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하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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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임청하 林青霞 | Brigitte 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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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4년 11월 3일 ([age(1954-11-03)]세) |
신베이시 싼충구 | |
국적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8cm, 50kg, B형 |
가족 | 남편 형리원(1994년 결혼 - 현재) |
의붓딸 형가천(1987년생) 딸 형애림(1996년생) 딸 형언애(2001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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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진링여자고등학교 (졸업) 홍콩대학 (사회과학박사 / 명예) |
종교 | 불교 |
데뷔 | 1973년 영화 《창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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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의 배우. 동방불패, 신용문객잔, 백발마녀전 등을 통해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중성적인 매력으로 왕조현과 함께 90년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1]2.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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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임청하 |
한국에서는 90년대 동방불패의 중성적인 남성 연기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70년대 대만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새침떼기 신입생이라든가 연인에게 배신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든가 하는 청순가련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주로 경요의 애정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 등에 연이어 히로인으로 출연했다.[4] 동방불패와 같이 남장 여인이라든가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여인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소위 리즈시절 임청하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젊은 시절의 임청하는 우리나라의 배우 이영애와 상당히 닮았다.[5]
성룡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成龍: 還沒長大就老了)>(2015)>에서 당시 임청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일화가 기재되어 있다.1978년, 서풍, 진한, 진상림, 임청하, 성룡 등이 함께 태국으로 자선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다 함께 바닷가로 놀러 갔고 일행은 페러세일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페러세일링은 낙하산 같은 커다란 기구를 등에 메고 보트에 줄을 매달아 사람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수상 스포츠다. 이 때 성룡이 나중에 영화 스턴트 장면을 구상할 때 써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가장 먼저 페러세일링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성룡이 낙하산을 메고 하늘로 올라간 후 갑자기 낙하산 줄이 끊겼고 성룡은 그대로 물 속으로 수직 낙하했다. 성룡은 수영을 할 줄 몰랐기에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당황한 일행들이 하나 둘 씩 물에 뛰어들어갔다. 성룡을 구해준 이는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들어간 진상림이었다. 물에서 나온 성룡이 일행 중 임청하만 물에 안 들어간 것을 보고 "남들은 나를 구하기 위해 다 뛰어들었는데 너는 왜 안 뛰어들었어?"라고 하자 임청하는 "나도 뛰어들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안에 비키니만 입었지 뭐야. 뛰어 들어가려고 옷을 반쯤 벗었는데 옆에 있던 기자가 내가 옷을 벗으면 사진을 찍겠다는 거야. 그러니 옷을 벗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걸 보니 나 하나쯤 없어도 될 거 같더라고 하하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6]
80년대 대만에서 호혜중[7]이 청초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로 임청하의 인기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임청하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더 이상 경요의 작품 여주인공을 맡지 않기로 했고 이 때문에 경요는 임청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내 작품으로 떴는데 은혜를 잊었다"는 식으로... 게다가 임청하는 당시 같이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유부남 배우 진한과의 불륜 스캔들을 일으킨 상태였다. 결국 대만에서 불륜녀 및 의리없는 여배우로 낙인 찍히자 활동 무대를 홍콩으로 완전히 옮기게 된다.
1983년도에 서극이 감독한 영화 '촉산'에서 정소추, 원표, 홍금보, 맹해 등과 함께 출연하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의 마녀 분장은 레전설급의 미모를 자랑한다. 이후 <도마단>, 동방불패 등 서극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또한 1985년에는 긴 머리를 과감히 자르고 짧은 커트 머리로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 출연한다. 대역을 허용하지 않는 성룡 영화인 만큼 유리창에 패대기 쳐지는 경험도 맛본다. (NG장면에서 성룡이 임청하랑 바디슬램 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8]
86년도 영화 <도마단>에서는 남장여인으로 출연하여 영화 중간에 여자옷도 입지만 오히려 안 어울린다고 느낄 정도로 중성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주윤발과 함께 한 '몽중인'에도 출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9] 사실 임청하가 남장연기를 보인 게 도마단이 처음은 아니었고, 70년대 쇼브라더스 영화인 금옥양연 홍루몽(金玉良緣紅樓)에서 남자 주인공인 가보옥을 연기한 적이 있다.[10]
1992년 38살의 나이에 서극 정소동 감독의 동방불패에 출연하여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로 절정의 인기를 만끽한다. 상대역은 이연걸이었고, 재개봉관과 비디오 시장에서는 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추석에 개봉한 신용문객잔 도 크게 흥행했고, 연이어 유덕화, 장민과 절대쌍교도 흥행에 성공했다.
1993년 왕조현과 함께 출연한 동방불패2의 성공 후 장국영과의 백발마녀전, 주성치와의 녹정기2-신룡교가 연이어 흥행했다.[11]
1994년 <화룡풍운>, <육지금마>등 남장여인 역할로 꽤 나왔다.[12] 1인 2역을 맡은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금발의 킬러 역할을 맡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등도 호평을 받으며, 재개봉관과 2차 시장에서 더 큰 인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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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하(林靑霞)와 장만옥(張曼玉)[13] |
중경삼림을 마지막으로 40세였던 1994년, 결혼과 함께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미소년지련, 유원경몽이 필모그래피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냥 나레이션만 맡았을 뿐이다.[14] 중경삼림을 선택한 이유는 그 동안 자신의 중성적인 이미지를 너무 울궈먹는 영화계와 대중들에게 환멸을 느껴서였다고. 한국에서는 임청하의 인기에 전작들이 최신작인것처럼 늦깍이 개봉하거나, 비디오로 출시되는일이 허다했다.
동방불패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서 한국에서는 <청우회>라는 팬클럽이 결성되었고, 내한했을 당시 임청하를 위해서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동방불패2> 홍보차 임청하가 내한한 적이 있는데, 당시 피카디리 극장이 아수라장이 될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10대 극성팬들이 몰려들어 유리창과 의자가 부서졌다고. 신인이었던 74년에도 내한한 적이 있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의 근황이 간간이 전해지긴 했다. 영화 촉산 리메이크작에 출연할 것이다 라는 루머도 있었고, 국내에서는 드라마 ' 다모'에 캐스팅 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와 수많은 팬들이 흥분하였으나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2014년 환갑을 맞이했다. 환갑 기념 홍콩 페닌슐라 호텔에서 파티를 열었다. 그와 더불어 수필집인 '운래운거'를 출간했다. 전작 '창리창외'에 이어 두 번째 책 출간이라고. 웨이보에 종종 소식을 올리고 있다.
2018년 4월 22일에는 한국의 정우성 배우가 '아시아의 전설적 여배우 브리짓 린(임청하의 영어 이름)과 함께'라는 글과 함께 본인 SNS에 임청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 그녀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
비록 영화계에서는 은퇴했지만, 종종 행사나 예능 프로그램에는 얼굴을 비추는 편이라 은퇴한 연예인 치고는 근황이 자주 전해지는 편이다. 2015년에는 중국의 예능프로그램 <우상래료(偶像来了)>에는 아예 고정출연을 하여 후배 연예인들로부터 교주(教主)[15]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6년 아문래료(我們來了)에선 조아지가 출연했다.
2020년부터는 몇 년간 그만 두었던 웨이보 활동을 재개했다. 웨이보를 통해 홍콩 영화 전성기에 함께 활약했던 배우들( 왕조현, 매염방, 장국영)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등 팬들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2023년에는 그동안의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금마장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며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4. 출연 작품
연도 | 작품명 | 비고 |
1973년 | 창외 (Outside the Window) | |
1974년 | 고경유혼 (古鏡幽魂 / Ghost of the Mirror) | |
운표표 (雲飄飄) | ||
순정 (純情) | ||
순순적애 (純純的愛 / Love, Love, Love) | ||
장정만루 (長情萬縷 / Long Way From Home) | ||
청청초원상 | ||
여붕우 | ||
여기자 (女記者) | ||
운하 (雲河) | ||
House of Love | ||
Pure Love | ||
1975년 | 수운 (水雲 / He Loved Once Too Many) | |
재수일방 (在水一方 / The Unforgetable Character) | ||
팔백장사 (八百壯士 / Eight Hundred Heroes) | [16] | |
장청수 | ||
열랑 (熱浪 / Hot Wave) | ||
연우 (煙雨) | ||
Evergreen Tree | ||
Misty Drizzle | ||
1976년 | 아시일편운 (我是一片雲 / Cloud of Romanc) | |
추가 (秋歌 / The Autumn Love Song) | ||
아시일사구 (我是一沙鷗 / Come Fly with Me) | ||
금색적영자 (金色的影子) | ||
풍엽청 (楓葉淸 / Forever My Love) | ||
해서산맹 (海誓山盟) | ||
낭래적시후 (狼來的時候) | ||
애정장포 (愛情長 / Run Lover Run) | ||
부일양적애 (不一樣的愛 / Different Love) | ||
1977년 | 이향몽 (There's No Place Like Home) | |
분향채홍 (奔向彩虹 / The Love Affair of Rainbow) | ||
월몽롱조몽롱 (月朦朧鳥朦朧 / Misty Moon) | ||
금옥양연홍누몽 (金玉良緣紅樓夢 / The Dream of the Red Chamber) | ||
온재아심 (My Sweet Love) | ||
1978년 | 백사전 (Love of the White Snake) | |
사탄상적월량 (沙灘上的月亮 / Love's Many Faces) | ||
신무 (晨霧 / Morning Fog) | ||
무정황지유정천 (無情荒地有情天) | ||
처처문제조 (處處聞啼鳥 / Everywhere Birds Are Singing) | ||
유하일편상사 (留下一片相思) | ||
1979년 | 미니특공대 (Fantasy Mission Force) | |
정분 (情奔) | ||
채하만천 (彩霞滿天 / Love Under A Rosy Sky) | ||
안아재림초 (雁兒在林梢 / Wild Goose on the Wing) | ||
일과홍두 (一顆紅豆 / A Love Seed) | ||
비지추 (悲之秋) | ||
일편정심 (The Choice of Love) | ||
난망적일천 (難忘的一天) | ||
1980년 | 쇄심란 (碎心蘭) | |
금잔화 (金盞花 / The Marigolds) | ||
벽혈황화 (碧血黃花) | ||
연애반두성 (戀愛反斗星 / Poor Chasers) | ||
성공영상 (成功嶺上 / Off to Success) | ||
1981년 | 중국여병 (中國女兵 / The Women Soldiers) | |
애살 (愛殺) | ||
무정황지유정천 (無情荒地有情天) | ||
1982년 | 연소파화조 (燃燒吧火鳥 / Burn Phoenix Burn) | |
혜안식영웅 (慧眼識英雄) | ||
창구하적소백합 (槍口下的小百合) | ||
홍분유협 (Pink Force Commando) | ||
1983년 | 아애야래향 (我愛夜來香 / All the Wrong Spies) | |
열혈천사 (紅粉兵團 / Seven Black Heroines) | ||
일구팔삼대경기 (一九八三大驚奇) | ||
오야란화 (午夜蘭花 / Night Orchid) | ||
사사해수 (四傻害羞) | ||
촉산 (蜀山 / Zu: Warriors From The Magic Mountain) | ||
1984년 | 정인간도 (情人看刀 / Be Careful Sweetheart) | |
군자호구 (君子好逑 / The Other Side of Gentleman) | ||
1985년 | 폴리스 스토리 (警察故事 / Police Story) | 서울 개봉관 191,739명 |
대복성 (The Great Lucky Stars) | ||
x함정 (Seven Foxes) | ||
1986년 | 몽중인 (夢中人 / The Dream Lovers) | 서울 개봉관 42,622명 |
도마단 (刀馬旦 / Peking Opera Blues) | ||
영웅우상 (英雄正傳 / True Colours) | ||
1987년 | 봉화가인 (烽火佳人 / Flag of Honor) | |
비창 (奪命佳人 / Lady in Black) | [17] | |
횡재삼천만 (橫財三千萬 / The Thirty Million Ruth) | ||
1988년 | 금야성광찬란 (今夜星光燦爛 / Starry is the Night) | |
1989년 | 경천대모살 (驚魂記 / Deception) | |
1990년 | 홍진 (滾滾紅塵 / Red Dust) | |
1991년 | 동방불패 (笑傲江湖II東方不敗 / Swordsman II) | 서울 개봉관 359,463명 |
1992년 | 암연도화원 (暗戀桃花源 / The Peach Blossom Land) | |
신용문객잔 (新龍門客棧 / Dragon Inn) | 서울 개봉관 246,045명 | |
절대쌍교 (絶代雙驕 / Handsame Siblings) | 서울 개봉관 99,416명 | |
녹정기 2 - 신룡교 (鹿鼎記 II - 神龍敎 / Royal Tramp ll) | 서울 개봉관 82,822명 | |
1993년 | 흑표천하 (黑豹天下 / Warriors The Black Panther) | |
추남자 (追男仔 / Boys Are Easy) | ||
백발마녀전 (白髮魔女傳 / The Bride With White Hair) | 서울 개봉관 99,670명 | |
동성서취 (射英雄傳之東成西就 / The Eagle Shooting Heroes) | 서울 개봉관 83,456명 | |
동방불패2 - 풍운재기 (東方不敗之風雲再起 / The East Is Red) | 서울 개봉관 272,326명 | |
백발마녀전 2 - 천하무적 (白髮魔女 2 / The Bride With White Hair 2) | ||
1994년 | 동사서독 (東邪西毒 / Ashes Of Time) | 서울 개봉관 70,249명 |
육지금마 (六指琴魔 / Deadful Melody) | ||
화룡풍운 (火雲傳奇 / Fire Dragon) | ||
도검소 (刀.劍.笑 / The Three Swordsman) | ||
천룡팔부 (新天龍八部之天山童姥 / Semi-Gods and Semi-Devils) | 서울 개봉관 77,936명[18] | |
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 은퇴작 서울 개봉관 126,953명 | |
1998년 | 미소년 지련 | 나레이션 |
2001년 | 유원경몽 | 나레이션 |
5. 사생활
임청하의 데뷔작 창외를 비롯해서 1970년대 많은 멜로 영화에서 함께 출연한 진한[19], 역시 많은 작품을 함께한 배우 진상림[20]과의 삼각관계가 유명하다.주성치 주연의 서유기-선리기연에서도 이 관계가 다루어지는데, 자하의 언니 청하가 지존보와 통성명을 할 때 청하가 매섭게 지존보를 째려보면서 나는 임씨다라고만 대답하자 지존보는 제 형님이 말씀하시던 임청하로군요, 저는 지존보의 동생 지존옥입니다 라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청하가 자기를 놀리는거냐고 하자 지존보는 사실 자기는 진상림이고 자기 형은 진한이라는 드립을 치다가 결국 청하에게 얻어맞고 기절한다.
진한과 임청하
임청하와 진상림
좌측부터 진상림, 임청하, 성룡[21]
임청하는 진한과의 사랑을 싹틔웠으나 당시 유부남이었던 진한과 임청하의 연애는 1970년대 후반에 세간의 이목을 이끌었다. 결국 임청하는 1980년에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이때 그녀를 미국까지 따라가서 위로해주고 챙겨준 것이 진상림이었다고 한다. 임청하와 진상림은 1980년에 사귀기 시작하여 동년 9월에 약혼하였다.
진한은 1983년에 부인과 이혼하였고, 이후 1984년 임청하조 진상림과 파혼했다. 파혼 이후인 1985년 임청하와 진한은 재결합하였고 1994년에 헤어졌다. 재밌게도 이 셋이 함께 출연한 영화 <아시일편운>에서 주인공들이 삼각관계를 이뤘는데 이 영화의 감독 진홍렬은 후에 이들이 현실에서도 삼각관계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1994년 6월 29일, 임청하는 재벌 싱리위안(당시 홍콩 에스프리의 사장)과 결혼식을 올리며, 이후 영화계에서 은퇴하게 된다.
싱리위안과 임청하
오른쪽 사진의 두 아이 중 큰 아이는 싱리위안과 전처 사이의 딸 싱지아첸(형가천)이다. 계모인 임청하 슬하에서 자랐고 임청하와의 사이도 좋다고 한다.
양 부부가 50이 접어든 1996년 큰딸 싱아이린(형애림), 2001년 막내딸 싱옌아이(형언애)를 얻었다. 첫딸의 이름이 임청하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잉꼬부부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03년에 K본부에서 '세기의 사랑' 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여러 번 이혼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며 특히 2018년 이혼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오보였던 듯, 2023년 웨이보에서 팬에게 자신은 기혼자라고 댓글을 단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6. 여담
- 본적은 산둥성이라고 한다.
- 대만의 외성인들이 으레 그랬듯 아버지가 국민당군 군의관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부모님이 대만으로 피난을 올 때 언니 한 명을 그냥 대륙에 두고 온 바람에 임청하는 오랫동안 이 언니의 존재를 알지 못해왔으나 훗날 양안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면서 대륙에 자신의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만나는데도 성공했다고.
- 중경삼림과 동사서독 리덕스를 보면 다른 배우들은 다 광동어를 구사하는데 대만 출신인 임청하 혼자 보통화를 구사한다.[22] 근데 대화가 된다(!). 이건 왕가위 감독의 특징으로, 배우의 원어를 그대로 싣고 차라리 관객을 위해 자막을 넣어버리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홍콩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으면 기본적인 보통화를 알아듣기는 한다. 다만 시장 상인이나 택시 기사 등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은[23] 보통화를 거의 못 한다.
- 2022년 7월 9일 홍콩 단독주택이 불이 나 소방차와 구조대가 출동했다고 전했다. 화재는 8시간 만에 진압됐다. 화재 당시 임청하는 집에 있지 않았고 운전기사, 가사도우미 등 약 20명은 긴급 대피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헬스장, 수영장, 테니스장 등이 있는 집은 대지 약 1400여 평의 3층 단독 주택으로 가격은 11억 홍콩 달러(약 1820억원)로 평가받는다. 2014년 남편 싱리위안이 임청하의 60세 생일과 그의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1]
여담으로
왕조현은 1980년대 후반
천녀유혼으로 대박이 터져 인기를 끈 반면, 정작 임청하는 30대 중반 이후인 1990년대 들어서야
동방불패,
중경삼림 등으로 한국에서 인기를 끈 케이스라 뜬 시기는 더 늦긴 하다. 다만 중화권 현지에서는 이미 70년대부터 스타였다. 여담으로 90년대가 전성기였던 쪽은 오히려
공리. 이쪽도 왕조현보다 오히려 1살 많다. 반대로 말하면, 왕조현이 20대 초반에 너무 일찍 전성기를 맞고 리즈 시절도 비교적 빨리 끝났다고 볼 수 있다.
[2]
여고생과 남교사가 금단의 사랑을 하는 내용인데, 작가인 경요 자신이 고등학교 때 교사와 사랑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3]
여담으로 경요가 배출한 여스타들 중에는
조미와
임심여,
판빙빙 등도 있는데, 이들 역시 중화권에선 스타가 되었지만 임청하만큼의 위상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4]
나중에는 비슷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하는 것에 질려 경요가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이 일로 한동안 경요와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5]
임청하가 한창 우리나라에 주가를 올리던 시절에 이영애는 슬슬 연예계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임청하 전성기 모습과 닮았다는 평이 제법 있었다.
[6]
성룡은 자서전에서 예전에 이 일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지어낸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화가 나서 묻혀두고 있다가 임청하가 이 일화를 그녀의 책 <운래운거>에 써놓은 것을 보고 자신도 자서전에 써놓는다고 밝혔다.
[7]
1979년에 대만에서 연예인으로 데뷔했으며 아버지가 대학 교수였고 호혜중 본인도 대만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국립타이완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 여배우이다. 대만 활동시에는 주로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지만 1985년 홍콩 영화계로 진출해서 복성고조의 여형사 패왕화 역으로 유명해진 이후에는 무술이나 액션물에 많이 출연했다. 한국에서는 복성고조, 칠복성(원제:하일복성) , 땡큐마담의 여형사 패왕화 역할로 유명. 1989년 <엽마군영> 촬영 중 이새봉과 같이 큰 화상을 입었고 회복은 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1997년 안과의사 출신 정치인(홍콩 내무장관 역임) 하지평과 결혼 후에 연예계를 은퇴했다. 2003년 정계에 입문해서 2023년 현재까지 정치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강소성의 정협위원 (한국으로 치면
도의원)아다.
[8]
이외에도 영화에서는 임청하가 저택 옥상에서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이 장면은 부상의 위험이 컸기에 임청하 본인이 아니라 성가반 소속의 여자 스턴트맨이 대역을 맡아 찍었다.) 사실 폴리스 스토리 1탄이 지금 시대에서 보면 엄청 잔인한 느낌이 강하다.
[9]
도마단에 출연하면서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서인지 비슷한 시기에 촬영한 몽중인에서도 숏컷으로 등장한다. 중간중간에 진나라 시대 여인으로 등장할 때에는 물론 가발이다.
[10]
원래는 여자 주인공 임대옥 역을 맡기로 했다. 그런데 가보옥 역을 맡기로 한 배우 실비아 창('장애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허관걸, 맥가와 함께 최가박당, 주윤발과 함께 우견아랑에 출연했다. 가보옥이 남자지만 어지간한 여자보다 곱상하게 생겼다는 설정 때문에 여배우가 가보옥 역을 맡기로 했음)이 임청하보다 키가 좀 작다는 점 때문에, 두 배우가 서로 역할을 바꾸게 되었다.
[11]
이 영화를 찍었을 때 임청하의 나이는 이미 39살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활동하기로 치면 한창 활동할 때긴 하다만. (탕웨이나 판빙빙이 지금 2023년 기준으로 40대인데 젊게 느껴진다.) 1993년 당시에는 공리, 왕조현이 20대였고 양자경, 관지림이 30대 초반이었다. 남자배우들도 성룡이나 주윤발이 나이가 많은 편이었고, 전성기였던 이연걸이나 주성치는 30대 초반이었다.
[12]
<도검소> 등 아얘 남자로 나온 적도 있다
[13]
1990년 대만 금마장 당시. 이 날 영화 <홍진>(滾滾紅塵)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장만옥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둘이 처음으로 만났던 영화가
폴리스 스토리(1985)였다.
[14]
은퇴 후 나레이션을 맡았던 미소년지련과 유원격몽 모두 공교롭게도 친한 동료배우인
왕조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15]
동방불패는 일월신교의 교주다.
[16]
중일전쟁 중 발생한
제2차 상하이 사변에서 상하이 시 대부분이 일본군에게도 점령되었는데도 사행창고를 점거하고 압도적인 일본군을 상대로 분투한
국민혁명군 병사들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중일전쟁판 300으로 보면 될듯. 임청하는 걸스카우트 단원으로 강을 헤엄쳐서 중국군 장병에게
청천백일기를 전달한 실존인물인 양후이민 역을 맡았다. 임청하는 실제 양후이민과 만나기도 했다.
#
[17]
비창은 동방불패 이후 인기를 얻게 되어 재출시할 때의 제목이고, 원제 탈명가인으로 비디오가 먼저 나왔었다.
[18]
쌍둥이자매 이창해, 이추수 1인 2역
[19]
대만국방부 홍보 영화인 1975년작 <팔백장사>에 각각 국민당군, 걸스카웃 역
[20]
영화
오복성에서 '바세린' 역, 1978년 영화 백사전에서 '허선' 역, 1974년 영화 <여붕우> 주연
[21]
세 사람은 매우 친한 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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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어를 구사할 수 있으나 유창한 편은 아니다. 홍콩 언론 인터뷰 등에 나가면 광동어로 얘기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보통화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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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홍콩 사람들의 교육 격차는 상당히 큰 편이라 중년층 이상에선 중졸 미만도 수두룩했다.