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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7:54:49

제임스 듀렐 그린

제임스 듀렐 그린
James Durrell Greene
파일:1000008003.jpg
출생 1828년 5월 1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사망 1902년 3월 21일 (향년 73세)
미국 미시간주 입실랜티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준장
복무 기간 1861~1867
학력 하버드 대학교중퇴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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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그린 소총의 개발자이다.

2. 생애

매사추세츠주 린에서 태어났고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던 그는 케임브리지 민병대에 입대하여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1] 남북 전쟁에 참전하여 앤티텀 전투, 게티즈버그 전투 등에 참여하여 대령까지 진급했다가 1867년 명예 준장 계급으로 전역했다. 군인으로서도 유능했지만 그린의 주요 관심사는 무기 개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854년에는 자신이 설계한 그린 카빈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여 영국에 2,000정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제임스 그린은 그린 카빈에 뒤이어 1857년에 그린 소총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는데, 초기에는 미국 내에서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했으나 바다 건너 러시아 제국 이집트 왕국에 각각 3,000정과 350정의 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1862년에는 미군 병기부의 테스트를 받았는데, 후술할 디자인 문제 때문에 혹평을 받았으나 정당 $36.96씩 900정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군인이었던 그린은 계약된 총들을 생산할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매사추세츠주의 A.H. 워터스 병기창에서 생산을 담당했다. 3개국에 대한 계약 물량을 모두 합쳐 약 4,500정이 1859년부터 1860년대 초반까지 생산되었다. 미군 계약 물량은 1863년 워싱턴 무기고에 전달되었으나,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고 치장물자로 계속 비치되어 있다가 1895년에 민간에 불하되었다. 그러나 약 250정의 물량은 앞선 3개국의 계약 물량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남북 전쟁 중에 매사추세츠주 민병대에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앤티텀 전투 전장에서 그린 소총의 탄약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 총이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2]

전후에도 총기 제작에 힘썼으며 남북전쟁 참전용사를 위한 공제회인 공화국의 위대한 군대의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1902년 사망했다.

3. 여담

본래 성은 "Green"이었으나, 자신의 아버지(제임스 다이먼 그린, James Diman Green)와 미들네임 이니셜까지 동일하였기에 구분을 위해서 자신의 성을 "Greene"으로 변경했다.


[1] 원래 그린은 미국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진학을 포기했다. [2] 앤티텀 전투는 미군과 계약이 성사되기 1년 전인 1862년에 벌어졌으므로, 민병대 측에서 자체적으로 그린 소총을 조달해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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