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식의 수상 및 영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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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2011 |
대한민국의 농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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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강은식 姜恩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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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11월 27일 ([age(1982-11-27)]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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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진주 강씨[1] | |
종교 | 불교 | |
신체 | 키 198cm| 체중 95kg | |
직업 | 농구선수( 센터/ 은퇴) | |
학력 |
삼광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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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 ( 전주 KCC) | |
현역시절 등번호 | 15 | |
병역 | 국군체육부대 농구단 (2006~2008)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전주 KCC 이지스 (2005~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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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KCC에서는 주로 센터로 활동하며 식스맨과 백업으로 뛰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를 마감한 선수였다. 한때는 KCC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이는등 분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농구 갤러리에서 강스타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으며, 타조알이라는 별명도 있다.[2]2. 아마추어 시절
용산고를 거쳐 신임 김춘수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한양대로 진학한 강은식은 1년 선배인 양동근등과 함께 팀을 전전으로 이끌어 내었다. 특히 2003년에 개최된 MBC배 대학농구대회 결승전에서는 방성윤, 이정석 등이 버티고 있는 연세대학교에게 2경기 연속으로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은행배 농구대잔치 결승전에서 다시 연세대와 맞붙어 팀이 우승을 만들어 내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 후 제59회 여수시장배 전국남녀종별농구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하여 신인 조성민과 함께 주전으로 뛰며 중앙대학교와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기록하는 데도 기여해 냈다.그리고 2005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나온 결과, 1라운드 9순위로 전주 KCC 이지스에 지명되어 꿈에도 그리던 선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3. 선수 시절
그러나 문제는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할 수밖에 없는 무릎 부상이었다. 2005년 12월 19일에 열린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다친 무릎 부상으로 괴로움에 시달려야만 했고, 4년 뒤인 2009년 12월 16일에 열린 대구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1쿼터 7분이 남은 상황에서 김승현과 충돌해 오른쪽 무릎을 다치는 일도 겪게 된다.
2011년 4월 20일에 열린 2010-11 KBL 챔피언결정전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3차전 경기에서 슛을 쏘고 난 뒤 착지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연골 일부가 손상되며 남은 경기를 모두 출전할 수 없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시즌이 끝난 뒤에도 KCC에 잔류했으나 2년동안 선수 엔트리에 등록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부상 이탈로 인해 나가지도 못하고 말소. 이후 재활치료로 다시 코트에 서기 위해 2013년 2군 드래프트로 다시 복귀했지만 부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시즌만에 은퇴했다.
은퇴 후, 모기업인 KCC 관계자의 제안으로 입사하였고, 현재 KCC 건재사업부에서 영업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근황 관련 기사(2021년 1월 27일)
4. 플레이 스타일
3&D 스타일의 스트레치 빅맨. 공격자 파울 유도와 스틸 능력으로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공격 시엔 정확한 3점 슛으로 스페이싱을 도왔다. 주로 하승진의 백업으로 나와 체력세이브 해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하승진과는 다른 장점을 잘 활용해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다.단점은 아무래도 마른 체형 때문에, 파워가 강한 빅맨에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