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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0:56:04

정선규

정선규의 수상 및 영예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9 2011

창원 LG 세이커스 등번호 1번
이정래
(2000~2001)
정선규
(2002~2004)
김상영
(2004~2005)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등번호 3번
김태진
(2005~2006)
정선규
(2006~2008)
정영삼
(2008.12~2010)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등번호 7번
조우현
(2006~2008)
정선규
(2008)
김태환
(2008.12~2009)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7번
서장훈
(2007~2008)
정선규
(2008~2014)
김태술
(2014~2015)
}}} ||
용산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YONGSAN HIGH SCHOOL BASKITBALL TEAM
파일:정선규 고려대 코치.jpg
정선규
鄭善圭 | Sun-Kyu Jung
<colbgcolor=#020066> 출생 1980년 2월 19일 ([age(1980-02-19)]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연일 정씨[1]
신체 180cm| 체중 75kg
혈액형 B형
가족 아버지[2], 어머니, 형 정민규[3]
직업 농구선수( 포인트 가드 / 은퇴)
농구코치
종교 불교 #
학력 서울성자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졸업)
프로 입단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 창원 LG)
현역시절 등번호 1[4], 3[5], 7[6]
병역 국군체육부대 농구단 (2004~2006)
소속 <colbgcolor=#020066> 선수 창원 LG 세이커스 (2002~2004)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6~2008)
전주 KCC 이지스 (2008~2014)
코치 전주 KCC 이지스 (2015~2018)
고려대학교 (2019~2021)
용산고등학교 (2022~)
프런트 전주 KCC 이지스 (2014~2015 / 전력분석원)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선수 시절4. 은퇴 후5. 플레이 스타일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한국의 前 농구선수. 작은 키, 약한 체력 등 기본적인 신체조건에서 경쟁력이 모자란 것 외에 운동신경과 기동력 등에서도 강점을 가지지 못했지만 12시즌동안 식스맨으로 활약했다.

2.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 특별활동을 계기로 농구를 했는데 초반에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으나 코치의 설득 끝에 농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용산중 시절에는 제19회 협회장기배 준결승전 춘천중학교와의 경기에서 전반에 뒤진 점수차를 유병훈과 함께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 진출을 이끌어 냈고, 용산고 시절 박유진과 함께 제22회 협회장배와 제8회 학산배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시절에는 식스맨으로 활약하면서 성공률 37%에 달했던 3점슛 실력을 뽐냈다. 여기에 오용준, 이현호 등과 함께 제15회 아시아 청소년 남자농구 선수권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7]

3. 선수 시절

2002년에 개최된 드래프트에서 9순위로 창원 LG에 입단해 강동희를 뒷받치는 식스맨으로 뛰었지만 기량과 경기 흐름이 부족했고 다른 선수들과의 호흡도 맞지 않았다.

상무에 입대한 뒤에는 박지현, 이한권 등과 함께 중국 광둥성에서 개최된 2005 동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 각국 대표팀을 5전 전승으로 격파하고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전 이후 3년 만에 우승을 했으며, 그 덕분에 러시아에서 개최된 세계 군인 농구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했다. 게다가 제86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결승전에서 중앙대를 꺾고 우승, 2005 농구대잔치 결승전에서 모교 고려대를 상대로 내외곽을 종횡무진하며 3점슛 5개를 포함해 27득점을 기록하며 4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어 냈다.

파일:KCC-전자랜드 2대3 트레이드.jpg

제대 후에는 LG로 복귀하지 않고 현금 3억원을 받는 트레이드로 팀 메이트였던 조우현, 정종선과 함께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로 이적해 전정규, 김태진, 석명준 등과 함께 식스맨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러자 2008년 12월에는 서장훈[8]과 김태환을 트레이드 시키고 조우현, 강병현과 함께 2대3 트레이드로 전주 KCC로 이적해 강은식, 유병재 등으로 일컫는 식스맨을 중심으로 뛰며 2013-2014 시즌에 은퇴할 때까지 2번의 우승(2009, 2011)과 1번의 준우승(2010)을 경험했다.

4. 은퇴 후

KCC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2014년부터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다가 다음 해인 2015-2016 시즌부터 코치로 부임해 인수 이후 팀의 첫 정규리그 우승을 함께했지만, 2017-2018 시즌을 끝으로 KCC 코치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야인으로 지낸 뒤, 2019년에 모교 고려대학교 코치에 부임해 2021년까지 주희정 감독을 보좌했고 2022년부터 모교 용산고등학교 코치를 맡고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3점슛 능력 하나로 프로에서 살아남은 케이스. 하지만 단신에 체력이 약한 단점 때문에 활용에 한계가 많았다.

6. 여담

7. 관련 문서


[1] 42세손 ○규(圭) 항렬. [2] 2022년 8월 2일 사망. # [3] 농구선수로 뛰었다가 대학교 때 그만두었다. 여담으로 쌍둥이가 아니라고 점프볼 인터뷰에서 밝혔다. [4] 창원 LG 시절 [5] 2006~2008 시즌 인천 전자랜드 시절 [6] 트레이드 이전 인천 전자랜드 시절, 전주 KCC 이지스 시절 [7] 당시 대표팀에는 강을준 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감독이 코치를 역임한 바 있다. [8] 이는 하승진과의 포지션 중복 문제로 인한 출전 시간 감소와 허재 감독의 불화설까지 생겼다는 이유에서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