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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6 17:45:47

제국-동맹 전쟁

은하제국
銀河帝國, Galactic Empire
자유행성동맹
自由惑星同盟, Free Planets Alliance
VS
1. 개요2. 전개
2.1. 배경2.2. 시작2.3. 교착2.4. 장기전이 된 원인2.5. 전황의 변화2.6. 종결
3. 주요 전투
3.1. 외전3.2. 정전

1. 개요

파일:제국동맹전쟁제국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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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군 함대와 교전하는 동맹군 함대[1]
銀河帝国と自由惑星同盟の戦い/Alliance-Imperial War

은하영웅전설 본편의 배경으로 다곤 성역 회전이 벌어진 우주력 640년 부터 우주력 800년 2월 2일에 공포된 겨울장미원의 칙령까지 무려 160년간 이루어진 은하제국 자유행성동맹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직후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고,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으로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함으로써 로엔그람 왕조의 은하제국이 승리한다.

2. 전개

2.1. 배경

우주력 1년 은하연방이 세워진 이후 인류는 끝없이 우주로 뻗어나갔으나, 200년 쯤이 지나자 권태기에 접어들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사회에 지친 민중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장교 루돌프 폰 골덴바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그는 여러 차례의 선거를 거쳐 국가원수직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종신독재관이 되어 은하연방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우주력 310년 '은하제국의 황제'를 자칭하며 은하연방을 무너뜨리고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을 건국했다.

이후, 루돌프는 즉위 9년차에 발표한 열악 유전자 배제법을 시작으로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폭정을 펼쳐 나갔다. 특히, 아직 제국 의회에 남아있던 소수 공화파 의원들이 강하게 저항하자 이에 격하게 분노해 제국 의회를 해산하고 반대파를 학살하여 황제 중심의 귀족정 체제를 세웠다. 그가 죽은 후 제국은 공화파의 반란에 휩싸였으나, 루돌프가 이미 사회질서유지국 등의 부서를 통해 제국 전체를 효과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았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되었다.

그러나 우주력 473년, 알레 하이네센을 필두로 한 40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제국령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반세기에 걸친 1만 광년의 대장정 끝에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발견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자유행성동맹이라는 민주공화주의 국가를 건립하였다. 이 사실을 은하제국은 알지 못했으나, 자유행성동맹은 언젠가 있을 은하제국과의 결전을 위해 국력 증강에 매진하였다.

2.2. 시작

우주력 640년 2월,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초계함대가 처음으로 접촉하였다. 은하제국 함대는 갑자기 나타난 외계 함대에 깜짝 놀랐고, 동맹 함대는 그동안 준비하고 예상했기에 즉시 그들을 공격해 섬멸하였다. 하지만 제국 초계 함대는 전멸 직전까지 은하제국으로 통신 보고를 시도했고, 이를 접한 제국은 컴퓨터에 묻힌 옛 기록을 발굴하여 먼 우주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과거 탈출한 죄수들의 후예임을 파악한다.

발칙한 반역자들이 우주 어디서 객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은하제국은 대규모 토벌대를 결성했다. 사령관은 병약한 황태자 구스타프를 대신해 제위계승자로 내정된 헤르베르트 대공이었고, 동원병력은 5만 척에 달했다.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의중을 헤아린 중신들은 일제히 원정을 칭송했고, 제국 토벌군은 오딘을 출발, 이제르론 회랑을 돌파하여 동맹령을 침공했다.

하지만 자유행성동맹은 그동안 제국이 상대한 귀족 반란이나 민중 봉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대한 세력이었고, 은하제국이 파견한 토벌군은 어두운 지리, 지휘관의 무능 등등이 겹쳐 다곤 성역 회전에서 무려 90%의 장병들을 잃는 최악의 패전을 당하고 말았다.[3] 패전으로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는 '패군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으며, 치열해진 제위계승경쟁으로 제국은 혼란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검붉은 6년'은 청안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즉위와 대규모 개혁으로 수습되었다. 막시밀리안도 동맹령 원정 계획을 수립했지만 '거리의 폭거'를 주장한 사법상서 오스발트 폰 뮌처의 진언을 받아들여 계획을 파기하고,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원정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뒤를 이어 즉위한 코르넬리우스 1세는 선제를 뛰어넘기 위해 원정을 계획했다. 뮌처는 이번에도 반대했지만 코르넬리우스 1세는 듣지 않았고, 뮌처는 스스로 궁정에서 물러났다.

우주력 668년에 발발한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 다곤 성역 회전과 달리 제국의 우세로 흘러갔다. 제국은 몇 차례 사절을 보내 동맹에 복종을 권유했지만 20년도 전의 승리에 취한 동맹 정부는 사절단을 냉소로 응대했다. 그러자 코르넬리우스 1세는 다곤 성역 회전보다 많은 대군을 이끌고 동맹령을 침공했고, '다곤의 영웅'이 없었던 동맹군은 두 차례나 대패하였다. 그러나 동맹을 정복하기 직전 오딘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코르넬리우스 1세는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였다. 동맹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퇴각하는 제국군에 반격을 가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코르넬리우스 1세는 수도로 돌아와 반란을 진압했지만 원정을 수행하는 동안 국력을 많이 소진한 탓에 재원정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2.3. 교착

전쟁의 양상은 은하제국의 공격과 자유행성동맹의 수비 구도로 전개되었다. 자유행성동맹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 등 여러 번 승전을 거두었지만 본질적인 전쟁의 양상을 바꾸진 못했고, 제국의 침공을 막기 위한 군비 지출은 그대로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그 때문에 동맹은 페잔 자치령에 빚을 져야 했고, 이는 동맹 전체의 경제가 페잔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다.

은하제국은 끊임없이 원정함대를 편성하여 자유행성동맹을 공격했으나 브루스 애쉬비가 지휘하는 동맹함대에 티아마트 성역에서 장성만 무려 60명이 죽는 대참패를 당하고, 거기에다 1만 광년이 넘는 거리 때문에 동맹을 정복할 수 없었다. 그러자 제국은 동맹의 공격을 막는 최강의 방패인 동시에 원정함대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할 이제르론 요새를 건설하였다. 동맹은 이 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6차례나 대규모 원정함대를 보냈지만 매번 패배에 그쳤다.

두 국가간의 전투는 150년 간 크고 작은 전투를 합해 모두 329번 치러졌으며[4], 1년에 2번 꼴로 충돌했다.[5] 하지만 양측 모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능력은 없었고, 이 때문에 전장은 100여년동안 이제르론 회랑과 인근 성계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않았다.[6] 양측 모두 전쟁에 필요한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 가용 자원을 최대한 군대에 쏟아부었고, 그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의 소모도 극심해[7] 양국의 경제는 페잔 자치령에 종속되었으며 은하연방 시절 3000억에 달했던 인구는 400억까지 줄어들었다. 양국은 전쟁에만 열중한 나머지 변경행성의 개발이나 더 먼 성계의 개척 계획은 사실상 무산되었고 전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인문학계에 대한 지원은 갈수록 축소되었다.

이런 경향은 동맹이 더 심했는데, 제국보다 약한 국력을 가진 동맹은 어떻게든 제국을 막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올인한 결과 정부 예산은 만성적자를 기록했고, 사회, 경제의 침체현상도 극심해졌다.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과 제국에서 넘어온 망명자들 중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귀족과 왕족들 때문에 민주주의도 서서히 병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양측 정치가들 중에서 화의를 주장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은하제국의 망명제 만프레트 2세는 즉위 이후 자유행성동맹과의 강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의 수많은 강화 시도는 "불경한 반도 토벌"과 "전제주의 척결"을 외치면서 외부의 적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려는 양국 강경파와 전쟁이 끝나는 걸 바라지 않는 페잔 자치령 지구교의 공작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은영전 본편이 시작되는 우주력 8세기 말에 접어들었을 무렵 제국은 암군 프리드리히 4세의 치세가 길어지면서 문벌귀족의 주도로 봉건화가 진행되었고, 자유행성동맹은 사회 및 경제 분야에서의 정체현상으로 민중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루빈스키는 이대로 간다면 제국은 분열하여 수많은 소왕국으로 전락하고, 자유행성동맹은 끝없는 침체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전망했을 정도였다. 이 와중에도 양국은 이제르론 회랑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으나, 그저 전술 레벨의 승패만 주고받았을 뿐 전황을 뒤집을 만한 대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전체적인 전황은 국력이 앞서고 이제르론 요새를 보유하여 일방적으로 공세를 펼칠 수 있는 은하제국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8] 전쟁의 판도를 결정지을 수준은 아니었다.

2.4. 장기전이 된 원인

제국-동맹 전쟁이 장기화된 것은 결국 다곤 성역 회전에서 결판을 내지 못한 것이 첫번째 원인이다. 만일 제국이 다곤 성역 회전에서 대승하였다면 제국군은 그대로 동맹령으로 진입했을 것이고 곧 하이네센이 함락당하여 동맹은 멸망하고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다곤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은 대승했고 그 여파로 제국은 검붉은 6년이라는 혼란과 동맹의 존재가 제국에 알려지자 제국의 수많은 망명자들이 동맹으로 몰려들어 동맹은 급격히 성장해 제국에 맞설 국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동맹은 다곤 성역 회전에서 대승했음에도 제국을 역으로 침공할 국력이 없었다. 이것 역시도 장기화의 원인으로 가능성은 없지만 양국의 국력이 비등한 수준이었다면 동맹에서 제국 역침공을 감행하여 수도성 오딘을 함락해 제국을 멸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국력이 안 되니 할 수가 없었던 것.

이후로도 계속 전쟁은 이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서로에게 큰 타격은 입혀줄지언정 치명상까지는 입히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5. 전황의 변화

질질 끌리던 전쟁은 우주력 796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변동했다. 그해 5월 자유행성동맹군 제13함대 사령관 양 웬리 소장이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함락한 것이다. 은하제국은 큰 충격을 받아 제국군 3대 장관이 모두 사직서를 제출할 정도였고 반대로 동맹은 기쁨에 빠져 호전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동맹군의 참모 앤드류 포크 준장이 로열 샌포드 의장의 비서에게 자신이 독자적으로 입안한 제국령 침공작전을 찔렀고,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킬 카드에 목말라 있던 로열 샌포드 행정부는 전공을 세워 지지율을 끌어올리자는 발상으로 일부 평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침공안을 통과시켰다. 동맹군은 기존의 우주함대에 각 성계에서 끌어올 수 있는 부대는 모두 끌어모아 원정군을 편성했고 그해 8월 무려 함정 20만 척과 장병 3천만 명에 달하는 원정군이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여 제국령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동맹과 제국의 세력 균형을 중요시하는 페잔 자치령에 의해 침공 계획과 대략적인 병력 규모가 제국에게 흘러들어갔고, 은하제국은 라인하르트 원수부에게 반격을 맡겼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이 쳐들어올 변경 항성계의 모든 물자를 긁어모아 제국령 내부로 철수했고, 기세좋게 밀고들어온 동맹군은 적과 싸우기는 커녕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제국 민중들을 구휼하다가 아사할 위기에 놓인다. 뒤늦게 정부가 물자를 마련해서 보냈지만 제국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중장에게 수송함대가 전멸하면서 전선에 도착하지 못했고, 원정군 사령부는 물자가 도착할 때까지 현지조달하라고 명령했다가 민심마저 잃고 만다. 결국 동맹군은 지친 채로 제국군의 총반격에 노출당해 궤멸당했고, 잔존 병력이 암릿처 성계에 집결하여 반격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제국군에게 패배하면서 실패했다. 양 웬리 중장의 활약으로 동맹군은 포위섬멸은 면했지만 전 병력의 7할을 잃은 채로 모든 점령지를 포기하고 이제르론 요새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원정 실패는 동맹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무모한 원정을 계획했다가 처참하게 패배한 로열 샌포드 행정부는 동맹 시민들의 분노를 받아 실각하고, 국방위원장 욥 트뤼니히트가 임시로 의장 대행이 되었다. 군부에서는 라자르 로보스 원수와 시드니 시톨레 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퇴역, 좌천되었고 원정에 참여한 정규함대는 대부분 해산되었다. 유일하게 13함대만이 해체되지 않고 10함대 잔존병력과 통합하여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는 양 함대로 재창설되었다.

이듬해 우주력 797년, 제국과 동맹에서 내전이 발발하여 전쟁은 소강기를 맞이하였다. 제국은 침공작전 도중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붕어했고, 곧 후계자를 세우기 위한 내전이 시작됐다. 수많은 군공을 세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과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손을 잡고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차기 황제로 옹립하였으며 이에 반발한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공작을 중심으로 한 문벌귀족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결성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문벌귀족의 무능과 삽질 탓에 반란은 5개월 만에 끝이 났고, 그들의 재산은 그대로 국고로 환수되어 제국의 재정을 윤택하게 하였다. 이후 라인하르트 백작은 리히텐라데 후작을 몰아내고 스스로 제국재상에 올라 제국의 사실상 1인자가 되어 국가를 개혁하였다.

비슷한 시기 동맹에서도 군부 인사 중 몇몇이 결성한 구국군사회의라는 조직이 쿠데타를 일으켜 수도를 장악하고 동맹 정부를 전복하였다. 양 함대가 쿠데타 동참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임지를 떠나 쿠데타 진압에 나서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내전은 양 함대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수도를 방위하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와 남은 정규함대 3개 중 하나인 제11함대가 도리아 성역 회전에서 섬멸당하면서 안 그래도 허약한 군사력에 더욱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마저 붕괴하였다.

이후 발발한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은 제국군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로엔그람 공작은 동맹을 침공할 명분을 만들고자 페잔 자치령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하는 걸 방관하였고, 자유행성동맹 정부의 협력을 얻어 은하제국 정통정부 설립을 공포하자 즉각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이제르론 요새로 진격하는 척 하며 페잔 방면으로 함대를 보내 페잔 자치령을 기습 병탄하였으며, 제국군 주력부대를 페잔이 집결시킨 뒤 페잔 회랑을 통해 동맹령에 침입했다.

동맹은 남은 함대를 끌어모아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과 맞섰지만 크게 패하여 전력 대부분을 상실했다. 이후 양 웬리가 남은 함대를 이끌고 유격전으로 제국군 함대를 하나 하나 격퇴했으며, 끝내 버밀리온 성역에서 라인하르트 함대와 대결해서 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미터마이어 함대와 로이엔탈 함대가 하이네센으로 진격해 동맹 정부에 항복을 요구했다. 국방위원장 월터 아일랜즈와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는 결사항전을 주장했지만 최고평의회 의장 욥 트뤼니히트는 지구교도의 도움을 받아 반대파를 연금하고 제국에 항복한다. 이후 양국은 바라트 화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사실상 동맹을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바라트 화약을 맺은 직후 라인하르트는 제국으로 돌아가 카타린 케트헨 1세로부터 제위를 넘겨받아 로엔그람 왕조를 개창한다.

2.6. 종결

같은 해, 제국은 헬무트 렌넨캄프를 고등판무관으로 삼아 하이네센에 파견했다. 그는 양 웬리에 패한 적이 있어 그를 싫어했는데, 제국의 눈치를 보던 동맹 정부는 렌넨캄프와 손을 잡고 양 웬리를 제거하려다 역으로 양 웬리 일당에게 최고평의회 의장 조안 레벨로와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가 사로잡혔고 렌넨캄프는 인질로 잡히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 사실이 제국에 보고되자 제국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국가의 영웅과 황제의 대리인을 팔아넘긴 동맹 정부를 질책하며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제국의 침공에 동맹 정부는 사실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비되었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뷰코크 원수는 남은 함대를 이끌고 마르 아데타 성역에서 제국군과 격돌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제국은 하이네센까지 진공하여 겨울장미원에서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발표, 동맹을 공식적으로 멸망시켰다.

이로써 제국과 동맹의 전쟁은 끝났으나, 동맹이 멸망하기 직전 엘 파실 성계가 독립하여 엘 파실 독립정부를 창건하고, 양 웬리 함대가 독립정부에 합류하면서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반란을 일으켜 제국군끼리의 내전이 다시금 일어나고야 말았고, 사소할 수 있었던 군사적 충돌에서 촉발된 시바 성역 회전에 이르러 율리안 민츠가 라인하르트의 기함 브륀힐트로 직접 돌입해 황제를 대면하고 화평을 청함으로써 길고 길었던 전란은 제국-동맹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후에야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 회담에서 라인하르트는 하이네센에 민주주의 자치령 건국을 승인하였으며, 제국과 자치령이 공존하면서 인류사회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3. 주요 전투

3.1. 외전

3.2. 정전



[1] 제국측은 1세대 전함이 존재하며 동맹군 또한 10급 전함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중반기 시점의 전투 중 하나로 추정된다. [2] 6권 비상편 서장 <지구쇠망의 기록> 제외. [3] 어처구니 없게도, 다곤 성역 회전은 사실 제국군이 이길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문제는 지휘관이 헤르베르트라는 멍청이였고, 그 멍청이가 기회를 족족 날려먹었다는 것. 동맹군이 제국군의 상황을 알아채기 전까지만 해도 동맹군 수뇌부는 침울 그 자체에 빠져, 독설로 유명한 유수프 토패롤마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답답한 꼴에 깊이 빡친 부관이 참다 못해 "귀관들은 예편원을 쓰시오! 본관은 유서를 품에 안고 있소!" 라고 일갈했을 때조차 '우린 글렀다.' 라는 생각에 빠져 침묵하고 있었다. [4] 제3차 티아마트 회전 기준 [5] 다만 단순계산이 이렇다는거지 양국의 전쟁은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시기처럼 휴전기도 존재했고 양 웬리가 일생동안 100여회의 전투에 참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기에 갈수록 더욱 많은 전투가 일어났을 수 있으며 또 엘 파실 전투나 회랑의 조우전처럼 단순한 국경분쟁 수준의 전투도 있다. 그 중에는 몇 척 단위의 교전도 있었으니 이런것까지 합치면 300여회 이상도 가능하다. 기실, 제국-동맹 전쟁의 시작을 다곤 성역 회전이라 하지만 그 직전에도 초계함들끼리의 조우전도 있었다. [6] 사실 이는 또 지리적인 상황도 한몫을 했는데 제국과 동맹의 영역 사이에는 항행불능구역인 사르갓소 지대가 있었고 이 틈 사이로 서로를 오고갈 수 있는 길은 이제르론 회랑과 페잔 회랑 둘뿐이고 그나마도 페잔 회랑은 군사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길이 제한되면 제한된 길에서만 싸워야 했기에 국력이 더 약했던 동맹은 이제르론 회랑만 막으면 나라를 지킬 수 있던 반면 제국은 더 강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르론 회랑에서만 싸워야 하다보니 코르넬리우스 1세나 라인하르트 같은 이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압도적인 군세를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 [7] 인적 자원으로 치자면 730년 마피아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기 직전인 73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730년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사람이 1400여명이었는데 이중 2년 사이에 888명이 죽었다고 한다. 단 2년 사이에 전체 졸업생의 반 이상이 죽은 것이다. [8] 그래서 아스타테 회전에서 패배 직전에 몰린 동맹군이 양 웬리의 지휘로 다시 어느정도 대등하게 흘러가자 이를 본 이반 코네프와 포플랭은 이런 광경은 요즘들어 드문거 아니냐고 한다. [9] 라인하르트는 이 꼴을 보고 "장래의 망명지를 잃기 싫어서 조심스러워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이것조차 과대평가고 없는 능력을 끌어다 써야 이 정도라고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