 19,278 | 1위 |
|
33.37% | 당선 | |
9 | 신태악(辛泰嶽) | 15,307 | 2위 |
[[민정당| |
26.50% | 낙선 | |
10 | 이몽필(李夢弼) | 713 | 6위 |
|
1.23% | 낙선 | |
11 | 경춘하(景春夏) | 349 | 8위 |
|
0.60% | 낙선 | |
12 | 박인각(朴仁珏) | 13,966 | 3위 |
[[민주공화당| |
24.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0,839 |
투표율 64.58% |
투표 수 | 60,715 | ||
무효표 수 | 2,959 |
제헌 총선때부터 두개의 선거구로 나누어진 중구 선거구가 하나로 합쳐진뒤 치러진 선거이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때부터 중구 을 선거구에서 4선의원을 지낸 정일형 후보가 당선되었다.
해군참모총장 및 국방부장관을 지낸 국민의당 손원일 후보, 훗날 친일행위를 지적받지만 당시에는 재야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민정당 신태악 후보도 각각 야당 후보로써 인지도는 어느정도 있었으나, 이미 이 지역에서 4번 당선된 정일형 의원에게는 역부족이었다.
2.3. 서울특별시 제3선거구 (동대문구 갑)
서울특별시 제3선거구 창신동, 숭인동, 신설동, 보문동1가, 보문동2가, 보문동3가, 보문동4가, 보문동5가, 보문동6가, 보문동7가, 용두동, 제기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진태(金振泰) | 827 | 6위 |
[include(틀:자유당(1963년))] | 1.18% | 낙선 | |
3 | 정인소(鄭寅笑) | 2,401 | 5위 |
[include(틀:자유민주당(1963년))] | 3.45% | 낙선 | |
5 | 서상덕(徐商德) | 667 | 8위 |
[include(틀:한국독립당(1963년))] | 0.95% | 낙선 | |
6 | 송원영(宋元英) | 16,602 | 2위 |
[[국민의당(1963년)|]] |
23.87% | 낙선 | |
8 | 이석기(李錫基) | 11,772 | 4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16.93% | 낙선 | |
9 | 조기항(曺基沆) | 15,902 | 3위 |
[include(틀:민정당)] | 22.87% | 낙선 | |
10 | 김윤익(金允謚) | 754 | 7위 |
|
1.08% | 낙선 | |
12 | 민관식(閔寬植) | 20,606 | 1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9.63%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23,994 |
투표율 63.79% |
투표 수 | 74,218 | ||
무효표 수 | 4,687 |
민주당 구파에서 민주공화당으로 넘어온 민관식 후보가 야권의 표 분열 덕분에 손쉽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민관식 후보의 마지막 소선거구 당선이었다. 야당세가 강한 서울답게 4년 뒤인 제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경향신문 기자 출신이자 차점 낙선한 국민의당 송원영 후보가 이곳의 터줏대감이 된다.
2.4. 서울특별시 제4선거구 (동대문구 을)
서울특별시 제4선거구 청량리동, 전농동, 답십리동, 회기동, 휘경동, 이문동, 면목동, 상봉동, 중화동, 묵동, 망우동, 신내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창업(李昌業) | 2,239 | 4위 |
[include(틀:자유당(1963년))] | 3.58% | 낙선 | |
3 | 김경운(金耕雲) | 1,067 | 7위 |
|
1.71% | 낙선 | |
4 | 조영래(趙永來) | 1,043 | 8위 |
|
1.67% | 낙선 | |
6 | 신정욱(申晸旭) | 1,327 | 5위 |
[[국민의당(1963년)|]] |
2.12% | 낙선 | |
8 | 최계명(崔桂明) | 13,936 | 3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22.33% | 낙선 | |
9 | 이영준(李榮俊) | 24,219 | 1위 |
[include(틀:민정당)] | 38.82% | 당선 | |
10 | 이종선(李鍾善) | 1,099 | 6위 |
|
1.76% | 낙선 | |
11 | 김운식(金雲植) | 833 | 9위 |
[include(틀:추풍회)] | 1.33% | 낙선 | |
12 | 고진영(高鎭泳) | 16,624 | 2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6.6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6,439 |
투표율 64.50% |
투표 수 | 65,882 | ||
무효표 수 | 3,495 |
야권의 원로 정치인인 민정당 이영준 후보가 10% 이상의 격차로 당선되었다.
2.5. 서울특별시 제5선거구 (성동구 갑)
서울특별시 제5선거구 신당동, 상왕십리동, 금호동, 옥수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3 | 김용성(金龍星) | 5,563 | 5위 |
|
8.27% | 낙선 | |
5 | 윤경빈(尹慶彬) | 1,733 | 6위 |
[include(틀:한국독립당(1963년))] | 2.57% | 낙선 | |
6 | 김주흥(金柱興) | 6,353 | 4위 |
[[국민의당(1963년)|]] |
9.44% | 낙선 | |
8 | 유성권(劉聖權) | 18,764 | 1위 |
|
27.90% | 당선 | |
9 | 김제윤(金濟允) | 18,572 | 2위 |
[[민정당| |
27.61% | 낙선 | |
12 | 정태중(鄭泰重) | 16,264 | 3위 |
[[민주공화당| |
24.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7,245 |
투표율 66.18% |
투표 수 | 73,278 | ||
무효표 수 | 6,029 |
야권의 표 분열이 있었지만,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의원을 지낸 신파출신 민주당 유성권 후보가 승리, 3선 고지에 올랐다.
2.6. 서울특별시 제6선거구 (성동구 을)
서울특별시 제6선거구 ,하왕십리동, 마장동, 사근동, 길당동, 응봉동, 성수동1가, 성수동2가, 송정동, 모진동, 화양동, 능동, 군자동, 중곡동, 구의동, 광장동, 신천동, 잠실동, 자양동, 명일동, 하일동, 고덕동, 상일동, 길동, 둔촌동, 암사동, 성내동, 풍납동, 천호동, 송파동, 석촌동, 삼전동, 가락동, 이동, 방제동, 오금동, 문정동, 장지동, 거여동, 마천동, 일원동, 수서동, 자곡동, 율현동, 세곡동, 역삼동, 도곡동, 포이동, 개포동, 논현동, 신사동, 학동, 압구정동, 청담동, 삼성동, 대기동, 염곡동, 내곡동, 신원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3 | 최봉수(崔奉秀) | 1,949 | 6위 |
|
2.81% | 낙선 | |
6 | 김재황(金載晃) | 7,301 | 4위 |
[[국민의당(1963년)|]] |
10.54% | 낙선 | |
7 | 김종순(金鍾淳) | 1,989 | 5위 |
[include(틀:보수당(1963년))] | 2.87% | 낙선 | |
8 | 최덕남(崔德男) | 15,473 | 3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22.34% | 낙선 | |
9 | 홍용준(洪龍駿) | 19,355 | 2위 |
[[민정당| |
27.94% | 낙선 | |
11 | 이석구(李錫求) | 887 | 7위 |
[include(틀:추풍회)] | 1.28% | 낙선 | |
12 | 박준규(朴浚圭) | 22,302 | 1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32.20%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24,401 |
투표율 64.96% |
투표 수 | 75,937 | ||
무효표 수 | 6,681 |
민주당 구파 소속이었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공화당에 합류한 박준규후보가 승리했다. 5.16 이전 이 지역구 의원이었던 민정당 홍용준 후보는 야권의 표 분열로 패배했고,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패배해서 더이상 국회에 복귀하지 못한다.
현재의 광진구,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선거구이다.
2.7. 서울특별시 제7선거구 (성북구 갑)
서울특별시 제7선거구 성북동1가, 성북동2가, 동소문동1가, 동소문동2가, 동소문동3가, 동소문동4가, 동소문동5가, 동소문동6가, 동소문동7가, 동소문동8가, 동선동1가, 동선동2가, 동선동3가, 동선동4가, 동선동5가, 삼선동1가, 삼선동2가, 삼선동3가, 삼선동4가, 삼선동5가, 안암동1가, 안암동2가, 안암동3가, 안암동4가, 안암동5가, 정릉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3 | 홍순우(洪淳宇) | 2,382 | 5위 |
|
4.31% | 낙선 | |
4 | 표문화(表文化) | 999 | 8위 |
|
1.80% | 낙선 | |
6 | 한몽연(韓夢淵) | 2,125 | 4위 |
[[국민의당(1963년)|]] |
3.84% | 낙선 | |
7 | 김갑임(金甲任) | 1,060 | 6위 |
|
1.91% | 낙선 | |
8 | 방동석(方銅石) | 5,348 | 3위 |
|
9.67% | 낙선 | |
9 | 조윤형(趙尹衡) | 29,881 | 1위 |
[include(틀:민정당)] | 54.07% | 당선 | |
10 | 장두원(張斗遠) | 1,013 | 7위 |
|
1.83% | 낙선 | |
12 | 우만형(禹萬亨) | 12,454 | 2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2.5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3,469 |
투표율 60.25% |
투표 수 | 57,770 | ||
무효표 수 | 2,508 |
민정당 조윤형 후보가 야권의 표 분열에도 불구하고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하며 여유롭게 승리했다.
조윤형 당선자의 경우 5대 국회 당시에는 국회에 입성하기 위해 경기 양주군 갑 선거구의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지만, 원래 해당지역에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계속 서울 성북구 지역에서 출마해 당선된다.
2.8.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 (성북구 을)
서울특별시 제8선거구 돈암동, 종암동, 상월곡동, 하월곡동, 미아동, 장위동, 석관동, 번동, 우이동, 수유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 방학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진수(李鎭洙) | 1,894 | 5위 |
[include(틀:자유당(1963년))] | 3.44% | 낙선 | |
3 | 조영규(曺泳珪) | 5,116 | 4위 |
|
9.30% | 낙선 | |
6 | 최순근(崔淳勤) | 2,763 | 4위 |
[[국민의당(1963년)|]] |
5.02% | 낙선 | |
8 | 김준섭(金俊燮) | 6,869 | 2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12.49% | 낙선 | |
9 | 서범석(徐範錫) | 23,299 | 1위 |
[include(틀:민정당)] | 42.38% | 당선 | |
10 | 진복기(陳福基) | 1,004 | 6위 |
|
1.82% | 낙선 | |
11 | 장기창(張基昌) | 662 | 8위 |
[include(틀:추풍회)] | 1.20% | 낙선 | |
12 | 홍기현(洪基賢) | 13,358 | 3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4.3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7,337 |
투표율 64.58% |
투표 수 | 58,696 | ||
무효표 수 | 3,731 |
민정당 서범석 후보가 여유있는 득표차로 승리한다.
8년 뒤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카이저 수염으로 이름을 알리며 군소후보의 대명사로 지금도 회자되는 진복기씨도 이 지역구에 군소정당인 정민회 후보로 출마한다. 1.82%라는 미미한 득표율을 거두고 낙선했다.
2.9. 서울특별시 제9선거구 (서대문구 갑)
서울특별시 제9선거구 정동, 서소문동, 순화동, 의주로1가, 의주로2가, 합동, 미근동, 중림동, 만리동1가. 만리동2가, 충정로1가, 충정로2가, 충정로3가, 교남동, 평동, 송월동, 냉천동, 천연동, 옥천동, 홍파동, 교북동, 행촌동, 영천동, 현저동, 북아현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진원(崔鎭源) | 776 | 6위 |
[[자유당|]] |
1.29% | 낙선 | |
|
|
- | 사퇴 |
|
|||
3 | 강을순(姜乙淳) | 5,131 | 5위 |
|
8.53% | 낙선 | |
6 | 송방용(宋邦鏞) | 9,327 | 3위 |
[[국민의당(1963년)|]] |
15.51% | 낙선 | |
7 | 강남식(康南植) | 729 | 7위 |
|
1.21% | 낙선 | |
8 | 김동호(金東昊) | 7,057 | 4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11.74% | 낙선 | |
9 | 김재광(金在光) | 24,139 | 1위 |
[include(틀:민정당)] | 40.16% | 당선 | |
11 | 계성범(桂性範) | 482 | 8위 |
[include(틀:추풍회)] | 0.80% | 낙선 | |
12 | 조주영(趙柱泳) | 12,462 | 2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0.7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0,787 |
투표율 55.26% |
투표 수 | 64,083 | ||
무효표 수 | 3,980 |
서울시의원을 두 번 지낸 민정당 김재광 후보가 여유있는 득표차로 당선되었다.
2.10. 서울특별시 제10선거구 (서대문구 을)
서울특별시 제10선거구 홍제동, 부암동, 신영동, 홍지동, 대신동, 대현동, 신촌동, 봉원동, 창천동, 노고산동, 연희동, 수색동, 녹번동, 응암동, 역촌동, 신사동, 대조동, 불광동, 갈현동, 귀산동, 승산동, 북가좌동, 상암동, 중동, 성산동, 홍은동, 구기동, 평창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2 | 김병규(金炳奎) | 813 | 7위 |
|
1.21% | 낙선 | |
3 |
김산(金山) || 12,777 || 3위 ||
|
19.12% | 낙선 | |
6 | 임춘재(任春宰) | 3,047 | 5위 |
[[국민의당(1963년)|]] |
4.56% | 낙선 | |
7 | 한창열(韓昌烈) | 976 | 6위 |
|
1.46% | 낙선 | |
8 | 노지언(盧志彦) | 4,232 | 4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6.33% | 낙선 | |
9 | 윤제술(尹濟述) | 27,404 | 1위 |
[include(틀:민정당)] | 41.02% | 당선 | |
12 | 최규남(崔奎南) | 17,544 | 2위 |
[[민주공화당| |
26.2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8,857 |
투표율 61.16% |
투표 수 | 72,932 | ||
무효표 수 | 6,139 |
5.16 군사정변 이후 지역구를 고향인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서울로 옮긴 민정당 윤제술 후보가 당선되었다. 전직 문교부 장관인 공화당의 최규남 후보는 야권의 표 분열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워낙 강한 야당세에 밀려 낙선했다. 윤제술, 최규남 두 후보 모두 교육자 출신 정치인이다.
2.11. 서울특별시 제11선거구 (마포구)
서울특별시 제11선거구 마포구 일원 [마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
|
- | 사퇴 |
[[자유당|]] |
- | ||
3 | 박인출(朴仁出) | 5,691 | 3위 |
|
7.66% | 낙선 | |
6 | 정준(鄭濬) | 5,365 | 4위 |
[[국민의당(1963년)|]] |
7.22% | 낙선 | |
8 | 박순천(朴順天) | 50,250 | 1위 |
|
67.67% | 당선 | |
|
|
사퇴 | |
[[민정당| |
- | ||
12 | 변우창(邊宇昌) | 12,941 | 2위 |
[[민주공화당| |
17.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4,834 |
투표율 60.35% |
투표 수 | 85,478 | ||
무효표 수 | 11,231 |
야권 거물이자 여성 정치인인 민주당 박순천 후보가 3분의 2를 넘기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 4선 의원이 되었다.
2.12. 서울특별시 제12선거구 (용산구)
서울특별시 제12선거구 용산구 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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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3 | 서민호(徐珉濠) | 27,384 | 1위 |
|
31.30% | 당선 | |
5 | 최병호(崔炳鎬) | 861 | 6위 |
[include(틀:한국독립당(1963년))] | 0.98% | 낙선 | |
6 | 김춘봉(金春鳳) | 5,228 | 5위 |
[[국민의당(1963년)|]] |
5.97% | 낙선 | |
8 | 김원만(金元萬) | 21,686 | 2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24.78% | 낙선 | |
9 | 민정기(閔貞基) | 12,556 | 4위 |
[[민정당| |
14.35% | 낙선 | |
12 | 김익준(金益俊) | 19,772 | 3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2.5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1,975 |
투표율 62.58% |
투표 수 | 94,434 | ||
무효표 수 | 6,947 |
전라남도 고흥군 을구에서 지역구를 서울로 옮긴 자유민주당 서민호 후보가, 군소정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당 및 같은 야당인 민정당과 민주당의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되었다. 정당방위인지, 살인행위인지 지금도 논란이 있는 서창선 대위 사살사건으로 전국적 지명도가 생겼고, 4.19 혁명 이후에는 반 이승만 운동을 하다가 괘씸죄로 인해 살인이라는 법원의 결론이 나왔고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는게 중론이라 동정표를 받아 당선될 수 있었다. 민주공화당 후보는 3위로 쳐졌다.
이후 서민호 의원은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해 임기 중 의원직을 사퇴한다. 서민호 의원의 사퇴로 인해 보궐선거가 치러지자 당선된 인물이 한국독립당 김두한 후보이다. 김두한은 국회에 재입성한 직후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겪었고,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카린 밀수 사건에 항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일으켰고, 직후 의원직을 사퇴했다.[4]
2.13. 서울특별시 제13선거구 (영등포구 갑)
서울특별시 제13선거구 신길동, 신대방동, 신도림동 일부, 대방동, 상도동, 노량진동, 본동, 흑석동, 동작동, 양재동, 원지동, 우면동, 사당동, 방배동, 서초동, 반포동, 잠원동, 시흥동, 독산동, 가리봉동, 신림동, 봉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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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
|
- | 등록무효 |
[include(틀:자유당(1963년))] | - | ||
3 | 김기용(金起溶) | 8,452 | 4위 |
|
11.80% | 낙선 | |
6 | 홍성유(洪成裕) | 6,123 | 5위 |
[[국민의당(1963년)|]] |
10.60% | 낙선 | |
7 | 엄규진(嚴奎震) | 4,084 | 6위 |
|
5.70% | 낙선 | |
8 | 한통숙(韓通淑) | 23,416 | 1위 |
|
32.69% | 당선 | |
9 | 김유근(金有根) | 15,893 | 3위 |
[[민정당| |
22.19% | 낙선 | |
10 | 문주복(文柱福) | 1,114 | 7위 |
|
1.55% | 낙선 | |
12 | 이용남(李用男) | 16,323 | 2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22.7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1,345 |
투표율 63.48% |
투표 수 | 79,041 | ||
무효표 수 | 7,430 |
민주당 신파 출신이자 장면 내각에서 체신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한통숙 후보가 당선되었다.
2.14. 서울특별시 제14선거구 (영등포구 을)
서울특별시 제14선거구 ,영등포동1~8가, 여의도동, 당산동1~6가, 양평동1~6가, 문래동1~6가, 도림동, 구로동, 가양동, 마곡동, 등촌동, 염창동, 목동, 화곡동, 신월동, 신정동, 내발산동, 외발산동, 공항동, 방화동, 개화동, 과해동, 오곡동, 오쇠동, 오류동, 천왕동, 고척동, 개봉동, 궁동, 온수동, 항동, 신도림동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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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2 | 길봉기(吉鳳岐) | 1,449 | 6위 |
|
1.92% | 낙선 | |
3 | 유진순(劉鎭舜) | 8,387 | 5위 |
|
11.07% | 낙선 | |
6 | 윤재욱(尹在旭) | 11,130 | 4위 |
[[국민의당(1963년)|]] |
14.69% | 낙선 | |
7 | 이강섭(李康燮) | 1,369 | 7위 |
|
1.80% | 낙선 | |
8 | 윤명운(尹明運) | 16,688 | 2위 |
[include(틀:민주당(1963년))] | 22.02% | 낙선 | |
9 | 박한상(朴漢相) | 22,461 | 1위 |
[include(틀:민정당)] | 29.64% | 당선 | |
11 | 황상기(黃相基) | 803 | 7위 |
[include(틀:추풍회)] | 1.05% | 낙선 | |
12 | 성인기(成仁基) | 13,469 | 3위 |
[include(틀:민주공화당)] | 17.7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4,753 |
투표율 65.79% |
투표 수 | 81,826 | ||
무효표 수 | 6,070 |
인권변호사이자 정치 신인인 민정당 박한상 후보가 야권의 표 분열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다. 이후 총 6번 당선되어 야권의 중진으로 활약하고, 7대 국회에서는 3선 개헌에 반대해서 10시간 15분이라는 당시 필리버스터 최장기록도 세우게 된다. 여당인 공화당 성인기 후보는 3위까지 내려앉았다.
[종로]
종로4가동, 가회동, 누상누하동, 신문로동, 옥인동, 평창동, 삼청동, 세종로(세종로, 내수동, 도염동, 당주동), 이화동, 효자동, 안국동, 낙원동, 종로3가동, 권농동, 백록동, 혜화동, 명륜2,4가동
[중구]
덕수동, 흥천동, 청계동, 대창동, 숭남동, 도동, 동자동, 회현1가1동, 회현1가2동, 회현2, 3가동, 남산동, 남곡동, 충무로1, 2가동, 명동, 영희동, 을지로2, 3가동, 동원동, 충인동, 야현동, 인현1가동, 악선동, 장충1가동, 장충2가동, 쌍림동, 광희1가동, 광희2가동, 을지로4가동, 훈련동, 을지로6, 7가동, 훈도동, 산림동, 주교동
[마포]
아현1,2,3동, 공덕1,2동, 신공덕동, 용강동, 신수동, 창전동, 상수동, 서교동, 동교동, 합정동, 대흥동, 염리동, 망원동, 노고산동, 도화동
[4]
본인이 사퇴하지 않았더라도 국회에 똥물테러를 했으니 제명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